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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탄생 (11) - 생명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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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290
  • 작성일2014.09.27

숲은 언제나 고요한 적막에 빠진 상태였다. 물론 인간들에게는. 그러나 숲의 정령, 마라에게 숲은 매우 활기찬 장소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


마라는 숲의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일찍 깨어났다. 그 뒤 나무들을 깨우고, 동물들을 깨웠다. 숲은 밤의 고요함을 벗어던지고 활기찬 그의 낙원이 되었다. 공기의 정령, 이델도 함께 그를 도왔다.


"마라, 오늘 숲은 좀 어때?"

"아, 이델. 평소처럼 활기차지 뭐."

"힝. 부럽다, 부러워. 공중은 아주 조용해서 심심한데. 바람이나 가끔 만들지."

"열심히 해줘. 니 덕분에 여기 사는 모든 생명이 호흡하는 거니까."

"알겠네요-"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을 만들어 밤새 나뭇잎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이델을 뒤로하고 숲으로 향하는 그에게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가 향한 곳에 있는 것은 오늘도 도토리를 가득 들고 있는, 통통한 다람쥐 스큐아.


"앗, 마라다! 안녕!"

"안녕, 스큐아. 도토리 많이 모았니?"

"이-따만큼! 항상 마라가 숲을 지켜주니까, 안심하고 도토리 많이 모을 수 있지!"

"땅에 몇개는 심는것도 잊지 말고."

"응! 나중에 또봐!"


스큐아가 건네는 인사에 그는 웃음으로 화답해주었다. 그는 항상 숲을 지키며, 밖의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나무를 무분별히 베어가는 것을 막고 숲의 생명들과 어울렸다. 그는 그 일상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고목 중 하나가 그의 마음에게 말을 걸어왔다.


'마라...마라...나에게 와주게...'


그는 서둘러 그 고목에게 향했다. 그 고목은 딱 보기에도 시들어 있었다. 걱정섞인 마라의 목소리가 고목의 마음속에 닿았다.


"앗, 나무 할아버지! 어떻게 되신 거에요?"

"난...더 못버틸 것 같네. 인간들을 불러주게...."

"안돼요,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셔서, 숲을 지켜주셔야죠!"

"아니, 내 몸은 내가 잘 아네. 그러니, 어서 인간들을 불러주게. 젊어서 앞날이 창창한 나무들이 베어지는 것 보다야 이 늙은이가 베어지는 게 낫겠지...그리고, 이왕 갈거, 죽어서도 쓸모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네."

"할아버지...."


그는 눈물을 머금고 인간들에게 향했다. 벌목 작업을 갓 시작하려 했던 듯 그들의 톱소리가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다.


"자자, 이제 시작하자고!"

"기다려요! 잠깐만!"


그들이 마라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 마라는 밝게 빛나는 빛의 구로 보일 뿐이었다. 인간들은 그의 참 모습을 볼 수 조차 없었기에.


"저기, 이 곳 말고, 다른 나무를 베어주세요."

"응? 무슨 소린지..."

"고목 할아버지가, 인간들을 불러달라 하셨어요. 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어딘가에 쓸모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하셨으니까. 이쪽으로 와주세요."


그는 인간들을 이끌고 고목에게 갔다. 영문도 모르고 마라를 따라가던 그들은 고목을 보고 감탄사를 자아냈다.


"이...이봐. 정말 베어도 돼? 이거...값어치가 상당한 나무인데?"

"할아버지는 지금 힘들게 죽어가고 계세요. 어서 그분이 편히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어어...그럼 알았어."


그들은 나무를 베어냈다. 나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마라의 귓가를 울려 슬픔을 지어냈다. 그리고 쿵 하고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 고목의 목소리도 조용한 침묵으로 변했다.


"고마워요. 그럼 이제 다른 나무는 해치지 말아주세요."

"다른 나무 뿐이겠나? 아마 며칠간은 나무 해칠 일도 없을게야! 고마우이!"


