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w
4
그 끔찍한 일 후론 딱히 별난 일은 없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3년마다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 6학년은 이리 조용하단 것이.
시간이 갈 수록 3년마다 돌아오는 일은 점점 강도가 세졌다.
그래서 내가 처음 6학년이 되었을 때, 나와 레인 둘 모두 상당히 떨었었던 것 같다. 이번엔 또 뭐가 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개학식을 했는데.
참 어이없게도 미리 예측하고 떨며 준비까지 해놨더니 그딴 비극은 오지 않았다.
웃기게도 6학년이 내일이면 끝인데 아무 일도 없었다. 이젠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러지도 못 하겠다. 왠지 그러면 정신병자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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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나의 지루하고 쓸 데 없이 긴 나의 과거 이야기였다.
난 매일매일 이런 망상을 하곤 한다. 오늘처럼, 햇빛을 받으면 그런 느낌이 든다. 그냥…
다행히 더 이상 한탄을 하거나 한 번더 그 일들을 떠올리기 전에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쉬는시간 종이 울려줬다.
쉬는 시간은 아마도 내가 학교에 오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웃기게도 공부하다가 잠깐 쉬라고 주는 시간인데 그 시간만을 위해 학교에 온다. 참, 그렇게도 생각한다, 싶다. 가끔은. 오늘 같은 날은.
쉬는 시간이 좋은 이유는 역시 단 한 가지이다.
나랑 레인이랑 마음껏 떠들 수 있으니까. 물론 10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뭐 어떤가. 10분이라도 준다는 게, 나의 빡빡하던 인생에서는 후한 것 같다.
레인: 야, 실버. 오늘따라 또 표정이 그러냐.
매일매일 하는 이야기를 대수롭다는 듯이 얘기하며 자기 자리에서 여기까지 오는 레인을 보면 가끔은 저도 모르게 피식, 하고 코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나: 왜? 오늘은, 음, 나름 괜찮은 생각들만 했는데.
레인: 글쎄. 너랑 나의 ‘괜찮은’ 이 똑같은진 잘 모르겠어서.
나: 모르지. 사람마다 다 다른 거니까.
레인: … 그거 알아? 너 어제보다 표정이 심각하다?
그런가.
이럴 때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잠깐 당황하곤 한다. 레인은 나보다 항상 관찰력이 좋았으니까.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나: 아닌데.
레인: 거짓말. 또 옛날 생각 했지?
나: 어떻게 아냐, 그걸. 생각하는 게 다 들려? 너도 참 신기한 애야. 맨날 다 알고.
레인: 창밖 보면서 40분 보내는데 무슨 생각을 할 거라 생각하겠냐. 내 잘못이 아니라 네가 티를 많이 내는 거야.
나: 아니거든. 뭐, 네가 항상 그러니까 그렇지. 덕분이 누구한텐 거짓말을 못 하겠단 말야.
레인이 장난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탁 하고 올렸다.
문제는, 그의 손이 닿는 순간 내 주변이 흐릿해지고 빙글빙글 돌아가고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지. 나만 이런걸까. 온 몸이 타오르는 듯 한데.
나: … 레인. 있잖아.
레인: 어디 아프냐? 왜 그래?
다 보였나보다.
애초에 이번엔 숨길 생각도 없었으니까. 미리 알아봐 준 것이 고마웠다.
나: 주변이… 뜨겁지 않아? 막, 다 돌아가고 이상하게…
난 목구멍이 뜨겁게 타오르는 듯해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을 거 같았다.
진짜로,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발작이라도 하려는 걸까? 지금까지 그런 적 없었는데.
레인: 뭐야, 왜 그래. 다 괜찮다구. 바람이라도 쐴래?
난 대답하지 못 하고 헉헉 거리며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이젠 두통에 메스꺼움까지 증상에 추가되었다.
레인이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바람을 쐬면 좀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더욱더 심해지기만 했다. 와중에도 말은 나오지가 않았다.
레인: 아니야? 뭐지. 이런 적 없었잖아.
레인의 목소리 역시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레인: … 잠시만.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레인의 목소리였다.
뭐지.
레인: 실버, 그… 저기 봐봐.
겨우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너무나도 흐릿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줄 알았지만, 밖을 보자마자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난 안도하지 못 했다.
하늘이 떠 있는 것은 보라색 무언가였으니까.
그리고 그 주변은 오염되듯 붉게 변해가고 있었으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