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의 브리트라."
'브리트라라고?'
물 위로 떠오른 알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부화 전부터 주위를 압도하는 생명력.
주변 공기를 일렁이듯 뒤흔들고 있다.
밑의 웅덩이에서 자색 물결이 불안정한 춤을 춘다.
날카로운 지느러미가 움직이며 푸른 불빛마저 쏟아낸다.
'눈이 부실 정도로군.'
One of One.
유일 개체를 직접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천만."
"천만 골드."
관리자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제시했다.
'천만?'
웬만한 이름난 길드를 인수할 수 있는 돈.
역대 최고 드래곤 알 거래가, 루드오어의 팔백만 골드를 가볍게 뛰어넘는 수치다.
"처-천만 골드? 당신 제정신이야?"
안티아고가 말도 안되는 제시가에 항의한다.
"엘드리안 가문이라고 당신이 부르는 아무 금액이나 다 들어줄 거라고 착각하지 마!"
"이 정도는 받아야지요."
"역대 최초, 한 세대에 나온 두 번째 고유종 아니겠습니까, 프란시스님."
맞는 말이지. 그런데?
"제가 파는 것은 드래곤 알뿐만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
..잠깐.
"이 브리트라가 아니면 루드오어의 발끝에라도 미치겠습니까?"
'고유종이 아니면 루드오어를 이길 수 없다고?'
이 얼마나 우스운 노인인가.
평생을 우물 속에서 살아왔나보군.
"허, 절 못 믿으시는 모양이군요."
장사꾼은 또다시 내 표정을 읽어냈다.
"제가 이 바닥에서 구른 지만 오십 ㄴㅕ이 넘었습니다."
"수많은 드래곤들과 테이머들을 봐왔죠."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는 제가 잘 알지요."
'장사를 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군.'
"..그렇다면 이것 하나만 물어보도록 하지, 관리자."
사실 이미 답은 뻔히 알고 있다. 그래도 물어본다.
"바위 드래곤이, 설령, 30레벨도 채 되지 않은 바위 드래곤이 드래곤 레이싱을 우승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루드오어를 꺾고?"
"역시, 어린 도련님답게 순진한 질문이군요."
"방금 프란시스님이 든 예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관리자는 자신의 외안경을 고쳐썼다.
그러고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바위 드래곤은 애초에 레이스에 참가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여태까지 일반종이 예선에서 합격한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앞으로도? 하.
"그렇군. 브리트라는 다시 넣어둬."
"..네?"
'왜, 전혀 예상치 못했나?'
당신에게 고유종은 거절할 수 없는, 어떤 금액을 지불해서라도 확보해야 하는 그런 것일 테니까.
"후회하실 겁니다."
짧은 시간동안 생각을 한다.
장사꾼의 두뇌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하. 혹시라도 가격을 낮추려는 수작이라면 저한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좋을대로 생각해라."
누가 후회하는지는 두고 보라지.
"저, 도련님, 천만 골드는 말이 안되지만.. 브리트라의 알을 구하지 못하면 길드장님께서.."
음?
"그럼 아버지가 모르시게 네가 비밀을 잘 지켜주면 되겠네, 안티아고."
크게 당황한다.
"네, 네? 그게 그렇게 될 리가.. 저, 정말 안 사도 괜찮으세요?"
"다시 생각해보니 천만 골드면 꽤 저렴한데요..!"
'흐음.. 뭔가 이상한데.'
브리트라를 원한다기보다는 랜스 엘드리안의 반응이 더 무서운 것 같다.
"아이, 나도 참! 그 기억을 까.먹.었.지.뭐.야.?"
'신?'
또 한 번 예고 없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말하는 모양을 봐선 의도적으로 기억을 온전하게 돌려주지 않은 듯하다.
이번에는 순간적인 이미지로 제시되지 않고, 기억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
프란시스 엘드리안, 여섯 살.
랜스 엘드리안이 손에 책을 쥐어준다.
"프란시스, 네가 일곱 번째 생일로 원한다던 드래곤이 무엇이었지?"
"미니 드래곤이요, 아버지! 귀엽잖아요!"
내가 빙의하기 전 프란시스는 귀여운 소이었던 것 같다.
"그래, 네가 새로 온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잘 배우면, 생일에 미니 드래곤을 꼭 사주도록 하마."