인간들이 고목과 숲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그는 고목의 그루터기에 앉았다. 그루터기가 그에게 자신의 남은 생기까지 전해주는 것 같았다. 주변에는 때 아닌 낙엽이, 그분이 아파했던 흔적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된거야...그분은 아팠잖아."


자신에게 속삭이며 위안을 삼았다. 그분은 과연 무엇이 되어서 우리 앞에 나서게 될까. 아니 어쩌면 영영 못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 가끔 숲에 만드는, 작은 새집이라도 되신다면 모를까...그래도 괜찮다고 마음을 달랬다.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니까. 오면 가는 것이 원칙이니까....



한참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물의 정령 아키가 그를 놀라게 하며 가벼운 장난을 시도했다. 화들짝 놀라는 마라를 보고는 까르르 웃는 그녀의 모습은 명랑하고 밝았다.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처럼.


"왁!!!!"

"으앗! 깜짝이야. 아키. 무슨 일이야?"

"우리 마라씨,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고 있어?"

"아무것도 아냐. 그냥..."

"맞아맞아! 우리, 이델네 가서 차라도 한잔 할래? 원래 목적은 이거였는데."

"이델은 왜?"

"이델이 숲의 정령들 다 모아놓고 다과회 하고있단 말야. 설마 몰랐어? 이 밥통같은 정령아."

"그래. 그럼 가야지."


그는 왜인지 모를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마 이델이 만드는 바람정도였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였다.


◆


그로부터 몇일이나 흘렀을까. 어두운 힘이 갑작스레 숲 전체로 퍼져나갔다.맹렬한 속도로 숲에서 마력이 빠져나갔고, 그 때문에 숲이 가진 생명의 사슬은 걷잡을 수 없이 깨져나가 그 빛을 잃어갔다.


"어..,다들 어떻게 되고 있는거야!"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말라죽어가고, 뒤틀리는 나무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괴로워하며 말라 비틀어진 유령이 되어가는 인간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숲의 정령들이 텅 빈 도깨비불이 되는 괴로운 모습이었다.


"다들...왜 이런거지?"


그는 숲 속을 돌아다녀보았지만, 살아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겨우 생만 부지하고 있는 스큐아가 눈에 띄었다.


"스큐아!"

"아...마라구나....마라...도망가....사람들이...이상한....마법을...."

"더 말하지 마! 금방 고쳐줄테니까."

"아니야...힘 쓰지 마....사람들....죽은 자의...세계와....이 세계를...하나로...."


스큐아의 기침소리만이 적막한 공기를 울렸다. 마라 앞에 피를 토해내고는 바르르 떠는 스큐아의 작은 몸은 애처로울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평소 다른 다람쥐들에게 '그렇게 살쪄서는 나무나 제대로 타겠냐'라는 소리를 듣던 스큐아인데도...경련이 끝나자 스큐아의 생도 끝나고 말았다. 그가 흘린 눈물은 수의가 되어 스큐아를 덮었다.



일단 그는 이델과 아키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둘은 자신의 구역을 최대한 지키려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는지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미 공기는 시체 썩는 냄새와 어두운 마력 특유의 꺼림칙한 느낌으로 가득 차있었고, 강물도 서서히 핏빛 비슷한, 기분 나쁜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델! 아키!"

"마라! 왜 이리 늦게 온거야, 이 밥통같은 정령아!"

"아키, 말할 기운 있으면 정화나 신경써!"


그 또한 이델, 아키와 함께 최대한 노력해 보았지만, 숲 자체가 오염된 탓이었을까. 그가 하는 것은 안하는것만 못했다. 몸의 마력을 끌어모으면 어두운 마력이 함께 올라오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힘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야. 빨리 도망이나 가! 이 밥통같은 정령아! 여긴 우리가 맡을테니까 숲이나 신경쓰셔!"

"그래도...!"

"어서! 우리가 사라지기라도 하냐?"


그들을 뒤로 하고 도망치던 그는 고민에 빠졌다. 그에게 있어서 얼마 되지 않는 순간. 그만큼 지금 그는 진중했다.


