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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S.S]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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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27
  • 작성일2026.02.09






수고하였다고 맞이하는 데빌을 향해 애써 웃으며 그녀는 피곤하니 들어가서 한 숨 자도 되겠냐 물었다. 데빌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는 이전에 지낼 때 쓰던 방으로 들어갔다. 고신은 그 모든 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




고신 : "듣자하니 파틴 대학 선배라면서요?"


데빌 : ".....둘이 아는 사이예요?"




고신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데빌은 쇼파에 털썩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데빌은 알 수 있었다.


용을 찾으러 갔던 파틴이 절망이 짙게 밴 얼굴로 혼자서 돌아온 것, 그게 파틴의 지난 3일을 설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데빌과 파틴은 좀비 사태가 처음 터진 작년 여름 같은 무리에 있었다. 그 무리 안에서도 데빌과 파틴은 꽤 돈독한 사이였지만, 데빌이 블랙과 먼저 무리를 나와 실버손으로 떠난 후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마카라란 이름은 그 때 그 무리엔 없었다.




데빌은 창가에 앉아 이미 다 식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용이 심지어는 하나 더 늘었는데 저녁 때 까지 그 어떤 말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해가 저물 때 까지 바깥을 주시하고, 곧 고신이 다가왔다. 코 앞에 와서도 우물쭈물 하며 한참을 망설였다.




고신 : "......데빌씨. 이거, 읽어주실 수 있나요.........."




아주 우울한 목소리였다. 데빌이 고신을 바라보며 작게 네, 하고 대답하자 들고 있던 작은 회색 수첩을 데빌에게 내밀었다. 어제 종일 붙잡고 있던 그 수첩이다. 




고신 : "여기에 데빌씨 지역 언어로 적힌 걸 유타칸어로 번역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많진 않아요, 고신은 데빌을 바라보지 못하고 바닥만 응시했다. 그제야 데빌은 고신이 제 지역 용을 찾던 이유를 이해했다. 벽난로 앞 소리 없이 흘리던 눈물과, 데빌의 어깨를 꽉 붙잡고 매달렸던 것. 



그럼요. 데빌은 흔쾌히 수락했다.




고신 : "내일은 생존자 캠프로 갈게요. 고마워요."



고신은 금방 자리를 떴다. 데빌은 포스트인 한 장과 빨간 볼펜을 들고 다시 자리로 와 앉았다. 때가 탄 그 수첩의 겉표지가 괜히 두려워 쉽게 넘겨보지 못했다. 굳은 심호흡 한 번으로 볼펜을 들었다.




1월 16일이 마지막 날짜인 일기였다. 16일이면 바로 이틀 전이다. 착잡해진 마음에 한숨만 연신 내쉬고 나서야 번역된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자연히 전문을 읽게 되고, 고신이 진 절망을 이런 식으로 엿본다.





1월 12일 (흐림)



고신이 위험했다. 돌아오는 게 늦어져 급하게 찾으러 간 게 정말 다행이었다. 몇 분만 늦었어도...... 생각하기 싫다. 고신을 잃는다니, 끔찍하다. 그렇지만 그건 고신도 마찬가지겠지.




마음이 급하여 손도끼 하나로 좀비 밭에 뛰어들었다. 구하러 왔느냐는 고신의 기쁜 말에 나는 차마 우린 같이 고립된 거라고 말할 순 없었다. 


응. 구하러 왔어.


괴로운 마음에 무리를 했다. 손도끼까 그 녀석의 머리에 단단히 박혀 빠져나오지 않았다. 물리게 된 건 그 때 였다. 팔에 열이 오른다.




쉽게 믿기진 않는다. 이상 하나 없이 건강하던 이 신체가 그들처럼 될 것이라니. 총에 맞은 것도 칼에 찔린 것도 아닌데, 내가 정말 죽게 될까. 정말 죽게 되어, 널 혼자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가게 되는 걸까. 정말 우린 망가지게 되는 걸까. 내일이면 지긋지긋한 덴버도 떠난다. 정말 오래 지낸 집인데도 정 하나 없이 신물이 났다. 덴버는 너무 위험하다.







1월 13일 (흐림)



물리고 고작 한 밤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열이 심하다. 상처는 곪아가기 시작하고 왼팔엔 감각이 없다. 그렇지만 아픈 건 아직까지 버틸만 하다.



이럴 줄 몰랐다. 고신도 몰랐겠지. 고열이 끓어 죽는단 말은 우리 둘 다 못들어봤으니까. 감염 후 발현 전 그 사이의 일에 대해선 무지했으므로.



너무 춥다. 콜로라도에서 오래 지냈지만, 겨울이 이렇게 추웠던가. 추워. 너무 춥다, 고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점점 늪에 빠지는 기분이다. 절망은 서서히 실감 난다. 


손목시계고 사진첩이고, 엄마가 준 목걸이고. 언젠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그 아파트 한 켠에 그들을 남겨둔 채 나만 멀리 떠나왔다. 앞으론 더욱 멀리 떠나게 될 것이므로. 나를 기쁘게 만들었던 모든 것이 내 목을 조여온다. 


세상은 변함이 없고,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그런데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우린 무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걸까.







1월 14일 (눈)



정신이 흐릿하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이젠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고신은 영문도 모르면서 내 곁을 잔인하게 지킨다. 내 입으로 말해야만 하겠지. 괴로운 사실을 전해야만 하겠지. 이건 너무 잔인하다. 감기를 앓는다 생각하면서도, 고작 그런 정도에도 괴로워하는 고신의 마음이 날 바닥 어딘가로 끌고 내리는 것 같다.




꿈을 꿀까 두려워 잠을 잘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보고 싶지 않다.


괴롭다 칭했던 과거라도 데려가 줄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


점점 호흡이 힘들어진다.





고신이 이걸 읽게 둬도 될까.







1월 15일 (흐림)



고신. 어제 물어봤던 그거 있잖아.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얼 할 건지.



있지, 만약 막을 수 없었다면, 나는 죽을 것 같아.


이 모든 걸 버텨 받아내라는 건 너무 잔혹하지 않니. 


나는 죽어버릴 것 같아.


나 물릴 때도 아프지 않았어. 상처가 썩어들어가고 고열이 들끓는데도 난 괜찮았어. (하람의 지역 언어로 쓰여진 문장이 두 개 있다.)



넌 무엇을 갈망하니.



우리도 신이 만든 작품인 걸까. 비극으로 끝을 마무리하는 그런 슬픈 문학 작품 같은 것.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아. 그렇지만 네 옆에선 절대 안 되지. 우리는 총도 없으니까, 내가 만약 네 옆에서 되살아난다면..... 응. 그런 일은 없게 해야지.







1월 16일 (눈)



살아. 꼭 살아야 해. 이게 내 마지막 말이야. 넌 이 괴로운 문장을 붙들고 앞으로를 살아나가야 해. 실버손으로 가, 고신.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을 테지. 나 또한 그러할 테니.....



그래서 글을 남겨.


꼭 살아남아.


사랑해. 잊지 말길. 하람.





하람. 우리 지역 이름이다. 이제 모든 게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됨과 동시에 데빌은 한숨을 내쉬고 미간을 짚었다. 끔찍하다. 덴버 상황이 이렇게나 심각한가.



글을 써 내리다 데빌은 문득 멈춘다.





고신이 이걸 읽게 둬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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