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NGS
5화
"제이! 정신 차려! 제이!"
멀리서 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칸은 제이 덕분에 목숨을 구했지만, 차마 다가오지 못한 채 건물 잔해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었다. 레온 역시 피를 토하며 제이가 쓰러진 쪽을 바라보았다.
은색 용은 제이를 먹잇감으로 인식한 듯 코앞까지 다가왔으나,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도시의 폐허 너머에서 또 다른 포효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놈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제이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거대한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놈의 날개짓 한 번에 지상에 남겨진 아이들은 먼지처럼 휩쓸렸다.
은빛 포식자가 떠나고, 광장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남겨진 것은 부서진 포드들과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이들뿐이었다.
칸은 기어 나오듯 레온에게 다가갔다. 레온은 부러진 다리를 끌며 제이가 쓰러진 포드 쪽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어떡해... 제이가... 제이가 안 움직여."
칸이 울먹였다. 밖에서 들리는 드래곤들의 울음소리는 여전했다. 언제 다른 놈들이 이 시체 냄새를 맡고 몰려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돌아가야 해... 빨리... 거처로 돌아가야 산다고!"
칸이 레온의 팔을 잡고 끌었다. 레온은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제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이는? 우리를 구하려고 저렇게 된 거잖아! 그냥 두고 갈 순 없어!"
"미쳤어? 놈들이 곧 올 거야! 제이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라도 살아야 나중에라도 뭘 할 거 아냐!"
칸의 외침은 비겁했지만 생존을 향한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레온은 갈등했다. 다리는 타들어 가고 있었고, 의식은 흐릿했다. 거처로 돌아가 문을 닫으면 최소한 오늘의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온은 자신의 벽에 새기던 글자들을 떠올렸다. 패턴을 분석하고 생존을 도모하던 자신의 논리 속에는 '동료를 버리는 행위'에 대한 공식은 없었다.
"먼저 가, 칸."
레온이 칸의 손을 뿌리쳤다.
"뭐? 야, 너 진짜 죽고 싶어?"
"가서 문이나 열어둬. 제이는 내가 데려간다."
레온은 꺾인 다리를 부여잡고 땅을 기기 시작했다. 칸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멀리서 접근하는 드래곤의 그림자를 보고는 비명 같은 신음을 내뱉으며 거처 쪽으로 도망치듯 뛰어갔다.
레온은 피 섞인 침을 뱉어내며 제이에게 다가갔다. 제이는 포드 밑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는 제이가 지키려 했던 깨지지 않은 포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왜 튀어나온 거야..."
레온은 이를 악물고 제이의 몸을 자신의 등에 들쳐멨다. 오른쪽 어깨가 너덜너덜해진 제이의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5년의 동면이 앗아간 것은 기억뿐만이 아니라 생명의 무게였을지도 모른다고 레온은 생각했다.
레온은 한 손으로는 제이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근처에 있던 작은 동면 포드 하나를 끈으로 묶어 필사적으로 끌었다. 다리가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멀리 거처의 철문이 보였다. 칸이 문을 빼꼼히 열고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손짓하고 있었다.
"빨리! 빨리 와, 레온!"
레온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아스팔트를 박차고 나갔다. 제이의 피가 레온의 등 뒤를 적셨고, 포드가 바닥에 긁히며 내는 비명 같은 소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들이 거처 안으로 굴러 들어오자마자, 칸은 빗장을 거칠게 걸어 잠갔다.
철문 너머에서 뒤늦게 도착한 드래곤들의 분노 섞인 포효가 들려왔지만, 이제 아이들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서로의 거친 숨소리만을 공유할 뿐이었다.
제이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하지만 레온이 끌고 온 포드 안에서 새어 나오는 주황빛 안광만이, 이 절망적인 이질감 속에서 아주 작은 희망의 전조처럼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