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 "우와, 바다! 세상에... 모래사장 밟아도 돼요?"
데빌 : "맨발로 밟아도 아무 일 없을 거야"
블랙 : "헐, 대박. 진짜요?"
데빌 : "응"
블랙은 샌들을 벗어 가지런히 올려놓은 뒤, 모래사장으로 걸어갔다.
조금 걷더니 어떤 위협도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 때부터는 뛰어다녔다.
바다에 처음 놀러온 어린아이 같았다.
뭐,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바다에 거의 처음 놀러온 것은 사실이니까.
저 주체가 안 되는 불행을 지닌 아이를 데리고 바다나 산 따위에 놀러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같이 놀러갈 나이가 되었을 즈음이면 부모든 주변 사람이든 아이의 기질을 눈치 챘을 테니까.
블랙은 욕조나 접시 물에도 빠져 죽을 수 있는 용이었다.
정말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가진 불행이 그정도는 된다는 얘기다.
데빌은 어딘가에 놀러가고 싶다는 기도를 종일 해대며 버킷리스트에도, 소원 적기에도 그런 것만 주구장창 적어대는 블랙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블랙은 바다로 놀러가고 싶어 했다.
친구들과 같이 어딘가에 놀러가기, 뭐 그런 소원들도 물론 있었다.
데빌은 친구는 아니었지만 블랙은 그런 건 신경 쓸 겨를도 없다는 듯 바다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파도에 몸을 적셨다.
블랙 : "같이 안 놀아요?"
멍 때리는 데빌에게 블랙이 다가왔다.
벌써 허리춤까지 바닷물로 적신 블랙을 보며 데빌은 미간을 찌푸렸다.
데빌 : "내가 왜"
블랙 : "모처럼 바다 왔는데 아깝잖아요. 바닷물에 발이라도 좀 적시고. 네?"
데빌 : "음..."
블랙 : "그럼 내가 쩌는 거 보여줄게요!"
데빌 : "쩌는 거?"
블랙이 데빌에게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데빌은 또 뭔가 싶어 바닷물에 맨발만 적시고 있는 블랙에게 다가갔다.
데빌이 바로 옆까지 다가오자, 블랙은 먼 바다를 가리켰다.
저기 수평선 너머에 뭐가 있나 싶어 데빌은 눈을 찌푸린 채 먼 곳을 내다봤다.
평범한 용이 아니니 시력이 좋은 편인데도 딱히 뭔가를 찾을 수는 없었다.
뭘 보라는 거냐고 물으려는 순간, 데빌의 몸이 떠밀렸다.
블랙이 힘이 센 편이기는 했다.
데빌은 그대로 바닷물에 나자빠졌다.
예상에 전혀 없던 상황에 속수무책이었다.
악마가 평범한 용에게 떠밀려 바닷물에 입수하다니.
데빌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뒤에서 블랙이 데빌을 가리키며 웃고 있었다.
블랙 : "진짜 웃겨"
데빌은 단단히 화가 났다.
능력을 써서 어떤 식으로든 블랙을 혼쭐 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화가 났다.
하지만 어쩐지, 어쩐지 화를 낼 수가 없어서 입까지 벌린 채 웃고 있는 데빌을 쳐다봤다.
후회할 짓이라는 건 뭘까.
나이가 들 수록 느는 건 후회뿐인가.
되돌아 갈 수 없는 일을 떠올리면서 늘 그렇게 후회하는 건가.
나중에 노부부가 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데빌은 안심하지 못했다.
너무 편하게 사는 자신을 평생 미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데빌은 주위에 용이 없는 걸 확인한 뒤, 손가락으로 블랙을 가리켰다.
블랙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데빌이 손가락을 바다 쪽으로 휙 틀었다.
블랙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바다로 내던져졌다.
자신과 똑같이 바다에 입수한 블랙을 보며 데빌은 조금 웃었다.
데빌 : "이 정도로 화 풀어주는 걸 고맙게 여겨"
블랙 : "이거 완전 반칙 아니에요?"
화를 내며 물에서 뛰쳐나올 줄 알았는데 블랙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이 짜증나서 데빌은 손가락을 한 번 더 움직였다.
블랙의 얼굴 위로 작은 파도가 덮쳐왔다.
푸푸 거리며 코와 입에서 물을 뿜어내는 게 웃겼다.
데빌이 크게 웃자, 블랙이 그 얼굴에 대고 물을 끼얹었다.
블랙 : "거봐요, 노니까 재밌죠?"
데빌 : "뭐가"
블랙 : "웃고 있잖아요"
데빌 : "내가 재밌게 보여?"
