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의 아이와 악마의 아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소하면서도 명확했다. 눈이 붉은가, 아닌가. 둘 모두 온 몸이 새하얗지만, 한쪽은 신성시되고 한쪽은 버려지는 것. 그것이 중세시대 °알비노 아이들이 맞이하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알비노 : 백색증이라고 알려진 유전병의 일종. 피부도, 머리카락도 모두 하얀 병이다. 증상이 심하면 눈이 붉은 색을 띄기도 한다. 햇빛에 약해 햇볕에 화상을 입는 일이 부지기수. 중세시대에는, 눈이 정상이면 별의 아이, 눈이 붉으면 악마의 아이로 불렸다. 별의 아이는 신성시되고, 악마의 아이는 버려지거나 박해의 대상이었다. 물론 오래는 못살았겠지. 둘다. 중세에 선크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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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서 태어난 쌍둥이 왕자.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혹은 예상한 평범한 전개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조금 다르다. 왕자들 모두 백발을 지니고 태어났으니.
나? 왕국의 신하 중 하나로 보면 될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원활한 전개를 위한 설명이 필요하겠군. 나는 왕자 중 악마의 아이를 기른 양아버지. 리츠 비알론 세디놈. 왕궁의 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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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서 태어난 왕자들은 모두 백발을 지녔다. 두 왕자는 처음에는 똑같이 길러졌다. 이 불행은, 두 아이가 눈을 뜨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 시작되었다.
"꺄악- 여보! 아니 폐하! 이것 좀 보십시오!"
"왜 그러는 거요?"
여왕님이 거품을 물 기세로 소리치며 폐하께 안겼다. 그리고 왕은 보았다. 한 아이의 눈이 붉은 것을. 그녀는 별의 아이와 악마의 아이를 한 배에서 낳은 것이었다.
"괜찮소. 아직 왕자의 출산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니 괜찮소. 일단 지금은, 별의 아이만을 낳았다고 해둡시다."
"그럼...악마의 아이는...?"
왕께서 서기인 날 바라보았다. 왕의 눈빛은 차가웠다. 난 잠시 이어진 정적에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왕이 입을 열자 다시 펜을 들었다. 그의 말에 놀라 떨어뜨리기 전까진.
"서기! 자네가 기르게."
"예? 전 아직 미혼이란 말입니다!"
"황새가 물어다 줬다고 그래."
"농담할 기분 아닙니다! 전 정말로 미혼인 데다가 아직 연인도 없단 말입니다! 서른살 평생을 연인 없이 살았다구요! 그런데 황새가 미치지 않고서야 왜 저한테 아이를...!"
"그럼 주웠다고 그래. 가엾어서 돌본다고 하고."
"그건 좀 이해가 되겠네요. 그런데 정말로 제가 기릅니까?"
"왕이 한 입으로 두말 할 것 같나?"
엉겁결에 아이를 떠맡았다. 왕궁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 까지는 허락 받았으나, 이 아이가 사실 왕자라는 사실만은 숨기는 것을 전제로 하셨다. 루비를 생각나게 하는 아이의 붉은 눈동자가 반짝이며 날 응시했다. 여왕님이 끌어안은 별의 아이가 지닌, 사파이어를 생각나게 하는 푸른 눈과는 대조적이었다.
"가엾은 왕자님...눈 색 하나 다르다는 이유로...왜..."
왕자를 향해 속삭였다. 왕자는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편안히 잠만 자고 있었다.
◇
세월은 흐르고, 악마의 아이도, 별의 아이도 열 다섯살이 되었다. 다른 점이라면, 별의 아이는 왕이 되었으나, 악마의 아이는 아직 나와 함께 한다는 점이었다.
"아빠! 이것 봐! 나 아빠가 내준 문제 다 풀었어!"
"하하. 레트. 벌써 다 풀었니?"
"응. 나, 오늘 외출해도 되는거다?"
아들, 아니 왕자님은 나를 아버지로 알고 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다. 레트에게 지금 사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아주 큰일이 나고 말 것이다.
"그래. 대신 양산 꼭 쓰고. 모자 꾹 눌러쓰는거 잊지 말고! 사람들이 네 눈 보면 어떨꺼라고 했지?"
"에이. 당연히 알지! 굉장히 놀랄거라고 했잖아!"
"자, 그럼 다녀와라."