"네, 아버지!"
6살의 프란시스는 공부가 따분했다.
안티아고의 감시를 피해 서재를 벗어나, 정원에서 놀고 있던 것을 랜스 엘드리안이 발견했다.
"공부를 안 하고 있었구나, 프란시스."
"아.. 네. 죄송해요, 아버지."
"너무 지루해서 잠시 쉬고 있었어요."
"괜찮단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이따 잠시 내 사무실로 올래, 프란시스?"
무거운 문을 간신히 열고 들어간 방에는 랜스 엘드리안이 책상에 앉아있다.
생에 사주기로 약속했던, 미니 드래곤의 알과 함께.
그의 오른손에는 작은 손망치가 들려 있다.
어린 프란시스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미니 드래곤의 알을 보자마자 마냥 좋아한다.
"미니 드래곤!"
"그래, 프란시스. 미니 드래곤이란다."
"그거 아니? 드래곤 알이 부화하는 데에는 다 때가 있단다."
"시기보다 일찍 알을 깨고 나오면 드래곤은 죽고 말지."
"아, 그럼 저 미니 드래곤은 부화할 때가 된 건가요, 아버지?"
"음.. 아니. 아직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단다."
"어떻게 보면, 너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싸늘한 미소.
"때가 되기 전까지는 도움을 받고 잘 관리받아야 돼."
"너무 이르게 알을 깨고 나오려 하면 크게 다치는 법이야, 그렇지 않니?"
"아버지...?"
"프란시스, 잘 보고 배우렴."
"이른 시기에 알을 깨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잠깐! 뭘 하려는 거-'
쾅!
쩌적—
쾅!
쩌적—
쾅!
퍼억—
퍼억—
퍼억—
어느새 망치에서 피가 묻어나온다.
껍질을 두드리던 소리는 둔탁한 충격소리로 대체되었다.
"아버지!!"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아버지! 제발 그만 두세요!"
"휴우..."
"이런, 내가 좀 흥분했구나. 알만 깨려고 했던 것이."
"용서해 주겠니, 프란시스?"
"훌쩍.. 네에... 네에... 앞으로는 수업 잘 들을게요, 아버지..."
"그래, 고맙구나."
"자랑스러운 아들아."
허억! 헉! 허억!
"프란시스 도련님! 괜찮으세요?!"
눈을 뜨자 거래소 천장이 보인다.
'안티아고?'
옆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봐! 응급 상황이다!"
관리자가 황급히 직원들을 호출하고 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두 번째 장면이 시작된다.
---
이번엔 프란시스의 기억이 아니다.
제3 자의 눈으로 어떤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자그마한 오두막집 앞에 서 있는 랜스 엘드리안과 빙하고룡.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14살의 안티아고.
그리고 그의 파트너 수룡, 아직 해츨링.
"길드장님! 잘못 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빙하고룡."
쩌정—
어린 수룡은 빙하 속에 영원히 잠들게 되었다.
어린 안티아고가 맨손으로 얼음을 내리치며 절규한다.
쿵. 쿵. 쿵.
피가 묻은 주먹이 울리자 나의 심장도 그에 맞춰 분노하기 시작한다.
랜스 엘드리안은 뒤도 안 돌아보고 걸음을 옮겼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프란시스 도련님! 일어나 보세요!"
"....."
"도련님? 말 좀 해보세요!"
분노?
슬픔?
증오?
이 감정은 무엇인가.
너무나도 강력하게 들끓는다.
온 몸이 아파와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랜스 엘드리안.
대륙 최강자.
라피엘의 길드장.
엘드리안의 가주.
프란시스의 아버지.
이제는, 나의 아버지.
그는 악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다.
"정확해.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
기분나쁘기만 한 신도 랜스 엘드리안에 비해서는 반갑다.
"우선은 브리트라의 알을 사는 게 좋을걸? 너도 봐서 알겠지만..."
말에 대꾸하고 싶지도 않다.
"브리트라를 사도록 하지."
어차피 떠날 거라 상관 없다.
이 망할 가문에 하루라도 더 있을까보냐.
'내 돈도 아니게 될텐데.'
"흠...괜찮으신겁니까, 프란시스님?"
관리자는 반쯤은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많이 힘들어 보이시던데요.."
