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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자(絶緣者)

0 미르온
  • 조회수398
  • 작성일2014.01.27

비가 추적추적 내려온다. 하늘은 온통 회색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 눈 안으로 회색빛이 차올랐다. 아니, 그건 물빛인지도 모른다. 난 지금 비를 맞고 있었으니까. 혹은…그것은 핏빛일 수도 있다. 지금 난, 사람을 죽이는 중이다. 아니, 이미 ‘내가’ 죽인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 내 더럽혀진 핏빛 손을 비가 씻어 내려주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안경을 치켜 올리고는 더럽혀진 손을 펴고 빗물에 손을 맡겼다. 분명 아이들이라면 비가 내리는 것을 신기해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찌푸려진 하늘을 보며 빗방울을 움켜쥐려는 듯 손을 쭉 뻗을 터였다. 티 없이 맑은, 순수한 손으로. 호기심에 가득 찬 작고 하얀 손으로.

 

 

 

 

…공사장 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빗소리로 가득 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았다. 내 귓가에도 빗소리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난 이미 피가 다 빠져 텅 빈 시체를 쳐다보았다. 아무 감정 없이 하려 했으나, 순간 마음 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경멸감이 일렁였다. …안경을 벗어 신경질적으로 닦다가 그제야 빗물에 흘러내려 가는 붉디붉은 피가 보였다. 혈액.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는 물. 영양소와 산소, 호르몬을 이동시키는 중요한 순환계열 물질.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보가 흘러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흉기를 챙겨 공사장을 나섰다. 나가기 전, 다시 흘긋 돌아본 시체에게는, 소리 없는 비명이 얼굴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 시체에는.

.

.

.

.

담배에 불을 붙이며 경찰차가 에워싸는 공사장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힐긋 보았다. 내가 입고 있는 흰색 가운이 무색할 정도로, 차가운 눈 이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많이 봐온 시체에, 별 감흥 없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초보 경찰을 보았다. 빗물과 피로 뒤범벅되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입을 쩍 벌리고 있는 시체의 사진을 보고는 헛구역질이 나는지 경악하며 눈을 치켜뜨고는 입을 가리는 그를 한심하게 훑어보고는 흘러내리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안경 유리 너머로 아까까지 아마 정적에 싸여 있었을 것이라 예상되는 공사장을, 지금은 사이렌의 불빛으로 인해 어지러이 불이 깜빡거리는 공사장을 흘긋 보았다. 침묵 속에서 시체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천천히 사건현장으로 다가갔고, 누군가 제지했지만 내가 목에 걸려 힘없이 덜렁거리던 신분증을 보여 주자, 비켜서는 경찰관에 수고하라는 듯 살짝 웃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시체의 주위는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체를 보자, 의외로 깔끔하게 죽인 표시가 났다. 예를 들어…목의 대동맥 부분에 있는 베인 것 같은 상처 라던지, 심장 쪽에 나 있는 무언가 뚫린 상처…. 그리고 피의 동선을 보아하니 범인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듯 했다. 첫 살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능숙하고 노련한 솜씨. 혹시 연쇄 살인범일까 싶지만 부검의인 나로서는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저 가볍게 넘겨짚듯 초보 경찰-그는 강력반 소속이었다. -에게 일러두고는 옮겨지는 시체를 보고 모처럼의 바깥 나들이였건만 빨리 끝나버린 탓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심연을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 주변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경찰관들을 뒤로하고 잠시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숨을 천천히 내쉬자 흰 숨결이 주변으로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습기 차고 눅눅한, 차가운 공기이지만 폐로 밀려들어오는 공기는 신선했다. …‘그곳’ 의 공기 보다는.

 

 

 

 

내 이름은 지 현우.

 

부검의 이다.

 

 

차창을 통해 빠르게 지나가는 도로 옆 풍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몸을 돌렸다. 내 앞에는 흰 천에 덮여있는 시체가 보였다. 항상 이송차량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그건 죽은 사람이 풍겨내는 기묘한 죽음의 향 때문일 것이다. 썩은 내는 이미 무뎌진 코가 감지하지 못한다. 물론…아직도 부검실의 향기는 익숙하지 않다. 소독약과 함께 나는 피 냄새. 물론 이것 뿐만은 아니다. 메아리. 울려 퍼지는 메아리 소리. 부검실의 금속 재질의 벽에 튕겨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다. 그 소리야 말로 가장 으스스하고 가장 혁신적인 방안임이 틀림없다. 그 영혼 없이 울부짖어지는 메아리는, 범인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어느새 경찰청으로 돌아와 있었다. 시체는 옮겨졌고, 나는 곧 해야 할 일에 맞닥뜨리자 사실…다시 밖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겠지. 결국 천천히 부검실로 들어갔다. 싸늘한 금속의 촉감과 철의 내음이 먼저 나를 반겼고, 그 다음으로 죽음의 향기가 나를 뒤엎었다. …고개를 젓고는 혼자 들어와 문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 평소처럼 녹음키를 켜고 건조한 말투로 녹음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부검을 시작 하겠습니다-.’ 먼저 환자의 사진을 찍었다. 옷을 입고 있는 본연의 모습과, 벗은 후 환부가 드러나 보이는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환자의 어깨와 팔 부분의 옷 조각을 조심스럽게 잘라낸 뒤 증거 보존 용기에 담은 후 바로 지문 반응 시험을 준비했다.

