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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검은 혁명 - 4. Under The Fallen Wing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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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2016.11.08
Chapter 4. Under the Fallen Wings




그들은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소녀와 용을 보고 경계심을 잔뜩 품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의외로 소녀 쪽이었다.

"당신들이 보여요. 잔뜩 경계하고 있네요. 난 당신들을 해치지 않을 거고, 해칠 힘도 없어요."

분명히 안대를 하고 있어 앞이 보이지 않을 터인 소녀가 한 말에 모두가 속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의구심인가요? 저것만 가지고 갈 거에요. 걱정 말라구요. 난 당신들을 해칠 수 없다고 몇번을 말해요? 이렇게 작은 소녀가 두려운 건가요? 그건 아닌걸로 보이는데요."
"어? 어어......가져가든지 말든지."

그 때였다. 마을 부근에서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그 소리에 클라이드를 뺀 전원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되죠? 어서 가라구요. 이런 소리 들으면 걱정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거기 당신은 좀 이상하네요. 걱정이 전혀 안드나 봐요?"
"...일단 가 봐야지."
"빨리 떠나라구요. 기대되는데요?"

그녀에게서 메르헨은 위화감을 느꼈다. 어떻게 본다는 것일까? 그녀는 도대체...?


마을은 어느 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보이지도 않았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전부 서커스 분장이 되어 있는, 고대신룡의 조각상이었다. 광대 분장을 하고 있는 꼴이라니! 저게 과연 숭배 대상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웃기다 못해 추하고 흉물스럽기까지 한 몰골에 클라이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바닥에 흘려놓은 분홍색 페인트는 고대신룡 조각상을 받들어 올린 기둥 아래쪽을 뒤덮고도 남아서 바닥에 커다란 얼룩 여럿과 넓은 페인트 웅덩이를 만들었고 마을 중앙에 있는 분수의 물까지 분홍색으로 바꿔놓았다. 광장의 대리석 바닥, 유일하게 깨끗한 곳에는 선이 몇개 그어져 있었다. 그가 선을 따라가 보았다. 글자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선들에서 조금 멀리 떨어지자, 그제야 글자가 보였다.

'사랑하는 사제씨, 넌 날 절대로 못잡아!'
"뭐 이런 개...크흠. 일단 바닥에 있는 웅덩이부터 어떻게 해!"

성기사들이 페인트 웅덩이와 고대신룡 조각상 근처에 몰려든 사람들을 다시 흩트리느라 동분서주하는 동안, 클라이드가 글자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야...? 난 사랑하는 사제씨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친했던 정신나간 사람은 없는데...? 이게 무슨...잘 생각해 보자.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가...나는 뭔 짓거리를 해댔던가..."

그러나 기억이 날 리 만무했다.

"집어치워. 에이 씨. 마을 상태는 좀 어때?"
"별도의 피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계속 해! 그리고 앞으로 경비 강화하고!"
"알겠습니다!"

그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거대한 폭음이 또 들려왔다. 상류층의 마을이 있는 곳이었다.

"뭐야?! 너희는 그거 다 없애는대로 따라와!"
"예!"

그가 급하게 달렸다. 가는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폭음의 근원지를 찾는 것은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곳이 검은 로브의 로브 색이었던 짙은 보랏빛 페인트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그 집들 중 하나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젠장. 밖에 뒀던 샘플이 페인트 범벅이 됐잖아! 어떤 자식이 이따위 장난질을 쳐!"
"디프라이브 교수님?"
"아, 클라이드 사제님이시군요...어라...설마 마을 전체가 이모양 이꼴일 줄이야."

디프라이브 박사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하늘 위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 지점에는 체셔캣 얼굴 모양의 연기가 구름처럼 남아있었다. 옆에 있는 하트는 덤이었고.

"기분 나빠..."

클라이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가온 성기사들은 눈 앞의 광경을 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저것들이 전부 자기들 일이 될 테니까...

"왜 그렇게 표정들이 굳었어? 자, 청소 시작하자고! 상황도 종료니까, 협력해서 하면 돼!"

