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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마수 발레포르 : 그리움이란 이름 뒤의 기다림 ]

21 팜파오
  • 조회수393
  • 작성일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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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나라, 발레포르. 긴급 임무다. "

   " 누구를 죽이면 되는 거지. "

어두운 지하 속 실험실이자 나의 집, 마력으로 가득 찬 물탱크 같은 원통형 캡슐에서 날 깊은 심연 속에서 깨운 검은 로브는 내게 명령을 내렸고 난 오랫동안 감겨 있던 두 눈을 번쩍 뜨고 목표를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 죽이는 것이 아닌 구하는 것이다. 의식이 실패해 카데스님의 숙주가 될 자, 유리아가 위험해. 가서 그 아이를 구해와라. 누가 죽든, 그녀만 구해오면 돼. "

   " 죽이는 게 아니라 구하는 것이라... 몸성히 데려오면 되는 거지? "

난 이렇게 묻고 질문의 답을 확인한 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삐걱거릴 것만 같은 몸을 움직여 서둘러 멀리 떨어진 제단으로 향했다. 공기를 찢어가르며 난 헤츨링의 것이라기엔 거대한 날개로 목적지에 최대한 빠르게 도착한 난 싸늘한 눈빛으로 주위를 훑었다. 역시 거대한 의식이 실패해서 그런지, 마찬가지로 거대한 리스크 때문에 제단 주위는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었고, 불쾌하게 넘실거리는 마력은 누구에게나 거부감과 공포를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아마도... 의식이 실패하는 순간 거대한 폭발이 있었겠지. 여기저기 널려있는 시체들이 보였고, 그중 몇몇은 시체가 아닌 아직은 살아있는, 죽어가는 검은 로브들이었다. 목표가 보이질 않자 난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한 검은 로브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성체였다면 아무 지장이 없고 느끼지도 못했겠지만 몸이 작고 아직 헤츨링이던 탓에 난 그의 목소리를 듣고 흘끗 돌아봤다.

   " 크윽... 제발... 살려줘... 제발... "

   " 놔. 카데스의 숙주는 어디에 있지. "

난 그 손을 뿌리치고 짓밟으며 몸을 숙여 기계적으로 물었다. 그 당시에 난, 검은 로브가 만들어내고 살상과 암살, 그리고 학살을 목적으로 만들어낸 기계나 다름없었으니. 감정은 느껴본 적이 없어서 무엇인지 몰랐고, 존재 이유는 검은 로브를 위해서였으니 그까짓 거, 없어도 상관없었다. 검은 로브는 잠시 신음을 내뱉다 공허하기만 한 내 눈을 보고 겁에 질려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난 그 답례로 발을 내리찍어 그의 심장을 꿰뚫어서 편하게 보내줬다. 잘 가라. 다음 생엔 되도록이면 쓸모가 없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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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걷다 보니 제단 한 귀퉁이에 웅크려서 겁에 질려 떨고 있는 한 소녀가 보였다. 아니, 소녀라 하기엔 좀 클지도 모르겠다. 성인의 관문에 근접하고 사춘기를 뒤로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그 여자는 내가 다가가자 놀라서 나를 바라보며 눈물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 저게 유리아겠지.

   " 흐끅... 흐윽... 어? 누... 누구야! "

   " 경계하지 마. 난... "

찾았다. 난 이렇게 말하고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지만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리아는 내게 덜덜 떨리는 두 손을 내밀고 외쳤다.

   " 다, 다가오지 마! 공격할 거야! 흐윽... "

손도 그렇게 떨리면서 누굴 공격한다는 건지. 아마 지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겠지. 난 목표의 말을 무시하고 한걸음 더 다가갔다. 핏! 목표의 덜덜 떨리는 손에서 날아온 보라색 매직 애로우는 상당히 빨랐고 내가 고개를 살짝 돌리지 않았더라면 정확히 노린 내 얼굴을 관통했을 거다. 빠르네. 살짝 생채기가 난 드래곤 스킨에서 한 방울 피가 흘러내렸다.

   " 흐으... 어? 그... 다가오지 말라고 했잖아! 어어... 피 나는데... 괜찮아...? "

   " 말은 끝까지 듣는 게 예의다. 난 발레포르.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여길 빠져나가자. 의식의 리스크가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몰라. "

그러자 얇고 장식되지 않은 간단한 하얀색 수의 같은 옷을 입은 목표는 조금 안심한 듯 숨을 내쉬며 손을 내리고 내게 대답했다. 짙은 보라색 눈동자... 처음 보는 색깔의 눈이네.

