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엘피스.
"마지막으로 와봤던 8년 전보다도.."
전생에 비해 말도 안되는 발전 속도다.
처음 보는 신기술, 가젯, 그리고 유흥거리까지.
소문으로는 대형 길드들 - 라피엘과 펠드라 - 가 빠르게 이권을 확보해 기술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고 한다.
신문물로 붐비는 길거리를 다니며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분명 6년 전, 정보 길드에서 대형 길드와 하운드 덴이 연관이 있을거라 했어.'
'하운드 덴은 유타칸에 존재하지 않는 기술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6년 사이..
'대륙 전반에서 수 차례의 재앙이 발생했지.'
의문의 폭발. 드래곤 다량 학살. 고위 관직자들의 "자살".
이제는 하운드 덴이라는 이름이 어린이들의 밤 동화에 나올법한, 공포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엘피스의 변화를 보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엘피스의 기술력은 비현실적이진 않아.'
그래도 랜스 엘드리안이라면 무언가 수를 썼을 법 하다.
정류장에서 얼마 걷지 않아 루키대회 본선 접수처에 도착했다.
"와~ 저기 봐!"
수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 최고의 테이머를 보려고 모여 있다.
부자들의 도시인 엘피스에는 유흥거리, 가령 테이머 대회가 엄청난 인기를 가진다.
"딜런 선수! 여기 좀 봐주세요!!"
주변에서 다른 테이머들을 반기는 환호성이 들린다.
'지브롤터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군.'
'응?'
뒤에서 누군가가 등을 툭툭 친다.
몇 년 전에 정거장에서 본, 익숙한 소년의 얼굴이다.
"네가 그 바위 드래곤의 테이머야?"
오랜만이네.
"난 마룬이라고 해! 나도 —"
"어, 어??"
"뭐, 뭐야 너! 너, 넌!"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가보네.'
여기서 정체가 들통나면 곤란하기에 나는 빠르게 소년의 입을 막는다.
"아~! 만가서 반가워! 마룬이지?"
"난 텐파 지역에서 온 이카루스라고 해!"
그러고는 귓속말로,
"야야, 알겠으니까 그건 말하지 말아봐."
내가 엘드리안인 것을 아는 거의 유일한 인물.
"여기서 말해봤자 좋은 게 없다고."
녀석의 적잖게 놀란 표정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 가만히 얼어서 충격에 휩싸여 있다.
그러더니 빠르게 내 옷깃을 잡고는 귓속말을 한다.
"너, 너! 도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이러면 내가 알려준 —"
'훗, 바람의 신전에 대한 걸 말하는 건가.'
따져야 할지, 아니면 내가 까먹었을지 갈등하는게 선명하게 보여서 웃음을 참을 수 없다.
"크크, 걱정 마, 친구. 까먹지 않았으니까."
"근데 믿거나 말거나, 난 네가 말해주기 전에도 알고 있었어."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에게도 말 안하는 건데!"
"진짜라니까. 레이스에서 보여줄게."
"아마 너도 모르는 트릭들을 내가 훨씬 많이 알걸?"
"하, 지금 나한테 도전하는 거야? 우리 럭키마룬은, 너네- "
"라피엘 길드의 딱까리들을 모두 정리하고 본선에 진출했다고!"
확실히 무시할 실력은 아니다.
"그정도는 해줘야지, 나랑 경쟁하려면."
거만하게 받아친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인걸.'
그러는 사이 잦아들었던 웅성거림이 다시 일어선다.
저 멀리 입장하는 처음보는 드래곤.
'저걸 드래곤..이라고 부를 수 있나?'
마치 기계가 드래곤의 몸을 잠식해 조종하는 듯한 느낌이다.
마룬이 생명체의 불쾌한 생김새에 한 마디 한다.
"야, 저게 드라고노이드야?"
"이름처럼 괴상하게 생겼네."
드래곤과 로봇의 조합인가.
"그러..게. 다들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테이머가 퍼니랬나? 옆에 있는 저 애 같은데."
드라고노이드의 테이머도 만만치 않게 생김새가 특이하다.
밝은 핑크색 머릿결을 양갈래로 하고서는, 기계공이나 쓸 것 같은 투박한 고글과 신체 여러 부분에 가젯들이 장착되어있다.
"레이스에서 만나면 멀찍이 떨어져서 가야겠다."
"도대체 능력이 뭐일지 예상도 안 가."
'벌써 내일 있는 레이스를 생각하고 있군.'
