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적 추천수 100 이벤트 : 컨셉 L ( 하늘보리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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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 오늘 아카데미 끝나고 저랑 같이 놀러 가실래요? "
자유 시간이 시작하자마자 반에 찾아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 엔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얼굴은 붉어져버렸다. 놀러... 가자고? 나랑? 아니 도대체 왜? 난 최대한 당황한 걸 숨기고 냉정하게 뺨을 한 대 쳐서 정신을 차린 후 벌게진 볼로 대답했다. 얼얼하네...
" 아니, 딱히 생각 없는데? 근데 왜? "
" 으... 그... 볼이... 큼. 아니면 뭐 어쩔 수 없고요. 아, 혼자면 심심한데... "
아아아! 안 돼! 그러자 엔주는 바로 매몰차게 뒤돌았고 난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엔주의 팔을 붙잡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그... "
으, 뭐라고 말해야 하지... 내가 뒷목을 쓰다듬으며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자신을 붙잡자 엔주는 놀라거나 당황하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싱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 왜요? 혹시 뭐,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
" 뭐, 나도 좋다고... 너랑 놀러 가는 거... 절대! 네가 혼자면 심심하다고 해서 같이 가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
윽... 결국 말해버렸네...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자 엔주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입 가리고 웃는 게 왜 이렇게 예쁘지...
"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이따 한... 두시? 그쯤에 아카데미 정문에서 봐요! "
엔주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한번 입을 가리고 웃은 후 총총 사라졌다. 입 가리고 눈웃음 짓는 거 진짜 예쁘네...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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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뭘 입지?! "
아카데미가 끝나자마자 방으로 들어와서 옷을 고르던 난 결국 방 여기저기 널린 옷가지들 사이에서 누워 다시 고민에 빠졌다. 아아, 어떡하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10분가량 바닥에 누워서 이것저것 입어보며 고민하던 난 결국 옅은 하늘색 청바지와 짙은 적갈색 머리카락에 상반되는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두시 십분 전에 아카데미 정문으로 나섰다.
정문에 기대 머리를 조심스레 매만지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멀리서도 아카데미와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인 기숙사에서 엔주가 아카데미 정문으로 사뿐사뿐 걸어오다 나를 보고 총총 뛰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선배, 많이 기다렸어요? 제가 먼저 나오려고 했는데... 먼저 나오셨네. 헤헤... "
" 많이 안 기다렸어. 일부러 기다린 건 아니니까 착각하진 말고. "
짧은 연분홍색 치마, 어깨를 넘는 웨이브진 금발에 어울리는 하늘하늘한 백색 블라우스, 그리고 엔주의 예쁜 붉은색 눈동자를 떠오르게 하는 작고 붉은 크로스백. 오늘도 어김없이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엔주는 내게 다가와서 웃으며 말했고 난 또다시 차갑게 대답했다.
아,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할 걸... 왜 그게 이렇게 어렵지... 난 속으로 머리를 쥐어박으며 앞장서는 엔주를 따라서 아카데미를 벗어나 인간들의 도시로 향했다. 빛의 수호자님이 설립하신 만큼 강한 인식 저하 마법과 마력이 없는 인간들에게만 적용되는 투명화 마법이 영구적으로 걸려있는 아카데미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하나둘씩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인간들의 화려한 길거리에 감탄하며 이것저것을 신기해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기계가 엔주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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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선배 저거 봐요! 저거 아빠 같은데? 맞네, 맞아! 저건 파워 아저씨고... 어? 저기 빙하고룡 언니도 있다! 귀여워! "
옆면에 인형 뽑기라 쓰인 기계 안에 들어있는 사대신룡과 다른 드래곤 인형은 엔주의 관심을 한 번에 사로잡아버렸다. 엔주는 바로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서 장인어ㄹ... 아니 빛의 수호자님을 뽑으려 기계에 다가갔고, 그것이 아마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조작 방법도 모르고 한 첫 번째 시도 :
" 자, 그러니까... 오... 이렇게 해서... 이걸 이렇게 하면... 아, 아쉽다! 거의 들어갔는데... 다시 해봐야지... "
아직은 미숙한 두 번째 시도 :
" 이렇게 잡고... 좋아... 조금만 더... 으악! 이게 떨어지네... 하, 선배, 저 한 번만 더 할게요! "
완벽할 '뻔'했던 세 번째 시도 :
" 그래, 완벽해! 이대로 쭈욱... 아. 어라...? 이게 왜 다 왔는데 떨어지지... 아아, 거의 다 왔는데에... 마지막으로 해볼게요!
