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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맛보기 글투척

38 [Lefream]
  • 조회수760
  • 작성일2019.04.24
평화로운 작은 숲. 여느 때와 같이 나뭇잎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만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숲은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 고요했다. 시끄러운 바깥의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인 듯 숲은 아름다웠다. "아름답다" 라는 수식어 이외에 숲을 표현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은 작은 동네의 작은 숲이었지만 마을 사람들과는 꽤나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숲의 나무들에 그네를 묶고는 들리던 아이들의 웃음. 축제의 시끌벅적함과 맛있는 향기, 사냥꾼들과 사냥감들의 치열한 경쟁을 숲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숲의 나무에는 매어 두었던 낡은 그네의 흔적이 보였고, 숲에는 한가운데의 작은 공터로 이어진 샛길이 나 있었다.

물론 지금은 '도둑이 도망쳐 살고 있다', '실종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뜬소문으로 적막한 숲에 오는 발길은 많이 끊겼지만 이곳에는 하루도 끊임 없이 찾아오는 작은 손님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수풀을 들추고 누군가가 텅 빈 공터로 고개를 내밀었다. 

뜨거운 여름의 햇빛이 우거진 나무의 사이로 공터를 신비롭게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넓은 지형은 아니었지만 그 분위기는 보기보다 많은 것을 품고 있었다.

혹시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는 후다닥 달려와 털썩 앉은 소년의 이름은 티리엘 카멜리아. 조금 왜소한 체격에 붉은 루비 색깔의 눈을 가진 작은 소년이었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득 들고 온 책중 하나를 골라 펴 들었다. 독일어가 적힌 낡은 가죽 표지는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달랑거리면서도 책을 안전히 감싸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리도 어색해했던 문학이지만 이제는 양부모가 그만 좀 읽으라고 말릴 정도로 티리엘은 깊이 심취해 있었다.

그는 고전 이야기들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좋아했다. 책을 읽는 순간만은 그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그 즐거움에 중독된 탓에 어설픈 불어 실력을 가지고 그림 동화 원문을 번역해 읽는 일에 도전할 정도로 그는 책을 읽는 일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가 매서운 시선들과 차가운 말들에게서 완전히 떨어질 수 있는 곳은 이곳, 깊은 숲 속이 유일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물론, 잘 해내라는 압박도 있을 리 없었다.

티리엘은 항상 이 숲 속에서 예전의 가족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족에 대한 확실한 기억은 이미 무뎌지고 지워진지 오래였지만 어머니가 뿌리던 향수의 향과 아빠의 품 안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보호와 양육이라는 명목 하에 계모와 계부가 그에게 던지는 싸늘한 말들은 그가 이 세상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티리엘은 항상 어딘가로 도망치기를 원했다. 물론 그게 허무한 공상이란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실종되었다 잡히면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갈 것이 뻔했고, 티리엘은 고아원이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조금 갑갑하더라도 이렇게 사는게 그 더럽고 거친 녀석들의 사이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았다.

그가 책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 번 무언가에 집중하면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는 그답게 다시금 차분한 적막이 시작되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에, 거슬리는 바스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에도 티리엘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로 책 속의 내용에 깊이 빠져 있었다.

무엇인가가 수풀을 헤치고 나와 티리엘의 뒤에서 그르렁거릴 때 쯤에야 티리엘은 무언가가 자신의 즐거운 독서를 방해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짜증이 담긴 얼굴로 홱 뒤돌아봤을 때, 티리엘과 눈을 맞추고 있었던 건 검은색의 표범이었다.

그가 이 어이없는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약 3초가량이 흘렀다.

어찌 보면 길고, 어쩌면 짧은 3초라는 시간 후에, 티리엘이 보인 반응은 도주였다. 너무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티리엘은 뒤를 돌아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마을까지만 가면 사람들이 분명 도움을 줄 거다. 그리 생각하며 발을 뗐지만 안타깝게도 신은 그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반대쪽의 수풀에서 같은 검은색의 표범이 티리엘에게 뛰어들었다. 급하게 제동을 걸어 덮쳐지지는 않았지만, 앞뒤로 야수에게 둘러싸인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니, 최악이라고 말하기는 아직 일렀다. 티리엘의 양 옆에서 표범 세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이런 망할…."

나지막히 읊조린 티리엘이 주변을 재빨리 살폈다. 상식 밖을 벗어나는 당황스런 일이 닥치자 오히려 현실감이 사라지며 머릿속은 차분해졌다.

'찾자, 찾아야 해….살아나갈 방법을 뭐라도…."

하지만 텅 빈 공터 속에서 소년이 둘러쌓인 맹수에게서 도망칠 방법 같은건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티리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에도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지만 당황한 탓에 생각은 이리저리 튀어나가고 있었다.

"도, 도와주세요! 제발 누군가! 여기 표범이!"

당황스러워 문장을 제대로 완성하지도 못하고 외쳤지만 이곳은 가끔 오는 초보 등산객 말고는 찾는 이가 없는 산이다. 그마저도 이런 깊고 비밀스런 곳까지 도달하지는 못한다.

뜻밖의 일이었다. 아무 것도 평소답지 않았다. 그가 항상 모험을 바라고 있긴 했지만 이런 위험하고 황당한 상황은 전혀 그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

표범 하나가 그를 노려보며 다리를 굽혔다. 아마 잠시 후면 높이 도약해 그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리라.