'그래. 도망친다 하자. 그 다음은? 나는 이 숲의 정령이다. 이 숲이 죽으면 나도 죽을텐데. 도망친다 해서 얻는게 뭐지?'


그렇게 고민하던 그의 생각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숲의 정령들이 태어난, 이 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향했다.


------


"왕이시여. 그 문제는 보다 신중히 해야 할것입니다!"

"시끄럽다!"


왕이 제 지팡이를 땅에 내리찍었다. 그 소리가 넓은 홀을 크게 울렸다. 홀을 울리는 소리가 차갑게 메아리쳐 그 안에 목석마냥 가만히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의 귓전에 닿았다. 그들은 왕이 지금 하는 일을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듯 한 태도를 보였다.


"어째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를 뒤섞겠다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일은 이 세계의 조화에 어긋나도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다! 제발 다시 생각하십시오!"

"시끄럽다! 그대들은 보아도 알지 못할것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할 깊은 이유가 있느니라!"


그리고, 새까만 로브를 입은 소녀가 지하실과 연결된 문에서 나왔다. 많이 잡아야 열 여섯, 일곱정도 되었을까. 그녀는 보드라운 목소리로 왕을 불렀다.


"왕이시여. 당신이 원하는 그 일이 가능하게 되었나이다."

"그래. 어서 가자꾸나."


◆



소녀가 이끈 곳에서, 왕은 묶여있는 수많은 죄수와 그들에게서 보여지는 고문 흔적, 그리고 무언가 담겨진 병을 보았다. 푸른 빛을 띄는 보라색 액체에서는 신비롭다 못해 음산한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이들의 절망과 공포, 고통을 한데 모아 뭉친 것입니다. 이 실험의 중요한 도구이자 핵심 재료이죠."

"그렇군. 어서 속행하라!"


그녀가 홀로 마법 주문을 읊었다. 죄수들의 몸이 가루로 변해 그 마력이 그녀의 주변을 휘돌았다. 그리고 소녀는 그에게 보랏빛 물약을 뿌렸다.


"어째서 나에게 물약을...!"

"의식의 일환입니다. 그것이 전하를 보호할 것이니, 진정하십시오. 자칫 동화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주변의 모든 마력을 끌어모았다. 공기가 점차 차갑고 날카로워지는 가운데, 왕이 조용히 속삭였다.


"곧 그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오, 레지에타."


---------


마라는 나무 앞에 서서 주문을 왼 후, 그 나무의 품에 포근히 안겼다. 나무의 안은 모태처럼 편안했다. 그는 그 안에서 자신 안의 검은 마력을 정화해 갈무리한 뒤, 자기 생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의 앞에 소환되는, 얼마 되지 않는 숲의 마지막 생명. 그는 그 모든것을 받아들였다. 숲의 마지막 생명들은 언데드의 공격으로 온전치 못했지만 그래도 그는 그들을 자신의 품에 안았다. 더 이상의 파괴를 막기 위한 그의 처절한 저항. 그는 자신이 이 숲이 지닌 생명의 정수를 지킬 수 있다는 데에 감사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이델도, 아키도 없었다. 아마 숲의 생명을 지키다 도깨비불로 변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이런 저항을 막아 내는 시도라도 하듯, 숲에 떠도는 어두운 마력은 그를 온전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 기운은 생명력을 향해, 그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는 그 기운을 최대한 막았지만 일부가 자신의 몸에 흘러 들어와 자신을 침식하는 것 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고통이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


숲의 마력 대부분을 끌어온 그녀는 왕의 말대로 죽은 자의 세계와 산 자의 세계를 하나로 합쳤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모이는, 죽은 생명들이 가지고 있던 생명의 정수. 그녀는 그 것을 그대로 흡수했다.


"아니...영생은 내게 줘야 할 텐데? 뭐하는...."


왕의 말은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그의 몸도 서서히 가루로 화하며 그녀에게 생명의 정수를 바치고 있었다.


"ㅇ...여기 있으면...안전하다 하지 않았느냐...."

"꺄하하하- 그걸 그냥 믿었어? 바보 바보~ 정확히는 이 안에서도 '여기'있어야 안전하거든! 그래도 내가 선물 하나는 주잖아? 바로...."


