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적 추천수 100 이벤트 : 컨셉 D ( 광달팽이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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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고주! 저기 중급반에 신입생 들어왔대! "
내가 반에 혼자 남아서 마력 컨트롤 나머지 공부를 할 때 프로스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외쳤다. 오? 오랜만에 신입생이네. 아니, 선배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내가 이렇게 생각할 때 프로스티는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더니 말했다.
" 누.나. "
누나? 아, 이건 못 참지. 난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으로 프로스티에게 물었다.
" 예쁘셔? "
" 존.예. "
존예라니... 오랜만에 눈호강 각이겠군. 난 이렇게 생각하며 창가에 서있는 프로스티의 옆으로 다가가 대련장을 가리키는 손끝을 눈으로 따랐다. 그리고 프로스티의 새하얀 손끝에는, 그저 빛만 있었다. 산들바람에 찰랑거리는 붉은 생머리, 살짝살짝 보이는 예쁜 눈웃음과 날카로운 눈매, 빛을 반사하는 에메랄드 같은 연두색 눈동자, 거기에 머릿결 사이로 존재를 드러내는 구부러진 검붉은 뿔. 잠깐만... 매끈한 다리 사이에서 살랑이는 건... 화살촉처럼 생긴 검붉은 악마 꼬리? 아니 누나 저 진짜 죽어요... 난 이렇게 멍하니 넋을 놓고 반한 듯이 아직 이름도 모르는 저 선배의 아름다운 자태를 바라보다 나를 부르는 프로스티의 목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 야. 야야! 뭘 또 그렇게 반한 것처럼... 잠깐. 반한 것처럼? 너 설마... "
음, 내가 봐도 반한게 맞는 거 같네... 반했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 쓰라고 만들어진 게 아닐지. 마치 아름답다는 말이 저 이름 모를 선배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아, 못 참겠다.
"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야 나 못 참겠다. 나 내려가서 이름이라도 여쭤보고 올게. "
아니 진짜 사람, 아니 사람의 모습을 한 드래곤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지금 보니 있는 것 같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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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예쁜 누나! 전 하급반의 고대주니어라고 해요! 이름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
으응? 뜨거운 오후의 햇살을 받아 황금처럼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 동굴 속의 수정처럼 깊은 초록색 눈동자, 그리고 작은 강아지처럼 귀여운 웃음. 갑자기 어디서 이런 존잘남이... 거기에 같은 학교? 야 쟤는 내가 찜. 오늘 밤에 잘 씻겨서 침대에 대령해 놔라. 내가 아주 아침에 지각하게 해버릴라니ㄲ... 초면에 무슨 소리야! 해맑게 웃는 고주는 지금 내 속이 타들어 간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지... 난 이렇게 생각하고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 안녕! 난 중급반의 데빌이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
" 전 친한 것보다 조금 더 가까웠으면 하는데... "
... 개좋아! 지금 보니까 쟤 입술도 미칠 듯이 예쁜데 나 잠깐만 내보내 줘. 잠깐만! 조용히 해... 아 진짜 잠깐만... 뭐 일어나면 쟤랑 같이 침대에 누워있을 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응? 조용히 하라고! 됐고 잠깐만! 난 두근거리는 가슴과 흥분하는 서큐버스를 진정시키고 발돋움을 해 고주의 금발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키는 또 왜 이렇게 크대... 멋있게 말이야...
" 으응! 앞으로 많이 많이 친해지자! "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마치 깨어나기 싫은 백일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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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빌이 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고주가 빛의 수호자님의 아들이라고 막 꼬리 치는 거 봤어? "
내가 복도 모퉁이를 돌기 전, 구석진 곳에서 얘기하는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 데빌 선배 보려고 왔는데 웬 잡소리가... '꼬리를 친다'라... 어이가 없어서. 하지만 듣기 싫은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 응응, 눈웃음을 실실 흘리는데, 아주 서큐버스가 따로 없다니까? 부모도 없고 아모르님의 의지로 태어난 것도 아닌 게... "
눈웃음을 흘려? 서큐버스가 따로 없어? 부모도 없는 게?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터지기 직전인 난 최대한 화를 누그러트리며 모퉁이 뒤에서 나오며 말했다.