혹시 몰라 아들의 뒤를 밟았다. 근처에서 짖궂은 또래 아이들이 보였다. 아들 모자에만 손 안대면 괜찮겠지 싶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계속 뒤를 밟았다. 그리고 곧 예상한 일이 터졌다. 아이들이 모자를 벗긴 것이다. 그것도 시내 한 가운데에서!
"아...악마의 자식이다! 으악!"
"도망가! 영혼을 빨아먹힐지도 몰라!"
"꺼져버려! 악마!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곳에서 썩 사라지고 지옥으로 돌아가라!"
아들에게 달려가 급히 아들을 감쌌다. 날아드는 물건 중 하나가 내 머리를 때렸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일단 아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내 주변에는 유리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아..아들. 괜찮아?"
"아빠...흑..."
"자, 집에 돌아가자. 사내자식이 길에서 울고 그러는거 아니야!"
이윽고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양산을 집어 펼치고 집쪽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햇볕에 생기는 그림자가 길었다.
◇
아들과 함께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통증이 느껴졌다. 아들은 의자에 앉은 나에게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아들은 내 머리에서 아까 던져졌던 병의 파편을 뽑아냈다.
"아빠. 왜그랬어. 아플꺼니까 참아."
"아들이 맞고 있는데...아얏. 그냥 있을 아버지가 어디 있냐. 안그래?"
"주책맞게. 그러지 마."
"혹시 평소에도 나가면 모자를 벗겼던 거야...?"
"아니. 오늘은 특이한 날이었어."
아들이 뽑아낸 피묻은 유리 조각이 촛불에 붉은 빛을 발했다. 투덜거리면서도 내게 붕대를 감아주는 아들이 대견했다.
"자. 끝. 앞으로 그러지 마. 그리고 아빠, 악마의 아빠라고 소문이 쫙 퍼질텐데. 괜찮겠어?"
"아들. 별의 아이를 알고 있니?"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아들과 양 손을 포개고는 나름 진중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별의 아이는 말이야. 하느님이 지어낼 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지어내신단다. 지금 임금님도, 별의 아이란다. 아빠랑 봐서 알지?"
"응. 눈은 푸르고, 머리는 희어서 멋졌어. 피부도 하얗고."
"하지만 사람들이 악마의 아이라고 부르는, 너같은 아이는 말이야. 하느님이 지어낸 또 다른 별의 아이란다. 사실 밤하늘은, 수많은 검은 별 틈에 박힌 하얀 별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이야. 검은 별이 없으면, 그런 신비로운 광경을 만들지 못하지..."
"응...그래서?"
"넌 검은 별의 아이야. 별의 아이가 더 빛날 수 있게 도와주고, 세상의 죄를 네가 대신 받는거란다. 예수님처럼 말이야."
검은 별의 아이. 개인적으로 나는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세상의 죄를 대신 받고, 지금의 왕, 별의 아이를 더 돋보이게 하는 존재. 물론, 내게는 다른 의미로 돋보이게 하지만.
"검은 별의 아이..."
"그래. 세상의 어둠과 죄를 대신 받고,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는 아이지. 넌 그런 존재야. 자신감을 가지렴."
"알았어! 아빠. 나 힘낼께! 멋진 검은 별의 아이가 될꺼야!"
아들의 미소가 밝게 다가왔다. 아들이 감아준, 너무 꽉 맨 붕대를 약간 풀고 아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
왕궁은 언제나 현란한, 고가의 사치품으로 가득했다. 출근사실을 오늘 당번에게 확인시킨 나는 서기석에 앉았다. 왕은 오늘도 사치품으로 몸을 두르고 있었다.
"그래. 서기 왔는가."
"예. 전하."
오늘도 찾아오는 수많은 민원. 지나치게 높은 세금은 모두 왕의 사치품이 되었다. 그에 반발한 시민 중 하나가 이윽고 왕궁에까지 들어왔다.
"왕이시여! 민중들이 높은 세금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제발, 가엾은 민중의 고통을 줄여주십시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왕이시여! 제발, 소인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시끄럽다! 승마가 하고 싶구나. 내 애마, 프로이스를 준비시켜라."
왕이 경비를 불러 그 여인을 끌어냈다. 그녀의 외침은 끝내 임금에게 닿지 않았다. 그 여인의 모습에 마음이 아려와서, 서기로써의 일에만 집중했다.
