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빌×블본 남들 할때는 나도 눈치껏 하자(완)+ Q&A
글쟁이°
오직 나만이 보지 못하는 진실이 있다. 베일에 꽁꽁 싸매인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심오한 진실 같은 거창한 게 아니다. 단순히 눈을 가리는 기묘한 망집을 조금만 걷어낸다면 누구나, 혹은 당신조차 당연하다는 듯 볼 수 있는 흐름이 있다. 허나 그 기묘한 망집이, 그슬린 집념이 손과 발을 묶고, 이성을 현혹한다. 차라리 눈을 감는다면 그 무의미한 반복에서 탈선할 수 있으리라. 어쩌면 무한을 상징하듯 나선으로 비틀린 고리를 부숴버릴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곧 새로운 고리에 얽혀버리겠지. 해방이라는 쾌감을 맛보기도 전에 조여오는 고리는 분명 전보다 더욱 억세고 질길 것이다.
혹 진실을 기역하지 못하는 이가 운명을 벗어던진다 하거든 불의 의지를 갖추시오. 그대의 앞을 막아서는 모든 이물을 태우고 뒤들 돌아보지 않을 의지를 품으소서. 그는 귓가를 맴도는 어두운 영혼들의 비명에 자꾸만 떠오르는 연민을 날카로운 비도로 도려냈다. 토막 내고, 짓이겨 버린다. 심지어 그 마음마저도.
그렇게 다다른 끝이 불도, 어둠도 밤의 황혼에 묶여 존재치 않는 이곳인지 묻는다면. 글쎄. 그리고 다시금 글쎄.
분명 그의 길은 이미 한참 전에 끊겨버렸을 것이다. 수호자 잃은 불구덩이에 몸을 집어 던진 시점에서 그를 로드란에 묶어둔 사명은 불사성과 함께 재가 되어 사라졌다. 아니, 필히 그랬어야 할 테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곳에 서 있지. 꺼져 갈듯 위태로운, 그런데도 꺼지지 않은 불을 어둔 구멍에 채우고서 아직 두 다리로 이 땅을 딛고 서 있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만일 무언가의 증표와 같이, 혹은 흉터처럼. 굳어버린 심장을 대신해서 고동하는 어두운 혼의 고리에 새로운 사명이 얽혔다면. 그래서 불씨조차 남기지 않고 스러진 몸에 다시금 잔불이 피어올랐다 하거든 그저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바다로 향하는 계곡의 물줄기가 그러하듯 운명에 순응하는 거다. 그는 흐름을 거스르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각인되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자신의 영원을 수유로 바꾸어준 은인의 유품인 검 한 자루를 받들어 그의 사명을 이어받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낀 무언가 어긋나는 것 같이 이질적인 감각이 그를 헤집는다. 그렇게 흐트러진 마음 사이로 무언가 범람한다.
속을 가득 메운 백탁의 기운이 넘치고, 흘러.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건 흐물거리는 검은 원기였다. 물에 젖은 작은 동물처럼 한껏 움츠린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이내 그 작은 떨림이 소리로 변해 귀를 채운다.
불사여, 그윈의 뒤를 이은 선택받은 불사여. 이번에도 네 것이 아닌 사명을 품고 운명의 파도를 거스르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힘들 테다. 전보다 더욱 고통스럽겠지. 지금의 너는 기원은 물론, 의지마저 갖추지 못했다. 과거 떠올렸던 감정을 이해하려 가닥을 헤집어도 결국 손에 쥐어지는 것은 한 줌 잔재에 불과한 것처럼 마음을 가지고 무언가를 갈구하기에 너는 너무 지쳐버렸다. 애정, 분노, 그리고 공포조차도. 회랑 속의 재가 되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대는 다시 걷고자 하는가. 불길에 눌어붙은 발걸음을 가지고 어디로 향하는가.
그렇게 묻는다. 자신에게. 혹은 이름조차 모르는 타인에게. 그것마저 아니라면 어떤 이를 향한 질문이던가. 무엇을 위한 질문이었나. 어쩌면 그저 던져 보고 싶은 의문이었을지도. 다만 그 중의 누구를 향하던 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다. 그는 무엇도 품지 않으니.