" 거, 앞에서 못할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라 했는데... 왜들 이러실까? 데빌 선배 옆에 서면 미모로나 실력으로나 한참 밀리시는 분들이... "
뭐야, 왜 아무 말도 못 해? 잔뜩 겁을 먹어가지고는... 이렇게 뒤에서 험담이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난 아직 안 끝났는데? 난 이렇게 생각하며 둘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뒷걸음질 치던 이름 모를 선배의 등이 복도 벽에 닿자 난 분노를 담아서 벽을 치고 떨리는 귓가에 속삭였다.
" 그리고 내가 데빌 선배를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거니까, 한 번만 더 이딴 소리 들리면... 진짜 부숴버린다... "
말에 감정이 너무 들어가 버렸는지 내 손에 맞닿은 벽은 쩍 소리를 내며 조금 금이 가버렸다. 아, 너무 겁을 줬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난 뒤로 물러나며 대충 꺼지라는 의미를 담아서 손을 휘적거렸다.
" 으, 응... "
" 진짜 미안해... "
" 하아... 정말... 왜들 저러는지... "
둘이 서둘러 사라지자 난 벽에 기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과 부모가 뭐 그렇게 중요한지... 누군가를 사랑하면 저런 말도 들어야 하는 걸까... 괜히 나 때문에 선배가 고통받는 건 아닐까... 아버지는... 사람은 겉과 뒤보단 속이 중요하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내가 이렇게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 고민할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흠... 뭘 부수려고 했냐? 저 예의 없는 선배들 뚝배기? "
다 들었나...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내 어깨에 팔을 얹는 프로스티의 말을 들은 내겐 갑자기 이 녀석이 정말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 빛의 수호자의 아들이 아닌 내 이름으로 불러준 몇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 그런데 뚝배기라...
" 푸하핫! 뭐, 그건 좀 그러니까 멘탈? "
" 멘탈까진 괜찮지. 잘해봐라. 다른 사람 말 신경 쓰지 말고. "
" 고맙다 짜샤. "
내 등을 두드려주곤 뒤돌아서 가는 프로스티는 내가 이렇게 말하자 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흔들 뿐이었다. 짜식... 역시 넌 너구나... 그래. 다른 사람 말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예쁜 데빌 선배나 봐야지... 난 이렇게 생각을 마치고 중급반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잡생각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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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 "
" 응응~ "
대련장 한쪽에 걸터앉은 내게 고주는 나를 부르며 다가와 옆에 털썩 앉았다. 무슨 일이지? 좀 화끈한 일이면 좋겠... 시끄러워! 내가 서큐버스를 눌러 넣을 때 고주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 선배 혹시 오늘이 백일인 거 알아요? "
" 응? 백일? 무슨 백일이지? "
내가 너의 입술을 탐하고 싶어진 날부터 백... 그게 무슨 소리야! 어? 잠시만. 그럼 설마... 난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고주는 씩 웃으며 날 가리키고 말했다.
" 저희 둘이 만난 지 백일! 아니, 우리 학교에 온 지 백일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려나... "
역시... 그런데 이걸 다 세고 있었구나... 시간 참 빠르구나... 벌써 백일이네... 하아... 이 백일이 1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방법 알려줄게. 다가가서 벽치기 딱! 키스 딱딱!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백 딱딱딱! 아니 누가 고백하기 전에 키스를 먼저 해... 역시 넌 변하질 않는구나... 뭐 왜 뭐! 다들 이렇게 하잖아! 아니야... 내가 이렇게 속으로 서큐버스와 대화를 나눌 때 고주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내게 수줍게 손을 내밀고 말했다.
" 저기... 잠시만...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거든요...! "
" 으응? 뭔데 뭔데? "
난 그 손을 마찬가지로 수줍게 맞잡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고주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단지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울릴 뿐이었다. 근데 손은 또 왜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하대... 놓고 싶지 않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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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요...! "
고주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평범한 아카데미 뒤편이었지만 그곳의 모습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활짝 만개한 붉은 장미꽃과 낮이지만 그림자가 져 어둑한 아카데미 뒤편을 은은한 불빛으로 밝히는 촛불들은 이미 여러 번 봐왔던 이곳을 소설이나 영화에나 나올 법한 로맨틱한 곳으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이런 로맨틱한 분위기 한가운데에 서있는 너, 그런 너의 앞에 수줍게 서있는 나.
