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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S.S] 4화

4
  • 조회수21
  • 작성일2026.02.08






내려다 본 창 밖으로 좀비가 용을 뜯어먹는 꼴을 처음 보던 날. 외출을 자제하라는 방송만이 반복되는 라디오, 사태가 심화되기 전에 먹을 것을 챙겨오자며 바깥에 나갔던 때에 봤던 거리의 풍경, 피의 비릿한 냄새. 좀비가 용을 죽이고, 용이 용을 죽이고, 저 멀리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처음으로 좀비를 처리했을 때, 양손에 썩은 피를 가득 붇히고 주저앉은 고신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그래야만 했다고, 그는 이미 용이 아니라고 위로를 하던, 그랬던 하람도 그만의 절망이 있을까. 모든 끔찍한 일 그 속에서 하람도 좌절을 했던 걸까. 어떤 것이, 대체 어떤 것이 하람을 멈추어 서게 만든 것일까. 그 수첩을 당장 태워 땅에 묻고 싶었다.




하람은 괜찮다고 했다. 평소보다 느리게 걸으며 휘청거리고 거친 숨을 내쉬어도 괜찮다고만 연신 반복했다.




하람 : "고신 네가 손만 잡아주면 나 괜찮을 것 같아. 응?"




그러곤 막무가내로 손을 붙잡더니 깍지 낀 두 손을 하람은 자기의 겉옷 주머니 속에 넣었다. 겹쳐진 두 손은 주머니 속에서 금방 따뜻해지고, 두 용은 늦춰진 이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몸이 안 좋은가, 추운 날씨에 든 감기인 건가. 실버손에 정말 캠프가 있다면 감기약 같은 건 쉽게 얻을 수 있겠지. 그리 생각했다.



하람은 손이 금방 따뜻해졌다고 배시시 웃으며 장난을 쳤다. 고신의 마른 손등을 손가락으로 훑기도 하고 일부러 꽉 힘을 주기도 했다.




고신 : "아아, 아파!"




이게 뭐가 아파, 하람은 웃으면서도 꽉 쥔 손의 힘을 뺐다. 고신은 복수라며 하람의 손등을 꼬집었다.




하람 : "악, 야!"


고신 : "복수야."




그렇게 한참을 투닥이고 웃으며 걷다가 하람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멈추어 서선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하람 : ".....있잖아, 만약 사태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얼 제일 먼저 할 거야?"




별안간 그렇게 묻는 것이었다. 고신은 하람이 만족할 만한 멋들어진 시적 표현을 생각하며 지금껏 지나온 날들을 떠올렸다. 어쨌든 생존의 희망을 놓은 적이 없던 고신에게 죽을 만치 좌절적인 날은 없었다. 이어지는 충격적인 날들에 정신이 적응하지 못해 잠시 무너진 날은 있었지만 다 지나고 지금 떠올려 보니 모두 한순간이었던 것이다.


하람과 함께 있었으므로.



그저 괜찮았다.




고신은 어떤 일이 반복되더라도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하람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고신 : ".....너는 어떤데?"




그런데 하람은 어떨까. 지금껏 그 어떤 흔들림도 고신에게 내보인 적 없는 하람은 도대체 무엇이 그리도 후회가 되는 걸까. 묻고는 괜히 불안했다. 그런 고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람은 말 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입김을 후, 하고 내뱉는다.




하람 : "글쎄에."




그러면서 대답을 돌렸다. 고민이 되어 대답을 못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말갛게 웃고 있는 눈동자 뒤로 노여움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람 : "아, 눈 온다."




작은 눈송이 하나가 힘 없이 고신의 얼굴 위로 떨어져 녹았다. 하람에게로 이끌리듯 돌아가는 눈동자를 가까스로 막았다.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지 보고 싶지 않았다.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해가 지고 있다. 이 속도로 걷는다 해도 내일이면 실버손에 도착할 것이다. 고신은 아무 빈 건물이나 들어가 불을 피웠다. 8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이전엔 아마 회사였던 것 같다. 건물은 이미 누가 털어간 것 같았다. 무엇도 남지 않았다.



고신이 불을 피운 건 가장 꺠끗했던 2층이었다. 불 앞에 쪼그려 앉은 하람에게 겉옷을 벗어 덮여주곤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람 : "따뜻하다. 옷에서 네 냄새 나네."


고신 : "내 냄새?"


하람 : "응. 포근하고 따뜻하고....., 슬픈 냄새."


고신 : "담배 냄새 말하는 거야?"


하람 : "아니."


고신 : "음. 아무 냄새 안 나는데."




하람은 대답 없이 예쁘게 웃었다.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가 좋았다. 지친 눈으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하람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고신은 그녀의 이마에 대뜸 손을 얹었다. 고신의 손이 찬 것도 있겠지만 분명 열이 나고 있었다.




고신 : "도착하면 감기약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괴롭게 웃었다.




하람 : ".....그걸로 나 괜찮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




고신은 라이터를 찾아 온 주머니를 뒤지다가 어제 묵었던 그 건물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치밀어오르는 짜증에 마른세수를 하다가 느닷없이 눈을 크게 뜨고 호흡을 포함한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고신 : ".....무슨 소리야."




고신은 턱 턱 막혀오는 숨을 억지로 내쉬었다. 대답이 없었다.




고신 : "무슨 소리냐니까, 하람아."


하람 : "난 더 이상 갈 수 없어."




그 말이 수도 없이 들어온 시적인 표현들과 같은 것이길 바랬다. 언제나처럼 그 속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길.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릴 만큼 조용한 정적이 그런 고신의 바램에 불을 질렀다. 고신은 최악의 상황까지 빠르게 훑었다. 너무 끔찍해 상상도 할 수 없던 최악까지, 하람이 저런 표정을 지을 만큼의 큰 절망을 가져다 줄 최악까지.


