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wift
2화: 원로의 선택
은백색의 달빛이 물러간 자리를 대신한 태양의 빛즐기는 제단 중앙의 마석에 부딪혀 공터 전체를 눈부신 금빛으로 물들였다.
부족의 모든 용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집결했고, 그 중심에는 세월의 풍파를 비늘 하나하나에 새기는 늙은 원로가 산맥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거대한 날개를 단 한 번 크게 펴더니, 천둥소리와 같은 목소리로 오늘 네 마리의 어린 용들이 마주할 시련이 대해 일갈하기 시작했다.
“ 부드러운 껍질을 벗고 진정한 용의 길로 들어서고자 하는 자들아, 들어라.”
원로의 목소리는 공기 중의 마력을 진동시켰다.
“ 시련의 목적은 단 하나, 우리가 부여하는 모든 과제를 완수하고 이 공터로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주할 고난은 너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며,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과제를 모두 끝마치고 돌아온 자는 우리 부족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평생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나….”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우리를 굽어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깊은 슬픔과 경고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 기억하라. 영웅의 자리에 오른 이들보다, 차가운 황야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이 훨씬 더 많았음을. 이 길은 영광의 길이기도 하지만, 죽음의 길이기도 하다.”
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공터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원로가 제단 중앙의 고대 문양을 건드리자, 허공에 거대한 마법의 장막이 펼쳐지며 일렁이는 공중 환영이 떠올랐다.
“너희가 이곳을 떠나는 순간부터, 이 제단에는 너희 네 마리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내내 비치게 될 것이다. 온 부족이 너희의 걸음을 지켜볼 것이며,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새로운 과제가 하달될 수도 있다. 너희는 결코 혼자가 아니지만, 동시에 그 누구의 직접적인 도움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긴 장황한 설명이 끝나고 마침내 정적이 찾아왔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원로의 시선이 우리 넷이 모여 있는 구석진 자리에 멈췄다.
“그럼, 올해의 선발대를 호명하겠다.”
“ 첫 번째, 코스모.”
나의 이름이 가장 먼저 공터를 울렸다. 심장이 입 박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두 번째, 유리윤. 세 번째, 케이나인. 그리고 마지막, 코멧.”
순간, 주변은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고 우리 네 명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안이 벙벙해진 채 굳어버렸다.
꿈인가 싶어 서러의 비늘을 쳐다보았지만,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수백 쌍의 눈동자는 이것이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슴 한 구석에서 정체 모를 설렘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무시당하던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시련의 주인공으로 선택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거친 포효가 터져 나왔다. 평소 우리를 ‘낙오자들’ 이라 부르며 멸시하던, 체격이 건장한 후보 용들이었다.
“ 말도 안 됩니다! 장로님, 저런 비실비실한 녀석들이 어떻게 부족의 운명을 짊어진단 말입니까? 결정이 잘못되었습니다!”
선두에 선 용이 바닥을 치며 반발했지만, 원로의 표정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단호한 눈빛만으로 반발하던 무리를 압도하며 침묵시켰다. 결정은 겨로 뒤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성스러운 선언이었다.
원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제단 아래로 내려와, 멍하니 서 있는 우리 넷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를 덮었다.
그는 우리를 내려다보며 아주 낮고 근엄한 목소리로 짧게 속삭였다.
“ 따라오너라. 할 이야기가 있다.”
그는 등을 돌려 자신의 거처인 거대한 동굴 안쪽으로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을 떨치지 못 한 채, 서로의 어깨를 툭툭 치며 각오를 다졌다. 뒤에서는 여전히 다른 용들의 수군거림과 시샘 어린 시선이 뒤통수를 찔렀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원로의 뒤를 따라 어두운 동굴 속으로, 그리거 우리 인생의 가장 거대한 전환점을 향해 첫 발을 디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