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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L] 18화

4 [DEVIL]
  • 조회수133
  • 작성일2023.01.22





지옥에 있는 5일 동안 데빌은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았다.

일단 일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았다.

일이 너무 많고, 신입을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는 것도 너무나 힘들어서, 데빌은 가끔씩 지옥 저 끝으로 내려가 실직한 악마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는 했다.

물론 실직한 악마들은 이미 불구덩이에 얼굴이 잠겨 데빌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데빌은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일을 했다.

옆에서 다른 악마들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함께 일을 했다.

3일이 지났을 때에는 파틴과 신입 악마 몇이 못 참고 도망치려 했는데, 그걸 도로 붙잡아오는데 한 시간을 썼다.

'내가 일을 두 배로 할테니 한 번만 더 도망가면 끝장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데빌은 아주 부드럽게 했다.

그 상냥한 어조에 도망친 악마들이 눈물을 줄줄 흘려댔다.


살려만 달라고 비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때로는 그랬다.

너무 상냥한 어조는 극도의 공포를 유발하는 법이었다.

그 뒤로는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다.

아니, 도망가지 못했다.


5일째 되는 날 아침, 데빌은 짜증이 극에 달한 채 출근했다.

심상치 않은 데빌의 상태를 발견한 악마들이 스멀스멀 자리를 옮겼다.

짜증이 난 이유는 이러했다.

'블랙, 왜 나를 한 번도 안 부르지?' 물론 부르지 않는 게 좋은 일이라는 것은 데빌도 잘 알고 있었다.

데빌을 부르지 않는다는 건 아주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는 거니까.


그러니까 좋은 거데 어쩐지 장이 꼬인 것 마냥 짜증이 솟구쳧ㅆ다.

블랙이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 단 한 가지.

그게 데빌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나 없이도 잘 산다 이거지.

그러다 문득, 내가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건가 싶어 짜증만 더 나는 것이었다.


나 없이 잘 살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 그런데 진짜로 나 없다고 행복한가 봐. 물론, 너 같아도 감시인 없으면 얼마나 편하겠어. 편하다고? 내가 뭐 그렇게 야박하게 군 건 아니잖아. 아니아니, 너도 하람 없으면 훨씬 편해할 거면서... 아니라고, 내가 하람이랑 같냐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이 생각을 대체 왜 하는 거야, 바빠 죽겠는데! 이 생각들을 내가 왜 해야 하냐고, 빌어먹을 블랙!


계속되는 생각의 핑퐁을 참지 못한 데빌이 책상을 내려쳤다.

데빌의 책상이 반 토막 났다.

가만히 앉아 미간만 찌푸리던 데빌이 말도 없이 책상을 부수는 모습에 사무실 안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파틴은 이러다간 애써 가르쳐 놓은 신입들이 죄다 도망가겠다 싶어 냉큼 데빌의 옆으로 뛰어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데빌 : "뭔데"


파틴 : "마침 외근 나가야 할 일이 있어서? 그동안 나랑 다른 애들이 책상이랑 서류 원래대로 되돌려놓고, 신입들 인수인계 빡세게 하고 있을게요! 데빌씨는 산책 겸 외근 업무 하나만 해줘요. 네? 네?"



데빌이 서류를 다 읽기도 전에 파틴이 등을 떠밀었다.

데빌은 알겠으니 밀지 말라 소리치며 사무실을 벗어났다.

다른 사원들이 파틴의 순발력에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리는 동안 데빌은 사무실 밖에서 서류를 훑어내렸다.

천국에 가서 서류만 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별 거 아닌 일을 왜 시키는 거야, 다른 놈들에게 맡길까.


데빌은 자리에 선 채, 곰곰이 생각했다.

돌아가는 대신 가야할 곳으로 발을 움직였다.

사무실 안에 더 앉아있다가는 아까처럼 꼬리를 무는 생각에 책상 여섯개는 더 부실 것 같았다.



데빌 : "똑, 똑"


문지기 : "입으로 대충 노크하는 소리 내지 마시고 사원증 보여주세요"


데빌 : "제 얼굴 알잖아요"


문지기 : "사원증이요"



데빌이 한숨을 내쉬며 문지기에게 사원증을 내밀었다.

문지기가 스캐너에 사원증을 집어넣었다.



문지기 : "여전히 실적 1위시네요"


데빌 : "그래야 빨리 이 짓거리를 끝내죠"


문지기 : "하아, 저도 이 거추장스러운 뿔 빨리 떼고 싶네요"



문지기가 사원증을 돌려준 후, 버튼을 눌렀다.

천국 입구가 열리고 그림자가 보였다.

서류를 받아야 할 담당 천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데빌 : "자요. 서류 확인해 보세요"


천사 : "얼굴 보니 누가 또 실직했나 보네요"


데빌 : "하ㄹ... 아니, 신께서 성깔이 참 여전하시더라고요"


천사 : "뭐, 저희도 저번 달에 축복 남발한 천사들 단체로 실직 시키셔서... 하하...."



담당 천사가 입 꼬리를 한 쪽만 올리며 웃었다.

이미 지나갔지만, 다시 떠올리자니 끔찍한 그런 시절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리고는 서류를 건네는 데빌을 동정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데빌이 어깨를 한 번 으쓱이자 천사도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서류를 훑던 천사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데빌 : "왜요. 서류 뭐가 잘못되었나요. 파틴이 이런 거 실수할 애는 아닌데요"


천사 : "아니요. 그게... 혹시 면회도 신청하셨습니까? 만나야 할 용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사전 신청 없이 오시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죠?"


데빌 : "네? 저는 서류만 전해주라고 해서 왔는데요. 제가 절차를 어길 놈으로 보이세요? 그리고 악마가 천국에서 만날 용이 대체 누가 있다...고......"


