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O에서 공식적으로 사랑이 질병임을 지정한 지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지만 세계는 여전히 해결책의 실마리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발병 원인으로 옥시토신의 비정상적인 과다 분비가 거론되곤 했으나, 여지껏 백신 개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용이 손댈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른다.
방역 당국은 연인부터 부부까지 모든 감염자들을 대상으로 역학 조사를 실시했다. 그렇게 집단 돌연사의 이유를 밝혀내려 했으나 수개월을 매진해봐도 도달하는 결론은 매번 동일했다.
그들이 내뱉은 마지막 숨은 진심 어린 사랑 고백. 그들이 작성한 마지막 문자는 안부 인사처럼 보내던 러브레터. 고작 그딴 것들이 역병의 시작이라니. 공식 발표에도 국민들은 안일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엔 연애를 하지 않는 자들에게 모태솔로라는 별명을 붙여 놀림감으로 삼았으니 사랑이 질병이라는 발표는 개소리 중에서도 가장 터무니없는 개소리로 치부되었다.
결국 용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참황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에야 사랑이 질병임을 받아들였다. 손을 맞잡은 연인과 팔짱 끼고 걷던 부부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초기 증상은 발열과 인후통. 감염자들은 이를 단순 독감 바이러스로 치부하였으나 머지않아 심박수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고 결국 심장이 기능을 상실하고야 말았다.
질겁한 용들은 스스로를 집에 가두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용들이 절멸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사랑도 해보지 못하고 목매단 겁쟁이의 수도 제법 증가하였다. 어느새 낙엽만 나뒹구는 삭막한 거리엔 방송만 울려 퍼졌다. 절대 안일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질병입니다. 이는 치료가 불가합니다.
순식간에 하트 이모지 마저 사라진 세상. 사랑은 전무후무한 지구의 대재앙. 연인의 형태는 빠른 속도로 쇠퇴하였고 사랑을 표현하던 단어들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푸르렀던 대지는 무채색의 개인주의로 점철되었으며 고백을 유서에 적는 행위는 신종 자살 방법으로 급부상했다.
날 낳자마자 돌아가신 우리 엄마는 굳이 목숨이 위험한 것을 알았음에도 나를 낳았댔다. 왜 그랬을까, 이 망한 세상에 나를 왜 떨궈놓고 갔을까. 날 키워준 시설 쌤은 울 엄마가 문창과 출신이라서 그랬던 거랬다.
매출의 일등 공신인 로맨스 소설이 질병으로 인해 법적으로 출간 금지당한 후 사회적 시선에서 바라본 문창과란, 모든 용들에겐 사랑할 권리가 있다며 로맨스 소설 원고지를 흩뿌리고 애인의 터진 심장을 끌어안으며 울부짖는 미친 극애주의 집단이었다. 사랑으로 밥벌이하던 이들에게 사랑의 질병화란 사망 선고나 다름 없었기에.
그 미친 집단에 제 발로 걸어들어갔다던 엄마를 따라 나도 홀린 듯 문창과에 입학했다. 난 그저 엄마가 나와 닮았을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엄마가 남긴 흔적이라도 찾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스물셋 앳된 나이에 모두가 기피하는 문창과 출신 극애주의자로 낙인찍혔다. 모성애가 무엇인지 배우지도, 느끼지도 못한 젊은 세대 속에서 피어난 극애주의자라니. 마을 주민들은 내가 우매하고 겁대가리 없다며 기피했다. 내 속사정 따윈 궁금하지 않겠지. 그저 사랑을 제게 강요할까 봐 두려워하는 거겠지만. 지랄, 나도 보는 눈이 있는데?
그치만 들어봐. 나도 내가 사랑이라는 걸 하게 될 줄은 몰라쓴ㄴ데 수강 신청 대차게 말아먹고 주워 먹은 '세계 문학의 이해' 수업에서 만난 여자가 내게 고백했었어. 동반 자살하자는 말처럼 들리긴 했는데 얼떨결에 손을 잡았어, 왜냐면 무섭긴 해도 솔직히 사랑이 뭔지 너무너무 궁금했거든. 막상 해보니까 별 거 아니더라, 난 여전히 살아있었으니까. 죽을 각오로 사랑한다 수도 없이 외쳐봤는데도 난 멀쩡히 살아있으니까.
닥치는 대로 수업이 사랑해봐도 심장이 아주 조금 쿵쿵거렸을 뿐 나는 감염되지 않았어. 용들이 그토록 안달 내던 사랑이 고작 이게 전부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어. 비록 상대는 전부 죽었지만 나는 아픈 곳 하나 없이 지나치게 건강해. 어쩌면 나 정말 면역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글쎄요, 나도 궁금하네."
"궁금하면 나 좀 유심히 봐 줘."
난세의 영웅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네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도 있으니까.
텅 빈 옆집의 공허함에 지루해질 때면 나는 종종 현관문을 활짝 열고서 패드에 고개 박은 피닉스에게 신세 한탄을 하곤 했다. 나 방금 여자랑 연애해봤다고 실토했는데 놀랍지 않아? 어느 포인트에서 놀라야 되는데요?
일을 방해하나 싶을 정도로 매일같이 떠들어대도 그 여자는 내 말에 대꾸를 재깍 해주었다.
"난 대화하기 싫어서 핸드폰에 코 처박고 AI랑 얘기하는 용들 진짜 싫더라, 용들끼리 스몰 토크 좀 한다고 죄다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잖아."
"그쵸, 아니죠."
"다들 용이랑 어울리긴 싫다면서 외로움은 또 느낀다네, 왜 그럴까?"
"용은 사회적 동물이니까요, 상호작용이 본능적인 욕구인 거죠. 그걸 억누르려니 더 외로울 테고. 외로움은 질병도 아닌데 고독사하는 용들 꽤 많아요. 어쩌면 고독이 가장 위험한 전염병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도 있어요."
".....갑자기 미안해지네."
"뭐가요?"
"처음에 너 되게 싸가지 없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는데 대화 나눠보니까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아서."
"와, 그 말이 제일 놀랍네요."
피닉스가 페이스 가드를 휙 젖혔다. 한겨울임에도 습기가 찼는지 두 뺨이 조금 홧홧했다. 매번 흔들림 없던 눈동자가 잔뜩 돌아간 채로 입을 댓 발 내밀었다.
"나 지금 충격 받아서 좀 밉다."
양손엔 제 주머니에서 꺼낸 계란 두 알이 쥐어진 채였다.
"얼만큼?"
"저번에 계란 없다길래 제가 가져왔는데 주기 싫어질 만큼요."
스물두살이라던 제 나이에 걸맞은 투정이 튀어나온다.
그러니까 뭐랄까, 피닉스는 그제야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역학 조사관은 마치 남의 옷을 뺏어 걸친 것처럼 그 애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 때 깨달은 것이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계란을 꼭 쥐고서 펼쳐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둘까 말까 놓았다 쥐었다 몰래 장난치던 모습. 실수로 떨어뜨려 깨진 계란 한 알을 보며 휘어지던 눈꼬리 속 눈동자는 마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우주 같아서.
"너도 참...... 영락없는 어린 애였구나."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