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NGS
4화
철문을 박차고 나간 제이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기억 속에는 없으나 본능이 거부하는 처참한 지옥도였다.
코를 찌르는 것은 비릿한 선혈의 냄새와 타버린 고무 냄새, 그리고 융합 에너지의 파편들이 공기 중에서 타닥거리며 내는 불길한 파찰음이었다. 잿빛 하늘에서는 정체 모를 검은 재가 눈처럼 내리고 있었고, 그 재는 바닥에 고인 붉은 피 위에 내려앉아 검게 물들었다.
"레온...!"
제이의 시선이 머문 곳은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더미 근처였다. 그곳에 레온이 있었다. 냉철하게 드래곤의 패턴을 분석하던 소년은 간데없었다. 레온은 드래곤의 거대한 꼬리에 직격당한 듯, 인형처럼 멀리 튕겨 나가 처박혀 있었다. 그의 왼쪽 다리는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입가에서는 쉴 새 없이 검붉은 피가 울컥거리며 쏟아졌다. 레온의 눈은 초점이 흐릿했지만,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제이를 발견하자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쥐어짜 냈다.
"오지... 마... 제이! 도망... 쳐...!"
그것은 명령이라기보다 애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제이의 고개는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포드들이 모여 있는 중앙 광장. 그곳에는 칸이 있었다. 칸은 무모하게도 아직 파괴되지 않은 포드 하나를 끌어내려다 세 마리의 드래곤 사이에 고립되어 있었다. 드래곤들은 마치 사냥감을 몰아넣은 늑대 무리처럼, 칸을 중심에 두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좁혀 들어오고 있었다. 칸은 손에 쥔 철근을 미친 듯이 휘둘렀지만, 거대한 포식자들에게 그것은 갓난아이의 재롱보다 가소로운 몸짓에 불과했다.
"이 괴물 새끼들아! 저리 가! 오지 마!"
칸의 절규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제이는 심장이 터질 듯한 고동을 느꼈다. 갈증으로 타들어가던 목구멍은 이제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제이는 바닥에 떨어진 날카로운 고철 조각을 고쳐 쥐고, 칸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제이가 칸의 근처에 도달했을 때, 대기를 가르는 서늘한 진동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다른 드래곤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였다. 놈의 비늘은 잿빛 안개 속에서도 기괴할 정도로 영롱한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놈이 날개를 펼칠 때마다 주변의 보랏빛 덩굴들이 겁에 질린 듯 움츠러들었다. 은색 드래곤. 놈은 마치 이 구역의 지배자임을 선포하듯, 다른 드래곤들을 밀쳐내며 칸의 앞으로 다가왔다.
"칸! 피해!"
제이가 몸을 날렸다. 칸의 머리 위로 은색 드래곤의 거대한 발톱이 낙하하던 찰나였다. 제이는 칸을 밀쳐내며 대신 그 공격을 받아냈다.
푸학—!
날카로운 발톱이 제이의 오른쪽 어깨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뼈가 깎여 나가는 섬뜩한 감각과 함께 어깨 전체가 으스러지는 통증이 몰려왔다. 제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공중으로 붕괴하듯 날아갔다.
쾅!
제이의 몸은 뒤쪽에 방치되어 있던 커다란 동면 포드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포드의 강화 유리가 제이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어깨에서 울컥하며 쏟아진 피가 차가운 포드 외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아아..."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제이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으려 했지만, 오른쪽 팔은 이미 자신의 의지를 배반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머릿속은 마치 수만 마리의 벌 떼가 윙윙거리는 듯한 소음으로 가득 찼고, 의식의 끈이 점점 얇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을 잃기 직전, 제이는 보았다.
은색 용이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놈의 파충류 같은 눈동자 속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그저 벌레 한 마리를 으깨기 전의 무심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은색 용이 거대한 입을 벌리자, 그 안에서 보랏빛 융합 에너지의 잔상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인가...'
제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독한 이질감으로 가득했던 짧은 각성이 끝나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