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또, 또 사기치네 저거."
토르는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쾅 하고 키보드를 내리쳤다.
저런 놈이 디제이 선두주자랍시고 영상 올려서 수익창출이나 하고 있고.
잘 나간다고 하는 네임드 디제이들, 사실 그 중 몇 명은 좀 약을 탔다. 그냥 퍼포먼스형 디제이들이다. 디제잉 장비에 카페에서 대충 다운 받은 음원을 조잡하게 믹싱 해놓고 그걸 장비에 연결한 뒤 재생시키고는 지가 즉흥적으로 디제잉 하는 척 폼만 잡으며 장난질만 하는 거다.
고딩 때 우연히 디제잉 하는 영상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토르는 하던 공부 다 때려치우고 디제이를 꿈꾸기 시작했다. 클럽이나 공연을 갈 수 없는 나이라, 짬짬이 스타 디제이가 업로드하는 영상을 보며 고장 난 중고 장비로 핸드 싴으만 맞추고, 디제이 커뮤에 가입해서 지망생들끼리 정보 교류하고 급 게릴라 버스킹하는 네임드 디제이의 공연은 무조건 참관하는 걸로 대신하며 무럭무럭 꿈을 키웠다.
근데 그 세계는 생각보다 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잘나가는 크루나 레이블 소속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도 어느 정도 연줄 라인 이런 게 없으면 네임드 클럽 공연은 꿈고 못 꾸고 버스킹을 하더라도 10명 앞에 두고 10분 하다가 고성방가 신고로 경찰들한테 쫓겨나기 일쑤다.
많은 지망생들이 클럽 비수기 시즌 비인기 시간이라도 비벼보려고 오디션을 보지만 100명 중 99명이 광탈이다. 요즘엔 그런 애들 뭉쳐서 돈 안 벌 작정으로 소소하게 크루랍시고 모여 공연하고 다니지만 결국엔 몇 개월 못 버티고 나가 떨어지고 만다. 잘 돼 봐야 유튜브 영상 올리는 거나 작은 클럽 같은 데에 취직하는 게 초현실적이다.
골드타곤, 키칭하이 이런 데서 임시 땜빵 공연이라도, 어쨌거나 레이블도 없이 들어가긴 절대 불가능. 그걸 2년 동안 뼈저리게 간접으로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토르는 그 세계에서 발을 빼지 못했다. 왜냐면, 뻥 안치고 디제잉이 너무 재밌어서. 너무 너무 멋있어서. 이 바닥에서 퍼포형이 아닌 실력으로, 제대로 성공하고 싶어서.
그간 공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진짜 너무 좋아서 포기가 안됐다. 겨우 들어간 대학도 그 때문에 계속 휴학중인 상태였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 파산이다.
으휴, 저 사기꾼 새끼. 이번에 업로드 한 영상도 싱크가 묘하게 안 맞는다. 근데도 댓글은 죄다 형 너무 멋있어요, 오빠 쩔어요, 뿐이니, 진짜 대책 없다.
토르는 입을 잘근 잘근 씹으며 마우스를 쥔 손을 옮겨 중고나라에서 직거래로 30만원 주고 산 인펄스 500을 쓰다듬었다.
저 사기꾼 보다는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저퀄 장비를 떠나 연줄 없는 토르를 써주는 클럽은 없다. 게다가 디제이 구한다고 해서 가보면 옷 그렇게 입고 할 거냐고 묻고 얼굴만 뚱하게 쳐다보다 디제잉 시키지도 않고서는 그럴 거면 그냥 다른 거 해보는 거 어떻냐고, 혹시 랩 잘하냐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엠디나 해서 손님 몰이하면 빵 떠서 돈 많이 벌을 수 있다고, 뭐 그딴 헛소리만 찍찍 한다.
무거운 장비 낑낑대고 들고 간 보람도 없이 그런 헛소리 듣고서 돌아서야 되는 날이 거의 대부분. 이럴 줄 알았으면 연줄 하나 잡았어야 했나 싶어 인스타도 개설하고 팔로하고 허세 쩌는 사진들에 하트 찍고 댓글 달고 돌아다녔지만 돌아오는 건 거지같은 플러팅 디엠들이 거의 다 였다. 그나마 말이 좀 통한다 싶으면 목적이 딴 데 있다. 암만 연줄이 급해도 그런 애들하고 엮여서 뜨고 싶을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그래서 간만에 디제이 커뮤 구인 게시판에 NEW 라는 아이콘이 반짝 거렸을 때 또 광고 글로 도배된 거 아닌가, 반신반의 하며 눌렀다.
