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신 : "비트 봤어?"
데빌 : "뭐?"
고신 : "비트 봤냐고."
일단 오토바이 위에 있으면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터널을 뚫고 지날 땐 고신은 비트라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두 눈을 감고 팔을 벌리는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그것이 자살을 뜻하는 것인지 완전한 자유를 뜻하는 것인지 고신은 정확히 그 장면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해서 한참이나 그 장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었다.
마치 불행한 것이 꼭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았다.
그 무렵부터 오토바이를 타는 용들을 동경했나 싶기도 한 고신이었다. 뭐라 뭐라 이어 물어도 데빌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고신은 노스트라다무스나 비트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데빌이 듣지 못하는 척을 하는 것이라 여길 때도 있었다.
가끔 비트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빠르게 이어지는 풍경들 너머로 던져지는 굉음과도 같은 말이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짐을 느낀다. 터널을 가뿐히 빠져나온 데빌의 오토바이와 그 뒤를 쫓는 다른 이들의 오토바이에서 파생된 엔진소리로 인해 도로가 더욱 더 시끄러워졌다. 데빌은 중앙선을 넘기도 하고 앞에 가는 택시에 바짝 붙기도 했다. 위험천만하지만 정작 고신과 데빌, 그리고 뒤의 무리들은 무감각했다.
고신이 더 빠른 속도를 내라고 데빌의 허리춤을 당기며 채근을 한다. 이 오토바이의 최고 속도는 얼마일까, 늘 궁금했던 고신이었다. 순간적으로 폭발할 것 같은 굉음에 고신의 고막이 얼얼해졌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거리가 더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무리들과 찢어짐을 느끼며 고신은 눈을 감았다. 무수히 많은 공기의 표피들이 고신의 얼굴을 갈기며 지나간다. 속도가 올라갈 수록 그것들은 점점 더 세게 와 닿는다.
비트도 모르고 노스트라다무스도 모르고, 병신. 고신은 흥에 겨워 아무 말이나 해버린다. 근데 엔젤은 알 것 같다. 엔젤은 노스트라다무스도 아니까, 비트도 알 것 같다. 갑자기 엔젤의 얼굴이 생각이 난다. 태어나서 그렇게 예쁜 건 눈에 담아본 적이 없다. 그런 애가 다가와서 잘해준다니, 그게 친구인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신은 그렇게 떠올려버린 엔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다른 풍경처럼 흐릿하지 않고 오히려 선명한 것이 좋았다.
근데 그래도 되는 건가 싶다.
원래 나쁜 건 빠르게 옮는데,
그 순간 오토바이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헨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음이 틀림없다. 순간 데빌의 몸이 경직됨이 느껴진다. 속도는 좀 전보다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오토바이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일순간 앞에서 데빌이 뭐라고 소리를 지른 것 같기도 했다. 근데 그 소리는 무참히 흩어지고 만다.
오토바이가 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바퀴가 튀었다. 핸들이 확 하고 기울어진 반대편으로 꺾인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고신은 눈을 감았고 그 순간 자신의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오토바이가 도로로 미끄러지고 고신의 떠오른 몸이 고가 도로 옆 풀숲에 처박혔다.
그 짧은 순간이 아득하고 길고 지루하게 연결이 되었다. 드문드문 끊겨진 시선의 연결고리가 제멋대로 엉켜 과거와 현재를 무수히도 많이 오가며 함께 처박혀 버렸다.
고신이 눈을 떴을 때 눈 앞에 보인 것은 누워있는 오토바이의 박살이 난 헤드라이트였다. 온 몸에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잠시 눈만 감고 있다가 자신이 죽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겨우 무겁게 손을 들어 올려 제 뺨을 쓰다듬어보았다.
오른 손은 멀쩡한데 왼 쪽 팔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지고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피부가 만져지는 것이 확인이 되자 순간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어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죽어도 상관 없다고 해놓고는 살아서 좋은 건 또 무슨 심보일까.
무겁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온 몸이 부서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체 감각이 하나 둘 씩 되살아나니 기억도 함께 되살아난다. 고신이 이마를 짚어 보았다. 흥건한 것이 땀인지 피인지 어두워서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옆에 앉아 신음소리를 내는 데빌을 한 번 쳐다보았다. 시발, 오토바이 좆같네 진짜. 말을 하는 것도 힘겨워서 이를 꽉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다리는 멀쩡하다. 근데 팔은? 팔이 부러졌으면 이 정도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고신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야, 주변을 돌아보았다. 익숙한 글자가 적힌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질질 다리를 끌며 비틀비틀 걸어 웅성거리며 사고 현장으로 모여드는 용들을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데빌이 앉아있으니 경찰이 오든 소방대원이 오든 누구라도 와서 현장을 수습할 것이다. 고신은 무작정 그곳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눈 앞에 선 건물들을 흐릿하게 훑어 내리다 우뚝 고신의 걸음이 멈춰섰다. 스스로 미쳤나 싶었다. 저 아파트는 엔젤이 사는 아파트랬다. 이름도 생소해서 잊혀지지 않던, 너무나도 고급스러운 이름의 아파트였다. 언젠가 혹시 모를 방황에 무단결석이라도 하게 되면 찾아오라던 그 황당한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고신은 엔젤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있는데 엔젤이 자신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 거냐고 채근을 했다. 아파트 이름을 머릿 속으로 곱씹어 보고 있었다고 바른대로 말을 할 수가 없는 노릇이라 괜히 욕을 했다. 엔젤은 욕을 해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왜 주눅이 들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아.
자꾸만 이마 사이로 흘러내리는 액체를 닦으며 고신이 왼쪽 팔을 붙잡았다. 갑자기 추워져서 손이 벌벌 떨린다. 공중전화 부스로 가서 그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안에 있는 동전을 찾아 꺼내 무작정 밀어 넣었다.