그러고 나니까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 끝까지 두려움에 잠겨 호흡이 되지 않았다. 하람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젯밤 고신이 잠깐 보았던 그 표정이다. 참 잔인하다.




하람은 천천히 왼쪽 팔 옷 소매를 걷어 올렸다. 여린 살을 파고든 그건 좀비 이빨 자국이 확실했다. 이미 곪아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끔찍하다.




고신 : "......아."




식인 본능이 있고, 이성이 없으며, 물리거나 할퀴어진 용은 감염된다는 것. 감염 후 대략 닷새 후에 죽게 되고, 죽은 몸은 좀비가 되어 움직인다는 것. 그게 고신이 좀비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사태 후 줄곧 하람과만 지내 온 고신이 그 닷새 사이에 일어나는 과정을 알 리 없었다.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믿기지 않는데 감정은 파도처럼 몰려왔다. 눈 앞이 핑 돌았다. 


잘 걷디 못하고 휘청대는 게 감기라도 멋대로 생각했을 때도 고신은 충분히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괴로워할 시간이 없었다. 어쩌면 당장 내일.....




고신은 정신이 희미한 와중에도 고개를 번쩍 들어 하람을 눈에 담았다. 얼굴은 여전히 웃음을 품고 잔혹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이젠 알겠다. 따뜻한 날 꽃 구경을 갔을 때나, 가을 날에 바닷가에 갔을 때에 보았던 얼굴과 무엇이 다른지.




비통함을 소리로 내며 바닥에 쓰러져 울고 싶어도 웃고 있는 그녀의 앞에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눈가에 고인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했다. 궁금한 게 많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째서. 그러나 입을 열었다간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눈물이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았다.




두 용은 감히 깰 수 없는 침묵 속에 한참이나 있었다. 누구 하나 웃지도 울지도 않고 모닥불만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추위가 날카로워질 떄까지 말소리는 없었다.



무엇이든 간에 코 앞까지 닥친 연인의 처절한 죽음 앞에선 절망만을 더할 뿐, 이를 꽉 물고 눈물을 참길 반복하다가 결국엔 그저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었다.




하람 : "담배 남았니?"




침묵을 깬 건 하람이었다. 고신은 아까 입에 물었던 담배를 떠올렸다. 정신 차려보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이다. 바닥에 떨구었나 두리번거려 보니 이미 온갖 먼지가 다 묻어있는 것을 근처 바닥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고신 : "아니. 이제 없어."


하람 : "잘됐네. 나 너 담배 끊는 거 보는 게 소원 중 하나였는데."



근데 어찌저찌 이뤘네. 덧붙이며 예쁘게 웃었다.


고신은 거기서 몇 시간 동안 글썽였던 눈물을 쏟아낼 수 밖에 없었다. 어떤 게 먼저랄 것 없이 우수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뒤죽박죽 섞여 잘 나오질 않았다. 뭉개진 발음으로 하람아 이름 한 번 부르곤 다음 말을 도저히 잇지 못했다.




고신 : "미, 안해. 내가, 내가....."




고신은 하람을 품에 욱여넣곤 소중한 보석인 양 그 작은 뒤통수를 어루만진다. 어정쩡히 고신의 품에 안긴 하람은 자세를 고쳐잡아 팔을 고신의 허리에 둘렀다. 고신은 여전히 말을 잇지 못했다.




하람 : "네 냄새 난다. 슬픈 냄새랑....."




뼈가 저렸다. 이제 고신도 알 것 같았다. 하람에게서도 슬픈 냄새가 났다. 품에 안긴 작은 몸이 불덩이 마냥 뜨거웠다.




고신 : "부탁이야, 제발..... 이런 식으로 떠나지 마....."


하람 : ".....응, 나도 사랑해, 고신."




죽음 앞에서 누가 타인을 이해하려 들까. 고신은 말로써 죽을 이에게 이고 갈 짐을 하나 더 쌓아 올리고, 하람도 비슷한 걸 함으로써 남겨질 고신의 슬픔에 무게를 더했다.


그러나 아마 그것들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람이 울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무슨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고신은 알 수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밤은 깊어간다. 하람은 곳 고신의 어깨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옷자락을 붙들고선 오래 끌어보아도 소용은 없었다. 피곤해하는 얼굴을 보기 힘들기도 했다.




하람 : "고신, 너도 빨리 자."




입을 꽉 물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하여 고신은 갈라진 목소리로 응, 한마디 내뱉었다.




하람은  쪼그려 누워 고신이 덮여준 겉옷을 껴안더니 금방 잠에 들었다. 고신은 눈 감은 그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혹시 모닥불이 꺼질까 잘 탈만한 것을 옆에 쌓아두고 그것들을 천천히 태워나갔다. 겨울밤은 길고, 고신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눈을 감을 순 없었다.




고신은 해가 떠오르고 아침이 밝을 때 까지 결코 잠에 들 수 없을 것이다.


모닥불의 밝고 덧없는 누런 빛에 시야를 의지한 채 슬픈 향이 짙게 새어 나오는 그 잠든 얼굴이 눈을 뜰 때까지 한숨을 내쉴 것이다.



서로가 죽는다는 건 가정도 하기가 싫었다. 좀비가 되는 건 더더욱. 용들이 죽어 나가도, 먹을 것이 떨어져도, 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견뎌온 것이 최대 절망에서 끔찍한 이변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고신은 아직도 잘 믿기지가 않았다. 멍한 눈에 눈물을 담았다 비워내는 것을 반복하다 여명이 잿빛 하늘을 밝히는 것을 바닥에 기어가는 벌레 보듯 노려보았다. 하람이었다면 이걸 글로, 또 노래로 쓸 수 있었을까. 그 점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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