한 번의 실수로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네 번째 시도 :
" 어라, 아! 잘못 눌렀다! 아아아! 이거 아니야아아! 히잉... 진짜, 진짜 마지막이에요... "
성공할 '뻔'해서 슬슬 화나기 시작하는 다섯 번째 시도 :
" 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래, 그대로... 아아아아아아아!! 뭐야아아! 저게 왜 떨어져! 아아, 완벽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입니다... 이번에도 안되면 부숴버릴... 핫. 아무것도 아니에요...! "
마지막이라고 호언장담한 여섯 번째 시도 :
" 진짜 마지막. 아니 진짜예요! 좋아... 잡고... 올리고... 이제 구멍까지만... 어? 어어어? 안돼에에에!! 이거 왜 안되냐고오! "
그리고 내가 말렸지만 결국은 하고 만 마지막 시도 :
" 아, 선배 저 말리지 마요! 아아 진짜 진짜 마지막이라니까요? 제발요! 저 이렇게는 못 끝내요! 하하... 고마워요. 후우... 정신을 집중해서... 움직여서... 내리고... 잡고... 올린 후... 이제 마지막으로... 제발 제발 제발... 아. "
마지막 시도였던 일곱 번째 시도까지 실패하자 엔주는 분노가 폭발해서 인형 뽑기 기계를 쾅하고 내리쳐버렸고 그로 인해서 인형 뽑기 기계는 정확히 엔주 주먹만 하게 우그러져버렸다. 아... 망했다...
" 선배 이거 놔요! 제가 저거 아주 부숴버릴라니까! 아 놔보세요! 이거 좀 놔ㅂ... 어라...? "
" 아야, 아파라... 어라, 코피 나네. "
난 엔주를 뜯어말리며 붙잡았지만 엔주는 내 손을 뿌리치려 했고 그것이 미스가 나면서 내 얼굴엔 엔주의 팔꿈치가 직격으로 꽂혔다. 난 코에서 시큰한 고통을 느끼며 코를 훑었고 내 손에 묻어있는 피를 보고 무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걸 본 엔주는 크게 놀라며 내게 물었다.
" 헉! 으아아! 미안해요 선배! 어어, 이거 어떡하지... "
" 아니 이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일단 네가 부숴버린 기계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 "
...라고 말은 했지만 아프긴 아프네. 얘는 오빠가 있어서 그런지 팔꿈치로 코를 찍는 솜씨가 아주 가관이야... 물론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난 피를 닦고 나를 걱정과 미안함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는 엔주에게 다시 말했다.
" 난 괜찮으니까 일단... 인식 저하 마법을 쓰고 도망가던지, 아니면 주인한테 사과를 하고 배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
" 으음... 인식 저하 마법을 쓰고 도망가는 건 너무 양심에 찔리고... 그렇다고 배상하기엔... 이거 조금 비싸 보이는데... 으으, 어떡하지... "
그러게... 우리 돈으로 배상하기엔 좀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흠... 어쩔 수 없나. 난 생각을 마치고 엔주의 손... 이 아니라 블라우스 소매를 살짝 붙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냥 튀자. 어차피 우리가 부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인간이 이걸 이렇게 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
" 어라? 비 온ㄷ... 에... 에? 어... 네에... "
그리고 우린 쏟아지는 빗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주인분에게 사과를 하며 우리는 우리의 머리를 적시고 마음속 깊은 곳까지 차가운 빗물과 함께 스며드는 이 이상한 감정과 함께 편안하면서도 몽롱한 느낌을 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카페로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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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 추워... 와, 노래 좋네요... 이걸 어디서 들었더라... Don't stay awake for too long, don't go to bed~ "
어슴푸레하고 은은한 카페의 조명 사이로 흘러나오는, 어디선가 들어본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미소 짓는 엔주의 모습은 나마저도 미소 짓게 하였다. 조금... 같이 불러볼까...
" It'll get you up and going out of bed... "
이렇게 우리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 귀여ㅇ... 나 아무 생각도 안 했어. 내 안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눌러 넣은 난 엔주에게 말했다.
" 노래 잘 부르네. "
" 예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헤헤. "
우리는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각자 음료를 주문했다. 나는 따뜻한 허브티, 엔주는 이상한 이름의 반투명한 음료를. 저게 뭐지...? 의문을 뒤로하고 허브티를 홀짝이며 젖은 머리를 매만지는 엔주와 대화를 나누던 내게 한 가지가 떠올랐다. 지금 이렇게 있으면 감기 걸릴 텐데... 나야 피부로 열기를 내뿜어서 말리면 되겠지만... 으음...