클라이드는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사살만 하고 앉아있었다.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필사적이 되어 있는 그들이 꽤나 힘겨워 보인다. 그 모습에 감명받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몇몇이 걸레나 물 양동이를 들고 와 청소를 거들었다. 그렇게 청소를 대부분 마치고, 고대신룡 조각상을 닦을 차례가 왔을 때,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타앙-'
"뭐...뭐야? 무슨 난리야?"

그들 중 몇이 다급하게 뛰어 총성이 난 곳으로 향했지만 이미 그 곳에 있는 사람은 죽은 뒤였다. 그가 시신을 발견하자 마자 곳곳에서 총성이 울렸고 비명소리도 함께 울렸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유일하게 냉정했던 클라이드가 가장 마지막으로 총성이 여러 발 울린 광장으로 향했다. 시체들 앞에서 닦다 만 광대분장을 하고는 당당히 우뚝 서 있는 고대신룡 조각상의 머리 위에, 한 남자가 있었다. 머리 장식 부분을 즈려밟은 그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게 너희들의 신이다! 내가 제 머리통을 밟고 서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내가 잔뜩 더럽혀놔도 아무 벌도 못내리는 게 너희들의 신이란 말이다!"
"당장 내려오지 못해!"
"저 망할 놈이!"
"하, 볼에 이거 안보여, 이거?"

그의 볼에 새겨진 것은 선명한 H자의 낙인이었다.

"무슨...이단자가 어떻게!"
"그러고보니까, 얼마 전에 이단인게 밝혀진 그 남자잖아! 장난감 가게의 그...!"
"꺼져라, 이단자!"
"하, 웃겨서 뒤로 넘어가시겠네. 내가 가라고 하면 가려고 여기까지 행차하신줄 알았냐?"

그가 뭔가를 사람들 무리 가운데에 툭 던졌다. 곧이어 엄청난 폭음이 나며, 사람들 모두가 붉은 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이...이거 비싼 옷인데...!"
"하하하하- 잘 어울려! 아무 악의도 없는 선한 사람을 잡아다가 죽이는 너희한테 딱 어울리는 색이야! 그래. 한가지 색을 더 넣어줄까? 금색은 어때? 사치라는 사치는 있는대로 부리는 너희한테 딱일거 같은데 말이지...!"
"사제님! 저...저 이단놈을...!"
"사제님?"

고대신룡 조각상 머리 위의 사내가 클라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총구를 그에게 겨누었다.

"그-대의 심-장에-"
"무슨..."
"빵-"

그가 '빵'하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총알이 발사되었고 그것이 무방비 상태로 있던 클라이드의 가슴팍에 가서 박혔다. 클라이드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쓰러졌고 그가 안타깝다는 듯 바닥에 쓰러진 그를 바라보았다.

"으으음- 안타깝기도 해라. 마지막 총알이었는데. 살짝 빗나가버렸네?"
"......"

사람을 한번에 쓰러뜨리는 위력에 사람들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가는 분노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봤고, 그가 '누구, 쟤하고 같이 가고 싶은 사람?' 하고 덧붙이며 총구를 겨누자 일제히 클라이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쓰러진 클라이드가 힘겹게 고개를 돌려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는 그가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장난감 가게 '세바의 선물'의 옛 주인이자 가장 최근 이단자가 된 '그'의 얼굴.

"...하. 너였냐."

그의 죄악이 자신에게 되돌아왔음을 알고는 클라이드가 가물가물한 정신에 살짝 실소했다. 이단자가 된 사내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어느 새 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휘날리는 검은 머플러 자락이 날개처럼 생겨 타락한 천사의 그것을 떠오르게 했다. 그 뒤 그는 정신을 잃었다.


"사제님! 사제님!"

메르헨이 쓰러진 그를 몇번 흔들어 보았으나 그에게서 대답이 들려올리 없었다. 옷에 피가 흥건한 것을 본 그가 다급히 병원이나 도와줄 누군가를 찾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뒤따라온 디프라이브 교수와 셀린이 그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디프라이브 교수가 그를 업고는, 근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신의 대학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메르헨과 셀린이 그를 쫒아 같은 방향으로 향한다.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가 대학병동으로 그를 데리고 가서 응급실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 나서 지시를 시작했다.

