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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1

12
  • 조회수39
  • 작성일2026.02.18






차갑고 딱딱한 대리석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으려니 5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무릎에서부터 종아리까지 다 아려오기 시작했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냉기는 발등을 타고 발가락마저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더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걸까. 굳게 닫힌 안방의 문이 언제 열릴지 가늠조차 않았다.



태어나서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최 예상이 되지 않았다. 이 사단이 일어지기 이틀 전 지구대에서 절대로 합의를 해주지 않겠다고 버티던 남자 때문에 기어이 예전의 일들까지 모조리 아버지의 귀로 흘러들었다.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기물을 파손하고 다른 이에게 술병을 던져 다치게 하고 때리고 시비에 휘말려 여러 번, 지구대에 드나들었던 사실과 합의금으로 몇 천 만원을 날렸다는 그 사실을. 늘 엄마 선에서 정리됐던 그 사건들에 정말 적잖게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불벼락 같은 고함을 치며 생전 하지 않던 손찌검까지 하던 아버지는 안방으로 들어가 몇 시간 째 나오질 않고 계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건지, 조용하던 방문 너머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아버지의 고함과 어머니의 회유 섞인 음성이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살짝 열린 문 틈으로 엄마가 조심스럽게 상체를 내미는 것이 보인다. 오늘은 그냥 가는 게 좋겠다고 속삭이는 걸 봤지만 그럼에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쥐가 난 발을 딛고 일어나는 것도 무리였지만, 이대로 집을 나가버리면 모든 원조가 끊겨버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니까.



엄마가 내 팔을 붙잡고 일으키려 하다 소리 없이 주먹으로 약하게 내 어깨와 등을 내리쳤다. 이제 정말 방법이 없어. 너 정말 꼼짝없이 집에 갇히는 수가 있어. 못 살아, 내가 진짜 못 살아. 


유약한 주먹이 내 어깨를 스치고 가는 동안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빠르게, 아주 빠르게 주변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약을 한 것 같은 느낌. 아릿한 눈 앞을 손등으로 덮으며 잠시 생각했다. 그 말을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부턴가.





너 대체 정말 어쩌려고 이러니.





엄마가 그 일련의 사건들을 해결해줄 때마다 내게 건넸던 말이었다. 어쩌려고 나는 이러는 걸까. 정말 나는 빠른 속도로 타락해가고 있었다. 돈만 많고 질은 안 좋은 용들과 섞여 놀아나면서 바닥을 모르고 고꾸라지고 있다. 이 시간에 맨정신으로 있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아니, 내가 어쩌려고 그러는 건 아닌데. 대꾸하지 못하고 창문 밖의 풍경들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걸로 망쳐버린 자식 농사에 탄식하고 있는 엄마를 차마 내가 달랠 수 없어서 그저 침묵하는 수 밖에는.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도 없다. 다신 이런 사고를 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던 건 이런 일이 곧 다시 되풀이 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빠질 듯이 아려오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용서를 구하겠다는 일종이 퍼포먼스조차 이젠 귀찮기만 하고,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 베란다 옆 벽면의 십자가를 쳐다봤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그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했다던 예수라는 남자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빌면 내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내가 다시 멀끔해지길 간절히 빌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런 희망이라도 있는 편이 나를 떠올릴 때마다 드는 절망적인 생각을 줄일 수 있을 테니 나는 엄마가 가끔 내 손을 붙잡고 기도를 할 때면 같이 꼭 눈을 감아주며 동조하는 척 해줬다. 그럴 때면 정말 그 신이라는 게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래도 내가 여자를 만나고 다니며, 약을 한다는 사실까진 엄마의 귀에 흘러들어가진 않으니까. 



어쩌려고 이러니. 가끔 엄마의 목소리를 상상해내어 내게 묻곤 했다. 어쩔 땐 그 목소리가 너무 소름이 끼쳐 엄마가 하는 것 처럼 양손을 꽉 붙잡고 고개를 숙인다. 