블랙 : "네"
블랙은 데빌에게 물을 몇 번 더 끼얹었다.
데빌도 블랙에게 물을 몇 번 더 끼얹었다.
주고받다 지친 블랙은 그대로 물에 주저앉아 어깨까지 밀려오는 파도 속에 잠자코 있었다.
데빌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을 보다 블랙을 쳐다보다 했다.
데빌은 블랙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졌다.
정확히 무너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있었던 일이라며 노부부 얘기 꺼내기?
노는 게 확실히 재미있기는 하다는 얘기?
친구 그만 사귀라는 얘기?
데빌은 말을 하는 게 후회할 짓인지 말을 안 하는 게 후회할 짓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데빌 : "이제 슬슬 돌아가자"
데빌이 물가를 벗어나 모래사장 쪽으로 걷자 블랙이 그 뒤를 따라왔다.
블랙 : "저기요, 데빌씨"
데빌 : "응?"
데빌은 이제 호칭에 개의치 않으며 블랙을 쳐다봤다.
까망이에 비하면 데빌씨는 훌륭한 호칭 같았다.
블랙 : "귀에 물 들어간 것 같아요. 잠시만요"
뒤를 돌아보니 블랙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물을 털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쇼를 한다고 외쳐 봐도 블랙은 그 자리에 선 채 요지부동이었다.
귀에 물이 제법 많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데빌은 한숨을 내쉬며 적당히 큼지막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햇빛에 데워져 따끈한 돌을 들고 블랙에게 다가갔다.
데빌 : "어디 귀에 물 들어갔어? 왼쪽?"
블랙 : "네? 아, 네"
데빌 : "왼쪽으로 고개 꺾고 있어"
데빌이 블랙의 귀에 돌멩이를 가져다 댔다.
블랙의 귀에서 물이 주륵 흘러나와 돌멩이를 적셨다.
블랙 : "오, 대박 신기해"
데빌 : "과학 시간에 잠만 자서 이렇게 된거야"
블랙은 여전히 고개를 왼쪽으로 꺽은 채, 눈만 살짝 돌려 데빌을 쳐다봤다.
바로 눈앞에 있는 데빌의 표정은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럴 땐 참 잘해줘, 서비스가 아주 좋은 계약이라고 생각했다.
설문조사 같은 게 존재한다면 '악마 직원의 서비스는 마음에 드십니까?' 라는 항목에 '가끔 말빨로 한 마디를 안 져서 빡치게 만들지만 어떤 때는 특출나게 상냥함' 이라고 적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블랙 : "어떻게 다 알아요?"
데빌 : "뭘, 귀에 돌멩이?"
블랙 : "제가 과학시간에 잠만 잔 거. 바다에 오고 싶어 했던 거"
데빌 : "난 일을 허투루 하는 용이 아니거든"
블랙 : "어떻게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해요?"
데빌 : "너도 검은 털에 갈색 양말을 지닌 고양이를 기억하고 있었잖아"
데빌은 말해놓고 아차 싶어 블랙을 쳐다봤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블랙은 멀뚱멀뚱 데빌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귀에 물 다 빠졌겠다 싶어 돌멩이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데빌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블랙 : "고마워요"
데빌 : "됐어, 바다 오는 일 어려운 거 아냐"
블랙 : "그거 말고"
블랙이 데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데빌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젖은 정장을 쳐서 그런지 찰팍하고 소리가 났다.
키 큰 블랙이 내려다보는 게 싫어 데빌은 블랙의 손을 가볍게 밀어냈다.
블랙 : "그 고양이 다시 만나면 고맙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거든요.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지만"
데빌 : "나도 명령 받아서 한 거야"
블랙 : "그래도 괜찮아요. 덕분에 몇 년을 더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데빌이 블랙을 올려다봤다.
해맑게 웃는 블랙을 보며 데빌은 일견 신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세상 모든 용서와 베풂을 가진 용처럼 웃고 있었다.
데빌의 기억들 사이로 블랙의 서류가 빠르게 지나갔다.
할머니의 서류도 빠르게 지나갔다.
서류 속 할머니의 가장 큰 후회는 아들이 자신의 불행 탓에 죽어버린 거였다.
다신 그렇게 후회하고 싶지 않았겠지.
할아버지가 아들처럼 되는 게 싫었던 거겠지.
데빌은 충분히 납득했다.
왜 할머니가 계약이 끝나자마자 지옥 불구덩이로 떨어졌는지에 대해서.
결과적으로 두 용은 천국에 갔고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밥 한 번 정도는 같이 먹어주지 그랬어, 그 다음 날 한 번쯤은 멀리서라도 살펴보지 그랬어, 왜 그랬어.