"거기 너는 간단한 수술 도구들 챙겨오고! 간호사는 HSR° 대기시켜! '클라이드 아자토스' 차트 찾아서서 혈액형에 맞는 수혈팩 가져오고! 빨리 움직여야 해!"
(HSR° : Healing Spell Revelator. 치료 마법 발현장치. 켜면 인공지능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치료 마법을 사용하여 환자를 치료한다. '온전히' 디프라이브 박사의 작품...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 주석)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동안 그가 클라이드를 진찰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차트에 그가 알 수 없는 내용들을 마구 적어나간다.

"심장을 맞진 않았으니 다행이군. 하지만 출혈이 꽤 심한데."
"사제님, 괜찮아질까요...?"
"안되면 되게 만들어야지."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셀린이 클라이드의 앞에서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가 말한 모든 것이 준비되자 디프라이브 교수는 그들을 내보내고 의사를 데려왔다. 장치가 가동되는 소리가 바깥에 울렸고 그들은 앞에 앉아 그저 잘 되기만을 빌 뿐이었다.

"잘 되어야 할텐데..."
"..."

레넬이 창문 너머에서 그를 보고 안으로 들어오려다 입구가 너무 작은 것을 보고는 도로 창문가로 되돌아왔다. 그런 레넬을 보고 셀린이 창문을 열어주자 고개가 쏙 들어왔다. 다가와 용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부드러웠다. 그 또한 아까 전 부터 경직되어 있던 표정이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진 듯 보였다. 응급실 문이 열렸고, 디프라이브 교수가 그들을 불렀다.

"메르헨 군, 셀린 양. 끝났습니다."
"아...사제님은 괜찮은건가요?"
"아주 괜찮을 겁니다. 물론."

그들이 응급실로 들어오자 누운 채 잠들어있는 클라이드가 보였다. 상반신을 붕대로 감은 채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평소 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비록 그는 지금 입은 부상을 핑계로 쉴 수 있다고 좋아라 하겠지만...

"마취가 덜 풀려서, 2시간은 기다려야 할껄. 총알이 박힌 위치 때문에 대수술이 됐어."
"아...그래요?"
"그나마 박힌 게 은탄이라 부상이 좀 얕았던게 다행이지 뭐야. 그러고보니 저번엔..."

간호사의 수다를 뒤로 한 메르헨이 클라이드를 바라보았다. 죽은 듯 가만히 있는 그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어루만졌지만 그는 반응이 없었다. 얼굴을 톡톡 건드려도 마찬가지였다. 1시간 하고도 반 쯤 지났을까. 클라이드가 반쯤 감긴 눈으로 일어섰다. 그러고는 메르헨의 머리를 콕 쥐어박았다.

"아야. 왜 그래요!"
"반가워서. 왜."

그의 회색 눈동자가 메르헨을 응시했다.

"상태는 좀 어때?"
"그건 제가 해야 될 질문 같은데...전 멀쩡해요. 셀린도 그렇고. 교수님도."
"...다행이네."

그가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처럼 진지한 모습은 아마 보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 이단이 이런 짓을 한단 말이야...?"
"이 일을 저지른 사람도 이단이었나요?"
"응. 낙인까지 선명했어. 그것도 가장 최근 이단자가 된, 장난감 가게 주인."
"그러면 저희가 막아야 하는 거잖아요!"
"..."

평소같으면 '나는 내 살기 편하기만 하면 된답니다-' 라며 무책임한 말을 했을 클라이드도 오늘만큼은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듯 미간을 짚었다. 물론 그것이 진지한 생각인지, 아니면 제 죄악을 거듭 생각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사제님. 지금 신성왕국을 이끄는 건 사실상 사제님 혼자에요. 사람들이 모두 사제님한테 의존하고 있어요. 도움이 필요한 거라구요!"
"..."
"우리가 나서서, 이단을 뿌리뽑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더 이상의 혼란도...!"
"알아. 이 멍청아. 그런데, 어떻게 할껀데?"

정곡을 찌르는 그의 말에 침묵만이 대답해주었다. 메르헨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표정은 여느 때와 같은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듯 한 표정이 아니었다.

