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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온화한
2020-10-12 19:30:32
시온이라 제 이름을 밝힌 용은 아이를 부드러운 초록빛 눈으로 응시했다. 그 시선에 잠시 분홍빛 눈을 깜박이던 아이는 어여쁘게 웃었다. 용의 이름을 조금 되내어보던 아이는 제 작은 입을 열었다.

"시온... 용님을 닮아 참 예쁜 이름이에요!"

시온의 이름이 변치않을 따스한 온기를 뜻하면, 하루의 이름은 흘러가는 봄을 뜻했다. 유 하루(流 春). 흐르는 봄과 변치않을 온기는, 어울릴 듯 하면서도 섞이지 않는 것이였다. 봄이 떠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어찌 이로울 수 있겠는가. 봄이 떠나면 사라져야 할 것이 떠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일이였다. 

"음, 고맙구나. 그렇다한들 네 이름보다 예쁘겠니."

솔직히 말하자면, 시온은 기뻤다. 몇 천년을 살든, 몇 백년을 살든 제 이름 불러줄 이 하나 아무도 없었건만. 지금은 이렇게 상냥히 불러주는 아이가 있었다. 그러니 아이가 저보다 몇 배는 큰 용에게 총애를 받은 건 당연했다. 

아이는 다시 인간의 여러 이야기를 떠들었고, 어느새 검게 물든 하늘에 박힌 별들이 총총 빛날 때가 되어서야 하루는 시온의 부드러운 털 속에서 일어나 어제처럼 인사하곤 제 집으로 사라졌다. 

점점 어둠 속에 묻혀가며 작아지는 하루의 모습이 거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시온은 몸을 돌려 제 숲들 중 별빛이 가장 많이드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마 지금쯤이면 손님은 도착해 있었을 것이다.

"네가 약속에 늦은 건 오늘이 처음이야."

"...별 거 아닌 일이 조금 있었어."

가장 밝게 빛나는 푸른 별을 닮은 용이였다. 
우아한 몸짓과 휘몰아치는 듯한 커다란 뿔. 흰 몸의 배는 은하수같은 푸른털이 가로질렀고, 빛나는 장신구들은 희미한 빛에 작게 빛나었다. 크고 부드러운 빛나는 날개를 접은 용이였다. 별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외형이였다.

"많은 별들을 달고도 왔구나,"

시호. 그 푸른 용의 이름을 나직히 부른 시온이 시호의 주변에 매달려 작게 빛나는 별들 무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이 숲에서 나간 적은 없다고해서. 숲 속 깊은 곳에선 별이 잘 보이지 않잖아? 특별히 친우로써 보여주는 거야. 고맙게 여겨둬. 바쁜데도 별을 몰고 네 숲으로 가장 먼저 달려왔으니까."

"고맙기도하지. ....하지만 난 네게 보여줄 별들은 없는데. 답례로 가지고 싶은거라도 있어?"

"답례를 바라고 보여주는게 아닌, 단순한 친우로써의 호의니까 편하게 구경해. 그리고 난 너와 이야기 하는 게 즐거운걸, 그걸로 네게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해."

참으로 착한 친구였다. 푸른별이 가장 밝게 빛나듯, 숲의 용 앞의 푸른 용은 얼핏보면 빛난다는 착각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그의 주변에 별안개라도 빛나고 있는 걸까, 참 아름다운 용이라며 시온은 감탄했다. 바쁜 와중에도 가장 처음 뜬 별들을 부로 저를 위해 가져와준 시호에게 시온은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좁은 숲이 전부인 시온에게, 시호는 참 많은 것을 알려주는 별이였다. 비록 둘은 자주 볼 수 있는 사이는 아니였지만, 가끔씩 시호가 들려주는 별들의 이야기는, 하루가 알려주던 인간의 이야기와는 달랐다.

별을 관리하는 신이 친우이니, 시온은 숲 안에서도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별들이 노래하는 방식이나, 빛나는 별들을 가까이서 보면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무에 가려지지 않은 별들의 강은 얼마나 크고 빛나는지. 나뭇잎 그림자 속에 가려진 것들도 시온은 알고 있었다.

시호가 숲에 머무는 시간은 짧았다. 하루와는 달리 일이 많은 그는 시온에게 별의 찬란함을 충분히 알려주곤, 검디검은 밤하늘을 밝히러 다시 사라졌다.

아이도 없고, 푸른 용도 곁에 없는 숲의 용의 이 시간대는, 오로지 홀로만의 시간이였다.
용은 검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숙여 밤이되어 푸른 빛을 받아 은은히 그 형체가 보이는 검은 풀들을 바라보았다. 밤이라서 어두운 그 풀들 위에 몸을 웅크려 누운 용은 꼬리로 제 몸을 따듯하게 감았다. 

'곧 있으면 반딧불이가 나오려나.'

앞으로 검은 풀을 차가운 온도로 밝혀줄 작은 빛들을 생각하며 시온은 눈을 감았다. 흰 털이 밤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가만히 누운 시온의 털이 꼭 전속력으로 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했다.