"동감이야. 굳이 불필요한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지."
거북한 분위기가 점차 사그라들고, 다른 유명 테이머들의 등장에 사람들은 다시 원래처럼 환호한다.
어떤 지역의 누구. 어떤 지역의 누구.
'난 굳이 다른 테이머들에 대해 조사를 하진 않으니.. 아무도 몰라보겠군.'
전생부터 콜로세움 전투 때 드래곤의 특성을 찾아보는 정도의 준비만을 했다.
'어떤 테이머들은 상대의 성향, 드래곤의 특성, 스킬, 심지어 가족관계까지도 뒷조사를 한다고 하는데.'
순수 실력만으로 대결하는 편이 더 깔끔하지.
하지만 마룬은 그렇지 않은 가보다.
"이야, 저기 봐. 딜런과 루미네스야!"
"루미네스의 최고 속력은 무려 시속 167km로 찍혔대."
"테이머 협회의 공식적인 측정인데, 역대 20위 안에 드는 기록이라나, 뭐라나."
전생에 지브롤터의 시속을 측정해 본 적은 없지만..
"확실히 시속 167km면 상당히 빠르네."
"그래도 레이스가 스피드로 결정되지는 않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빠른 레이서가 지름길까지 똑같이 숙지하고 있다면 이기지 않겠어?"
"근데 그나저나, 럭키의 최고속력을 맞춰봐!"
마룬은 특유의 얼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미소를 짓고 있다.
"140? 150? 윈드 드래곤은 바람 속성 중에서도 꽤 빠른 걸로 알고 있는데."
"크크, 놀라지나 마... 바로, 무려 210km!"
"그래, 럭키의 최고 속력은 자그마치 시속 210km야."
"이는 역대 최고 기록 — 너네 형과 루드오어의 기록인 202km를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지."
"에이.. 말도 안되는 소리."
"혹시 속력을 기류 속에서 측정해 놓고 드래곤의 속도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지?"
"아아~ 물론 기류 속에서 측정한 기록이지."
"그래. 기류 속에서... "
무언가 숨기고 있는 느낌이 들지만, 기류 속에서라면 일시적으로 수백 키로까지도 속도를 낼 수 있다.
'크게 대단한 기록은 아닐텐데.. 자신감이 대단하네.'
"꺄아아~!"
또다시 관중의 환호가 대화를 중단시킨다.
지금까지의 환호성 중 가장 크다.
'드디어 왔군.'
유타칸 대륙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슈퍼아이돌.
인기로만 따지면 이미 슈퍼 루키 타이틀을 거머쥔 거나 다름없는,
"대륙 최강 루키" 센티넬이다.
지난 6년동안 세냐와 시타엘의 이름은 소문으로도, 신문으로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 누구와 대결하여 이겼다,
어떤 몬스터를 물리쳤다,
어떤 길드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 중엔 라피엘도 있었던가.'
한 켠으로는, 아니 진심으로,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직접 대결을 해 볼 이 날을 끝없이 기다렸지.'
'콧대가 높아진 후배에게 아직은 배울 것이 남았단 것을 가르쳐 줘야겠는걸.'
세냐는 날 보자마자 소리쳤다.
"이카루스!"
'이렇게나 빨리 알아보다니.'
옆의 마룬은 적잖게 당황해 보인다.
"뭐, 뭐야, 너! 세냐 님과 아는 사이야??"
'테이머들에겐 우상으로 여겨지니 "세냐 님"으로 불릴 만도 하지만 좀 어색하네.'
"뭐.. 아는 사이긴 하지."
몇 년만에 다시 재회하게 된 소녀는 어느새 달려와 내게 껴안겼다.
'여기..서는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데.'
주변에서는 웅성이는 소리가 퍼지며 카메라의 플래시 소리도 폭주한다.
테이머 대회 기간에는 대회 관련, 특히 테이머들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온갖 소문이 도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정말 오랜만이야, 세냐."
"너라면 당연히 본선 진출할 걸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난 진출자 명단을 안 보고도 네가 있을 줄 알았는걸."
"그동안 재밌는 일을 많이 하고 다니셨더만."
"종종 전해 들었는데."
"훗, 뭐. 대륙 최고의 테이머가 될 사람이 어린 시절 이정도 서사는 있어야 하잖아?"
"아직 루키대회도 우승 안하고서 기대가 크네."
"손수 가르쳐준 스승도 여기 있는데 말이야."