하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고, 다른 알바 두 탕 뛰면서 디제잉까지 하기에는 체력이 버텨줄 지가 의문이었고. 무튼 디제이라면 진짜 뭐라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기에 1초도 고민하지도,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지원 문자를 넣었다.
솔직히 경력도 없고 뭣도 아니라 굉장히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메세지를 보내기가 무섭게 바로 면접 보러 오라고 답이 도착했다. 그 때 카카오톡 친추추천에 모르는 용이 떠서 암만 생각해도 얼굴 확인하고 문자 보낸 것 같단 느낌을 지울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뭐 일단 오라고 하니 열일 다 재치고 바로 구글맵 따라 클럽으로 찾아갔다.
진짜 코딱지만한 클럽에, 낮이라 그런지 여자 사장 혼자 사무실에서 토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 아래로 토르를 훑은 사장이 일단 아무것도 묻지 않고 1차 합격이라고 하더니 클럽 디제잉 장비 쪽으로 토르를 데려갔다.
쓰던 장비로 하는 게 제일 좋은데. 좀 큰 장비는 적응 기간이 좀 필요한데. 아직 모르는 기능이 많아서..
생각은 복잡했지만 자신 있는 척 헤드셋을 반만 끼고 크로스페이더와 조그 휠을 조심스럽게 만져보는데 사장이 디제잉 하는 거 들어보지도 않고 대뜸 2차 합격이라고 했다.
아니 뭐 했다고 합격이지?
좀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일단 뽑아줬으니 기분은 째졌다.
그렇게 그 클럽에서 디제잉을 시작하고 토르는 금세 유명세를 탔다. 그렇게 매출이 오르니 사장은 토르가 예뻐 죽을 지경인지 일 한지 두 달 만에 월급도 올려주고 낮에 디제잉 학원가라고 학원 등록까지 공짜로 시켜줬다.
토르는 열심히 배웠다. 나중에 이런 클럽에서만이 아니라 그냥 이 바닥을 씹어 먹겠노라 포부가 있었으니까, 진짜 다 씹어 먹어 줄 자신이 있었으니까.
*
"토르, 인사드려."
사장의 말에 토르가 일단 냅다 고개만 까딱했다.
누군지 알아야 뭐 인사를 제대로 하지. 이럴 땐 쫌 짜증 난다. 민망하고 싫은데 이런 거.
같이 사진을 찍어줘야 되는지 악수를 해야 하는지 애매해서 뻘쭘하게 서 있는데 다짜고짜 그 여자가 너 몇 살이야? 하고 반말 시전하며 묻는다.
내가 어려보이고 그 쪽이 들어보여도 초면에 반말 하는 건 좀 경우 없는 거 아닌가?
평상시 유교사상을 가슴에 지니고 사는 타입이라 토르가 약간 발끈하며 대답대신 여자를 위 아래로 훑었다. 몇 달 만에 대강 토르의 성격을 파악한 사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아, 얘, 얘 스물 하나요. 하고 대신 대답한다. 사장이 이렇게 어렵게 구는 걸 보면 보통 인물은 아닌가보다.
암만 늘었어도 사장만큼은 안 되어 보이는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토르는 눈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돈 좀 많아 보이면 단가.
그러자 피식 웃은 여자가 어쭈 이것 봐라? 뭐 이런 비슷한 표정으로 너 나 진짜 몰라? 모르는 척 하는 거 아니고? 한다.
아니 내가 그 쪽을 알아야 될 건 뭐야. 그리고 아는데 또 모르는 척 할 건 뭐냐고.
"모르겠는데요. 혹시 저 아세요?"
"플로리안."
아, 이름 특이사시구나.
토르는 관심도 없었다.
근데 어쩌라고, 나는 토르인데. 플로리안이 왜.
그 생각 뿐이었는데 그 여자가 다짜고짜 너 진짜 나 모르는 구나? 하고 또 반말. 띠꺼워서 눈에 힘 빡 주고 왜요? 알아야 돼요? 했더니 사장이 와서 얌마 인사 드려, 하고 토르의 머리를 억지로 아래로 숙이게 눌렀다. 자존심이 상해서 버티고 있다가 옆구리도 찔렸다.
아니, 저 사람이 누군데요.