"한방 잘못 맞으면 죽는 무기를 들고 있는 것들이야. 빛이라곤 통하지도 않는 것들을 아주 당연한 듯이 거느리는 놈들이고. 그런데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한대 치려고 다가가면 우리가 먼저 죽을껄? 우린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이 띨띨아.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뭐냔 말이야! 한번 대 봐!"

그가 격양된 듯 소리쳤다. 그러다가는 상처를 부여잡았다. 고통이 엄습한 모양인지 호흡이 격해지는 그를 간호사가 걱정어린 눈길과 목소리로 그의 안위를 챙겨주었다.

"아직 감정이 격해지면 안되세요. 치료에 전념하셔야죠. 클라이드 님. 치료마법 발현장치가 있다고는 해도 무리하시면 안된단 말이에요. 그래야..."
"그래야 네 돈이랑 생명을 내가 지켜줄 거다, 이거구만?"

그가 애꿎은 간호사를 향해 냉소를 보였다. 간호사가 당황한 듯 어물거렸다.

"그...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뭐 동화책에서 나오다시피 아주 착해빠지고 순수하다고 나불거리는 생각으로 그 따위 소리를 했다? X소리 집어치우라고 해. 난 바보가 아니고, 정의의 용사 따위는 더더욱 아니라고. 그냥 저리 가버려."
"어떻게 그런...! 너무해요!"

간호사가 기어이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뛰쳐나가버렸다. 간호사를 잡기 위해 뛰어나간 셀린과 메르헨까지 모두 나가고 자기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자 그가 자신에게 각인이라도 시키듯, 외로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난...영웅같은게 못 돼. 적어도 이 곳에서는."


간호사를 다급히 잡은 둘이 그녀를 바깥의 의자에 잠시 앉혔다. 그녀의 얼굴을 눈물이 거의 뒤덮다시피 했다. 한참을 앉아서 울던 그녀가 아직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어떻게 그렇게 무섭고 날카로운 말들을 표정변화 하나 없이 꺼낼 수가 있어요? 그렇게 못된 사람인줄 알았으면 그냥 죽게 내버려두는 건데!"
"지...진정해요. 그냥 화가 나서 그래요. 화가 나면 조금 날카로워지는 타입이라. 자기도 의도하고 그런 건 아니었을 거에요."
"그래도...저는 순수한 의도로 말한건데...걱정이 많이 돼서..."

셀린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그녀에게 넘겨주자 그녀가 눈물을 닦아냈다. 그녀가 휴지를 찾자 셀린이 주머니 속에 있던 휴지를 주었고 코를 풀어낸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그렇게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왜 저한테..."
"기운 내요. 아마 미안하다고 말하겠죠. 원래는 저런 사람이 아니니까요. 얼마나 착하고, 자비로운데요."

그가 절반의 진실만을 이야기해 그녀를 위로했다. 사실 그가 자비롭고 착한 것은 맞았다. 대외용 이미지는 그랬으니까. 방금 그녀는 그가 쓴 탈 안의 모습을 잠시 마주한 것일 뿐이었다.

"그렇겠죠...? 제가 생각하는 그 사제님의 모습이 맞는 거겠죠?"
"물론이죠."

그가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굉장히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모두 진정할 수 있었다.

'이게 클라이드라는 사람이 그 때 느꼈던 기분인가...괜히 미안해지긴 하는데...이거 짜증나네...?'

...그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옆에서 질투를 활활 태우고 있는 셀린만 빼고. 크노첸이 주인의 표정이 좀 이상한 걸 눈치채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뀽?"


디프라이브 교수가 빈민가를 찾았다. 정장을 차려입은 그의 모습이 빈민가와는 대조적이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존경 내지는 선망이라고 믿었다. 어린 아이들 몇이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그의 앞에 넘어져 그의 다리를 걸리게 하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간신히 넘어지진 않았지만 옷이 조금 더러워졌다.

"어? 카딘! 괜찮아?"
"으응. 아!"

그 남자아이가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음을 눈치채고 연신 고개를 숙인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니, 괜찮다."

그 한마디에 아이가 해맑게 웃었다. 그가 그 아이를 잠시 불러세워 자기 옛 동료의 집이 어디인지 질문했다. 그러자 아이는 눈을 똘망거리며 순수한 의도로 그를 바라보며 반문했다.