"늑장이라. 그리 보였다면 진심으로 사죄하지요. 코스께 맹세코 당신이나 영락하신 동료분들을 모욕하고, 비난할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쯤은 이쪽도 대충 알고 있지. 물론 무지가 죄가 될 수 없다는 것 역시나. 젊은 친구가 우리의 직업을 모르는게 너무 안타까운 늙은이의 행패라고 생각하게나. 아니면,"
"오랜 전우를 잃어버린. 농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기울일 친우를 잃어버린 사냥꾼의 신세 한탄일지도."
이 나이를 먹고, 그만큼 익숙해저도 아직 내게 죽음은 너무나 무겁더군. 남자에게 겨우 닫을 정도로 나직하게 읊조린 신사는 얕은 미소를 지었다. 진한 자책이 묻어나는 기품있는 웃음은 금세 사라져 버려. 남은 것이라고는 후회와 연민에 먹힌 노인의 주름 뿐이었다. 장담하건대 그의 마음이 약한 건 아닐 테다.
변해버린 동료를 죽이고, 그들의 유지를 받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니까. 그걸 쉬이 할 수 있다면, 더는 인간이 아니게 되리라. 그런 이들을 불의 세계에서는 경외를 담아 왕이라 칭했다. 비록 명예도, 영토도 없는 재투성이 왕좌에 불과하지만. 제 수급이 떨어지고, 동료가 미쳐버린다 한들 끝까지 심연을 감시하던 그들의 이야기를 남자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건 그대에게 성을 낼 이유 따윈 없었지. 미안하네."
"그런가요."
"그런 거지."
"음.... 조금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지는 모르나. 아주 먼 옛날, 제가 연고 없는 감옥의 한쪽으로 끌려왔을 때 누군가 제게 전해 달라 청한 말이 있습니다."
문득 그런 소리가 잇새에서 흘렀다. 불현듯 치켜든 시야는 저무는 황혼에 그슬린 하늘이 흘리는 강렬한 붉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가. 그 이야기를 담을 세계는 저 하늘처럼 붉은 염원에 재가 되었을 게 분명한데. 파편조차 없이 타버렸을 게 분명한데. 전언을 부탁한 이 역시 분명 그런 운명에 먹혀버렸을 터다. 다만, 은빛 플레이트 아머와 펠리컨 헬름의 사이로 흘러든 따뜻한 불의 정수는 진정 잊을 수 없는 감촉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것이 당신은 아니오리만, 지금의 당신에게는 썩 어울릴 말이겠네요. 부디 들어 주시겠습니까?"
"호오, 그대의 이야기라니. 내 실례한 것도 있고 하니. 당연히 들어야지! 다만, 여긴 썩 좋은 자리는 아니니 우선......"
다시 장난기를 되찾은 신사의 말이 툭 끊기자. 남자는 등골을 오르는 따가움을 느꼈다. 단순히 불길의 열기가 남아있다기에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드물게도 전신을 질척하게 파고드는 무형의 기운을 그는 분명 알고 있었다. 수없이 마주해 보았기에. 그리고 다시금 수없이 품어 보았기에. 그걸 인지하자 몸이 절로 비틀렸다.
그와 동시에, 혹은 더욱 빠르게 공기가 찌부러진다. 시야가 어긋나고, 일그러진다. 파열음이 튀고, 붉음이 번진다. 제 진로를 막아선 남자의 팔을 옅게 스치며 목으로 짓처드는 날카로움이, 누군가의 기다란 도낏자루에 막힌다.
"이런, 멀쩡한 사냥꾼을 놔두고, 사제나 괴롭히다니 그럼 쓰나?"
"우하...... 피, 피 냄새가 나. 봐 이렇게나 달콤하게 내게 손짓하고 있어."
물러 터진 동공을 가지고 어눌하게 인간의 말을 뱉는 짐승이 저와 대치하는 신사가 아닌 뼈가 드러난 상처를 입고도 신음 한번 내지르지 않은 남자를 본다. 번들거리는 광기가 숨결로 뿜어져 나온다.
"젊은이 붇잡고 신세 한탄 한 것도 모자라서 상처까지 입히다니. 만일 세릭이 봤다면 한평생 놀림거리가 됐겠군. 마침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는데. 잘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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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가 드디어 끝났네요. 아무도 관심 없는 제 근황좀 써보자면 오랜만에 마비노기 길장 형한테 카톡이 와서 요 몇주동안 마비노기만 하고 살았습니다. 요즘 너무 잉여처럼 사는것 같다ㅠㅠ
그리고 너무 늦은것 같지만 제 첫 Q&A 받습니다. 궁금한거 질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