신호음에 떠오르는 번호를 누르고 얼마 안돼서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고신은 입을 뗄 수가 없어 막막했다. 엔젤의 집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는 자신이 기가 막혀서, 어이가 없어서, 한숨으로 대신할 뿐이었다.
그 때 상대가 잘못된 전화인 줄 알고 끊으려 했을 때, 고신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실어증에 막막해 하다 기적적으로 입을 뗀 용처럼 신기하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고신 : "엔젤 친구.... 고신이라고 하는데요. 엔젤 좀 바꿔주세요."
부스 내 벽에 기대어 자꾸만 꺾이는 제 고개를 벽으로 처박았다. 이내 엔젤이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엔젤의 목소리가 마치 제 2의 엔젤인 듯 낯설게 느껴진다. 막상 얼굴을 보고 있지 않으니까 더 솔직해질 수 있겠다 싶다.
아프고 피로하고 무엇보다 고신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엔젤을 보고 싶어하는 자신의 마음이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네 글자에 고신이 힘겹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고신 : "엔젤."
엔젤 : ".....고신?"
고신 : "나 사고가 좀 나서 그런데, 좀 나와 봐. 내가 좀 다쳤어."
엔젤 : "야. 너, 너 지금 어딘데?"
고신 : "너네 집 아파트 앞에 있어. 놀이터 보이네. 놀이터에 있을게. 나와."
엔젤 : "갈게. 갈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거기 있어야 돼."
고신 : "어."
엔젤 : "고신. 거기 있어야 돼. 알았지?"
고신 : "보고싶어. 나와."
힙겹게 전화를 끊고 질질 다리를 끌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치 온 몸을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기도 하다. 점점 더 걸음이 힘겨워지고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바로 눈 앞에 채 백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놀이터가 마치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 엔젤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그 번호는 언제 또 기억해서.
고신이 알고 싶은 것은 많았다. 근데 제일 알고 싶은 것은 이 순간, 제일 고통스러운 순간, 의식마저 흐릿해지는 순간에 왜 엔젤이 보고 싶냐는 것이다.
고신이 느리게 걸어 겨우 놀이터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을 때 갑자기 몰려드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고, 고개가 기울어져 의자바닥에 처박혔다. 고신은 그런 채로 잠이 들려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힘겹게 눈을 떴다.
가로등을 등지고 선 엔젤의 모습이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아주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고통으로 인한 신음을 내 뱉자 엔젤이 제게 달려들었다. 엔젤의 손이 서슴없이 고신의 얼굴과 몸을 만졌다. 손길에서 당혹스러움이 느껴진다.
엔젤 : "고신. 너, 이거 피야?"
고신 : "야. 나 괜찮아."
엔젤 : "이거 피잖아!"
고신이 다시 눈을 감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자 엔젤이 고신의 뺨을 어루만지고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는 등 고신이 마치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위독한 환자라도 되는 양 행동을 한다. 고신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
엔젤이 울음을 터뜨리며 고신을 살짝 껴안았다. 아아, 앓는 소리를 내자 놀란 토끼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데 그 평소의 여유롭던 엔젤과 달라 괜히 웃음이 났다. 고신은 웃는데 엔젤은 울고 있다.
엔젤 : "병원 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
엔젤이 울먹이며 말한다. 고신을 일으키려는 손길에 고신이 그 행동을 저지시키려 손을 들었다. 고신은 그 순간,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엔젤을 보는 순간 모든 궁금증이 풀린 것이 느껴졌다. 고신이 묵직한 돌에 짓눌린 듯 들어지지 않는 왼쪽 팔에 힘을 줘 들어보았다. 목구멍에도 뭔가 걸린 듯 시큰거렸다. 왠지 모르게 자신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목이 매여서, 숨이 막혀서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엔젤의 손이 고신의 뺨에 닿았다. 엔젤의 손은 따뜻하다. 온 몸이 차갑게 식은 자신과 다르다. 엔젤은 고신과 다르다. 온 몸이 부서질 듯 아픈데 엔젤의 손에 닿은 뺨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고신이 기울어진 몸을 바로 잡았다. 순간 입 밖으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팔이 부러졌나봐,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엔젤이 조심스럽게 고신의 왼쪽 팔을 만져보았다. 이상하게도 왼쪽 팔도 아프지 않았다. 그게 이상해서 고신이 웃었다.
병원 가야 돼. 엔젤은 여전히 울고 있는 채로 말했다. 고신이 조심스럽게 자세를 고쳐 잡고 제 옆에서 울고 있는 엔젤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고신 : "너 왜 나 안 피해?"
엔젤 : "....."
아주 천천히 엔젤이 제 얼굴을 쓰다듬는 것을 보았다. 고신은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엔젤을 바라보려 애를 썼다. 태어나 이런 적 처음인데. 어색해 죽겠네. 고신이 비죽 웃자 엔젤이 그런 고신의 몸을 끌어안았다. 온 몸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완화되는 것 같았다.
그럴 수도 있나,
고신은 생각했다.
엔젤은 자신을 피하지 않고, 어쩌면 엔젤도, 엔젤도 어쩌면 그런 마음인가. 고신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자꾸 눈가가 아려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 쯤 되자 슬픈 건지 기쁜 건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마음도 있을까, 자신을 끌어안은 엔젤의 어깨에 턱을 얹으며 생각했다.
야, 넌 알아? 왜 그런 건지?
고신 : "너 비트 봤어?"
엔젤 : "....."
고신 : "주인공이 왜 팔 벌린 줄 알아?"
엔젤 : "너 다신 오토바이 타지마. 그리고 다신 그 영화 보지마. 알았지?"
고신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신의 눈에서 불현 듯 눈물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