   " 들어본 적 있어... 오로지 살(殺), 그러니까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키워진 드래곤이라고... 날 데려오는 게 이번 임무인 거야? "

   " 그래. 그러니 일어나. 빨리 가자고. "

난 이렇게 말하며 수인화를 해 뿔과 날개, 그리고 꼬리만을 남기곤 인간의 형태로 변한 후, 몸을 조금 숙여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모습을 보고 얼굴이 조금 붉어지더니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일어났다. 그런데 얼굴은 왜 붉어진 거지.

   " 몸 상태가 안 좋은 부분이 있으면 말해. 네가 아프면 안 되니까. "

   " 아, 안 아파... "

   " 그런데 얼굴은 왜 그렇게 붉은 거지. 열이 있는 건 아닌가. "

수줍게 대답하는 목표는 이상하게도 고개를 돌린 후 대답했고 난 열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 몸을 숙이며 짙은 갈색 머리카락을 조금 쓸어 넘기고 부드러운 이마에 손을 살짝 얹었다. 얼굴이 가까워지며 순간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붉어졌는지와 마치 어느 날 피로 젖은 몸을 눕힌 들판에 피어있던 꽃을 떠오르게 하는 짙은 보라색 눈동자가 내 눈에 잘 들어왔다.

   " ㅁ... 뭐하는 거야... "

   " 열은 없네. 가자. "

   " 뭐야 너! "

이상하군. 열은 없는데 얼굴은 더 붉어졌어. 난 작은 의문을 남긴 채 목표에게 한발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양팔로 안아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목표는 환호성과 비명 사이의 무언가를 내뱉으며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무슨 일이지.

   " 왜 그러지. 어디가 불편한가. 얼굴은 또 아까보다 더 붉어졌고. "

   " 아니 그게 아니라... 으... 됐어... "

뭐지. 난 이 상태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슬슬 저무는 석양의 붉은빛이 내 눈을 계속 찔렀다. 누굴 안고 날아가는 것은 16년 동안 처음이었기에 난 힘과 속도에 주의하며 가능한 최대한 빠르게 출발지였던 목적지로 향했다. 내가 비행에만 집중할 때 목표는 날 작게 불렀다.

   " 저... 발레포르... "

   " 음? 왜 그러지. "

   " 아... 아까 공격해서 미안... 너무 겁을 먹어서... "

목표는 이렇게 말하곤 내 볼에 맺힌 피 한 방울을 그 가녀린 손가락으로 닦아줬다. 이 정도 상처가 뭐라고. 난 이렇게 짧게 생각하며 이제 슬슬 누군가를 안고 나는 것에 적응되었기 때문에 날개에 힘을 줬다. 파앙하는 소리를 내며 우리는 아까보다 훨씬 빠르게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갑자기 생겨난 풍압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심하게 받은 그 하늘거리는 백색 치마가 내 눈앞을 잠시 가렸고, 목표는 거의 동시에 꺄악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치마를 잡아서 내렸다.

   " 그렇게 격렬하게 움직이지 마. 균형 잡기 어려워지니까. "

   "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너 봤지 이 변태야! "

음? 뭘 봤다는 건지. 그리고 변태는 무슨 뜻이지. 난 이렇게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하자 이제는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씩씩대는 목표에게 되물었다.

   " 변태가 무슨 뜻인지 알려주기 바란다. 그리고 봤다는 건 뭘 봤다는 거지? 방금 치마가 바람에 휘날렸을 때 뭘 봤냐는 건가. "

이상하단 말이지. 이유 없이 얼굴이 붉어지질 않나, 또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물음을 던지질 안나. 내가 이렇게 묻자 목표는 어이없어하며 대답했다.

   " 너 변태가 뭔지 몰라? 음... 그... 막막 다른 사람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음란한 사람한테 변태라고 하잖아! "

   "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음란 하다라... 확실히 내겐 해당되지 않는군. 취소해라. 그리고 두 번째 물음의 답도. "

둘 다 아닌데 뭐라는 건지. 그러자 목표는 얼굴을 가리며 대답했다. 어차피 그래봤자 빨개진 귀가 다 보여서 얼굴이 붉다는 걸 숨길 순 없을 텐데.

