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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L]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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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177
  • 작성일2023.03.29






블랙 : "지금 이 시간부로 계약 해지할 테니, 데빌씨의 뜯겨진 시간을 보상해주세요"



하람이 웃었다.

끼리끼리 노냐고 말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데빌의 인내심이 완전히 고갈되었다.

하람의 앞이라는 것도 잊어버린 채, 정신이 나가서는 블랙의 어깨에 잔뜩 힘을 줬다.

블랙이 데빌의 손을 뿌리쳤다.

데빌이 다시 양 어깨를 붙잡고는 앞뒤로 흔들었다.



데빌 : "블랙, 너 미쳤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일단 도대체 그게 뭐 하는 소리인지 나는 모르겠고..."


블랙 : "미쳤냐고? 데빌씨야 말로 미쳤나보다. 이딴 건 내 행복이 아니야. 내가 데빌씨 걱정하겠다는데 데빌씨가 뭐라고 지금! 대체 뭐라고! 나한테... 나한테......."



블랙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블랙 : "나도 걱정할 권리가 있어"



그 말을 들은 데빌이 블랙을 놓아주었다.

얼이 나간 데빌을 쳐다보던 하람이 손을 들었다.



하람 : "저기, 계약을 만약 해지한다고 치자. 이득이랄 게 인력 증원과 서류 감소밖에 없지만 말이지"


데빌 : "아니, 만약은 무슨 놈의 만약. 이득이 문제가 아니죠! 계약을 맘대로 해지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얼이 나가있던 데빌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끼어들었다.

블랙이 튀어나오는 데빌을 손짓으로 막았다.



블랙 : "계약서에 분명 적혀 있었어요. 저에 의해서 데빌씨가 피해를 입으면 신의 대리자에게 소송 가능하다고. 대리할 것도 없네. 데빌씨가 뿔 뜯어서 피해 입은 건 사실이고, 신이 여기 눈앞에 떡하니 있으니까"


하람 : "음, 그러네?"



하람이 생글생글 웃었다.



블랙 : "그리고 계약 해지 조건에 신이 개입해야 하는 정도면 해지 승인 가능하다고 했죠? 이미 저희 집까지 와서 개입하셨으니 별로 불충분 조건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하람 : "그래, 넌 똑똑한 아이지. 하지만 사실은 말이야. 데빌이 저렇게 흥분할 것도 없어"



여전히 블랙을 막으려 애쓰던 데빌이 순간 멈칫했다.



하람 : "수지타산이 안 맞아. 알겠니? 계약 해지야 그냥 하면 그만이야. 고작 그 정도 가지고 뿔 두 개나 돌려줄 수는 없어. 데빌 뿔은 네 계약만 잘 했어도 악마 생활 끝낼 수 있었을 정도의 뿔이야. 그러니까 네 제안은 제안조차 못 되는 것 같은데"



블랙은 그 말에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말을 준비하려는 용처럼 책상 위에 놓여있던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하람은 웃으며 블랙이 할 말을 기다렸다.

하람은 대부분의 것들을 예측할 수 있는 용이라 그런지 예측 불가능한 모든 것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일견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 하람과 침착한 블랙 사이에서 데빌만이 혼란스러웠다.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중이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데빌은 다음 행동이나 말, 대책 같은 것들을 생각할 수 없었다.



블랙 :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그래도 수지타산이 안 맞나요?"



하람이 웃음을 거뒀다.

데빌은 처음에 하람이 화 난 줄 알았다.

다시 보니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

하람은 무표정의 얼굴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쯤 되니 오히려 하람이 웃어주지 않아서 오싹했다.

웃어줬으면 했다.

말도 안되는 제안이 재미있다며 웃어주기를 바랐다.


하람의 표정은 사업 설명을 듣는 용마냥 진지했다.

그게 데빌의 마음에 불안을 심어주었다.



하람 : "네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균형에 확실히 문제가 생기지. 계약한 이유가 그거기도 하고. 심지어 계약을 맺은 갑과 신이 있는 자리에서 죽는다? 우리가 말리기야 하겠지만 순간적으로 한다면? 예측 불허지. 네가 내일 죽어벌리 수도 있고. 그래, 묹가 아주많이 생기겠어"



하람이 품 안에서 종이를 꺼냈다.

백지였다.

하람이 쳐다보자 종이 위로 글자들이 새겨졌다.

맨 위에 가장 큰 글씨로 '계약해지서'가 적히는 걸 본 순간, 데빌이 종이를 낚아챘다.

종이가 그의 손에서 빠르게 구겨졌다.

순간의 불꽃과 종이가 사라졌다.



데빌 : "이건 제가 동의 안 합니다"


하람 : "그래서 뭐?"


데빌 : "처음에 하신 제안도 블랙이 동의를 안 해서 대답 기다려주셨잖아요. 이 제안은 제가 동의 못 해요! 그러니 없던 일로 해요"


하람 : "내가 이런 진전 없는 대화나 하려고 오늘 내려온 게 아니야. 블랙이 한 제안은 내가 한 제안만큼이나 효율 좋고 실속 있고 쓸모 있어. 손해 보는 용도 없고"


데빌 : "손해 보는 용이 없다고요? 여기 있잖아요!"



데빌이 블랙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람은 손가락 끝을 눈으로 좇았다.

블랙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보기만 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람이 품 안에서 새로운 종이를 꺼냈다.

글자가 적히기 시작했다.

좀 전과 같은 내용이었다.

하람은 피곤했다.

이 두 용 사이에 끼어 뭐 하는 짓거린가 생각한 적도 잠깐이나마 있었다.