초면에 반말짓거리 하는데 왜 내가 허리를 숙여야 되냐고 버팅기는데 플로리안 그 여자가 토르를 향해 웃었다. 하도 시건방지게 웃길래 토르가 육성으로 뭐야, 하고 한소리 했더니 플로리안이 깔깔 거리고 웃다가 사장만 데리고 대기실을 나갔다.
5분이 지나서 사장이 벌게진 얼굴로 대기실로 돌아왔다.
뭐 실수한 건가.
괜히 막연한 불안감.
설마 나 짤리는 거?
그깟 인사 한 번 시원하게 해줄 걸 하는 후회. 암튼 그런 것들이 뒤늦게 토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근데 벌게진 얼굴이 어쩐지 좀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야, 토르. 너..."
"....."
"너..... 너 로또 맞았다."
"예?"
"야. 저 용, 플로리안이라고. 너 플로리안 몰라? 디제이 한다는 애가 플로리안도 몰라?"
"아씨, 그게 누군데요. 기분 나빠 죽겠네. 초면에 반말이나 하고."
"그래, 플로리안 모른다 치자. 너 플라면 먹지?"
"네."
"거기 회사 손녀 딸. 그리고 골드타곤 실소유주. 소문 쫙 났는데. 진짜 몰라?"
"골드타곤이요?"
"야.. 토르! 쟤가 너 골드타곤에 스카웃 해간다잖아."
"예???"
골드타곤에 스카웃 까지만 듣고 삼각김밥을 도로 집어 던졌다.
오랜만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거긴 모든 디제이 지망생들의 최종 목표지였다. 물론 토르도 마찬가지다.
거기는 진짜 날고 기는 레이블 출신 디제이들도 정기 계약하기 진짜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레이블도 없는 초짜배기는 절대 못 간다고. 거기서 하루 공연하는 디제이 래퍼 리스트만 대강 읊어도 눈알 튀어나온다.
토르의 피드에 누가 며칠 동안 골드타곤에서 공연하더라, 그것만으로도 그 용의 입지가 설명이 되는데 일주일에 한 번만 공연을 한다고 공식 계정에 프로모션이라도 뜨면 팔로워수 바로 떡상이다.
와, 대미친.
토르가 어리둥절해하자 사장이 멱살을 쥐고 흔들며 너 임마 너 로또 맞았다고! 하며 펄쩍 뛴다.
어안이 벙벙하다.
갑자기 이게 뭔 일이지. 내 디제잉 실력이 그 정도라는 말인가. 이거 뭔 신종 사기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드는데 그 여자가 다시 대기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토르는 뭐 딱히 그 용이 마음에 들어서 그렇다기 보다 일단 골드타곤에 스카웃 해준다니깐 약간 눈에 힘을 풀고, 그러나 약간 경계심이 담긴 눈길로 여자를 쳐다봤다.
"사장님. 여기 내가 투자한다니까요. 얘만 넘기면."
"토르. 너 어떡할래?"
아 뭐야. 이미 자기네들끼리 합의 다 한 거야?
뭔가 얼떨떨하게 서 있자 야야, 좋다고 해야지. 하고 또 옆구리를 찔러 온다. 토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믿기지 않는 얼굴로 여자를 위 아래로 쳐다봤다.
"골드타곤 사장님이세요?"
"아니. 투자자."
"근데 저같이 초짜 막 스카웃해도 되는 거에요? 이래놓고 저 엠디로 꽂는 거 아니죠?"
"이따 밤에 전화할테니까 받아. 내가 믿게 해줄게."
그리고 그날 밤. 주지도 않았는데 플로리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플로리안은 찐으로 골드타곤 VIP룸에 데려가 계약서를 쓰게 했다. 진짜 거짓말 안치고 뭔 뜻인지 이해도 못했으면서 사인란에 정자로 토르, 이름 써넣으며 손을 약간 떨었다.
찐 사장이 옆에서 팔짱을 끼고 플로리안과 쑥덕대고 문신 뚱땡이 셋이서 그 옆에 앉아 토르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말이 되나. 이게 진짜 있을 수가 있는 일인가.
토르는 나오는 길에 VIP 명판 사진 한 장 박고 바로 인스타에 업로드했다. 쪽파리니까 해시태그에 간단하게 골드타곤 하나만 넣었다. 근데 올리자마자 팔로수가 급 늘었고 그제야 골드타곤에 발들인 게 실감났다.
플로리안이 디제잉 실력이 아닌 얼굴 하나 보고 섭외한 걸 알았을 때의 비참함이 그 쾌재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무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