- 한 서민 여자가 '민중들이 높은 세금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제발 가엾은 민중의 고통을 줄여주십시오!' 라고 애슐리 3세께 아뢰었다. 그러나 왕은 '소인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라고 부르짖는 그녀의 외침을 무시하고, 그녀를 끌어내라 하신 뒤 승마가 하고 싶다 하시며 애마 프로이스를 준비시키라 하셨다.
차라리 이쪽을 악마의 아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되는 언행. 저건 별의 아이가 아니다. 별의 아이라고 하더라도, 지옥 구멍을 여는 열쇠를 받은 별. 곧 악마의 별이다. 차라리 내 아이가 별의 아이였으면 했다.
"서기!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나?"
"아, 아닙니다. 아들이 잘 있는지 몰라서."
"하하. 그래. 악마의 아이 말이지? 요새 본 적이 없군그래. 한번 궁전에 데려와 보게. 놀려먹기 딱 좋을테니 말이지!"
곧 다른 가신들이 낄낄거렸다. 그 조롱섞인 웃음을 뒤로 하고 왕을 따라 나섰다. 그를 닮은 하얀 말이 그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왕이 위에 오르더니 가신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어 거만한 소리를 지껄였다.
"나 어떤가? 동화책에 나오는, 백마를 탄 왕자같아 보이지 않는가?"
"어서 공주님을 구하러 가셔야죠. 뭐하십니까, 왕이시여!"
장단을 맞춰주는 가신이나, 그 장단에 맞춰 노는 임금이나, 광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광대짓과 그 기록이 절정에 달할 무렵, 내정담당인 아렌이 왕에게 다급히 달려왔다.
"왕이시여! 반란군 무리가 생겨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군사를 움직이게 해주십시오!"
"흠...뭐, 그 정도라면 1천이면 충분할 것이다. 가라."
"이...일천이라니요! 그들은 지금 세력을 키워...!"
"닥쳐라! 내 말이 곧 법이고 진리이며 정의이다! 내가 그리 된다 하면 나무가 바다에 떨어져 심어지기도 하는 것이야!"
왕이 그의 수통을 던졌다. 물이 거의 차있던 수통은 그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왕의 앞에서 물러나는 아렌이 갔던 길에 피가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분명했다. 그 일을 서기로서 꼼꼼히 기록했다.
- 내정을 맡은 최고 직책의 신하, 아렌이 사람들을 선동하는 반란군 무리를 토벌하는 데에 필요한 군사를 요청했다. 애슐리 3세는 단 1천의 군사만을 내어주었다. 신하가 군사를 더 요구하자, '내 말이 곧 법이고 진리이며 정의다! 내가 그리 된다 하면 나무가 바다에 떨어져 심어지기도 하는 것이야!' 라고 소리치며 수통을 던져 그의 머리에 피를 냈다. 그는 피를 흘리며 물러났다.
왕은 이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시간이 되자, 프로이스마저 버려두고 자신의 사치스러운 왕좌로 향했다. 그 곳에는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서기석에도 왕의 것과 똑같은 간식이 있었는데, 아마 왕께 드리고 남은 것을 나에게 주는 모양이었다. 옆의 시녀가 왕께 친절히 설명했다.
"오늘의 간식은 브라우니 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왕은 뭔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시녀를 불러 따귀를 때렸다. 그 모습에 놀라 뛰어간 나는 쓰러질 뻔 한 시녀를 붙들었다.
"괘...괜찮소?"
"아...저는 괜찮습니다."
"너, 우유가 없잖아. 항상 가져오라고 내가 말했을텐데? 가르친게 효과가 없을 만큼 멍청한 모양이야?"
"폐하. 말이 심하십니다!"
"서기면 서기답게 입 다물고 글이나 써! 괜히 편들지 말고! 너도 맞아보고 싶어?"
일단 시녀를 일으켜주고 서기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일을 낱낱이 기록했다.
- 간식으로 브라우니가 나왔는데, 왕이 시녀의 뺨을 때렸다. 서기가 급히 달려나가 시녀를 붙들었다. 왕은 '우유가 없잖아. 항상 가져오라고 말했을 텐데? 가르친게 효과가 없을 만큼 멍청한 모양이야?' 라며 그녀를 모욕했다. 이에 서기가 '폐하, 말이 심하십니다!' 라고 아뢰자 왕은 노기를 드러내며 '서기면 서기답게 입 다물고 글이나 써! 괜히 편들지 말고! 너도 맞아보고 싶어?'라고 크게 소리치셨다.
