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빌.
그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앱노말들의 이능이 크게 발현될 때에 극히 짧은 시간 동안 큰 진폭을 가진 특정 충격파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임펄스' 라고 명명했다.
관이 큰 악기일수록 큰 소리를 내듯이, 앱노말들이 내는 임펄스 또한 그 힘과 비례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러니 크기가 큰 임펄스가 감지되었다는 말은, 상위 등급의 이능력자가 능력을 발현시켰음을 뜻했다.
그러한 임펄스를 감지하는 즉시 부대원들은 그 위치로 향했다.
임펄스를 발생시킨 이능력자의 성향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 이능력자를 제압해야 할지, 국가의 체계 아래로 영입해야 할지도 불분명했으므로 일단은 그 이능력자들을 제압할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건대, 데빌의 임펄스는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 한들 그러한 이능력자의 출몰을 무시할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그 임펄스가 감지된 위치가 마카라의 흥미를 끌었다.
보조연구원 : "위치가 좀... 이상한데요, 대위님"
마카라 : "아, 그놈의 대위 소리좀 그만해. 위치가 어딘데 그래"
보조연구원 : "여기 거긴데. 화교들 도박하는 곳"
마카라 : "도박장? 확실해?"
보조연구원 : "네. 그리고 방금 것 한 번 이후로 다른 임펄스는 감지되지 않았어요"
마카라가 흐음, 하는 소리를 흘렸다.
탐색반에게 실시간으로 위치를 보내던 보조연구원은 그런 마카라를 의아하다는 듯 보고 있었다.
마카라 : "데리고 와서 나 좀 만나게 해줘. 안 된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설령 안 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데려와"
보조연구원 : "아, 예. 알겠습니다. 대위님"
마카라 : "대위 소리좀 그만 하지"
마카라의 짜증이 확 튀자, 연구원은 곧바로 입을 다물며 마카라의 눈치를 살폇다.
쉘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임펄스가 탐지되었으니, 아마 머지 않은 시간 내로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마카라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면담실로 향했다.
두 사람이 겨우 앉아있을 수 있음직한 작은 공간 안에는 예상대로 꽤나 흥미로울 것 같은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데빌 : "대위님 만나라더니 웬 선생님이 오시네?"
움츠러듦 없이 명징한 목소리.
마카라는 대답하지 않고 살짝 웃어 보였다.
데빌 : "이게 당신네들 취급 방식인가? 난데없이 용병이 되라고 하더니, 안 한다니까 사람 몸에 이상한 장치들이나 박아대고?"
아무리 이능력자라 한들 이러한 시설에 처박히게 되면 조금씩은 위축되는 게 당연한 일인데, 눈 앞의 남자는 조금도 그런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카라는 의자에 걸쳐지듯이 앉아서 저를 똑바로 올려다보는 눈빛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입을 열었다.
마카라 : "첫 번째로. 용병이 아니고 국가 소속 앱노말. 국군 장교들이랑 똑같은 계급을 받으니까 용병은 아니지. 두 번째로, 이상한 장치들이 아니고 제어기랑 GPS. 일반 군인들도 너 같은 이능력자면 다 심어두는 거야. 필요 이상으로 능력이 폭주하면 안 되니까"
데빌 : "뭐야. 맞잖아, 이상한 거"
남자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올라갔다.
명백한 비웃음이었지만, 마카라는 되려 흥미가 일었다.
마카라 : "도박장에 있었다고 하던데, 대체 뭘 하고 있었어?"
데빌 : "도박장에서 도박하지 그럼 뭐"
마카라 : "네 이능이 뭐지?"
이능력자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 이렇게 큰 파장으로 발현되기 전에도 자신의 이능을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뭣도 모르고 사용하지는 않았을 거란 추측.
눈 앞의 남자는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심리 제어 타입인가?
마카라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하지 않으니,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데빌 : "남들보다 좀 눈이 좋은 편이지"
마카라 : "sight?"
데빌 : "vision. 이라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네"
마카라 : "투시안?"