티리엘은 너무 당황스런 상황에 공포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제 곧 죽는다" 라는 상황이 담백하게 뇌리에 들어왔다. 단지 그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티리엘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문득, 이렇게 뜬금없이 죽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죽음은 꽤나 큰 파장이 될 거고, 그의 양부모는 굉장히 당황할 것이다. 그걸로 끝인 거다. 죽음 뒤에 어떠한 세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하나의 모험이라 볼 수 있었다.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모두 뺐다. 생각보다 덤덤히 다가오는 마지막이 우스운지 티리엘은 피식 미소지었다.

"진짜 엉망이네….이렇게 허무히 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눈을 감자, 시간의 흐름은 체감되지도 않고 그동안 자연스레 여겼던 숲이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흔들려 부딫히는 나뭇잎 소리, 몸에 느껴지는 숲의 바람, 숲을 잔뜩 메운 피 냄새...

피 냄새...?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질적인 냄새에 티리엘이 조심스레 눈을 떴다. 조심스레 뜬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 널부러진 표범들과 갈색의 낡은 옷을 입고 있는 주황 머리의 소년이었다. 표범의 시체를 무심히 쳐다보던 소년이 돌연 티리엘을 향해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녕, 네 이름은?"

자기 딴에는 최대한 친근하고 살갑게 이야기한 것이지만 이 정도의 많은 죽음을 처음 경험한 티리엘에게 그 인사가 온전히 전달될 리 없었다. 잔뜩 겁을 먹은 그에게는 저 반가운 웃음이 사신이 건네는 미소처럼 보였다.

"으, 으아악! 너…너 누구야!"

티리엘이 당황하며 몸을 뒤로 뺐다. 잔뜩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티리엘의 시선이 자신 뒤의 표범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눈치챈 소년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 하긴 일반인이니 저런 모습은 처음 보려나. 초면에 실례를 범했네. 이 기억은 지워 줄게."

소년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티리엘의 이마에 손을 댔다. 죽을 듯한 두려움이 티리엘을 덮쳤지만 다리가 풀려 도망칠 수도 없었다. 결국 티리엘은 이상한 소년이 자신의 이마에 손을 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만 있었어야 했다.

티리엘에게 이상한 주문을 중얼거리던 소년이 돌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어어? 이게 왜 안되지?"

소년은 무언가 문제라도 생긴 듯 고개를 갸우뚱대며 다시금 이상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무언가 심각한 문제라도 생긴 듯 소년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본인은 굉장히 진지한 상황이었지만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티리엘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평소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맹수들이 나타나 즐거운 시간을 망쳤고 이제는 그 맹수들을 눈 깜짝할 새에 죽여 버린 소년이 마법사라도 되는 것처럼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이제는 그냥 이불 속으로 돌아가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할 뿐이었다.

티리엘은 용기를 내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당장 꺼져."

물론 패닉 상태에 빠져있는 소년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말을 꺼내자마자 후회했지만 한번 던진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이미 티리엘의 머릿 속에서는 소년이 표범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을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이 시뮬레이션되고 있었다. 소년이 티리엘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문득 소년이 입을 열었다.

"아주…아주 재밌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친구, 오늘 한가해?"

"어? 으...으응."

갑자기 날아온 질문에 문득 대답해 버렸다. 사실 전혀 한가하지도 않았고 한가하다 하더라도 사실대로 말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답해 버렸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당할 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 표범들의 서식지로 데려가 먹이로 던져질 것이다. 티리엘의 머릿 속에서 나쁜 상상들이 가지를 쳐 나갔다. 그렇게 마음껏 뻗어나가던 생각들은 소년이 내민 손에 전부 헤집어져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한가하다니 다행이네. 나랑 어디 좀 같이 갈 수 있을까?"

소년은 생각보다 평범하게 물었다. 자세히 보니 다행히 소년에게 사람을 죽이는 취미는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손을 내밀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절대 사람을 죽일 것처럼 잔혹해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쉽게 경계를 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본 소년의 모습은 뭐랄까, 미워하기 싫은 인상이었다. 그러니까...

그래, '모험'. 소년의 눈은 티리엘이 동경하던 모험과 일탈을 담고 있었다. 그 탓에 티리엘은 소년을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간 새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 들 지도 몰랐다.

"아... 고마운 제안이지만 안타깝게도 못할 것 같네. 방금 중요한 일이 떠올랐거든. 난 서둘러 가봐야해. 그러니까... 아 맞아, 집으로 말이야."

어설프게 둘러대긴 했지만 스스로가 듣기에도 너무나 멍청한 답변이었다. 조금 더 그럴듯한 변명을 댔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소년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영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 내 이름은 브라이언. 혹시 인연이 닿는다면 다음에 만나자고."

자신을 브라이언이라 소개한 소년은 티리엘을 한 번 가볍게 포옹하고는 뒤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감사하기도 했지만 뭔가 꺼림칙한 기분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예상한 시간보다 한참 지난 것은 확실했다. 어쩌면 벌써 피아노 수업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티리엘은 몸을 털고 급히 집으로 향했다.


좀 나아져서 왔다 생각했는데 갈길이 머네요

https://blog.naver.com/seoulmouse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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