 

다음 피해자의 지문과 족문을 채취한 후 벌거벗은 사체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너무나도 많이 한 일이라 나도 모르게 시체가 앞에 있으면 여러 사인을 살핀 후 환부를 살피곤 했다. …이런 것은 직업병으로 가지고 싶지 않지만…어쩔 수가 없다며 스스로를 위안하고는 낮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천천히 살폈다. 너무나도, 깔끔했다. 저항 한번 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환부 부분에만 칼자국이 나 있고 다른 부분은 손 댈 것 없이 깔끔하고, 깨끗했다. …사채업자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그들이라면 장기는 다 빼 갔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로 접어 넣었다. 어차피 부검 허락은 받은 상태. 하지만 해부는 하지 않았다. …X 레이 상으로도 몸 안은 깔끔했고 반항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벼운 손짓으로 조직검사를 하는데 사용할 조직을 떼어냈고, 피가 조금밖에 남지 않고 다 빠져 쪼글쪼글해져 버린 시체에 겨우겨우 피를 조금 채취하여 가만히 세워두었다. 혈청이 생길 때 까지. 그리고 적막한 부검실이 우웅-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나는 머릿속이 울리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모자.’

 

\'날 죽였어.\'

 

‘상대는 사람의 몸에 대해 잘 알아.’

 

‘의사일까, 의사일까.’

 

‘날 잘 알아.’

 

“…면식범?”

 

‘가족은 무사할까?’

 

‘세계적인 뇌 연구자의 죽음.’

 

…그 이후로 메아리는 ‘날 죽였어.’ 라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부검실이 온통 메아리로 가득 찼다. 머리가 울리는 듯 지끈거렸다. 욱신거리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꾹꾹 누르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시체를 향해 화풀이하듯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다시 조용해지고, 적막해지고, 고요해지는 탓에 나 또한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것은 완벽한 어둠이었다. 혹은 심연이었다. 저 목소리들은 환청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고 또 그들이 한 말이 실마리가 되어 해결된 사건들이 여러 개나 있었기에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저 듣고, 간단하게 특징을 추린 뒤 부검해서 얻은 결과처럼 포장하여 ‘위쪽’ 으로 올려 주면 알아서들 물고 뜯으며 신상을 파헤쳤다. …덕분에 공적에 대한 대가를 좀 얻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른 후 분리된 혈청을 채취해 미리 플레이트 위에 얹어둔 A형 적혈구와 B형 적혈구의 위에 떨어트렸다. 곧 B형 적혈구에 응집이 생겼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anti-Rh 항체 또한 떨어트렸다. …보기 드문 Rh -형이었다. A형 Rh -형이라니…참, 보기 힘든 혈액형을 가진 피해자에게 가볍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 후 신상 파악을 위한 DNA 채취를 하고는 대충 몇 가지, ‘메아리’ 에게서 들은 정보들을 적고는 그제야 부검실 에서 나와 부검 결과가 적힌 종이 묶음-파일-을 들고 부검실의 문을 닫았다. 그 순간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벽히 갈려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 예를 들어…이승과 저승의 경계라던가…. 그런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저승이란 건 없다. 죽으면 어차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쓴 웃음 이였다.

 

그리고 나는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간 뒤 경찰청의 어두컴컴하고 긴 복도를 걸어갔다. 사람의 몸속을 하도 많이 보아 그 안에 들어 찬 심연에 익숙해져 있던 나였다. 하지만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 나서야 흐릿한 등이 켜져 있는 복도가 조금은 보였다. 천천히 복도를 지나가다가 문득 밖이 시끄러워 창을 통해 밖을 보았다. …경찰차들의 어지러운 불빛이 내 눈을 흐렸다. 부검실이 지하에 있다 보니 항상 부검실에서 나와 계단을 올라오면 혼자 이 복도를 걸을 때가 많았다.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부검실에 있다 보면 그 작업이 재미있어서 시간이 빨리 간다-기 보다는 작업이 너무 어려워 그 작업에 집중하다 보니 시감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밤은 친숙했다.

 

 

 

 

다행히 강력반은 1층에 위치해 있었고, 역시나 오늘 일어난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질 당직이 한 분 계셨다. 피곤해 보이시는 분께 다가가 죄송스런 마음으로 웃으며 자료를 드리고는 그분이 머리를 쥐어뜯으시는 것을 보고 재빨리 나왔다. 그제야 자신이 할 일이 끝났다는 생각에, ‘집’ 에 돌아간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후다닥 가운과 명찰을 집어던져 서랍 소에 구겨놓고는 가뿐한 발걸음으로 걸으며 밖으로 향했다. 시간은 22시 34분. 즉, 오후 10시 34분 이었다. 오늘도 구박을 한껏 먹을 것을 생각하니 앞이 깜깜해 졌지만 어쩔 수없이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후 차에 시동을 걸자, 송신음이 끊기며 여보세요-. 하는, 약하게 노기가 띈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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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악인은 없다. 의 외전 격의 소설이라 보시면 됩니다.

아...여기도 악인은 없다. 를 올려야 겠네요ㅋㅋ

저 그림을 그려주신 분은 제 지인 분이시며, 허락을 받고 쓰는 것입니다.

음...뒷이야기가 있을 지는 모르겠네요ㅋㅋ

 

p.s-결국 Under the crescent moon은 못 쓰게 되었습니다...ㅠ 그래서 시나브로 님의 계절 합작이라도 열심히 쓰려고요!

설을 틈타 열심히 쓰겠습니다ㅋㅋ 시나브로 님, 설 휴무에 다 적어서 보내드릴 테니 기대하세요★<ㅊ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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