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w
3
뭐, 그렇게 되는 바람에 난 그 아이도 야구를 좋아한단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그 아이랑 서서히 친해지기 시작했고, ‘야구’란 접점은 우릴 절대로 끊어지지 않게 해주었다. 야구는, 우리 모두에게 그 무엇보다도 큰 것이었으니까.
대화를 시작해보니 나랑 꽤나 말이 잘 통했다. 아마 우리 둘 밖에 없기도 했고 적성도 비슷했으니까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단짝 친구가 된 뒤로 코로나도 바뀌는 계절처럼 서서히 옅어져갔지만, 우리의 사이는 하나도 옅어지지 않은 채로 계속 진해지고 있었다.
유치원에 다시 아이들이 들어와 더는 둘만 있을 순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관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점점 친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 후에도, 그러니까 초등학생이 된 후에도 사이는 변함이 없었다. 아마 그때가, 내가 촌락에 살아서 좋다고 생각한 유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집이 얼마나 떨어져 있든 초등학교가 하나고, 학년별로 반이 하나라 무조건 같은 반에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건이 터졌다.
내가 3학년 때였던가. 체험학습을 갈 만한 마땅한 곳이 없어서 우리 마을 근처에 있는 작은 기차역으로 간 것이. 그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3학년은 아직 저학년이라 불릴 때도 많을 만큼 솜털처럼 가볍게 살아갈 나이였다. 그런 우리에게 견학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아니, 즐거웠어야 했다.
그 기차역은 평소에도 아무도 안 오는 구석진 곳에 있어 한적한 곳이었다.
그런 모습과 달리 정작 기차는 서울까지 가는 기차여서 기차 한 번 탈려면 몇 시간이고 앉아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시간엔 그런 모습을 한 기차역이었기에. 어른들의 말은 항상 그곳은 조용한 곳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우리도, 그리고 선생님도.
어쩌면 그들은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냥 우리가 운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뭐가 해결되는가. 나의 첫 견학이 피로 물들고, 아이가 죽었고, 공포 그 자체였는데. 트라우마를 만들어 준 기억이었는데.
1시간 쯤 기다렸는데도 기차가 오지 않자 선생님은 지친 아이들 보고 놀라고 하였다. 싸온 도시락도 먹고, 조금만 뛰어놀자고 하셨다.
솔직히 어떤 아이가 놀라는데 놀지 않겠는가.
난 그 아이, 아, 그러니까 레인과 함께 수다를 떨며 놀았다.
비록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같이 논다고 여기저기서 꾸지람을 많이 들은 우리였지만, 그 딴 거 상관 할 필요가 있나. 우리가 놀겠다는데.
레인과 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제는, 한 아이가 철로를 만져보겠다며 철로로 향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말리지 않으셨다. 솔직히, 들어가자마자 기차가 들어오진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기차가 오면 빼내면 되지, 하셨을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그냥 기차 생각을 하지 못 했던 것일까. 그럴 만도 했다. 몇 시간 동안 못 보았으니.
문제는, 우리가 운이 지지리도 없었단 거고, 그건…
그렇다.
그 아이가 들어가자마자 기차가 들어섰고, 그 아이는 너무 놀라 차마 피하지를 못했다.
나와 레인,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의 눈엔, 영원히 그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아이의 피가 흩뿌려지던 것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