"에? 그 아찌를 왜요? 아저찌 글자 읽을 줄 몰라요?"
"...뭐?"
"그 아찌, 글자 읽어주는 아찌에요. 옛날 얘기도 읽어주고, 편지랑 세금고지서도 읽어줘요."
"그렇구나. 난 그 아저씨 친구인데, 잠깐 만나러 왔어. 그리로 안내해 줄 수 있겠니?"
"이상하네..."
"응? 뭐가 말이니?"
"그 아찌 친구 없어요-"

친구가 없다? 그가 의구심에 질문을 이어나갔다.

"무슨 소리니, 꼬마야?"
"그 아찌, 매일매일 집 안에만 있어요. 매일 아델 형아가 집안일 다 하구 밥도 구해오는걸."
"그렇니...?"
"응! 아저씨 글자 못읽는거 감추려고 지금 뻥치는거죠?"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화가 느껴지는 그였지만 꾹꾹 눌러담으며 최대한 친절한 척 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에구...들켰네? 사실 아저씨 글 못읽거든. 아하하하..."
"그건 부끄러운게 아녜요. 우리 동네 사람들, 그 아찌랑 아델 형아 빼놓고는 거의 다 글 못읽는걸. 괜찮아요! 맞아. 아찌가 나한테 글자 가르쳐 주신다구 했는데. 안녕히 계세요!"
"저...얘야! 나는 어쩌고..."
"아! 그럼 같이 가요! 손 꼭 잡구요. 우리 동네는 복잡해서 길 잘 잃어버려요."

그 아이의 안내에 따라 그가 옛 동료의 집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안쓰러울 정도로 마른 옛 동료가 책상에 앉아 그를 맞이했다.

"아- 자네! 오랜만일세! 몇년만이더라... 그래! 한 3년만이지? 그래. 이리 와서 앉게. 자네랑 할 이야기가 참 많아. 연구 건도 있고 말이야.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디프라이브 교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그가 눈치챘을 때, 그는 그의 앞에 자료를 들고 온 뒤였다.
...3년 전의 그것이었다.

"...엔타르? 제정신인거야?"
"응?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내가 제정신이냐니. 난 아직 멀쩡하다고. 아델이 주는 밥 먹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네. 연구가 끝나면 아델하고 같이 시간을 보낼 거라네. 공원에도 갈걸세. 비둘기가 참 많은 곳이지. 옷도 좀 사고, 셀린 장난감도."
"...미X."
"어? 뭐라고...? 아무튼, 셀린 옷도 몇벌 골라서 사와야지. 그러고보니 셀린이 요즘 통 돌아오질 않아. 어딜 그렇게 나가서 돌아다니는 걸까...아빠가 고 예쁜 얼굴 보고싶어 하는줄 뻔히 알텐데. 그 아인 자기 엄마를 닮아서 예쁘기는 정말 예쁘단 말이야. 눈썹만 나를 안닮았어도..."
"젠장... 단단히 미쳤군, 엔타르 이메레스."
"내가 미쳤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러고보면 아들이 예전에 그랬었지. 연구에 미쳐있지만 말고 나가서 놀자고...하지만 이게 급한걸 어쩌겠나."
"한가지만 묻겠어. 엔타르."

그가 꺼내든 것은 클라이드의 몸에 박혀있던 총탄이었다.

"이거, 자네가 만들었나?"
"응...? 난 이런 총탄은 처음 보는데. 그런데 이거 말일세. 어떤 개인 화기에 커스터마이징 된 종류 아닌가? 그정도는 짐작할 수 있네만."
"맞아. 그래서 너한테 묻는 거고."
"난 이런 분야엔 전문이 아닌거 알지 않나. 난 인공지능을 연구하지 총탄을 연구하진 않는다네. 잊은겐가, 라다크?"
"아니,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지."
"그럼, 난 이만 다시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네. 대화는 이 쯤 해두는게 좋지 않겠나? 곧 학계에 발표해야 하니까. 그러면 대학에서도..."

