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친구(3)
글쟁이°
비올레타는 백광으로 둘러싸인 세상을 거닐었다. 도무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대지에서 그 혼자 색채를 띠고 있었다. 괴상할 정도로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거닌다 했지만, 실은 추락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흐릿해지려는 이지를 붙잡으려 부단히 애썼다. 끈을 잡았나 싶다가도 금세 빠져나가고 말았다. 박리된 감각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방을 빙빙 돌았다.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뺀 질 나게 밟아온 땅은 여전히 적응되질 않았다.
비올레타는 떠밀리듯 흐느적거리며 걸음을 이었다. 그는 사방에 들어찬 적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노래를 흥얼거렸다.
제국이 아직 왕국이던 시절, 삼대 대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노래였다. 박자는 그럭저럭 맞았지만, 음정은 들어맞는 부분을 찾는 게 더 힘들었다. 아마 황도에서 불렀다간 황실 모독으로 몰매를 맞을 듯했다.
안타깝게도 돌을 던질 관객이 없었기에 그의 노래는 한참을 이어 졌다. 끝에 가선 가사마저 잊었는지 되는데로 붙여 부르는 폼이 퍽 우스워 보였다.
비올레타는 어느세 자신의 목소리에 맞춰 백광이 너울거리는걸 느꼈다. 더없이 넓어보이던 세상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없던 땅이 솟아나고 무형의 힘이 그를 땅으로 끌어당겼다. 흐릿한 안개가 사방에 차올랐다. 그는 까마귀 지팡이를 세로로 휘둘렀다. 안개와 함께 백광의 세상이 양단됐다.
이윽고 그는 거대한 저택의 정문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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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시체를 뒤적이고 있었다. 주변에 새겨진 흔적들로 보건대 하루나 이틀 전에 죽은 듯 싶은 사체였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시체는 불에 탄 숯덩이처럼 퍼석거렸다. 손에 닿은 살점이 바스러지고, 시체가 잉태한 구더기들이 꿈틀거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여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경험상 널브러진 시체를 대뜸 건드릴 수 있는 부류는 두 가지였다. 광인이거나 시체 다루는 일을 하거나. 앙상하게 마른 시체에겐 천운으로 남자는 후자였고, 그가 장례를 치러줄 생각 따윈 없다는 건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뭐 흑마법사 놈들에게 발견 안 된 것만 해도 천운으로 여겨야지.
"허탕이군."
시체를 이리저리 들춰보던 남자가 손가락에 걸린 장기 조각을 털어냈다. 비쩍 마른 살점이 뒤따라 떨어져 나갔다. 대충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신경질적으로 시체를 짓밟았다. 살점이 퍼석거리며 부서져 내렸다. 구더기들이 거칠게 몸을 비틀었다.
"육시럴 또 허탕이야."
"좀 진정하세요 에렌. 어차피 기대도 안했으면서 뭘 그래요."
"어이구 이 아가씨야. 진짜 기대를 안했으면 이놈 찾자고 삼일을 쏘다녔겠소?"
아가씨라는 말에 미간을 구긴 여자를 무시하고, 에렌은 시체를 걷어 찼다. 피골이 상접한 시체는 생각보다 시원찮게 굴러갔다. 에렌이 욕지기를 흘리며 발을 부여잡았다.
"그래도 아예 성과가 없는건 아니잖아요. 그걸 위안 삼죠."
"그건 맞지." 에렌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엎어진 시체를 흘겼다. "몸 안에 깃털을 안 남겼지만 저 솜씨는 틀림없는 까마귀니."
"그거 말인데요 에렌. 왜 그치들은 시체 안에 깃을 넣어놓는데요?"
"글쎄 광인들 생각을 내 어찌 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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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3? 뭐했다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