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신룡의 본거지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온 마이네하스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가 늘 들어오는 입구 근처에 서있던 자신의 모노케로스, '사마엘'의 안내에 따라 파괴된 백화점에 들어선다. 세달 만이던가. 그동안 그녀는 세라펠을 통해 그들에게 음식이나 의약품 등을 보내왔고, 그에 고맙다고 답하듯 그들은 그 폐쇄된 구역에서 발견되곤 하는 귀한 것들을 세라펠 편으로 보내주곤 했다. 그리고 이번의 화재 경보 작동을 계기로, 미루고 미뤄왔던 가정방문을 좀 하리라고 결심했고 바로 이행했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기에.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거처 앞에 도착했을 때는, 메사이어가 고대신룡과 대치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둘 사이의 긴장감은 팽팽했다.
"...그저 네가 밀어낸 어둠이되 어둠에 물들진 않은 이들을 보호할 뿐이다. 대체 왜 우릴 못 잡아내서 안달인거지?"
"네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제보를 들었다. 가만히 내버려뒀더니 감히 내 눈을 피해 세력을 불려?"
"그만큼 다크닉스에게 정통성이 없다는 거지. 뭐, 대군을 끌고 온 걸 보면 너도 마찬가지지만."
"정통성이라고? 옛 시대의 구닥다리에게 들을 말은 아니다. 이미 한물 갈대로 간 녀석이 말이 많군."
"한물 간 녀석에게 신의 분노 여섯 발을 연달아 꽂고, 상처는 열 군데 가까이 헤집고도 무너뜨리지 못한 너희들의 수준이 짐작이 가는 발언 잘 들었다, 고대신룡."
가만 보던 마이네하스가, 사마엘을 툭 건드려 일종의 신호를 주곤 슬쩍 그 앞에 끼어들었다. 사마엘이 알아듣길 빌면서, 사마엘의 심판의 날개는 어지간한 모든 걸 한번에 찢어발기는 위력을 가졌음을 본인이 제일 잘 알았으니까. 사마엘이 날아오르자마자 그녀가 제 목소리를 크게 낸다. 고대신룡에게 닿도록.
"어이, 나도 끼워줘!"
고대신룡이 인간의 목소리에 당황한 틈을 타, 사마엘이 심판의 날개를 적들 한복판에 꽂았다. 못해도 용만 열명 넘게 쓰려뜨렸을 그 강한 일격에 고대신룡마저 비틀거렸다.
"마이네하스...!"
"왜? 나 뭐 잘못했냐?"
"하아...끼어들어도 이런 상황에...!"
"저기, 말 할 시간에..."
심판의 날개가, 이번엔 고대신룡의 등에 정확히 꽂혔다.
"...위나 보지 그랬냐."
"크윽...이 자들을 보호하는 겁니까, 마이네하스? 당신은 모르겠지만 이들은 수배자입니다. 다크닉스 수하의 용들을 이곳에서 보호하고 있다고요!"
"본인 말은 다르던데. 그치?"
"뭐..."
혼란에 빠진 고대신룡의 등 위로, 심판의 날개가 다시 내려꽂혔다. 사마엘이 충격에 일어나지 못하는 고대신룡의 목을 잡아 들고는, 심판의 날개를 써서 위로 올라간 뒤 바닥으로 고대신룡을 내던지곤, 바닥에 부딪힌 반동으로 약간 뜬 그에게 마지막 심판의 날개를 그대로 꽂으며 그의 하얀 몸을 땅바닥에 내리꽂는다. 고운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부수는 강력한 충격과 함께, 고대신룡은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물러선 다음, 무언가 기도를 올리는 자세를 취한다.
"...이로써 은둔 생활도 끝이 나겠군. 인원이 많아 다른 곳에선 수용할 수 없어.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도 이놈들이나 다크닉스의 병력이 깔려 있을테니. 아무튼, 넌 괜찮나?"
"아무 타격도 안 하던거 봤잖아? 그보다 우리 깜찍이, 그런 대기록을 갖고도 그렇게 겸손했단 말야?"
대기록이란, 헤집어진 상처의 수와 신의 분노 여섯 발을 맞고도 버틴 이야기일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상처파악 10여 스택'과 '신의 분노 6회 방어'로 이해했겠지만.
"나름대로, 이곳에서 잘 지내려고 했는데."
"내 신조가 뭔줄 알아?"
