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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3

12
  • 조회수40
  • 작성일2026.02.18






엔젤을 처음 그 빈 교실에서 마주했을 때, 실루엣만 의식하곤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았다. 미리 준비한 EBS 교재를 펼치며 뭔가를 내게 알려주려 했지만 내가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걸 곧바로 캐치 한 뒤로는 의무적으로 준비된 말만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한두 번 그래 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그런 식으로 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진심인 이가 없는 허울뿐인 제도. 딱딱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그 애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 건 그 애의 시선이 나의 다리 쪽으로 향했을 때였다. 건들거리는 내 다리를 견딜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약간 일그러뜨렸다. 그 빌어먹을 제도의 실질적인 득을 보는 이들은 그나마 봉사점수나 생기부에 뭐라도 남길 수 있는 멘토 뿐인 것 같다, 라는 불만이 막 울컥 울컥 솟아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그 학교를 다니면서 내게 생긴 습관은 다른 이의 눈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교 부회장, 모범생이 강조하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얼굴의 그 애는 뭔가를 참아내는 듯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 애가 못 참고 내게 물었다.





엔젤 : "다리 좀 떨지 않으면 안될까요. 신경 쓰이는데, 그거."





그 때 엔젤과 처음 눈을 마주쳤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나는 다리를 곧 멈췄고 우리는 한동안 뭐에 홀린 듯이 서로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서로를 말 없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늦게 자각하고 놀란 듯 우리의 시선이 동시에 흩어졌다.


나는 음률도, 열의도 없이 교재에 인쇄된 영어 지문을 읽는 그 애의 얼굴을 훔쳐보듯 쳐다봤다. 눈을 아래로 내리 깔고 도도한 표정으로 계속 읽어 내려가다 시선을 느낀 건지 눈을 마주치면 어김없이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 때 처음 그 애의 명찰을 쳐다봤다. 그 애의 이름과 얼굴을 매치 시키는 동안 내가 이토록 한 명을 오래 뜯어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얼마나 거리가 가까워 졌는지 엔젤의 당혹해 하는 숨결까지 다 느껴질 정도였다.



이따금 눈길이 닿으면 먼저 눈을 피한 건 언제나 엔젤이었다. 다시 눈을 내리 깔곤 읽던 지문을 읽으며 볼펜으로 긴 밑줄을 쳤다. 그리고 아주아주 가끔 내게 말했다.





엔젤 : "제 얼굴 말고 책 좀 볼래요?"





미간이 팽팽했다. 나의 태도에 몹시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할당 받은 시간은 채워야 하는, 그 애도 하는 수 없이 뭔가를 감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 깔았던 눈을 도도하게 치켜뜨는 얼굴이 참 이상했다. 








얼마간 우리는 마주앉아 50분 간 허송세월을 보내며 사적인 말 한마디 주고받지도 않았고, 스치면 서로 눈인사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교내에 괴의한 소문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다는 이야기. 구체적으로 우리가 학교 근처에서 데이트 하는 것을 봤다는 어떤 아이가 등장하면서 소문이 점점 빠르게 확산됐다. 그 때 부터 내게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던 아이들이 하나 둘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1학년 부회장이랑 사귄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갑자기 나에게 지대하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아이들은 쉬쉬하면서도 내게 그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 소문이 발단이 되어 내게 쏟아지던 관심들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갔을 때 그런 내게 다른 쪽으로 관심을 가지는 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허우대와 그 잘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의 태도가 그럴 듯한 반항심으로 포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꼬박꼬박 격일로 1시간씩 마주했다. 우리 둘 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상태로 보였지만, 둘 중 최소 나는 점점 엔젤이 신경 쓰여 마음이 복잡했다. 근원지도 모르는 소문 속에 엔젤과 내가 학교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니, 그 소문이 내 시선을 자꾸 영어를 뱉어내느라 바쁜 엔젤의 얼굴로 이끌었다. 



점점 기분이 이상하게 더러워졌다. 왜 하필 이렇게 가깝게 앉아있게 책상을 만들어 놨을까, 왜 2학년인 내게 1학년인 애를 멘토로 붙인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드는 와중에 엔젤의 얼굴만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뭔가 다른 행동을 해버린다면 그 소문에 기름을 끼얹어버릴 건 뻔했다. 



자꾸 이상했다. 시선이 얽힐 때마다 내 기분이 더러워지면서, 자꾸 생각지도 못한 상상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게. 정말로 내가 엔젤과 학교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면 어떨까, 하는 그런 더럽고 기묘한 상상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때 쯤 성적 문제로 학교에서도 모난 돌인 나는 집에서도 그런 취급을 받으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성적이 비교적 많이 좋은 편에 속했던 누나들과 달리 학군을 바꾼 직후부터 바닥 없이 추락하는 나의 성적 때문에 부모님이 티격태격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돈이 뭔지, 돈으로는 못할 것이 없다는 이상한 신념이 생긴 아버지는 주변의 말 한마디에 홀려 갑자기 유학을 보내야 한다고 난리를 쳤고, 학군을 포기할 수 없어 고액 입시 플랜을 받아보겠다는 엄마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됐다. 



아버지는 곧 죽어도 유학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곧 죽어도 하는 데 까진 해봐야한다고 우겼다. 여기서 입시플랜대로 쫓아다니는 것과 뜬금없이 또 유학을 가서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 둘 다 각각 내게는 스트레스였다. 내 인생인데 내게 선택지 같은 건 없어 보였다. 



그런 와중에 이틀에 한 번 마주하는 그 이상한 시간이 내겐 마음 놓고 상념에 젖어들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그 이상한 소문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굴며, 이상한 텐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엔젤이 어떻게 날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기류가 낯간지럽고 이상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 지 몰랐다.



자꾸 눈이 마주치다가 순식간에 떨어진다는 게, 가끔 수 초간 우리 둘이 말 없이 멍하게 서로를 쳐다볼 때마다 가슴이 이상해진다는 게. 우리가 왜 그런 소문에 휘말리게 됐는지, 그러면서 왜 이상하게 서로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건지. 도대체 왜 그런 건지 둘 중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애써 삐딱하게 앉아있다가 시간이 다 되면 빠르게 정리하고 교실을 나섰다. 서로 너무나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서, 그러면서도 우연하게 복도에서 스치면 일면식이 없는 척 지나쳐버리기도 하며. 전교생이 다 모이는 학교 행사 같은 것이 있으면 단상 위에 있는 그 애와 눈이 마주치는 걸 의식하면서. 



그 중 내가 제일 이상하다 생각했던 건 엔젤이 학교가 아닌 곳에 있어도 눈에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엔젤도 그 허울 뿐인 제도 밖에서도 내가 떠오르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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