그녀는 그 나이대 특유의 철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그녀의 사악함을 더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말을 흐린 그녀는 그의 남은 몸에 마법진을 쓱쓱 새기고는 그녀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오-래오래 살게 해주는 거지! 다만 니 몸은 아니고, 저-기저기 갑옷 속에서 말이야? 아! 깨어나면 내 부하가 될 수도 있겠다. 맞아! 나중에 레지에타를 불러줄께."

"그래...레지에타만...만날 수 있다면..."

"물론- 네가 기억은 못하겠지만 말이야...! 아, 알아보지도 못하겠구나? 아- 비운의 왕이시여- 꺄하하하-"


그녀의 웃음에선 사악함과 차가움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 로브의 소녀 앞에서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왕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를 저주했다.


"너 이년....! 네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이룰 수는 없을것이다...!"

"꺄하하핫. 죽을 놈이 입만 살아서는! 잘 가라고!"


그리고 지하실을 나온 그녀 앞에, 수많은 언데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법으로 그들을 복종시킨 그녀는 그 군세에게 소리쳤다.


"자, 너희들의 힘으로, 산자를 모두 없애는 것이다! 가라, 나의 군단이여!"


군단은 우르르 빠져나갔고 홀에는 그녀만이 남았다. 아직은 웅장함을 간직하고 있는 왕좌에 살포시 앉은 그녀는 자신이 만든 이 곳의 '재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왕좌는 그녀가 허리를 세운 상태로 편히 앉기엔 많이 컸다.


"그래. 이대로 된거야. 날 저주받았다고 몰아세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복수하면 되는거야. 그리고 모든 생명력을 끌어모아서..."


그녀의 입가에 어두운 미소가 번졌다.


"내가 만드는 게 곧 진리가 되는 세상을 만드는 거야. 진리는 그걸 만드는 사람의 것이니까. 목적을 달성해 놓고 과정상의 문제를 고려하면 되는 거지. 나는 진리의 창조자야. 저주받은, 어두운 마력을 타고난 여자애 따위가 아닌, 신세계의 진리를 만들고 또 부수기도 하는 절대자란 말이야!"


텅 빈 홀에 울려퍼지는 것은 인간에 대한 증오였다.


"어차피 사람들도 자기가 믿는 대로 행동하는걸. 이건 내가 믿는 거야. 그럼. 내가 곧 정의고 질서야. 당연하지. 새로운 진리는 파괴에서 오는 거야. 그러므로 나는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진리를 보여주는 거지, 어떤 발명가가 빛나는 거 하나 만들겠다고 부셔먹은게 몇개더라...?"


그 다음으로 홀에 조용히, 그리고 낮게 퍼지는 것은 그녀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외로움이었다.

혼잣말이 그녀의 지지대였고 광기가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


고통이 잦아든 뒤, 그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그의 몸은 나무와 합쳐져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리는 4개이되 두발로 서있는 모습. 그는 최대한 자신의 몸을 '그나마' 정상적인 모습으로 만들었다. 다시 관절과 나무로 된 몸이 자신의 자리를 맞춰나가는 고통이 이어졌다. 모습을 바꾼 그는 처음에 4개로 변한 다리에 적응하지 못했다. 갓 태어난 짐승처럼. 그의 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이구. 마라 은근히 바보구나? 내가 다리 4개로 달리는 법 가르쳐줄께! 전직 사슴이었던 날 믿어보라구! 어...물론 지금은 너한테 신세지고 있긴 하지만.'


사슴은 그에게 다리 4개로 뛰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곧 지식을 흡수했고 곧 잘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뒤를 언데드 군단이 추적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그는 서둘러 숲을 빠져나갔다.


---------


왕의 영혼은 갑옷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그의 앞에 나타났다. 당당한 자태였다. 마치 모든 것이 겁나지 않는다는 모습.


"그래. 어서 오라. 나의 새로운 병사여."

"...."


갑옷 속에 든 영혼은 말이 없었다. 대신 그녀를 향해 참격을 가할 뿐이었다.