데빌 : "아, 그래. 그런 거"
도박장에서 투시안 능력을 가진 앱노말의 임펄스 감지라.
어떤 일을 하다가 이렇게 되었는진 안 봐도 뻔해서 마카라는 피식 웃었다.
데빌 : "아, 진짜. 너네만 아니었으면 그 판 내가 싹 긁어낼 수 있었는데"
마카라 : "대체 얼마가 걸려있었길래"
데빌 : "13억"
한결같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되던 남자가 도박과 돈 얘기를 꺼내자 돌연 눈을 반짝이며 몸을 가까이 해왔다.
마카라 : "도박에 맛이 들려서 국군 영입 제의도 거절한 거고?"
데빌 : "뭐, 그렇다기보다는.. 나는 누구 아래에 못 있을 성격이라"
마카라 : "그래"?
마카라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하긴. 이 용이 멀끔하게 흰 제복을 입고 상관의 명령을 칼 같이 수행하는 모습은 오늘 처음 본 제가 생각하기에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카라 : "그냥, 궁금해서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었어. 시간내서 만난 보람은 있네. 제의를 거절했다면 우리도 어쩔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사고치지 말고 잘 지내. 네 귀에 달린 제어기는 일정 수준 이상의 파동이 감지되면 어떻게든 네게 해를 끼칠 테니까"
마카라는 데빌의 위치추적기가 가리키는 곳으로 지체 없이 몸을 옮겼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퀴퀴한 담배 냄새에, 데빌은 시간이 지나도 제가 기억하는 그대와 별반 다를 것 없으리란 직감이 들었다.
데빌 : "아니 씨*, 나 진짜 장난 안 쳤다니까?"
역시.
자그마한 덩치에 비해 명징한 목소리는 아직도 여전했다.
마카라는 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난리통의 한복판으로 주저 없이 걸음을 내딛었다.
예상치 못한 마카라의 개입에, 곁을 지키는 가드들만 걸음이 바빠졌다.
데빌은 꽤나 위급한 상황에 처한 듯 보였다.
여느 영화에서 보던 것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인상 험한 남자에게 멱살을 붙잡힌 채 몸이 들린 데빌은 돌덩이 같은 주먹에 당장이라도 코뼈가 으스러지도록 얻어맞기 직전인 듯 보였다.
데빌 : "아, 이게 누구야?"
달랑달랑 멱살이나 잡혀놓고 태평하기는.
그 꼴을 보다 못한 마카라가 손짓하자, 곁을 지키던 가드들이 손쉽게 상황을 와해시켰다.
데빌은 우악스러운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신경질적으로 욕지거리를 뱉어내며 틀어잡혔던 옷깃을 털어냈다.
마카라 : "지금 좀 바빠 보이는데, 나중에 올까?"
마카라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까지 데빌을 잡아죽일 듯 위협적으로 굴던 이곳의 용들은 마카라와 그 가드들이 풍겨대는 묘한 건위감에 몸을 사리고 있었다.
데빌은 짧은 시간 동안 그런 모든 분위기를 읽어냈다.
데빌 : "어유, 아아니, 하나도 안 바빠. 그리고 내가 암만 바빠도 우리 선생님이 날 찾아왔다는데, 얼른 가야지. 그럼 그럼"
데빌이 능청스럽게 그 공간을 빠져나와 마카라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키가 한참이나 작은 몸이 불편할게 뻔한데도 팔을 걸쳐오는 게 우스워 마카라가 작게 쿡쿡거리자, 데빌이 다시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 거렸다.
데빌 : "아, 풀하우스까지 떴었는데, 저 양아치 새*들이 열받게 진짜. 지들이 게임 등*같이 하는걸 뭐 어쩌라고"
작게 웃던 마카라가 데빌의 투덜거림에 대꾸해주지 않고 널찍한 걸음으로 발을 내딛자, 어느새 눈앞에는 마카라가 방금까지 타고 온 세단이 있었다.
가드들이 열어준 문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마카라가 말했다.