   " 그... 그래 미안... 근데... 너 아까... 내 다리 이상한 눈빛으로 봤지! 그치? "

   " 그걸 봤냐는 물음이었나. 다리가 시야에 들어오니 당연히 보였다. 하지ㅁ... 윽! "

   " 이 변태야! 오늘 초면이라고! 결혼이면 몰라도... 이런 변태 변태! "

이상한 눈빛으로 보진 않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말은 끝까지 들으라고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내가 물음에 대답할 때 유리아는 내 입을 막고 내 가슴을 마구 두드리며 외쳤다. 창으로 찔러도 박히지 않는 피부인데 그 정도로 아플 리가... 조금은 있군. 역시 인간의 몸은 약하다니까. 또다시 의문이 한가득 생긴 난 유리아에게 다시 물었다.

   " 왜 나보고 변태라는 거지. 아까 변태는 분명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지칭한다 했다. 하지만 난 둘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 그건 무슨 말인가. 설명해주길 바란다. "

   " 아니이! 하아... 너 진짜! 흥! 몰라! "

이런 걸... 삐졌다고 하던가... 유리아는 이렇게 말하곤 고개를 돌려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거지...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검은 로브단의 본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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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가 눈에 보일 만큼 가까워지자 난 속도를 줄이고 땅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그제야 유리아는 내게서 내려와 입을 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눈을 마주치진 못했다.

   " 그... 혹시 괜찮으면 나중에도... 만날래? "

   " 만난다는 건 무슨 의미지? "

자기가 목표가 되고 내가 그 목표를 구출하러 오는 상황을 계속 원하는 건가. 할 일이 많아지겠군. 난 이렇게 생각하며 유리아에게 물었고 유리아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 아니 그냥... 실험체 관리는 중요한 사항이기도 하고... 시간 될 때 만나서 오늘처럼 같이 얘기도 하고... "

관리라. 그런 것도 나쁘진 않겠네. 근데 만나서 오늘처럼 얘기를 한다라... 뭐, 그러지 뭐. 난 머릿속으로 생각을 마치고 간결하게 내 의견을 표현했다. 그러자 유리아의 안색은 눈에 띄게 밝아졌고 내게 손을 흔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갔네. 그럼 이제 다시 심연으로 빠질 시간인가. 난 이렇게 멍하니 다시 마력 탱크로 향했고 다시 도어를 개방하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손은 멈칫했고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밖으로 내뱉은 난 내가 한 말에 스스로 놀라게 되었다.

   " 보고... 싶다... "

왜 이러지. 이상하네. 몸상태가 이상한 건가. 그건 아니군. 하지만... 심장이 이상하게 뛰네. 평소보다 빨라. 이건 무슨 상황이지. 뭐, 다시 깨어나면 사라지겠지. 난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차가운 마력 탱크 안에 몸을 담갔다. 액체처럼 차갑고 몽글몽글한 그 마력이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감촉이 온몸으로 느껴지자 난 두 눈을 감고 다시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다시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해서 이곳에서 꺼내 주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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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레포르~! "

오늘도 발레포르를 찾아온 난 마력 탱크를 열고 발레포르가 눈을 뜨기 전 마력 탱크 뒤에 숨었다. 놀라겠지? 쉬이익... 마력이 흘러나오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발레포르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숨소리. 발소리. 숨소리. 발소리. 일어난 건가...?

   " 탱크 뒤에서 나와. 좁은 곳에 끼여 들어가기는... "

   " 흐엑! 뭐야 어떻게 알았어! "

뭐지? 뒤돌아 보지도 않았는데?! 어어... 내가 이렇게 생각하며 미적미적 발레포르 앞에 멋쩍게 웃으며 서자 발레포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은신의 기본은 기척을 숨기는 거다. 숨소리가 다 들리는데 그럴 거면 뭐하러 숨어? "

   " 그런 게 들리는 네가 이상한 거거든! 아, 일단 그 얘기는 여기서 그만! 내가 오늘은 뭐 가져왔냐면... 짠! 식물 사전! "

난 서둘러 말을 돌리면서 뒤에 숨겨놨던 사전을 꺼냈다. 그러자 웬만한 벽돌보다 큰 크기에 사전을 본 발레포르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물었다.