"이건 뭐...이게 돌았나....살게 해줬더니 그 은혜를 이따위로 갚아? 그래. 그렇게 죽고싶다면야."


그녀는 갑옷을 공격해 투구를 벗겨냈다. 푸르게 타오르는 불이 그 안을 수놓고 있었다. 갑옷은 버둥거리며 제 목숨을 구하는 듯 한 몸짓을 했다.


"응? 살고싶다고?"


갑옷이 고개를, 정확히는 불꽃너울을 끄덕이자, 그녀는 갑옷을 일으켜 투구를 옆에 끼고 있도록 해주었다. 갑옷의 높이는 투구를 빼고도 그녀보다 머리 하나정도 높았다.


"내 특별히 네 죄를 사하노라- 투구는 알아서 쓰시고! 이쪽으로 와라. 내가 네 할 일을 말해주마."


지하실에 있던 그녀의 방 앞에 멈춰선 갑옷은 이내 경비태세를 갖췄다. 그 모습을 보고 그녀가 부드럽게 웃었다.


"오호, 이녀석 봐라. 꽤 머리가 좋은데? 급조한 언데드 치곤 괜찮은 성적이야."


갑옷 안의 영혼은 아직도 고요했다. 영혼은 자신의 과거를 되새겨보고 있었다. 자신의 업보를, 자기 한사람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이 참사를,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사라진 수많은 생명을.


---------


마라가 이내 당도한 곳은 바닷가였다. 그는 망설였다. 내가 정말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그러나 몰려오는 언데드의 군세는 그를 바다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다들, 꽉 잡아야 해!'

'알았어!'


그는 자신 안의 생명들에게 당부하고 바다로 몸을 던졌다. 파도는 나무와 그 안의 생명들을 싣고 먼 곳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파도가 인도하는 길에 몸을 맡긴 그는 다른 대륙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물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아키가 그 어느때보다 그리웠다. 심지어 특유의 말버릇이던 '이 밥통같은 정령아.'라고 말하는 모습까지도.


------


언데드 군단의 소문이 어디까지 퍼져나갔는지 몰라도, 그녀는 도전에 시달리고 있었다. 몇일에 한번 꼴로 찾아오는 자칭 정의의 용사들은 그녀의 충직한 심복인, 투구를 옆에 끼우고 싸우는 듀라한에게 철저히 패배했고 죽어갔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오는 수많은 흑마법사들.



"오늘도 가르침을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좋습니다. 그럼, 흑마법의 심화적 활용에 대해 가르쳐드리지요."


일종의 수업이 끝난 그녀는 침대 위에 털썩 엎어졌다. 원래는 왕비의 것이었던 침상은 이제 원래 가구와 침구의 아름다움 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빛을 잃고 칙칙해져 있었다. 그 옆을 듀라한이 지키고 있었다.


"아- 피곤해. 듀라한. 내 옆 잘 지켜. 난 좀 잘테니까."


듀라한은 말 없이 그녀를 향해 있었다. 그녀가 완전히 잠들었을 때,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창을 조용히 그녀에게 겨누었다. 그녀가 창의 서늘한 예기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들었음을 확인한 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녀의 몸에서 비명과 함께 그녀가 갈취했던 수많은 생명의 정수가 빠져나갔다.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


숲을 떠돌던, 그녀의 힘을 받고 움직이는 언데드들이 모두 쓰러졌다. 숲은 여전히 침묵에 빠진 채, 말라 비틀어진 모습이었다. 정령도, 마지막 생명도 모두 떠난 숲에 정령과 동물들 대신 나타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은빚 갑옷이 홀로 자리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을 생명력이 휘돌고 있었다. 그는 그 생명력을 숲 곳곳에 뿌려냈다. 곧 땅에서 새싹이 돋아났다.


---------


바다의 인도를 받으며 도착한 그 곳에는 파선된 배가 있었다. 그는 그 배, 정확히는 그 배를 만든데에 썼던 나무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할아버지?"

'오냐. 너로구나. 아이고. 이게 무슨 신세인지...'