그렇지만 블랙의 대담한 제안, 그 제안을 하는 동안 전혀 떨지 않는 저 눈빛.

뭐, 떨지 않으려 애쓴 거였겠지만.

하람은 그걸 본 순간 블랙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블랙이 태어나는 데 일조한 자기 자신도 자랑스러웠다.


하람은 블랙이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람이 먼저 사인했다.

사인한 서류를 블랙에게 넘겼다.

블랙도 군말 없이 사인했다.

블랙은 태연한 표정으로 데빌에게 서류를 넘겼다.

자신의 이름만 텅 비어있는 종이를 받아든 데빌의 손이 떨렸다.



데빌 : "내가 이걸 지금 자발적으로 해줄 것 같아?"



블랙이 이게 최선이라 답했다.

좀 전에 데빌이 했던 말과 완전히 똑같았다.

데빌이 황급히 하람을 노려봤다.



데빌 : "하다못해 설득할 시간을 주세요"



하람이 고개를 저었다.



데빌 : "조금만 더 대화할 시간을..."



데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람이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하람 : "네가 희생한 만큼 이 아이도 똑같이 희생하게 해"



하람의 또렷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두 용이 데빌을 올려다봤다.


데빌은 순간 두 용 사이에 낀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초대받지도 못한 파티에 차려입고 온 용의 기분이 이럴 것 같았다.


답은 정해져 있는데 왜 혼자 그러냐는 표정의 두 용.

데빌은 그걸 똑바로 쳐다볼 자신이 없어 시선을 피했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데빌은 포기할 수도 없었고, 이 모든 걸 해결 불가한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 중에 최선을 고르려 했을 뿐이다.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최선을 골랐다고 믿었다.

다만 데빌이 몰랐던 건 세상에는 수천수만 가지의 최선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최선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블랙 : "데빌씨, 나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이 제안 하는 거야"



블랙이 생글생글 웃었다.

데빌이 블랙의 얼굴을 살폈다.

애써 웃는 게 훤히 보였다.

데빌을 위해 억지로 웃고 있는 모습.

그렇지만 전처럼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억지로 웃고 있다 해도 블랙이 본인의 의지로 서명했다는 것 만큼은 사실이었다.

억지로 한 게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 손을 움직였다.

데빌의 손끝에 힘이 들어가 종이가 조금씩 구겨졌다.



블랙 : "나를 기다려. 나도 데빌씨를 기다릴 거야"


데빌 : "좀 전에 보여줬잖아. 그 시간의 몇 십 배를 기다리는 거야"


블랙 : "나 못 믿어? 데빌씨, 이 블랙 한 다면 하는 용이다!"



블랙이 데빌에게 펜을 건넸다.

데빌이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펜을 받아들었다.


펜의 뒷부분을 눌러 볼펜심이 나오게 했다.

거기까지는 했지만 손이 더 이상 움직이지를 않았다.

뭘 어떻게 해야 좋은지 무슨 선택이 가장 알맞은지 정할 수 없었다.

정할 수가 없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데빌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블랙이 눈앞에 있었다.

블랙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긴장이 풀리는지 어깨까지 떨어가며 데빌을 쳐다봤다.

블랙은 주체하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쳐냈다.



블랙 : "데빌씨"



블랙이 데빌의 이름을 불렀다.

블랙은 울면서도 시선을 피하는 법이 없었다.



블랙 : "난 데빌씨를 믿어. 딱 그 만큼만 데빌씨도 나를 믿어줘"



데빌이 떨리는 손으로 종이에 서명했다.

데빌의 입에서 충분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그 말은 블랙에게 들리지 않았다.


서명이 끝난 순간부터 데빌과 하람은 이미 블랙의 방에 존재하지 않았다.

데빌의 눈에 매끈하고 깨끗한 흰색 타일이 보였다.

익숙한 곳이었다.


하람이 데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람은 손에 든 서류에 도장을 한 번 더 찍은 뒤, 파일철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앉아 다른 서류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나가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데빌은 말 없이 자신의 날개를 펼쳤다.

두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손을 뻗어 확인할 것도 없었다.

데빌은 여전히 흰색 타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에 비친 것은 두 개의 뿔이 우뚝 솟아난 악마였다.


데빌은 문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래, 예전에 이 뿔을 만지며 블랙이 보낼 1년을 상상한 적이 있었지. 그 때는 블랙을 좋아하지 않았었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데빌의 앞에서 문이 열렀다.



시간은 물처럼 빠르게 흐르고, 설탕처럼 달콤할 거라고. 블랙의 1년이 그렇게 흐를 거라고 말한 적 있었지. 블랙은 고작 3개월 그런 시간 보냈네.



데빌은 문 밖까지 나가려다 말고 잠시 멈춰 섰다.

이제 블랙에게 남은 시간은 딱딱하게 굳은 시간들분이었다.

물기가 빠져 굳어버린 흙처럼, 바스라지기만 하는 시간.

계약은 이제 끝났다.



블랙이 죽으면 어쩌지.



데빌은 침을 삼켰다.

입 안이 텁텁했다.



'그 만큼만, 딱 그 만큼만 나를 믿어줘'



네가 나를 믿는 만큼만 믿어 달라고?



데빌은 비실비실 웃으며 걸어 나갔다.

데빌의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사방이 조용했다.



그게 말이 되니, 그게.



데빌은 걷다 말고 벽에 몸을 기댄 채, 무너지듯 천천히 주저앉았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나 큰 믿음을 똑같이 주라니. 



"너 진짜 이기적이야. 너 진짜 욕심쟁이야. 짜증나"



데빌의 입에서 감아놓은 테이프가 풀리듯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데빌은 한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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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이 머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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