데빌은 꿀잠을 자든 악몽을 꾸든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몇 십 년을 계속 뺏긴 채.
블랙 : "뭐, 딱히 엄청 비관적인 생각 하면서 살았던 건 아니지만. 안심해요. 그냥 몇 년 정도 행복했다는 뜻이에요.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그런 표정 짓는 건 아니죠?"
데빌 : "응"
블랙 : "미안해요. 데빌씨, 피곤해요?"
데빌 : "아니"
블랙 : "얼른 집에 가요. 너무 피곤해 보여서 걱정되네. 어휴, 이럴 때는 또 독기 싹 빠져서는 악마 같지도 않고"
블랙은 그 말 해놓고 데빌이 혼낼 것 같았는지 지레 겁먹어 데빌을 쳐다봤다.
데빌은 말이 없었다.
차를 주차해둔 곳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내 그랬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블랙은 모래사장에 샌들 두고 왔다는 사실을 차 앞까지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금방 다녀오겠다는 말에 데빌이 고개를 저었다.
데빌 :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안돼. 어차피 차타고 돌아갈 거니까 샌들 필요 없잖아. 그냥 와"
블랙 : "그래도 아까우니까"
블랙은 데빌의 말을 무시하고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데빌은 따라갈까 말까 조금 고민했다.
그 사이 블랙은 너무나도 빠르게 데빌의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데빌은 구시렁대며 모래사장 쪽을 향해 잰걸음으로 걸었다.
블랙은 데빌이 저만치 뒤에서 따라오는 동안 샌들을 찾기는 했다.
찾기는 했는데 신으려고 보니 발이 유리조각에 찔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상처는 원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아픈 법이었다.
블랙은 그대로 모래사장에 주저 앉았다.
정말 바로 이렇게 되는 구나.
블랙은 데빌의 존재감을 새삼 깨달았다.
데빌을 만나기 전이라면 예측할 수 있는 모든 불행에 대해 생각하느라 이렇게 맨발로 뛰어가는 미* 짓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텐데.
몇 주 만에 데빌과 함께하는 일상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 익숙함이 묘했다.
고작 몇 주 만에 불행 없는 삶에 익숙해지다니 몇 십 년을 불행하게 살았으면서.
블랙은 헛웃음이 났다.
저만치에서 잰걸음으로 오던 데빌이 블랙의 상태를 발견하고는 짜증난 표정으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블랙은 계약한 일이 꿈처럼 행복하면서도 후회스러웠다.
다시는 얘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함마저 느껴졌다.
세상에, 이건 기만이야.
데빌 : "그냥 같이 가달라고 해라 좀"
데빌이 무릎을 꿇고 앉아 블랙의 발에 손을 뻗었다.
블랙 : "마, 만지지 마요! 절대로! 위험하니까!"
블랙의 외침에도 데빌은 스스럼없이 손을 뻗었다.
데빌 : "나는 다칠 일 없어"
데빌이 블랙의 발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냈다.
블랙이 작게 악 소리를 내었다.
데빌이 블랙의 발에 붕대를 감아줬다.
그런 건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는 것도 이제 지겨운 일 같았다.
데빌은 치료를 해줄 수는 없는지 잠시 난감해했다.
이내 포기하고는 블랙의 양 발에 샌들을 신겨주었다.
데빌이 손을 뻗었다.
블랙이 그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키의 합이 전혀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블랙은 데빌의 어깨에 팔을 둘러야만 했다.
부축당한 채로 천천히 걸었다.
블랙 : "비밀 하나 말해줄게요"
데빌 : "관심 없는데. 그보다 웬만한 건 다 내가 아는 걸 수도 있어"
블랙이 우는 소리를 내자, 데빌이 오천 자 안으로 줄여서 말할 것을 요구했다.
블랙 : "어린 시절 바다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같은 반 아이가 너는 절대 그런 곳에 갈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가면 바로 휩쓸려 죽을 거라고"
데빌 : "요즘 애들이 더 해"
블랙 : "그 말이 무서워 바다에 가고 싶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죠"
데빌 : "그런데 왜 마음이 바뀌었어"
블랙 : "아, 그 이유는 모르는구나"
데빌 : "그것까진 안 적혀있더라고"
블랙 : "와, 그럼 이거 진짜 제 비밀 말해주는 거네요! 신도 모르는 그런 비밀"
데빌은 신이라면 알 거라고 말하려다 관뒀다.
신난 표정을 단숨에 망칠 만큼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블랙 : "나중에는 휩쓸리고 싶어져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게 다예요. 아, 물론 친구들이랑 바닷가에서 사진 찍기 그런 로망 때문에 가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데빌 : "죽고 싶었다고? 그게 다라고? 근데 왜 바다에 안 왔어 여태?"
