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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투u 프롤로그

3 익명의독자
  • 조회수7
  • 작성일00:33











오전 여덟 시가 되자 어김없이 재난 문자가 울렸다. 귀 째는 사이렌 소음 따위야 금방 익숙해진 덕분에 눈 감은 채로 알람을 껐다. 그리곤 한참을 뭉그적 뭉그적 뒹굴뒹굴. 솜 죽은 이불 위로 팔을 휘적휘적. 온통 하이얀 벽면과 제 역할 못하는 전기장판 덕분에 마치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 위에 누워있는 듯한 기분. 


실제로 드러누워 본 적은 없지만 작은 창문 타고 들어와 살갗을 에는 찬 바람만으로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겨울이란 이토록 춥기만 한 가장 지루한 계절이라는 것을. 





암막커튼도 젖히지 않은 채로 십분 째 늘어지던 나를 일으켜 세운 건 부서져라 문 두들기는 담당 조사관의 목소리였다. '크럭스' 에서 나왔습니다. 예예, 금방 나가요. 고개 내밀어 대답하고선 허둥지둥 책상에 무릎 찧어가며 모자를 찾아 썼다. 여유로운 세수 대신 손에 물 묻혀 얼굴을 대충 부볐다. 턱 끝에 남은 물기는 소매로 대강 닦아내고서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파이어씨 맞으신가요?"


"보시다시피."



어젠 아무 데도 안 갔구요, 오늘은 모르겠네요. 냉장고에 계란도 없어서 마트를 가야 할 것 같은데.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마트 문 여는 날 아닌가? 막가파 식으로 쏟아낸 속사포에도 조사관은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왜요, 뭐 묻었나. 되려 당황한 탓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눈썹만 치켜올리자 조사관은 짙게 썬팅된 페이스 가드를 슬쩍 내려 나와 시선을 맞췄다. 



"제가 오늘이 처음이라 정확한 신원 확인이 필요해서요."


"아."


"모자 좀 벗어주시겠어요?"


"저 지금 쌩얼인데 감안해 주실 거죠?"



능청스레 밑밥 깔며 눌러쓴 모자를 벗었다. 패드 속 사진과 눈앞의 쌩얼을 번갈아 보는 조사관의 시선에 머쓱해 괜히 눌린 앞머리나 두어 번 쓸어 넘겼다. 곧이어 조사관은 확인되었다는 듯 고개를 슬렁슬렁 끄덕이며 특이 사항 칸에 과감히 엑스 표시를 그었다. 



특이 사항이 없다니? 망할 전기장판은 고장 난 지 오래라 손끝에 고드름이 매달릴 것만 같고 이따금 창문 너머로 생사를 물어오던 옆집이 쥐 죽은 듯 조용해져서 지루해 죽겠고 반복되는 일상에 날짜 개념까지 잊어먹어서 조만간 역병 때문이 아니라 우울증 걸려 죽겠는데.





"그나저나 원래 여기 담당하던 엔젤씨는 어디 가셨대요? 언질도 없이 바뀌어서 놀랐네."


"돌아가셨어요."


"전에 일하던 구역으로요?"


"아뇨."



죽었다구요. 옆집한테서 옮았대요. 



조사관의 말마디에 시공간이 얼어붙듯 고요해졌다. 하도 무덤덤하게 말하길래 당연히 다른 구역으로 넘어간 줄 알았건만 이게 웬 걸, 하루아침에 황천길을 넘어갔단다. 



엔젤은 차치하고 옆집은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 없었음에도 나는 공허함을 느꼈다. 질병에 빠졌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아팠을까, 뜨거웠을까, 아님 후련했을까. 나랑 같은 심정이었을까. 이는 죽은 자만이 알고 있으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궁금했으나 감히 궁금해 할 수조차 없었다. 생존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탄식을 내뱉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제가 맡게 되었어요."



피닉스라고 합니다. 



담당히 안타까움을 표출한 내 말에 공감하는 대신 이어간 피닉스의 자기소개는 무섭도록 차분했다. 눈 깜빡할 새 두 명이 또 죽어 나갔는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패드 속 남은 빈칸을 끄적이며 나갔다. 



내 얼굴만 선명히 반사될 정도로 유독 짙게 썬팅된 페이스 가드 때문일까. 흘긋 보였던 표정이 어딘가 창백했기 때문일까. 당신은 이게 슬프지도 않아요? 좋게 말하면 냉철해 보였고 툭 까놓고 말하자면 싸가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원래 그런 용들이 일 하나는 철두철미하게 잘 해내니 피닉스에겐 역학 조사관이라는 일이 천직인 것 같았다. 





"필요한 게 있거나 이상 증후가 생기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이틀에 한 번 꼴로 보게 될 사이인지라 많은 대화는 삼갔다. 문답을 마치고 짧게 목례한 후 현관문을 닫았다. 전해 들은 피닉스의 번호를 저장하기 위해 중얼거리며 배터리 가득 찬 핸드폰 충전기를 뽑자 화면이 켜졌다. 밝은 액정엔 아직 지우지 않은 재난 문자가 동동 떠다닌다. 강조하기 위해 별표로 가득 채워진 그 문구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았다. 





사랑은 질병입니다. 


사랑엔 면역이 없습니다.





실로 웃음만 터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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