디프라이브 교수가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젠장...엔타르! 언제부터 그런 요상한 환상에 사로잡힌 거야! 눈 떠! 똑바로 직시하라고! 니가 어떤 모습인지! 물론 나야 니가 제정신으로 못돌아오면 더 좋지만...!"
"환상...? 무슨 말을 하는 겐가? 내가 분명히 연구한다고 하지 않았나?"
"무슨 연구를 말하는 건데 아까부터 목을 메고 있는거야! 똑바로 대답해!"
"뭐긴...기계에 탑재해 사람의 상태를 파악하고 진단하며 대화까지 가능한 인공지능이지. 내가 자네한테 거의 다 개발되어간다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디프라이브 교수의 얼굴이 차게 식어갔다.

"그...그래. 그랬...지. 그럼 난..."
"어디서 여기까지 기어들어오고 지X발광이야?"

그의 등 뒤에, 엔타르를 닮은 한 남자가 서있었다. 바짝 마른 것 까지 판박이로 닮은 그를 보고 엔타르가 미소지었다.

"아, 아델레온! 왔구나- 아빠 옛날 친구야- 인사하렴. 라다크 디프라이브 교수야. 항상 말했지? 같이 연구하는..."
"...네! 알죠. 안녕하세요, 라다크 아저씨?"
"그...그래."
"그럼 아들, 라다크 좀 도시로 안내해주겠니? 이 친구가 사실 어마어마한 길치라서 말이야."
"네- 아빠. 다녀올께요! 아저씨! 이쪽으로 오세요."

아델이 잠시 얼굴 표정을 풀고는 라다크의 손을 잡고 그를 한적한 곳으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며 그에게 칼을 들이댔다.

"이...이 무슨...!"
"닥쳐. 이 도둑놈. 여기가 어디라고 뱀마냥 기어들어와? 죽고싶어서 환장했어?"
"그런 소리 그만 둬. 그건 분명...!"
"분명 뭐? 우리 아빠 잘못이라고? 칼맛이 좀 보고싶은가 봐? 우리 교수님."

디프라이브가 아델의 심기를 크게 자극하는 말을 던지자 그 말에 아델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그렇게 생각해?"
"당연히...! 원래 당하는 놈이 바보인거 모르나?"
"넌 그냥 죽어라. 그게 훨씬 편하겠다."

날카로운 단검이 그를 향해 쇄도하자 그가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흘려냈다. 근처를 둘러보던 그가 손에 잡은 것은 쇠막대기였다. 쇠막대기로 자신을 향하던 칼날을 막아낸 그가 막대기를 휘둘러 그의 팔을 노렸다. 팔에 막대가 스쳤고 그에 분노한 아델이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디프라이브 교수가 때맞춰 그의 얼굴을 향해 휘두른 쇠막대기에 턱을 맞고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가 고통에 신음하는 동안 그가 골목 사이를 달렸다. 길거리에 장애물마냥 드러누워 있는, 술에 쩔어 퍼져버린 취객 따위는 간단하게 뛰어넘어서 도망친 그가 마을 광장의 고대신룡 조각상을 발견하고 뒤에 가서 숨자 아델이 한참 뒤에 나타났고 그를 찾지 못하자 격분한 듯 일갈했다.

"디프라이브 너 이 X자식...! 언젠가 죽여달라고 빌게 만들어주겠어! 반드시!"

그가 다시 그림자 안으로 녹아들었고 디프라이브 교수의 검은 눈에 담겨있던 공포가 빠져나가며 그가 다리가 풀린 듯 서서히 주저앉았다. 격한 호흡이 그가 심한 긴장상태에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녁 노을이 서쪽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본 그가 일어서서는 먼지와 함께 전의 일이 그에게 만들어낸 감정들을 툭툭 털고 일어나 대학 방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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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이빨이 칼같고 턱이 작두같은 세상이구나. 불쌍한 사람을 지상에 하나 남기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세상에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다.

   - 잠언 30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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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자주 쓰는 욕은 너 이 스탠윅 피리들리같은 X끼야 입니다. 여기서 아시겠지만, 전 빅토르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빅토르가 최애인 사람입니다. 영광스러운 진화에 동참하라!

(참고로 소뽐 한마당은 검은 혁명이나 사도외경, 둘 중 어느 것으로도 참가하지 않습니다. 유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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