반쯤은 약해진 소비자에게서 뜯어먹으려는 표정.
"천만 골드, 내지."
"천이백.."
"천만 골드. 내도록 하지."
"..예, 천만 골드로 하지요."
"다만 보관 환경이 워낙 특수한 지라, 부화 시기가 되면 가져가셔서 계약하는 걸로 해야 할 듯합니다."
"마음대로 해."
일이 끝나자 마자 나는 알 거래소를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이 썩어빠진 가문을 당장 떠나야 돼!'
"킥킥, 꽤나 충격 먹었구만."
다시 보니 신도 만만치 않게 증오스럽다.
"하지만 아직은 여기서 볼 일이 다 안 끝났단다."
"아직 진정한 목적을 이루지 않았거든."
스윽 —
손가락이 저절로 엘리베이터의 3층을 눌렀다.
신이 물리적인 간섭력을 사용하는 듯 나의 몸을 조종한다.
'이게 무슨..! 진정한 목적?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띵-
또다시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린다.
신의 조종 아래에서 발이 강제로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스파이시. 제트 드래곤. 3층에는 희귀종들이 있는건가.'
'과거에 봤다면 정말 놀랐었겠군.'
5층의 전시열을 보고 온 후에는 크게 감명깊지 않았다.
'이봐, 신. 브리트라를 사길 원하는 것 아니었나?'
"브리트라는 랜스 엘드리안의 명령이니까 당연히 사야 하는 거고, 너를 위한 용은 따로 있지."
"내가 말했잖아, 전설적인 테이머로 만들어 준다고."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군.'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알들의 미로를 헤쳐나가는 스스로의 발걸음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멈춰선 곳은 프로스티의 알이 전시된 평범한 알 케이스.
바람 속성. 일반 개체. 특이사항 무.
가격은 8천 골드.
"바로 이 녀석이야."
프로스티?
"아니아니, 평범한 프로스티가 아니야."
"들어봤나?"
"황금안의 프로스티라고."
'...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는군.'
설마 그 옛날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건가?
"분명 사실이야."
"황금안의 프로스티를 파트너로 한 테이머는, 무조건 우승을 한다."
"패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거슬린다.
전생에 지브롤터와 함께하며 수없이 들어왔던 말이었다.
'그런 미신 따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
'용과 테이머의 유대, 그리고 실력이 있다면—'
"그럼 넌 왜 전생에 우승하지 못했지?"
'... 그 때는, 운이 안 좋았다.'
'참가자가 돌발 행동을 하는 건 예측할 수 없었어.'
"풉, 하하, 하하하!"
특히 재수없는 웃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비참하게도 나에게만 들리는 듯하다.
"그래... '운이 안 좋았다'라..."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이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이 세상은 내가 만드는 법칙으로 돌아간단다, 이카루스."
녀석은 기분 나쁘게 내 전생의 이름을 강조했다.
마치 내가 패배했다는 사실을 다시 알려주듯이.
"황금안의 프로스티가 우승한다는 것은 내가 아주 오래 전에 '법칙'으로 제정해 놓은 '사실'이야."
"15살의 테이머가 바위 드래곤으로 레이스를 우승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말이야."
...?
"생각해 봐! 갑자기 와일드 드래곤이 돌을 던진다?"
"그런 게 우연일 리가 없잖아! 크큭, 안 그래?"
.....
"그래, 불공평했지!"
"나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이번엔 도와준다는 거야."
"여기 이 황금안의 프로스티로 말이야."
"좋은 게 좋은 거지, 안 그래?"
15년 전... 그게 이 녀석의 짓이었다고?
그렇게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당부했는데, 그 긴 세월동안..!
"아니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은 맞았다니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모두 내가 한 게 맞아."
'아차, 이렇게 의식적으로 생각하면 들리는 건가.'
..분명한 건 이 녀석을 머릿속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하지만 어디까지 조종할 수 있는거지?'
'몸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대답이 없는 걸 보니 확실히 의도적으로 생각을 숨기면 듣지 못한다.
"어쨌든, 이제 프로스티를 사서 나가자고."
녀석은 또다시 나의 몸을 조종하여, 프로스티의 알을 사고 1층으로 내려갔다.
'기분 참 더럽군.'
떠들썩한 엘피스의 거리.