   " 하아... 식물이 뭐 어떻다는 거냐... "

아니이! 꽃말 중에 예쁜 말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말을 들은 난 발끈하며 사전을 발레포르에게 내밀곤 말했다.

   " 꽃말 알려주고 싶어서 가져왔다! 체... "

   " 그러던지. 뭐부터 볼까? "

발레포르는 이렇게 말하고 내가 지난번에 검은 로브에게 부탁한 이인용 테이블에 앉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그래도 싫다고는 안 하네... 난 이렇게 생각하며 보일 듯 말 듯 미소지으며 의자에 앉은 후 사전을 펼쳤다. 내가 원하던 페이지를 찾으며 뒤적거릴 때 발레포르의 목소리가 내 옆에서 들려왔다.

   " 찌푸린 미간, 튀어나온 입술, 그리고 굳게 닫힌 입. 지난번에 감정에 대해 가르쳐줬을 때 이런 걸... 삐졌다, 라고 했었나. "

그게 갑자기 무슨... 난 이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렸다. 이마를 덮는 짙은 남색 머리카락, 조금은 차가워 보이는 호박색 눈, 그리고 전체적으로 잘생겼다는 인상을 주는 고양이상 얼굴. 어... 어? 아니 원래 마주 보고 앉지 않았나? 의자를 당겨서 옆으로 온 거야? 그래서 이렇게 가까운... 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난 자동적으로 몸을 빠르게 뒤로 뺐고, 그래서 난 거의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고, 마찬가지로 빠르게 손을 잡은 발레포르 때문에 간신히 균형을 유지했다.

   " 왜 그러지. "

발레포르는 이렇게 짧게 물으며 놀란 날 확 끌어당겼고 그 때문에 난 거의 발레포르에게 안기다시피 다시 의자에 앉았다. 윽... 갑자기 이러면 얼굴 붉어진단 말이야... 내가 고개를 돌리고 확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식히려고 하는 동안 발레포르는 내 의자를 원위치시키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으으... 아직도 얼굴 붉은 것 같은데...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터질 것 같다고! 난 이렇게 걱정하며 발레포르를 흘끗 쳐다봤지만 그것만으로도 난 내 시선을 뗄 수 없었다.

   " 다시 묻는다. 왜 그러지. 얼굴도 붉어졌고. "

아니 그렇게 테이블 위에 팔꿈치 얹고 턱 괴면서 나른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좋아할 줄 알아? 잘 아네! 이러면 눈을 못 떼잖아! 자꾸 그렇게 누나 설레게 하지 말라고! 어디서... 터지는 소리 안 들렸으려나... 내 심장이랑 얼굴 터지는 소리... 난 이렇게 생각하며 얼굴을 손에 묻었다 잠시 진정한 후 고개를 들고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 자 그래서 내가 찾던 페이ㅈ... "

   " 자연스럽게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대답. "

익... 들켰다... 그냥 넘어가질 않네... 뭐라 하지...  난 잠시 고민하다 역공을 하기로 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있으니...

   " 근데 너, 알고 보면 내가 누난데 왜 계속 반말 써! 누나~ 해봐. "

   " 내가 그걸 왜 해야 하지. "

그러자 발레포르는 표정을 미세하게 바꾸며 대답했다. 잠깐이고 조금이었지만... 쟤 지금 얼굴 찌푸린 거 맞지! 내가 이렇게 말하려고 할 때 발레포르가 말을 이었다.

   " 뭐, 대답을 한다면야 모르지. "

저렇게 유도를... ㄱ... 그래도... 누나 소리 듣고 싶은데... 으으으! 두 가지 생각이 내 안에서 충돌하는 바람에 난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답은 나왔다.

   " 그... 그냥 조금... 조금 설레서? "

   " 설렌다... 라. 뭐에 설렜다는 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설명이 되는군. "

너! 너! 너라고! 이익! 결국 말하게 하고! 흐으... 부끄러워... 그래도 이제 누나 소리 들을 수 있는 건ㄱ...

   " 난 해준다고 확답은 한 적은 없으니... 넘어가지. "

저게! 잠시 후, 필사적인 노력과 설득, 그리고 살의 섞인 협박으로 인해서 발레포르는 내게 탈탈 털리고 몇 번의 과격한(아주 적절했던) 언사를 듣고 결국 내가 원하던 말을 하기로 했다.