" 흐에... 에... 에췽! 훌쩍... 아, 이거 어떻게 말리지... "
추워 보이는데... 아... 내가 엔주를 껴안고 열기를 내뿜으면 어느 정도 마르겠지만... 내가 그걸 어떻게 해! 미쳤냐 데빌곤! 아 그래도 재채기까지 하는데... 하, 모르겠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주변에 인식 저하 마법을 쓰고 엔주에게 다가가 팔을 벌리며 말했다.
" 자, 안기던지. 물기 말려줄게 조금 추워 보이는데... 싫으면 말고. "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엔주는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얼굴을 딸기처럼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린 채 내게 조용히 안겼다. 너만 부끄러운 거 아니거든? 나도 지금 떨려서 죽을 것 같거든? 난 엔주를 감싸 안고 몸 전체에서 열기를 내뿜기 전, 엔주에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열기를 내뿜기 시작하자 온몸의 물기가 증발하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오르는 소리가 들렸고, 그 사이로 엔주의 작은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다. 그녀의 숨결에선 처음 맡아보는 강한 향이 났다. 으에... 이게... 무슨 냄새지...?
" 차, 착각하지 마! 그냥... 그냥 잠깐의 호의일 뿐이야. 아무 의미 없는... "
" 절대 의미 없지 않아요... 서... 선배의 호의니까... 와, 다 말랐네? 고마워요, 선배...! 우와... 진짜 뽀송뽀송해... "
의미 없지 않다라... 네가 이러면 자꾸 이런 호의를 베풀고 싶어지잖아... 피, 나빴어. 칭찬에 약한 건 또 어떻게 알고... 난 이렇게 생각하며 엔주에게서 떨어진 후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래서, 이제 뭐 할까? "
" 우움... 딱히 뭐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오... "
...? 이럴 거면 왜 부른 거지... 그냥 시간만 때우려고 만나자고 한 건가... 내가 이렇게 생각하며 조금은 회의감과 실망을 느끼며 엔주에게 말을 꺼내는 순간 엔주는 예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 그러면 도대ㅊ... "
" 선배랑 같이 있으면 인형 뽑기를 하든, 비를 맞든,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든 재밌고, 즐거우니까요... 이 정도면 만족하시나요, 우리 까탈스러운 선배니임? "
엔주는 이렇게 말하고 몸을 앞으로 숙여 내 볼을 손가락으로 톡치곤 웃었다. 아아아, 실망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우면서도 저 손짓이랑 웃음이 너무 귀여워서 뭐라고 못하겠어! 젠장! 잠시만, 나 엔주가 볼 건드리자마자 얼굴이 붉어진 거야? 얼굴이 화끈화끈한 것을 느낀 난 빨리 손으로 얼굴을 식히며 엔주에게 투덜댔다. 사실은 투덜대고 싶지 않았지만...
" 너, 내 얼굴 함부로 만지 마라. ... 딱, 딱 한 번만 더 봐줄 거야. "
그러자 볼이 달아오른 엔주는 웃음을 터트리며 아예 내 머리를 쓰다듬은 후 말했다. 이이게... 딱 한 번만 더 봐준다니까 진짜로 해버리네...
" 파핫! 아구 아구, 네네. 그럼 이 후배가 한 번만 더 실례할게요~ 아아, 귀여우시다니까... 자꾸 이러시면 제가 선배를 놀리는 걸 그만 두지를 못하잖아요... 혹시... ㄸ... 딱 한번만 더 쓰다듬어보면... "
" 안돼! 어딜 쓰다듬으려고! 절대 안 돼! ... 마지막이야. 진짜 마지막이야! "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작게 중얼거리다 귀여운 눈망울로 날 바라보며 부탁하는 엔주의 그 눈빛에 결국 넘어간 난 단호하게 말하다 잘 다듬어진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엔주의 하얀 손을 내 머리에 턱 얹고 눈을 꼭 감아버렸다. 아, 얼굴 또 붉어지면... 그러면 안되는데... 내가 자신의 손을 머리에 얹자 엔주는 풋 하고 입을 가리고 웃으며 내 검붉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취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 선배, 선배는 왜 이렇게 귀여워요? 안된다고 하시고는 마지막이라고 하시는 거, 너무 귀여운 거 알아요? "
" 하, 하나도 안 귀엽거든? 너 자꾸 그럴 거면 손 떼! 흥... "
" 에이, 왜 그러실까? 아무리 봐도 이~렇게나 귀여운데... "
이렇게 말한 엔주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고 손으로 턱을 바친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웃으며 여전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풀어진 나른한 눈빛... 술도 안 마셨는데 뭐가 저리 도발적인지... 윽... 자기도 자기가 귀엽고 예쁜 거 모르면서... 바보...