화가 나서 그런지, 글씨가 거칠어졌다. 물론 평소 글씨와 거의 차이는 없었다. 다만 감정이 섞여 있어 붓이 거칠게 놀아났을 뿐. 그 때, 왕이 입을 열었다.
"맞아, 너 말이야. 악마의 아이 하나를 기르고 있다며? 하, 얼마나 덜떨어졌으면 악마의 아이나 기르고 있겠어? 아니면 뭐, 죄의 유혹에 빠졌을 때 핑계대기 위한 거냐?"
"그만 두시죠.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기록이야 어쨌든! 너 방금 나한테 대든거, 맞지?"
왕은 기어이 본색을 드러냈다. 넘어진 내 배 위로 구둣발이 올라섰다.
"왕이시여. 그만 두시지요...!"
"시끄러워. 내 기분을 더럽게 했으니, 넌 죽어 마땅하지만 이정도로 봐주는줄 알아!"
곧이어 발길질이 쏟아졌다. 구둣발이 매섭게 배를 때렸다. 헛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곧이어 찾아오는 고통. 발길질이 끝나자, 기침이 터져나왔다. 기침 사이에 피도 섞여 터져나왔다. 그래도 나의 임무, 기록에 충실했다.
- 왕은 서기를 '악마의 아이를 기르고 있다'라는 핑계로 모욕했다. 서기가 그만 둘것을 종용하며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왕은 '나한테 대드는 것이냐'라며 서기를 넘어뜨리고는 구둣발로 서기의 배를 눌렀다. 서기가 다시 그만 둘 것을 요청하자 '나의 기분을 나쁘게 했으니 죽어 마땅하나, 이정도로 봐주는 것인줄 알아라'라며 발길질을 가했다.
중간에 터져나오는 기침 때문에 피가 종이에 묻어났다. 왕은 화가 난 듯 나를 노려보았다. 조만간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왕 앞에서 물러났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였지만 의식은 또렷했다. 하지만 집 문을 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
눈을 떴을 때는 침상 위였다. 아들이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아들이 나를 말렸다.
"아빠, 일어나지 마. 가만히..."
아들의 말대로 가만히 있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이 절로 나왔다. 차라리 이 아이가 왕자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다시 머릿속을 스쳤다. 나를 쓰다듬는 레트의 손길이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벌써 다 커버린 것 같았다.
"아들. 벌써 다 컸네. 아빠 치료도 자주 해주고..."
아들은 말이 없었다. 루비같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 볼에 닿았다. 그런 아들을 향해 씩 웃어보였다.
"걱정 마라. 아빠는 이제 괜찮으니까. 그래. 다음 주엔 오랜만에 휴가나 낼까? 오랜만에 아들하고 같이 있고 싶네."
"아빠. 일 그만두면 안돼?"
아들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야. 이거 궁전에서 다친거 아니란다. 그냥..."
"거짓말."
역시 이 아이는 비범하다. 별의 기운을 물려받아 그런 것일까. 아니면 왕의 혈통이 레트에게 남아있기 때문일까. 이내 포기하고 진실을 밝혔다.
"하하...역시 검은 별의 아이라 다른가. 바로 알아내버렸네."
"왕이 걷어찼지? 이거, 구둣발로 찬거잖아. 내가 다 아는데. 왜 거짓말을 해?"
"아들 걱정시키기 싫어서 그랬어. 미안해."
"그러지 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담이 꼭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비록 친자식은 아니었지만...마음으로 낳아 기른 아이니, 자식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겠지.
"아빠. 나랑 약속해. 내일, 안되면 다음 주 안에라도. 제발. 이러다가 아빠 죽을 것 같단 말이야."
"하지만, 아빠가 일을 그만두면, 레트 맛있는 거 못사줄텐데..."
"맛있는거 필요 없으니까! 난 맛있는 것 보다 아빠가 더 소중해. 일 그만둬. 응?"
누가 이 아이를 악마의 아이라 했을까. 이리도 착한 천사인 것을. 팔을 들어 아들을 쓰다듬었다. 창백한 피부와 상반되는 따스한 체온이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알았어. 그럼 다 낫거든 그만두겠다고 하러 갈께."
"응. 꼭 그만둬야 돼."