   "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ㄴ... 누나... "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발레포르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오자 내 얼굴은 다시 터질 듯이 붉어졌다. 누나라는 말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어? 지금... 발레포르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 같은데...

   " 코피 난다. "

윽... 역시 심장에 무리가... 무서운 면만 있는 건 아니었네...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투닥거린 후에야 제대로 사전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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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 꽃이... 우와! 이 꽃 진짜 예쁘다! 이름이... 능소화? "

   " 붉은 꽃잎에 벽을 타고 자라는 꽃이네. 꽃말이... 그리움과 기다림? "

예쁘다... 이유 없이 능소화라는 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난 발레포르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움과 기다림이라고? 그러고 보니 한 곳에 얽매여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구나... 혼자여서 슬프면서도, 하염없이 기다릴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부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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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발레포르를 향한 내 마음은 커져만 갔고,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그 이후로도 내겐 그때 그날의 기억이 가끔씩 이유 없이 떠올랐지만, 어느 날 임무에서 돌아온 발레포르가 내게 선명한 붉은색의 능소화를 가져다 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 여기. 오다가 있길래... ㄴ... 누... 으으... 유리아 생각이 나서... 앞으로 더 자주 와. 아니, 내가 더 자주 찾아갈게. 내가 기다리든, 누나가 기다리든, 둘 다 싫으니까. "

그때 그 말, 왜 못 지킨 거야. 내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 너랑 떨어지기 싫다고 했잖아. 내가...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래도... 그래도 기어코 내 눈물을 닦아주며 입 맞추던 넌... 검은 로브단이 무너지고 세상이 바뀌어도 돌아오질 않는구나. 어쩌면... 내가 너한테 모든 걸 말해줬다면... 그랬다면 지금쯤 달랐을까... 곁에서 함께 웃고, 시간을 보내며 서로 사랑하는, 그런 평범한 연인처럼 살 수 있었을까. 떠나기 전에 그랬잖아. 기다리게 하지 않겠다며. 꼭 다시 돌아오겠다며. 너도 나를 많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사랑하고 있다며. 그런데...

   " 그런데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바보야. "

그래도, 그래도 괜찮아. 이렇게 내 눈앞에 있잖아. 이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잖아. 이렇게나 잘 커줬잖아. 조금 멀리 돌아왔어도 결국 이렇게 만났잖아. 그러면... 그러면 그걸로 된 거야...

   " 이제... 알아보겠어? "

   " 아아... 왜 못 알아봤을까... 얼마나...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대체 왜... "

한참 말없이 자신이 오래전 꺾어다준 능소화를 멍하니 바라보던 발레포르의 눈에선 어느새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내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발레포르의 눈에는 읽어내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마주 보는 눈빛에 바로 알 수 있었다. 네가 나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네가 나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네가 스스로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그리고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까지도. 누군가 자신을 이 심연에서 꺼내 주길 원했고, 한 번이라도 더 나를 껴안고 싶었고, 내 손을 결국 뿌리친 스스로를 얼마나 증오했고, 그 모든 감정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이, 아주 많이 나를 사랑했고 사랑한다는 그 모든 감정을, 마주 보는 눈빛에 바로 알 수 있었다. 미안하다고 할까. 보고 싶었다고 할까. 어떻게 지냈냐 물을까. 나는 너를 다시 만난다면 뭐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난 단지 슬픔과 미안함, 그리고 기쁨에 젖어 여러 감정이 섞인 눈물을 흘리는 너를 꼭 안아줄 뿐이었다. 아주 꼭. 다시는 놓기 싫다는 듯이.

   " 아, 아아... 흐으... 내가... 내가... 난... 난 너를... "

   " 괜찮아... 아무 말 안해도 괜찮아... 그냥... 그냥 이렇게 있자... "

발레포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더듬거리며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난 그냥 그의 등을 쓰다듬어줬다. 속은 이렇게 여린데...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얼마나 아팠을까... 상처를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이... 옆에서 보듬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결국 발레포르는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떨리는 손으로 날 안을 뿐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보고 싶었다는 듯이. 다시는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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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팜파오입니다! 이번에는 발레포르 스토리 중편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쓰면서 입꼬리가 올라갔는데... 끝으로 갈수록 슬퍼...ㅠ 그래도 요즘 매일매일 업로드를 하니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이번에도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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