마카라 : "타"
데빌 : "뭐야, 나 데리고 어디 가는데"
마카라 : "그냥 조용히 탈래, 아님 여기에 있을래"
데빌 : "...타야지"
데빌은 잠시 고민하다, 지체 없이 열린 문 안으로 몸을 숨겼다.
마카라도 새카만 세단 안으로 몸을 숙였고, 그렇게 둘을 태운 차체는 부드럽게 장소를 벗어났다.
가드 : "대위님 어디로 갑니까?"
마카라 : "MAX"
가드 : "예, 알겠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가드와의 대화를 휘둥그레진 눈으로 지켜보던 데빌이 득달같이 물었다.
데빌 : "뭐야, 선생님 대위였어 진짜?"
마카라 : "맨 처음 만났을 대도 그렇게 들었을 텐데"
데빌 : "아니, 딱 봐도 연구원처럼 보이지 딱히 군인으로는..."
마카라 : "몰라, 나도. 국가 체계가 그래. 앱노말 군인들은 일반 장병들이랑 부사관 계급 건너뛰고 일단 소위. 계네들 관리하는 상위 앱노말들은 중위. 나는 쉘터 총 책임자니까 대위 달아야 한다고 하더라"
데빌 : "대박. 나도 그 때 영입 수락했으면 다이아몬드 다는거였어?"
마카라 : "그렇지. 왜, 이제 좀 마음이 생겨?"
꽤 흥미로운 태도로 캐묻던 데빌은 마카라의 말에 곧바로 시트 위에 파묻히듯 등을 기댔다.
데빌 : "에이, 나느 누구 아래에서 일 못한다니까"
쿡쿡 웃던 데빌이 그제야 물었다.
데빌 : "그래서 나 왜 데려가는 건데"
마카라 : "내 아레에서 일 좀 시키려고"
데빌 : "나를? 왜?"
마카라 : "맡은 일이 하나 생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적격이야"
데빌 : "대체 뭔데 그래"
이어지는 물음에, 마카라는 그간의 일들을 간략히 전했다.
얼마 전부터 앱노말들로부터 이능을 추출해내는 세력이 생겼고, 그로 인해서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이능력자와 등록되지 않은 이능력자들이 생겨나는 일이 있었다고.
이능력자의 입장으로 보면 꽤나 기함할 만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데빌은 남의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데빌 : "근데 나는 귀찮은 거 딱 질색인데"
마카라 : "10억"
마카라의 입에서 나온 말에, 심드렁하던 데빌의 얼굴이 단번에 생기를 찾았다.
데빌 : "아, 내가 요즘 할 일이 없긴 했지. 아니, 근데 그걸 나 혼자 해, 설마? 액수 보니까 만만찮은 일인가 본데"
마카라는 데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터운 서류철을 던지듯 건넸다.
마카라 : "지금 걔네 만나러 가는거야. 가는 길에 한번 훑어보고 있어"
마카라의 말에 데빌은 건성으로 서류철을 들추다가 에, 하는 얼빠진 소리를 한 번 내고는 다시 서류철의 가장 앞 장을 펼쳤다.
데빌 : "얘네 어디 소속... 아니, 뭐야, 이거. 사진이 왜 머그샷만 있어 얘네? 대체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마카라 : "맥스. 앱노말 최고 보안시설"
"보안시설?" 하며 되묻는 데빌의 당황스러운 목소리는 마카라의 차를 인식한 게이트의 문이 열리는 묵직한 쇳소리에 묻혔다.
데빌은 마카라가 탄 차를 향해 칼 같은 경례를 올리는 몇 명의 군인들을 괴물 보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데빌 : "씨*, 경비 어마무시하네. 이런 곳은 어떤 괴물 새*들이 가는 거야 대체?"
-
끝!!!
여기서 인물 소개!
데빌 (데빌드래곤 / 남 / 앱노말 / 능력 : 투시안)
마카라 (남 / 노말 / 능력 없음)
나머지 주요 인물들은 나중에 따로 나와요!!
고민해본 결과 CALL과 DEVIL은 번갈아가면서 연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두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네요..ㅎㅎ
그럼 다음엔 DEVIL로 찾아뵐게요!!
(( 다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