갑자기 마이네하스가 꺼낸 '신조'이야기에, 메사이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국에도 악마가 좀 살고, 지옥에도 천사가 좀 산다. 그러니까...좋게 못 할거면 나쁘게 잘해라."
"그 말은..."
"선역이 되려고 노력해도 안되면, 악역으로 잘 나가라는 말이야. 격투기 생방송 용어로는 '턴힐'이라는 거지."
"턴힐이라...아, 일단 '이것'부터 치워야겠군. 하랍, 부탁해."
"그래. 난 너한테 늘 동의한다는 거 잊지 마."
하랍이라 불린 오거스가 고대신룡을 네 팔로 들쳐맨 뒤 자리를 비우자, 메사이어가 다른 이들에게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다들 주목. 방금의 일로...고대신룡은 우리를 절대 받아주지 않을거란 사실이 자명해졌다. 그래서 난...모두에게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메사이어가 고개를 잠시 떨궜다가는, 다시 빳빳이 들고 자신의 말을 크게 전하기 시작했다.
"다크닉스에게 향하는 것이 우리가 더 오래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고대신룡에게 희망이 없는 이상, 계속 그를 거부해봐야 다른 세력이 없는 지금으로썬 무의미하고, 돌아다니다 잡히면 우리에게 남은 건 개죽음일 뿐이야."
용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고, 일부는 두렵다는 듯 울어버리기까지 했다. 그 때, 옆에서 마이네하스가 한마디 거들었다.
"천국에 저따위 악마가 있는가 하면, 지옥에도 천사가 있어. 메사이어같은 천사가 그 안으로 들어갈거니까 말야. 그리고 다크닉스와의 협상에 내가 나설 수 있다면, 바로 나설게. 내가 의외로 말주변은 있는 편이거든. 메사이어의 테이머니까, 믿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시켜만 준다면, 확실한 결과를 받아오겠어."
그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5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세 드래곤이 앞으로 나섰다. 저네르, 블랙퀸, 그리고 페이스리스였다.
"잠깐, 실제 블랙퀸이 여기 왜 있어? 해골요새에 박혀있던 거 아냐?"
"호호...맞아요. 저 역시 안에서 다크닉스를 거부하는 용들을 숨겨주고 있었답니다. 강한 테이머들이 우르르 나타나 해골요새 전부를 이잡듯 수색하고 그곳을 자기 영토로 선포해버린 일만 아니었으면 아마 평생도 숨어있었을 거에요."
"그래서 나와 협력하게 되었다. 목적은 맞으니까."
"아무튼...어둠속성 용들은, 당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봐요."
"나 '다무스'를 포함한 혼돈속성의 용들도 거기에 동의한다네. 사실, 최대한 빨리 가고 싶군."
메사이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자, 페이스리스가 말을 꺼냈다.
"잠깐잠깐. 그림자속성 용들 대표인 페이스리스 칸델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바야."
"뭔가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요?"
페이스리스가 크게 원을 그리며 날고는, 난 궤적을 따라 어떤 포탈을 열어보였다.
"여기, 그림자 세계에 숨어사는 거지!"
"그러나 그림자 세계에선 모두가 그림자에 취해 힘을 탐닉하는 광인이 되거나 미쳐버리거나, 악몽에 잠식되어 '칼리고마가'가 되지 않나? 같은 그림자 속성을 제외하고 말야."
저네르 다무스의 말에 칸델라가 장난스레 웃고는, 어떤 물건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림자의 가호가 느껴지는 팔찌. 언제 가호를 부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의 가호가 담긴 물건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안에서도 멀쩡히 살 수 있어! 이건 내 친구인 앙그라가 보증해! 다들 앙그라 알지? 아무튼, 맛있는 것도 잔뜩이라구! 항상 너희들이 놀러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서 용들이 올 때 마다 수 정확히 세어서 부적 만들어두라고 시켰지! 아! 스피릿이터들! 다들 그 부적 하나씩 나눠줘! 나 잘했지? 잘했지?"
칸델라는 칭찬을 기대하듯, 파닥이며 공중을 날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칸델라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 있는가?"
"보호만 확실히 된다면, 그림자 세계에서 숨어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 역시, 보호만 된다면 어디든 상관없네."
"그럼 그렇게 결정인가? 그리고, 나도 가야 해. 아마 찍혔을 거거든. 근데 가기 전에...짐 좀 받고."