점점 더 어지러워진다. 이렇게 있다간 정말 질질 끌려서 밖으로 나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최대한 손바닥으로 매끈한 대리석 바닥을 짚으며 스스로 일어서려 애를 써봤다. 자꾸 손바닥에 끈끈한 점도의 땀이 묻어난다. 긴장한 탓은 절대 아니고 싸구려 약을 쓴 탓이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곧 들키게 될 지도 모른다. 



옆에서 누군가 일으키려하는 것을 강하게 저지하자 가족들의 원성 섞인 한숨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오히려 내 인내심이 먼저 터져버릴 것 같았다. 무릎과 종아리와 발가락 끝에 힘을 주며 마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안방 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무섭게 화가 난 얼굴로 안방 앞에 서 있는 아버지의 손이 또 궤적을 그리며 머리 위로 올라 멈췄다. 가느다랗게 손끝이 떨리는 것이 보인다. 저 손으로 나를 때리고 내 멱살을 잡고 나를 탓하겠지. 어쩌지도 못하는 그 손을 보고 있는데 차라리 그래줬으면 마음이 후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누나와 엄마가 그런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만 하세요. 쟤 방금 병원에서 퇴원하고 왔어요. 네? 진정하세요. 팔에 어찌나 힘을 준 건지 둘이 달라붙어 말려도 꼼짝 없다. 몇 차례 더 실랑이를 벌이다 내 뺨이라도 칠 것처럼 솟아올라 있던 팔이 힘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곧 목 뒷덜미를 잡으며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상상을 하다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내뱉는 거친 숨소리에 많은 분노가 섞여 있다. 모질지 못한 성격에 나를 내치진 못할 거란 안일한 생각도 잠깐 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이틀 동안 수액만 맞은 몸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어리석게도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게 지친다는 생각부터 했다. 제발 빨리 끝냈으면, 어떤 결과든. 아예 오라고 불호령을 내리든 아예 쫓아버리든 뭐든 해줬으면. 



곧 패브릭 소재의 실내용 슬리퍼가 살짝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나 누나 둘 중 한 명이 아직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있는 듯 대리석에 비친 아버지의 팔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보였다. 무슨 로봇같은, 그런 사념 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마저 너무 딱딱했다.





아버지 : "시험 준비나 해."




둘째 누나의 임용이 일개 졸부인 아버지에게 미약하게나마 날개를 달아 준 셈이었다. 고졸 출신 버스 운전사였던 아버지에게 누나의 임용은 그런 의미였다. 





아버지 : "죽었다 생각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라고."


고신 : "아마 전 자격요건 조차 안 될 건데요."


아버지 : "그럼 죽던가."





죽었다 생각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과 그냥 죽어버리는 것 둘 중에 뭐가 더 쉬울까. 당연히 후자가 더 쉽겠지.


아버지는 정말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옆에서 붙잡고 있는 누나가 그래, 너 공부 머리는 있잖아. 하며 두둔하다가 급하게 입을 다무는 게 보였다. 내가 공부 머리가 있다고? 의문스러운 눈길을 피해버리는 게 얄미울 지경이다.



합격을 지시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준비만 해보라고 하는 이유를 아는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에 다시 한 번 더 반박을 하면 정말 맨 몸으로 내 쫓겨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겨우 일어섰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버티면 쓰러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핑핑 돌고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나는 얼른 이마를 짚었다. 그 날 취하지만 않았어도 그딴 싸구려 약을 막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버지 : "이게 마지막 기회인 줄 알아라."


고신 : "생각 좀 해 볼게요."


아버지 : "정말 마지막이다."





그 마지막 기회라는 말은 내 타락행이 확정되었던 그 날 이후로 수도 없이 들었다. 말은 똑바로 하자며, 그 기회라는 것을 내게 준 이가 아버지인지 할아버지인지, 대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학이 결정된 어느 날 아버지께 그렇게 따졌다. 도대체 아버지가 내게 무슨 기회를 줬냐고. 그 때 멈칫하던 아버지는 내가 알던 아버지와 아예 다른 이가 되어있었다. 그런 걸 보면 돈의 양에 따라 인격이 막 바뀌긴 하나보다. 이상하게 웃음이 날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월급날 소소하게 했던 외식에도 행복했던 우리가 기회 타령을 하며 싸우고 있다. 그 시발점이 다 그놈의 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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