블랙 : "그래서 고맙다고 했던 거예요"
블랙이 걸음을 멈췄다.
너무나도 가엾은 아이.
데빌의 머릿속에 그 한 마디가 떠올랐다.
블랙 : "갈색양말을 지닌 검은 털의 고양이. 그래서 고맙다고"
신이 단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블랙의 기도를 들어준 건 과연 잘한 일이었던 걸까.
데빌은 신이라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고민해봤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준다는 건 이렇게 비참한 일인가요, 어떤 용은 살게 내버려두면 더 슬픈 일만 되는 거 아닐까요.
데빌은 신에게 하소연하고 싶었다.
자비 따위가 대체 뭔지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문은 닫히고 예외를 둘 수는 없다며 데빌은 밀어내질 것이다.
후회란 뭘까.
데빌은 자신이 할머니에게 희망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후회되었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머지 사랑하는 용에게 보여주고 싶은 바다가 있고, 까망이가 아니지만 까망이라 불려도 가만히 있어주는 용이 있을 것이고, 언젠가 당신을 다시 찾아와 말을 걸어줄지도 모르고, 그런 기대감과 희망을 준 것은 아닐까.
여태 자신이 계약한 용들 모두에게.
그래서 데빌은 블랙과 있는 내내 고민했다.
서비스를 해주고 같이 밥을 먹을 때에도 고민했다.
블랙에게만 해준 이 예외가 나중에 더 큰 후회를 남기면 어떡하지.
데빌 : "블랙아"
하지만 데빌은 블랙의 상냥한 말에, 자신에게 진심으로 표해준 감사에, 마음이 약해져 버렸다.
차에 도착해 조수석 문을 열고 블랙을 앉혔을 때 데빌의 마음은 이제 완전히 패배한 상태였다.
애초에 바다에 온 게 문제였을까, 그것도 그 때와 똑같은 장소에.
데빌 : "전에 네가 물어본 적 있지. 1년 치 계약을 하게 되면 그 불행들은 다 어디로 가냐고. 주변 용들에게 안 가면 어디로 가느냐고"
데빌은 블랙에게 가장 큰 예외를 허락해 주기로 했다.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으로.
데빌 : "그건 나한테 와. 네가 그 날 겪었을 수도 있는 모든 불행들을 꿈속에서 겪어. 너처럼 1년 치 계약을 하는 용들이 서너 명 있었어. 그 계약 기간 동안에는 매일 이렇게 꿈을 꿔. 네 잘못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야. 왜냐하면 이건 내가 정당하고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이니까. 계속 해왔어, 악마로 이 일 시작한 이래 아주 당연하게 계속 해왔지. 이게 내 일이고 한낱 꿈일 뿐이니까. 그렇지만 난 정말 이런 꿈을 꿀 때마다 이해가 안 가더라. 어떻게 이런 인생을 게속 살아? 난 깨어나면 그만이지만 너는 깨어나지도 못하잖아. 그러니까 조심해. 며칠 전부터 계속 뭐라고 한 건 걱정 돼서 그랬던 거야. 새겨들어"
데빌은 그 말을 끝으로 조수석의 문을 닫으려고 했다.
블랙이 있는 힘껏 문을 밀었다.
부은 발을 한 채, 차에서 내리더니 데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블랙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데빌은 자신의 어깨를 움켜쥔 손이 떨리는 것을 봤다.
블랙에게 죄책감을 심어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로 수습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블랙은 데빌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자상한 눈이 데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죄책감 같은 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블랙 : "그게 당연한 용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꿈이라 해도 마찬가지야. 그런 게 당연한 용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요"
데빌이 블랙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걱정하는 아이가 한없이 안쓰러웠다.
손을 놓고 블랙을 다시 조수석에 앉혔다.
블랙의 부은 발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데빌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진통제가 나왔다.
블랙의 손에 약을 쥐어주고는 블랙이 그랬던 것처럼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데빌 : "블랙아, 불행한 꿈을 꿀 때마다 나도 널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약을 삼킨 블랙의 눈 위에 손을 올렸다.
블랙은 잠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멀어지는 의식 사이로 데빌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데빌 :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한 용은 어디에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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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시나요..
스토리 절반 되려면 아직 2~3화는 남았다는 사실...
오늘도 항상 좋은 댓글 남겨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 덕에 힘내어 글을 완성했네요.
아직 하이라이트 부분은 안 나왔지만.. 이제 곧 나올 예정입니다.
나름대로 흥미진진해 질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