천사 : "데빌 담당자님?"


데빌 : "천국에 사는 용 본인이 신청한 거면 서류 필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맞죠?"


천사 : "네, 그렇기는 한데..."


데빌 : "그럼 저기 구석에서 서류 좀 검토해 주시겠어요? 그 동안만 얘기할 테니까"



데빌은 천사의 어깨 너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천사가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날개 뒤에 서 있는 용을 확인한 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 : "이런 경우라면 알겠습니다"



천사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데빌은 입구에 선 채, 그 용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그 용의 뒤로 후광이 생겼다.

자신보다 작은 사람.

이런 식으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데빌은 미소 지으려 애썼다.



할머니 : "까망이, 오랜만이네"


데빌 : "데빌인데요"


할머니 : "성격에 굽힘이 없는 것도 여전하고"


데빌 : "지내는 거 어떠세요"


할머니 : "여긴 정말 좋아. 아, 내가 급히 오느라 같이 못 왔지만 할아범도 잘 지내고 있어. 저 멀리 문 밖에서 오는 거 봤거든? 너인 거 보고 급하게 오느라... 문지기 양반이 참 착해. 바로 면회 신청도 넣어주고"


데빌 : "그래요"


할머니 : "까망이도 잘 지내고 있었지?"


데빌 : "네"


할머니 : "정말로?"



데빌이 주먹을 꽉 쥐었다.

꽉 쥔 양손이 힘을 못 이겨 덜덜 떨렸다.



데빌 : "너무 잘 지내서 후회될 정도로요. 미치도록 후회될 정도로요"



데빌은 가끔씩 잠자리에서 했던 상상을 떠올렸다.

만약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런 걸 상상해보고는 했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헤어지는 상상도 해봤고, 다시는 할머니를 만나지 않는 상상도 해봤다.

그렇지만 수많은 상상 속에서 데빌이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질문이었다.

궁금했던 단 한가지를 계속 질문하는 자신의 모습.

거기에 수만 가지 답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



데빌 : "할머니,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데빌이 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데빌 : "그 때 왜 그러셨어요"


할머니 : "..."


데빌 :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현생에서 고통 받으신 만큼 바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쓸데없이 지옥에 안 가도 됐었는데. 그 때 왜 할아버지랑 같이... 죽어서....."



데빌이 아랫 입술을 세게 물었다.

할머니는 그런 데빌을 가만히 쳐다봤다.



할머니 : "너도 알고 있었잖아, 할아범은 그 때 몇 달 뒤 죽을 운명이었어. 그걸 견딜 자신이 내게는 없어서.... 아이구, 너도 봐왔으니 잘 알잖니! 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할아범뿐이었는걸. 별로 살 이유가 없었어. 그것뿐이란다.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때는 그걸 택하는 게 가장 행복했으니까"


데빌 : "알겠어요. 그런 거라면 알겠어요"


할머니 :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데빌 : "제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할머니 : "밥 같이 안 먹고 떠난 게 좀 서운하기는 했지"



데빌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할머니가 크게 웃었다.



할머니 : "농담이야, 농담. 너도 참 거짓말을 못하는구나. 정말로 네 잘못은 없어. 난 그 날 너와 같이 바다에 갔던 게 인생 몇 안 되는 행복이었어. 그 때 고맙다고 제대로 말을 못 했던 것 같아서... 나도 계속 후회하기는 했지"


데빌 : "나이 먹으면서 느는 건 후회뿐이니까요"


할머니 : "그렇지. 맞는 말이야. 네가 나보다 나이가 많기는 하지"


데빌 : "맞아요"



데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 있던 천사가 서류를 다 검토했다며 잠시 와보라고 소리쳤다.

데빌은 천사를 향해 대충 손을 흔들어준 뒤, 할머니의 한 손을 꽉 움켜쥐었다.

굵고 질긴 주름이 느껴졌다.



데빌 : "할머니"


할머니 : "그래, 별 일 없고?"



자신을 다정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할머니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입이 열리자, 멈추지도 않고 멈출 수도 없는 말들이 새어나왔다.

여태 말 할 사람이 없어 계속 생각으로만 가둬놨던 말들이.



데빌 : "후회가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내가 괜히 이런 짓을 했나 싶을 때, 잘 해주는 것도 못 해주는 것도 전부 다 싫을 때, 그냥 모든 게 후회가 될 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해요? 전 할머니보다 나이를 더 많이 먹었는데도 방법을 모르겠어요"



데빌의 머릿속에는 환하게 웃는 블랙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얼굴 바로 뒤로 잔상처럼 어색하게 웃는 블랙의 얼굴이 떠올랐다.

애를 쓰며 웃는 그 표정.

기를 쓰며 웃는, 어떻게든 별 일 없는 것처럼 뵈려 하는 그 표정.



데빌 : "누구한테 괜한 희망을 준 기분이 들 때는... 그런 기분이 들 때는.. 어떻게..."



데빌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할머니가 데빌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었다.



할머니 : "다음에 또 놀러온다고 약속해주렴"


데빌 : "할머니"


할머니 : "데빌아, 나는 너한테 희망 같은 걸 받은 적이 없단다. 그냥 그 순간에 너랑 같이 바다에 있어서 그건 그것대로 행복했어. 잘 해주고 못 해주고가 중요한 게 아냐. 너라는 게 중요한거야. 에구, 말하려니 쑥스럽네. 됐으니까 다음에 밥이나 먹으러 오렴"



할머니가 천사가 있는 쪽을 향해 데빌의 등을 떠밀었다.

데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빌 : "약속할게요"







-



끝....!!!

역시 할 거 없을 땐 여기 와서 소설 쓰는 게 제일 시간 떼우기 좋은 것 같아요 ㅋㅋㅋ

이번 편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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