둘러보니 신기한 상점들이 펼쳐져 있다.
'이 중 하나쯤은 있겠지.'
어떻게든 신을 머릿속에서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점술집—! 점술집이라면 해결 방법이 있을지도.'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만약 프로스티를 산다고 하면, 랜스에게는 어떻게 설명할 거지?'
우선은 녀석에게 설득당한 척 연기해야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연스럽게, 천천히 점술집 방향으로.
"음... 숨기거나, 재미로 샀다고 하면 되지."
"게다라 브리트라랑 파트너 계약을 맺게 된다고 해도 상관 없어."
그래, 계속 떠들어라.
"두 드래곤과 동시에 파트너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
'한 번에 파트너를 둘이나? 그게 가능하다고?'
와중에도 도시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지나며 점술집으로 향한다.
신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제발..!'
시야에 점술집이 들어온다.
이제는 들키지 않을 수 없다.
"잠깐, 너 뭐하-"
'황금안의 프로스티가 있으면 루드오어도 이길 수 있나?'
옛다, 네 녀석을 자극할만한 질문.
'신', 네놈이 최소한의 지능이라도 있다면 나를 멈추게 해야지.
하지만 역시 녀석은 자신의 '세상'과 '법칙'에 도취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당연하지! 내가 만든 운명의 법칙은 절대적이라고. 루드-"
방심한 틈을 타 온 힘을 다해 점술집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화악—
"허억, 허억."
커튼을 제치고 들어간 오두막은 비어 있다.
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봐.'
'이봐, 신.'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큭큭.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전생에 들락거리며 들은 바로는 점술집 안에서는 그 어떤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는데.'
신도 이 법칙의 예외는 아닌 듯했다.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라는 건가. 어쩌면 "신"이 아닐지도..'
"무슨 일로 왔는가?"
뒤에서 익숙하지만 께름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점술집의 주인장.
생김새도 목소리만큼이나 불편했다.
주름과 점으로 가득한 피부, 낡은 자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등은 심하게 굽어있었다.
그 누구도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정체모를 마녀.
치유, 예언, 도박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엘피스의 점술집.
"그, 제 머릿속에 신..이 있는 것 같아서요."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마녀는 마치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 후 기분 나쁜 보라색 커튼 뒤로 사라졌다.
촤악-
커튼 뒤에는 천막에 가려진 수많은 방들이 펼쳐졌다.
'돌아다니는 말로는 지하 세계의 모든 활동이 이 무한한 공간에서 시작된다지.'
...하운드 덴도 여기서 만났는데.
멈칫.
"여긴가요?"
오른쪽의 방에 떨밀려 들어섰다.
'앞이 안 보이는데.'
누군가 무엇을 중얼대고 있다.
번쩍-
"뭐, 뭐야!"
눈을 떠보니 다시 처음 천막집이다.
알지 못할 마법 주문을 받고, 쫓겨나듯이 순식간에 이동한 것 같다.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잘 된 거겠지..?'
신이 다시 돌아온다면 큰일이다.
그땐 점술집에서 살아야 할지도.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 찰나,
'아, 맞다.'
"오늘의 운세..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잠시 침묵에 잠겨있던 마녀가 입을 연다.
"... 조심하게나. '그'는 자네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야."
"어쩌면 더 위험할 수도 있지."
평소에는 들어맞지 않는 헛소리만 지껄이던 노인네의 말이 오늘따라 저주처럼 다가오는 것은 기분 탓일까.
점술집을 나오는 순간.
신의 잔소리나 협박이라도 있을 줄 알았지만, 머릿속은 고요했다.
'해치웠나?'
이래도 돌아오지 않는군.
"후..."
다행이다.
이젠 뭘 해야 되지.
'한시라도 빨리 희망의 숲으로 향해 지브롤터를 찾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하지만 당장 안티아고가 알 거래소 앞에서 날 기다리며 마차에서 대기하고 있다.
'혼자 돌아간다면..'
그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뻔하다.
"일단은 가문으로 돌아가자."
"이후, 안티아고와 함께 탈출하는 거야."
그러곤 내 갈 길을 가야지.
그렇게 알 거래소로 돌아온 나는, 머릿속의 방해꾼 없이, 안티아고와 함께,
악마의 소굴로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