" 우와... 이거 다 혼자 한 거야...? 진짜 예쁘다... "
" 네에...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서...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선배... "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고개를 들어서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고주는 이렇게 말하며 장미꽃 한 송이를 집었다. 야 데빌아. 오늘인가 보다. 오늘? 그래, 오늘이 첫날밤이ㄷ... 누가 봐도 고백인데 첫날밤이 왜 나와! 자꾸 그러니까 상상하게 돼서 부끄럽잖아! 난 이렇게 폭주하기 직전인 서큐버스와 마찬가지로 터져버릴 것 같은 내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저 이 말... 선배를 처음 봤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인데... 오늘에서야 하게 되네요... 선배를 바라보면 항상 가슴이 뛰고, 선배와 함께 있으면 항상 웃게 돼요. 제가 선배를 좋아하게 된 지부터 백일이 흐른 오늘이... 선배와 단순한 누나 동생, 선후배 사이가 아닌, 더 깊은 사이가 된다면... 그렇다면 정말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
내게 수줍게 장미를 건네며 많이 긴장했는지 눈을 질끈 감아버린 고주를 보자 난 지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어려워졌다. 됐다! 우리 데빌이가 드디어 연애를 해보는구나! 서큐버스... 이거 꿈 아니지...? 아니니까 빨리 대답이나 해! 어? 어어...
" 나도 오랫동안 참아왔던 말이 있는데... 먼저 용기 내줘서 고마워...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너의 부드러운 손을 보면 자꾸만 잡고 싶어 지고... 너의 듬직한 뒷모습을 보면 자꾸만 껴안고 싶어 져... 나도... 나도 너 진짜 많이 좋아해... "
난 이렇게 말하고 발돋움을 해 발그레한 고주의 볼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쪽 소리가 나자 놀란 고주는 눈을 크게 뜨더니 부끄러워하며 헤헤 웃는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야 쟤 가까이 온다! 아직 안 끝났나 봐! 우아아아 미쳤다 미쳤어! 하이틴 로맨스 최고! 흐앙... 나 못 보겠어... 눈을 감아버린 내 등이 벽에 닿았듯 고주의 분홍색 입술이 내 붉은 입술에 부드럽게 닿았다. 떨리는 나를 꼭 껴안는 고주의 몸이 불처럼 뜨거웠다. 부드럽고... 뜨거워... 입술이 입술을 덮고 혀가 혀와 섞이는 기분... 내가 고주의 촉감을 터질 것 같은 설렘과 미칠 듯이 뛰는 가슴으로 느끼고 있을 때 서큐버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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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아, 난 백일이면 참을 만큼 참았다? 아, 안돼! 쟤 연하야! 나보다도 어리다고! 더 좋지 뭘 그래? 뭐... 깨어나 보면 진도 엄청 나가 있겠네. 그럼 잠시 자고 있어. 오랜만에 나도 좀 즐기고 싶어 졌거든. 안 돼... 막아야 하는데... 정신이 아득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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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아, ㅁ... 미안해요 선배!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하셨... 읍?! "
데빌 선배의 붉은 입술이 너무나도 예뻐 보여서 나도 모르게 입을 맞춰버린 난 입술을 떼고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제야 현실을 깨닫고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하며 사과한 내 양 손목을 꽉 잡아 벽에 밀친 데빌 선배는 다시 그 예쁜 입술을 내게 맞췄고 그 때문에 내 말은 끊겨버렸다. 흐읍... 아... 아까는 부드러웠다면... 이번엔 너무 격렬한데... 열정적으로 내 입술을 탐한 데빌 선배는 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핥았고 난 조금 당황해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 ㅅ... 선배... 생각보다 화끈하시네요... "
하지만 선배는 내 말을 듣고 조금 웃으시더니 내 귓가를 살짝 핥으시곤 대답하셨다. 흐읏... 귀가... 녹는 것 같아...
" 어머... 벌써부터 화끈하다고 하면 안 되지... 밤은 짧고 쾌락은 길단다? "
이거... 데빌 선배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