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NGS
6화
어둠은 더 이상 끈적이지 않았다. 제이는 차갑고 투명한 물속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으로 무의식의 심연을 떠돌고 있었다. 어깨를 으스러뜨렸던 은빛 발톱의 통증도, 타들어 가던 목구멍의 갈증도 이곳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고요하고 정결한 은색 빛무리가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그 빛의 소용돌이 중심에서, 소년은 그것을 보았다.
어린 용이었다. 광장에서 자신을 덮쳤던 그 거대하고 압도적인 은색 포식자와는 달랐다. 놈은 작고 가냘팠으며, 비늘 하나하나가 마치 갓 세공한 보석처럼 영롱한 은빛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어린 용은 허공을 헤엄치듯 다가와 제이의 눈앞에 멈춰 섰다.
제이는 홀린 듯 손을 뻗었다. 기억은 없지만, 이 생명체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 혹은 경외심이 그의 손끝을 움직였다. 하지만 손가락이 은빛 비늘에 닿으려던 찰나, 제이의 손은 허무하게 용의 몸을 통과해 버렸다. 그것은 실재하는 생명체가 아니라, 누군가 남겨놓은 잔상 혹은 영혼의 조각처럼 보였다.
어린 용이 입을 달싹였다. 무언가 간절하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이의 귀에는 그 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웅얼거림처럼 뭉개져 들렸다. 용은 제이의 주변을 천천히 돌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읊조렸다. 용의 눈동자 속에는 슬픔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제이가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용은 마지막으로 제이의 이마에 자신의 머리를 맞대듯 다가왔다. 그 순간, 지독한 소음 속에서 단 한 문장이 제이의 뇌리에 날카로운 낙인처럼 박혔다.
[희망은 밖에만 있지 않아.]
그 목소리는 용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동시에 신성했다. 문장이 끝남과 동시에 은빛 세계는 산산조각 났고, 제이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현실의 지옥으로 소환되었다.
"허억...!"
제이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무너진 천장의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하고 잿빛인 빛이었다.
"정신이 들어? 야, 제이! 정신 차려봐!"
익숙한 목소리. 칸이었다. 제이는 신음하며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오른쪽 어깨에서 번개처럼 치솟는 통증에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깨는 낡은 천 조각들로 거칠게 지혈되어 있었고, 그 주변은 이미 검붉은 피로 말라붙어 있었다.
"움직이지 마. 어깨뼈가 다 으스러졌어. 네가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옆에서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는 레온이었다. 레온 역시 한쪽 다리에 부목을 댄 채 구석에 앉아 있었다. 칸은 제이의 입가에 젖은 천 조각을 대주며 갈증을 달래주었다.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지?"
"꼬박 하루가 지났어."
칸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의 얼굴은 하루 사이에 더 핼쑥해져 있었다.
"네가 잠든 동안 우린 이 피난처를 샅샅이 뒤졌어. 혹시라도 숨겨진 보급품이나 다른 출구가 있을까 해서. 하지만..."
칸의 시선이 어두운 복도 끝을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며 승강기 통로며, 전부 융합 에너지 결정체들이 바위처럼 굳어서 막고 있어. 우리 힘으론 절대로 못 뚫어. 우린 지금 이 1층 로비와 지하 입구에 갇힌 셈이야."
제이는 칸의 말을 들으며 무의식 속에서 들었던 그 한 마디를 떠올렸다.
희망은 밖에만 있지 않아.
만약 밖이 드래곤들이 지배하는 지옥이라면, 안쪽에 정말 무언가 있다는 뜻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