아들과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손가락을 통해 전해지는 체온이 마음까지도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 아들의 손길 속에 잠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함께 할 수 있기를.
상처가 거의 다 나을 무렵, 아들과 함께 왕을 찾아갔다. 왕은 아들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모자를 눌러 쓴 아들은 복장만 제외하면 왕과 구분이 힘들었다.
"그대가, 악마의 아이인가. 예전에도 간혹 봤지만, 그 시뻘건 핏빛 눈동자는 여전하구나."
아들이 왕의 조롱섞인 말을 그대로 삼키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왕의 조롱이 계속되자, 내가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왕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왕이시여. 악마의 아이라고 한들, 제가 마음으로 낳아 기른 아이입니다! 아버지 앞인데, 말을 삼가주시지요!"
"하? 나에게 또 반항하는구나! 미련한 자의 등에는 채찍이 떨어진다 하는데, 채찍이라도 맞고 싶은 것이냐?"
아들이 내 손을 잡았다. 나를 만류하는 작은 몸짓에 화를 삭였다. 왕은 아들이 신기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그의 주변을 쭉 걸어다녔다.
"신기한 놈이로구나. 악마의 아이인데도, 별의 아이인 나와 이리도 닮아 있다니. 신의 장난같지 않은가?"
"어쩌면, 왕이 바뀌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계략일지 모르지요. 폐하!"
가신 중 하나가 던진 농담에 아들과 나만 제외하고 모두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 웃음소리 하나하나가 화살처럼 박혔다. 그리고 문이 벌컥 열리며, 반군이 쳐들어왔다. 대장의 지시에 왕이 그들의 수중에 잡혀들어갔다. 그리고, 내 아들도. 아비규환이 펼쳐지는 가운데에서도 꼭 잡고 있었던 아들의 손이 그들에 의해 놓쳐졌다.
"레트? 레트! 어디 있니?"
"아빠! 여기....!"
"레트!"
그들은 아들을 데려가버렸다. 그들의 대장을 만나야겠어. 아들을 되찾을 수 있게. 눈 색만 달랐기 때문에 혼동한 것이겠지. 아마 그들도 내 아들은 놓아줄 것이다. 내 아들은 악마의 아이고, 왕은 별의 아이니까. 태생은 같지만 그 기원이 다르니까.
◆
반란군의 은신처로 향하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 곳에서, 그들의 대장을 볼 수 있었다. 대장은 낮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에, 왕께 세금 인하를 건의했다가 쫒겨난 인물이었다.
"당신은..."
"아, 궁전의 서기관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반란군의 대장, 엘 슈텔하이드입니다. 전에 뵌적 있지요? 당신의 기록은 잘 읽었습니다. 왕의 시선 속에서도, 정직한 기록을 하셨더군요."
"그렇다니 영광입니다. 그런데, 다름이 아니고..."
"아들 때문이십니까?"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매서운 말에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온 이유를 정말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까.
"아들분은...죄송하지만, 풀어드릴 수 없습니다."
"왜죠? 왜...왜! 어째서!"
"진정하세요. 사실, 저희 측에서 둘을 혼동해 함께 연행한 것이 실수였습니다. 도시의 주민들이, 댁의 아들분을 '왕의 죄를 상징하는 악마의 아이'라고 부르며 처형하길 요구하고 있습니다."
악마의 아이? 그것 하나 때문에 무고한 아이가,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한 꽃봉오리가 무참히 꺾이려 하고 있었다. 이 일은 부당하다. 막아야 한다.
"그럼 들어주지 않으면 되잖습니까! 어째서 그렇게 못하는 거죠? 정당한 이유를 말해 보시지요!"
"저희의 지지 기반이 이 도시의 주민들입니다.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저희에 대한 신뢰는 땅으로 추락하고 말겁니다."
"신뢰? 그깟 신뢰 때문에, 죄없는 내 양아들이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래요. 그 아이도 선왕의 피를 타고 난건 맞습니다. 하지만 왕과는 정 반대란 말입니다! 누구보다 선하고, 자비심많은 아이인데...!"
"그렇다면, 더더욱 처형되야 하겠군요."
그녀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격해지려는 감정을 꾹 억눌렀다. 지금은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는 자신이 왕의 혈통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항때문에 숙청당하는 겁니까? 고작 열 다섯살 아이가?"