"맞아! 네 것도 하나 만들어줄게. 헤헤. 쫌만 기다려! 도망가면 안돼! 알았지?"
스피릿 이터들이 그림자의 가호를 부여한 물건들을 모든 용에게 나누어주는 동안, 세라펠이 사타리엘, 하랍과 함께 도착했고 마이네하스의 물건만 받으면 될 때 즈음, 에메랄드 드래곤이 들이닥쳤다.
"세라펠, 네 놈이 배신자였구나! 마이네하스를 그렇게 물들인 것도 네놈이겠군!"
"물들여? 난 몰라!"
"시치미 떼지 마라! 전군..."
그 때, 세라펠이 뿅망치 하나를 꺼내곤 그대로 던져서 에메랄드 드래곤의 머리에 맞췄다. 뾱! 하는 귀여운 소리를 신호로, 에메랄드 드래곤의 머리가 멍해졌고 그 틈을 타 숨어살던 모두가 포탈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들 빨리! 망각의 망치 저거 오래 안 간다고!"
"나 메사이어 인간 친구 줄 물건 가져왔는데...우와앗! 먼저 들어갈게!"
"나도 실례!"
에메랄드 드래곤의 멍함이 풀렸을 때는, 모두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림자 세계 포탈도 함께.
"마이네하스는...?"
"포탈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제 신경 쓸 필요는 없겠군. 다들 고대신룡님께서 깨어나시거든 전해라. 이 도시의 암덩어리와 낙제생은 사라졌고 이제 미쳐 날뛰는 용들과 칼리고마가만 남게 될 거라고. 그림자 세계로 들어갔으니 멀쩡하진 못할거다."
-----
고대신룡이 자신의 개인실에서 눈을 뜬 것은 거의 2주일 뒤였다. 그를 쓰러지게 만든 사마엘의 기습은, 그로써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사실 그녀를 얕잡아 보았기에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본보기로 목소리를 앗아갔을 때도, 아무 저항 하나 하지 못했으니까. 자신은 각성한 드래곤이고 사마엘은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녀가 아모르를 공경했고, 그랬기에 고대신룡의 의견에 반기를 들 지언정 저항은 하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녀는 반격을 가했고, 이것은 그녀에게 일말의 공경도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혹은...그저 테이머의 명령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쪽이든, 그는 사마엘을 잃었다. 영원히. 거기다가 그들은, 그림자 세계로 들어가버렸다 하였으니 더더욱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미쳐버린 괴수의 형태로 나타나겠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힌 그에게, 전령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아, 들어오게."
그 곳에 들어온 전령은, 10기 신성이 도착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 신성도 함께.
"유 지연이라는 자를 찾는다는 신성이 있습니다. 자기 이름보다 먼저 말하더군요."
"유지연...?"
그런 이름을 가진 테이머는, 한명도 없었다.
"라무르라고 하는데...사교성이 좋긴 하나 많이 특이합니다. 어제 교육 시간에, 활을 잡고는 자긴 그게 마음에 든다며 가져가더군요."
"부디 마이네하스같은 인물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이건 진심이야. 어둠에게 협력이라니."
"아, 어둠 하니 말씀드립니다만...하늘의 신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답답한 자들이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지?"
이상하리만치, 고대신룡은 그들에게 적대적이었다.
"고대신룡님께서 아모르의 길을 제대로 따르고 있지 않다고 말하더군요. 이상하지요. 어둠을 배척했는데 말입니다."
"헛바람이 들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무시하도록 하지."
"더 이상 길을 벗어난다면, 큰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도..."
"그만."
고대신룡은 전령의 말을 가차없이 끊어버렸다. 더는 들을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어차피 그림자 세계로 사라진 자들이 아닌가. 분명 그림자에 먹혀버릴테지. 더이상 신경쓰지 않겠다. 하늘의 신전과는 별도의 말이 있거나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연락을 끊도록."
"...알겠습니다."
전령이 조용히 물러간 후, 고대신룡은 생각에 잠겼다. 아모르의 길은 어둠을 배척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그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음에도 아모르께서 만족하지 못하신다니. 어쩌면, 신전에서 자신을 없앨 음모를 꾸미는지도 몰랐다.
-----
업로드를 안한 이유는 비축분 중 어디까지 올렸는지 까먹어서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억력이 까마귀에 준하는 편입니다. 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