" 바보. "
" 에에? 그게 왜 바보예요? 아무리 봐도 귀여운데? "
아차, 말해버렸다. 입 밖으로 내려던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된 거 그냥 말해버릴까... 아냐, 그래도 못하겠어! 흐어... 어떡하지...
" 아무것도 아니야. "
" 흐응? 궁금해져 버려서 그냥은 못 넘기겠는데요오~? 빨리 말해주세여... 아아, 빨리요! "
으으, 끈질기네... 난 입을 꾹 다물고 끈질기게 엔주의 시선을 피했지만 엔주는 마찬가지로 끈질기게 내 볼을 꾹꾹 누르며 계속 물어봤다. 윽... 저 장난스러운 눈빛... 난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엔주의 손을 떼어네며 말했다.
" 너도 네가 귀엽고 예쁜 거 모르면서 왜 나한텐 내가 귀여운 거 모르냐고 해? 이런 게 바로 내로남불이지 뭐야. "
마... 말해버렸다... 이제... 어떡하지...? 그러자 엔주는 의자를 끌고 몸을 숙여서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온 후 미소를 지으며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그 미소에 서린 달콤함 뒤에 숨은 살벌함을 알아챈 난 침을 삼켰다. 그리고 엔주의 달콤한 음성에 섞여오는 그 냄새를 맡은 난 확신했다. 엔주가 마시는 저 액체는 알코올이라고. 그것도 독한. 아니 16살이면 성년식도 치렀으니까 알코올은 괜찮은데... 뭐 저리 독한 걸 마신담. 그것도 데이ㅌ... 난 그냥 생각을 멈추고 엔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선배 방금 그 말에 저 엄청 설렜던 거 알아요...? 근데 있잖아요, 제가 성격이... 받은 건 받은 만큼만 돌려주는데, 당한 건... 백배, 천배로 돌려줘야 속이 시원한 성격이라서어... 잠시 실례할게요... 아, 그리고 가만히 계세요! 선배가 움직이시면 제가 이상한 데를 맞출지도 모르니까요오... "
설렜다고? 실례한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뭘 맞춘다는 거지? 내 머릿속이 수많은 물음으로 뒤엉켜 혼란스러울 때 엔주는 내 티셔츠를 잡아당기며 나를 가까이 끌어당기고 검붉은 머리카락에 뒤덮인 이마에 살짝 부드러운 입술을 맞췄다. 어라. 지금 뭐한 거지. 이마에 입을 맞췄구나. 이마에 입을... 입을... 입을? 입을 맞췄어?! 당한 걸 돌려준다는 게 이런 거였냐! 얘 진짜 취했나 봐?! 아악! 얼굴 터질 것 같아! 그 부드러운 감촉과 쪽 소리가 입술이었... 아아악! 미쳐버리겠어! 내가 부끄러움, 설렘, 행복함 등등의 감정 사이에서 얼굴을 붉히고 허덕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엔주는 찡긋 눈웃음을 지으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컥... 내 심장... 나 죽어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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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귀여워 미치겠네. 그냥 턱을 잡고 입을 맞춰버리고 싶다. 저저 입술 붉은 것 좀 봐. 아아, 알면 알아갈수록 미치겠네... '
난 내게 백배, 천배로 당한 선배가 다시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는 동안 미소와 함께 낮고 두꺼운 잔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돌리며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속을 감추려는 게 다 보여서 귀엽기만 했는데... 지금 얼굴 붉히는 것 좀 봐. 귀여워 죽겠네... 난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걸친 채 선배가 나와 눈을 맞출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고,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선배는 나를 바라보며 툴툴댔다. 아, 귀엽게 말 더듬는 건 덤.