"악마의 아이라는 핑계도 있지요. 걱정 마십시오. 목숨값은 저희측에서 지불합니다. 애초에 친자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내 격해질대로 격해진 감정이 폭발했다. 체면이고 뭐고 없이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살인자! 그래, 악마의 아이에 왕의 혈통이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고? 웃기는 소리 마! 애초에 왕과는 그 어떤 관계도 없는 아이야! 내 자식이라고! 자식을 잃는다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기나 해?"
"이 자를 끌어내라."
"뭐? 이 저주받을 년! 그래. 어디한번 보자! 내 아들을 희생시켜 얻은 권력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 너도 나처럼 자식을 눈앞에서 잃어버리도록 저주해주지! 생지옥같은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라!"
내 저주어린 외침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바닥만이 내 얼굴에 닿을 뿐이었다. 그리고 곧, 나 들으라고 외치는 듯 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사형 집행은 내일, 오후 4시다!"
◆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이 지났다. 잠을 자지 못해 생긴 피로가 바늘처럼 나를 찔러댔다. 아들을 향해 갔다. 아들은 성 지하 감옥에 있었다.
"아...아들?"
"아빠..."
아들은 어느 때 보다 창백해 보였다. 내 눈이 흐려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빠. 잠 안잤지? 난 괜찮아."
"그래도...죽게 될텐데...네가, 내 아들이..."
"아빠가 그랬잖아. 하늘은 검은 별 사이에 박힌 하얀 별이 만드는 예술이고, 나는 검은 별의 아이라고. 사람들의 죄를 대신 받는 검은 별의 아이..."
"그...그래도..."
아들의 손을 잡으며 펑펑 울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 본 적이 없었다. 심장을 도려내는 듯 한 고통이 엄습했다. 마음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고통. 아들은 손을 빼낸 뒤 내 손을 어루만졌다.
"아빠. 괜찮아. 나중에 천국에서 보게 될꺼야. 아빠한테 착한 일 많이 했으니까."
시간이 다 되었는지, 반군의 일원이 아들과 별의 아이를 끌어냈다. 나 또한 쫒겨났다. 지지할 땅을 잃은 채 걷던 내 눈에 광장의 십자가와 단두대가 드러났다.
광장의 단두대에서 왕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박해자가 사라지는 순간. 그러나 내게는 아들이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에 지나지 않았다. 곧 사람들이 아들을 끌어내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리고 내 이성은 무의식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갔다.
사람들 무리를 헤치고 아들이 매인 십자가에 향했다. 아들이 내 텅 빈 눈을 봤는지 십자가에 매이고도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아빠...졸립구나. 얼른 가...나 보지 말고."
"아니, 아빠 안졸려...아들..."
곧이어 눈물이 떨어졌다. 아들의 얼굴에서도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통에 의한 것은 아닐 터였다. 내 아들은 내가 잘 안다.
"미안해...아빠가 미안해..."
"어라, 저 자가 사탄의 아이를 돌본 하수인인가 봅니다!"
사탄의 아이. 이젠 악마의 아이도 모자라 사탄의 아이라고 매도되는 아들이 가엾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매도는 모두 나에게로 향했다.
"지옥으로 돌아가라! 악마의 하수인 같으니!"
"꺼져버렷! 사술로 사탄의 아이를 풀어줄 셈이냐! 엘 님! 이 자를 죽여주십시오!"
"좋다. 궁대! 화살을 준비하라!"
곧 내 눈에 하늘에서 내리는 화살이 비쳤다. 아들에게 다가가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등에 예리한 통증이 수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의식이 끊긴 듯 시야도 뚝 끊겼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어둠만이 이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
궁전에서 사람들을 저주하는 악령이 있다는 소식에 움직임을 서둘렀다. 왕자가 악마의 아이처럼 되더니 어느 날 십자가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매달려져버렸고, 공주는 별의 아이처럼 되더니 미쳐버렸다고 한다. 악귀를 퇴치하기 위해 움직임을 서둘렀다.
이윽고 발견한 악귀의 모습은 끔찍했다. 목과 가슴, 얼굴을 감싸는 갑각과 대조적인 형상을 한 팔은 상체보다도 길고 약간 야위었다. 손목의 칼날처럼 변이한 갑각으로 사람들을 계속 죽이고 있는 모습이 공포로 다가왔다. 손발톱도 날카롭고, 관절마다 뼈가 삐져나온 듯 보이는 뿔이 우리를 위압하고 있었다. 악귀가 붉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흑과 백이 섞여 휘날리는 갈기는 끔찍함만을 자아냈다. 머리에선 붉은 보석이 빛나고 있었다.