"어떻게 된 거에요? 왜 할아버지가 여기에...!"

'아이고. 말도 마라. 배가 될때 까지만 해도 좋아 죽는줄 알았지. 그런데, 이 바다라는 놈이 원체 변덕스러워서 말이다. 이리로 꽝하고, 저리로 꽝하고, 이쪽저쪽 꽝꽝 부딪히다보니까, 나는 반쪽이지,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 내 안에 실어놓은 보석은 몽땅 천지사방으로 흩어졌지...그런데 넌 어쩌다 그짝이냐?'


그는 고목이었던 난파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배가 된 고목은 조용히 그의 말을 듣더니 한숨을 모래바닥이 푹 꺼지도록 쉬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어이구. 어이구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딨단 말이냐. 역시 인간은 탐욕 덩어리구나. 이델과 아키는 어찌 됐느냐?'

"그게, 지키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아이구. 아이구...그 꽃다운 나이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동물하고 식물도 다 죽어나갔겠구나. 그렇지?'

"네. 그래도, 조금은 지켜냈어요!"


고목은 기쁨에 목소리 크기를 키웠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을 목소리였지만, 마라와 배 사이에만 흐르는 목소리에는 고목의 기쁨이 묻어났다.


'그래. 내가 너 살기 좋은데를 알고 있다.'

"제가 직접 갈께요."

'아니...나는 마력이 몸에 남아서 그곳에 있던 생명들처럼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는게야. 그러니까, 마지막 가는 길도 마련할 겸, 너도 도와줄 겸 해서 말이다.'


고목이 자신 안의 마력을 있는대로 긁어모아 그를 어딘가로 옮겼다. 고목은 마지막 가는 길에 그에게 속삭였다. 작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부드러운 속삭임이었다.


'자, 숲으로 보내줌세. 그 곳에서 잘 살아보게!'


◇


그는 고목의 마법으로 숲에 도착했다. 그는 그 곳에 자신이 품었던 마지막 생명의 정수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전과 같은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려주었다. 온전히 되돌아간 그들은 새로 온 거처가 신기한 듯 이곳저곳 둘러보며 자신의 거처들을 정했다.


"이야. 이 숲 진짜 멋진데? 물론 우리가 전에 살던 곳 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야."

"우리 여기서 사는거지? 적당한 나무구멍좀 찾아봐야겠네! 새집이다- 새집-"


기뻐하는 생명들을 뒤로 하고, 그는 숲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를 감싸안는 따스한 숲의 마력은 그를 반기는 듯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피곤에 지친 그는 다시 자기 몸을 바꾸어냈다. 하지만 이번엔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러웠다. 그는 작은 존재가 되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순식간에 겪었다. 그의 눈이 감겼고 그가 몸담은 나무가 작은 알로 화했다. 그가 잠에 빠진 숲은 고요했다.


---------


녜에 이걸로 팀버드래곤 (덤: 실버나이트[그리고 난파선...ㅋㅋㅋㅋㅋㅋㅋ]) 시나리오 완료구요! 새드로 엔딩을 냈더니 호응도 별로고 해서 고민중입니다 새드도 가끔 낼지 말지...우우 고민이단..

(오늘 저네르가 안올라온 이유는 카타가 늦게 봐서 그렇습니다 헿헿 영령님 고멩네...)


다음 소재룡: 저네르


(개인적으로 저네르 좋아하는데 그대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더라 헠허컼커 저네르쨩 내게로 와줘여 다이아 엄청 써가면서 강캐만드러주께.../부질ㅇ벗음)


※녜에 오늘도 되돌아온 파★워☆공★지!※


카타가 신청룡을 받고 있습니다! 용 하나 신청해주시면, 카타가 있는 머리 없는 머리 다 쥐어짜서 그 용이 가졌을 과거사 자작해서 소설로 뿅 하고 만들어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간지좔좔 흐르는 자작룡도 받고 있으므로 팍팍 신청해주세요! 단 드빌 도감같은 설명 없으면 카타가 몰라서 못써여.../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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