" ㄴ... 너, 너어... 무슨, 무슨 짓ㅇ... 짓이야! "
" 왜요, 나름 설레시라고 하긴 했는데... 효과가 좋았나 보네요? 풋... 역시나 예상대로... "
예상대로 스킨쉽에 약하시다니까... 난 오빠가 '죽음의 미소'라 부르는 그 미소를 빙그레 지어 보였다. 이걸 어쩐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뭘 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나. 아쉬운데... 으음...
" ㅇ, 이제 시간도 늦었는데... 슬슬 돌아갈까..? "
아, 이렇게 되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볼 아직도 발그레한 것 좀 봐. 귀여우시기는. 난 생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쉬운 어조로 말했다.
" 네에... 하아, 하루가 왜 이리 빨리 가버렸는지... "
이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비에 젖은 밤거리로 발을 내디뎠다. 초승달이 아름답게 비추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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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뭐라 인사할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아카데미 정문이네... 이상하단 말이야... 나보다 키도 작은 게 항상 나를 가지고 놀고, 자기가 제일 귀여우면서 나한테 귀엽다고 하고, 눈이 마주치면 항상 웃어주는 얘를... 도대체 뭘로 정의해야 하지? 난 이렇게 고민하며 엔주를 흘끗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또 그 미소다. 다른 사람과 다를 것 없지만, 이상하게 너의 입가에선 더없이 특별해 보이는 미소.
시간이 늦어서 아무도 없는 아카데미 앞에 서있는 우리 둘 사이엔 이상한 적막이 감돌았고, 누구도 먼저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난 무어라 말하려 입을 뗐지만,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다시 입을 닫았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들 사이에서 어슴푸레한 빛으로 우리를 비추던 초승달, 멀지 않은 위치에서 엔주의 금색 머리를 빛나게하던 가로등 불빛, 그리고 오후에 내린 비에 젖어 습하고 차가운 공기 사이로 흐르던 적막을 깨고 엔주가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발음이 아직 조금 꼬이긴 했지만 차가운 밤공기가 엔주를 깨운 듯했다.
" 선배, 선배는 오늘 재밌었어요? "
어라. 갑자기?
" 그저 그랬어. 왜? "
당연하지. 너랑 같이 있어서 재밌었어.
" 솔직하게 말해봐요. 선배도 저랑 있어서 좋았죠? 그렇죠? "
어라. 이게 무슨 자세지. 벽에 마주 닿은 등이 차가워. 느껴지는 엔주의 숨이 따뜻해. 두근거리는 심장은... 터질 것 같아.
" 에, 엔주야...? 지금 뭐하는 거야...? "
얘가... 왜 이러지...? 술이 아직 안 깼네.
" 에이, 그냥 솔직하게 대답만 하시면 돼요. 좋았어요, 싫었어요~? "
읏... 귓가에 입김이... 좀 떨어지라고 해야 하나...
" ... 좋... 좋았어... "
마, 말했다, 진심...
" 그러면 선배... 제가 곧 선배한테 뭘 할 거거든요? 근데... 이것도 똑같이 대답하셔야 해요.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아시겠죠? "
뭘 한다는 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가까운데... 고개를 끄덕인 게 잘한 건지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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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카데미 시절의 그날을 생각할 때마다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첫 키스의 느낌, 짝사랑이 사랑으로 변할 때의 감정, 이런 것이 아닌, 엔주의 부드러운 혀로 느껴진 독한 알코올의 맛이었다.
" 오빠, 무슨 생각해? "
난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내 뒤에서 다가와 날 살포시 껴안으며 묻는 엔주에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 항상 하는 거. "
그러자 엔주는 귀엽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날 바라보았고 난 엔주의 연분홍색 볼에 짧은 입맞춤을 하며 말을 이었다.
" 네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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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 아니 이게 뭐시여! 쯧쯔, 어떤 놈들이 망치로 내려쳤나 벼... 썩을 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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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팜파오입니다! 일단 이번 화를 공개하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늘보리님, 정말 죄송합니다. 미루고 미루다 보니 너무 늦었어요...ㅠ 그저 이 부족한 필력에 만족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두 번째로 ( 저 같은 ) 미성년자 분들, 절대로 알코올은 마시면 안 돼요! 제 세계관에선 만 16살이 되면 성년식을 치르고 성인이 되기 때문에 저런 부분이 나올 수 있는 거랍니다..! 이 점 다시 한번 강조할게요!
마지막으로... 기물을 파손하고 도망가는 그런 행위는... 절대 하면 안 돼요... ( 이번 화 너무 불건전... 죄송합니다. ) 소설은 그냥 소설로만 받아들이시기를 바랄게요!
그러면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