***   


온통 검었다. 

이곳이 허공인지, 공간인지도 모를 곳이였다.

'볼 것도 없이... 확실히 꿈이구나.'

검은 공간에 제가 눈을 떴는지 뜨지 않았는지 헷갈리는 시온이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홀로 생각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어서는 이곳은 허공은 아닐 것이다. 아마 제 숲이 아닐까, 제 숲에서 나던 풀들의 소리를 떠올린 시온은 차분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보이는 것이라곤 똑같은 검은 빛이였기에, 시온은 그냥 눈을 감기로 결심했다.  

어둠에 삼켜진 것만 같은 기이한 꿈이였다.


*** 

검은 숲에서 한참을 헤매이다 겨우 꿈에서 깰 수 있던 시온이였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코 끝을 간질이는 꽃냄새는 기분 탓이였을까. 따듯해보이는 향에 깨어났음에도 노곤히 눈을 감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숲의 만물이 기분좋은 음색으로 노래했다. 빙빙 낙엽이 돌아가며 떨어지는 것 같은 그 노래는 들을 수록 편안해지기만 했다.

"....."

오늘은 일을 해야겠구나. 속으로 느릿 다짐한 용은 제 몸을 일으키고는 숲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숲의 커다란 나무들이 땅에 단단히 제 뿌리를 박아넣었고 튼튼한 그 기둥은 하늘 아래 꼿꼿하게 서있었다. 용이 걸음걸음을 옮길 때마다 빽빽하게 자란 푸른 잎들이 흰 털을 스치며 간질였다. 바스작, 거리는 소리에 용은 귀를 몇 번 쫑긋거리고 나무 하나하나에 제 마력을 공급해주었다.

청명한 초록빛으로 빛나는 시온의 고유 마력색이 땅 속으로 스며들고, 마력이 닿는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들이 제 잎들을 반짝이며 숲의 관리자에게 마력이 닿는 범위를 알려주었다. 그 범위를 확인한 시온은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 제 마력을 다시 공급해줬고, 다시 나무들은 그 범위를 알렸다. 이 의미없고 반복되는 행동을 계속하다보면 숲의 모든 나무들에게 마력을 공급해줄 수 있었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꽤 지겨워보이는 일이였다.

그러나 용에게는 지겨운 일이 일상이였다. 

아무리 귀찮고 지겨운 반복적인 일이라도 이미 그것이 일상이 된다면 본인에겐 그닥 지겹지 않는 일이 된다. 시온은 수호자로서 태어날 때부터 숲을 관리했으니 이 일들은 전부 일상이였다. 그가 별을 보게 된 일이나,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는 일은 얼마 되지 않았다.

"..."

다 했다.

그럼 이제 용에게는 잠시 쉬는 시간이 찾아온다. 잠시 쉬고 난 후에는 다시 숲을 돌아다니며 이상있는 곳이나 큰 변화가 생긴 곳을 확인하고 고쳐줘야 할 부분은 직접 고쳐야만 했다. 물이 부족해 건조해진 곳은 물을 퍼날라주고, 오염된 흙은 정화시켜주고, 숲을 침입해 필요 이상으로 숲을 훼손시키는 이들을 처벌한다거나. 

...말 그대로 수호자라는 이름이 할 법한 일들은 전부 한다고 생각하면 쉬웠다. 

아이가 용에게 손을 내밀어 주기 전까지 이 일상이 반복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였으나, 이젠 새 일정이 하나 더 생긴 것과 같았다. 아이는 마을의 인간이였으니 해가 질쯔음 오지 않을까. 속으로 짐작해본 용은 아직 쨍쨍한 태양을 바라보곤 이젠 뭘 해볼까 곰곰히 제 하루 일정을 떠올려 보았다.

숲을 돌아다니며 마력을 공급해주는 일이 끝났으니, 아이가 오기까지 조용한 공백같은 시간은 다른 일로 채우며 기다리기로 했다. 




아, 오후 햇살이 온화히 빛나는 것이 누군가의 미소와 그리도 닮았더라.

***







2~3주동안 하루시온이  그리느라 그동안 조용했습니다... 트레틀, 등나무 프리소스 썼어요~ 삽화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삽화그림체는 연습중입니다.. 연습하느라 다시 또 잠잠해 질 것 같아요ㅜㅠ


애기 하루는.. 갈발에 곱슬기 조금 섞인 짧은 머리고요 성인하루는 갈발이지만 끝으로 갈수록 옅은 분홍빛이 도는 생장발입니다~ 

아마 앞으로 이야기는 둘의 연애사 정도가 될 것 같은데요.. 성인미자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시온에게 아직 하루는 작은 인간아이 정도의 존재뿐입니다.. 현재시점에서는 하루만 시온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제 세계관에서 수호자는 신들의 마력이 뭉친 장소에서 태어나는 아이들 입니다! 그 장소를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하는 것이 운명이에요 그외에도 궁금한 점이나 피드백은 편하게 말씀해주시고 좋은 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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