[여왕에게 절망을...! 나와 같이, 아니 더 심하게...!!]
황급히 악령에게 성수를 뿌렸다. 그러나 휘둘러진 긴 꼬리에 막힌 성수는 효과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다만 보석이 약간 초록빛이 되었을 뿐. 악령이 웃으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쓸모 없는 저항...무의미하단걸 알텐데? 크크큭...]
이렇게나 강한 악령은 본적도 없었다. 다급히 '비상 수단'을 썼다. 강한 빛을 발하는 선들의 연결이 그를 덮쳤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두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들, 괜찮아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와 왕자를 찾았다. 안타깝게도, 둘은 변화가 없었다. 왕자는 여전히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고, 공주는 여전히 미쳐버린 상태 그대로였다.
"뭐지? 어째서...."
퇴마가 불완전하게 된 모양이었다. 일단 왕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왕은 그래도 나중에 있을 큰 일을 막았다며 포상을 주었다. 뭔가 불안한 것은, 기분 탓일까?
◇
이세계로 떨어진 뒤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내 나의 감정과 자아를 되찾았다. 머리의 보석은 아름다운 초록색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직시한 나는 충격에 빠졌다. 괴물과 다를 바 없는 모습. 그리고 근처에서, 네발 달린 생물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근처가 맞나? 그 빛이 떨어졌다는 곳이."
"예. 백룡님. 근처에사 수상한 기운도 계속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기억 속 임금을 닮아있는 기운과 하얀 머리에 보랏빛눈, 그리고 머리 위의 붉은 보석. 황급히 몸을 숨겼다. 그들이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볼것이라는 생각에.
"이상하군. 아무튼, 계속 수색하지. 그게 괴물이라면, 그리고 다크닉스의 손에 넘어가면 곤란해."
괴물. 나를 지칭하는 것일 터였다. 그 곳에서 달아났다. 변해버린 관절 구조가 조용하게 달리는 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자각했다. 쭉 달려나가자, 이내 어두컴컴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야 안심하고 쉴 수 있었다. 끝이 두갈래로 찢어진 긴 혀가 입 밖으로 늘어졌지만 그런 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헉...헉...그런데, 여긴 어디지...?"
일단 이 세계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곳은 마치 두 쪽으로 나뉜 것 처럼, 밝음과 어둠이 대립하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그리운 느낌이 났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거기! 누구야!"
놀란 나머지 다시 몸을 숨겼다. 내 모습을 보고는 조롱하거나 배척할까 두려웠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를 너무도 쉽게 찾아냈다.
"음...숨지 않아도 되는데...어라...?"
그는 내게서 익숙한 느낌이 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그제서야 자각했다. 이 용이 원래 누구였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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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제 소설을 분석해 봤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자주 등장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뜬금없이 등장하는 절대적인 인물이요. 이 점에 유의하면서 써야 할 거 같습니다. 오늘도 유의해봤구요.
그리고 제가 갈수록 분량이 늘고 있는것 같으실텐데 기분탓이 아닙니다. 이전 화도 그렇고, 이것만 해도 본편이 12000자가 넘어가네요. 1편 2편으로 쪼개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고로 이 문제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 받습니다. 그냥 한 룡(혹은 룡세트 하나)는 한 게시글에 올릴지, 분량이 많으면 둘로 쪼갤지...
암튼 이유NO! 님 흑룡 백룡 듀오 완료구요! 다음엔 더 발전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 작품 : 안알랴줌/맞는다
그리고 오랜만에 Q&A도 받습니다! 댓글로 카타에게 궁금한 점 올려주세요! 카타는 오픈된 여자니까 팬티색만 빼고 다 대답해드립니다! 카타가 소설 쓰는 과정부터 탕수육 부먹인지 찍먹인지까지 :)
(원래 서술자였던 아버지가 악령화된 모습을 그렸었으나, 해놓고 보니 디자인이 이런거 자주 그려대는 여자 고딩이인 저한텐 괜찮지만 여러분한테 극혐일것 같아 올리지 않겠쯥니다. 카타는 여러분을 배려하는 챠칸 작가니까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