"네가 내 스승? 하, 그 때 잠깐 그런 것 갖고 그러면 안되지."
"지금 실력은 스스로 일궈낸 거라고!"
그렇게 농담 섞인 대화를 하던 중 세냐가 마룬을 눈치챘다.
"그나저나 이 분은 누구셔?"
"아, 처음 뵙겠습니다 세냐 님!"
풋, 긴장했나?
"전 라핀 지역에서 온 마룬이라고 합니다!"
"여긴 제 파트너 드래곤 럭키고요!"
"와, 라핀 지역이요? 거긴 정말 치열할 텐데..!"
윈드 드래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본선에서 기대되네요!"
"근데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
마룬과 처음 만났을 때..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이었지.'
그리고 고작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이지만 어떤 이유로 절친인 기분이 든다.
"아, 예전에 정류장에서 만난 적이 있어서."
"그나저나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걸? 여기 마룬도.. 꽤 놀라운 친구라고."
세냐는 주변을 둘러보며 관중 곳곳의 경쟁자들을 한 번씩 관찰한다.
"뭐, 사실.. 여기 있는 전부가 다 그렇지 않을까?"
"난 방심하지 않는다고, 이카루스."
댕 — 댕 — 댕 —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집합 신호다.
"그래, 그럼! 다들 최선을 다해보자고."
"만약 콜로세움에서 만난다면, 결승에서 만나고 싶네."
시타엘과 한 번 겨뤄보고 싶다.
"물론, 세냐 네가 결승까지 올 수 있다면 말이야."
"레이스에서 탈락하실 분을 내가 콜로세움에서 걱정할 필욘 없지."
'역시 마지막까지 지지 않고 재치있게 받아치네.'
"이제 가볼까, 지브롤터?"
그렇게 각자 드래곤에 올라타 대회의 시작 장소로 이동했다.
떨림과 기대감. 묘하게 공존하는 익숙한 그 기분이다.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광장.
16명의 테이머를 위한 16개의 원형 무대가 있다.
'흠, 내 자리는 저기인가.'
"이카루스, 바위 드래곤"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
대회 중계자가 입장한다.
전생에 내 대회를 중계했던 같은 자이다.
'전생에 이 나이 땐 루키가 아니라 메이저 대회에 나갔었는데.'
'지브롤터도 25레벨이었지..'
'루키 레벨 제한을 넘겨서 한 번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메이저 예선에 참가했다 붙었었는데.'
"자~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부터 제 67대 루키 드래곤 테이머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돌아온 것이 실감나네.
"온 대륙을 통틀어 선출된 16명의 루키들!"
"영재, 천재, 괴물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자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본선에 진출한 무시무시한 신성들입니다!"
"모두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1번 선수 딜런과 파트너 루미네스!"
우레와 같은 함성.
...
"9번 선수 마룬과 파트너 윈드 드래곤!"
관중은 비교적 조용하다.
'수도권이라 그런지 일반종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하네.'
그렇게 소개를 모두 마친 뒤, 드래곤마다 자신의 특기를 과시하는 시간을 가진다.
누군가는 재치있는 기교를, 누군가는 압도적인 화력의 스킬을 뿜어낸다.
'여기서 전력을 노출하는 바보는 없겠지만.'
"자, 그럼! 관례적인 인기 투표를 시작해 볼까요, 하하!"
"모든 분들은 이번 대회 우승자가 누가 될 것 같은지 투표해 주시면 됩니다!"
'올해도 빠짐없이 하네.'
큰 의미는 없는 투표다.
세냐가 압도적인 1위, 그것도 말도 안되는 전체의 43%의 표를 가져간다.
'역시는 역시구만.'
15년 전 프란델이 루드오어를 데리고 등장해 57%를 기록한 이후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2위는 딜런과 루미네스, 25%.
'아까 과시한 푸른 빙결꽃 덕분이겠군.'
그리고 15, 16위는 나란히 마룬과 내가 차지한다.
"자, 이쯤하면 소개의 장은 마무리 지어도 될 것 같군요!"
"테이머 분들은 내일의 레이스를 대비해 푹 쉬시고, 관중 여러분도! 많은 기대 해주시기 바랍니다!"
큰 환호성과 함께 행사가 끝나고 모두 숙소로 들어간다.
'세냐도 그렇고, 마룬까지..'
몇몇 테이머들과 같은 여관에서 머물게 된 듯하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역시 내일의 레이스를 위한 컨디션 관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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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과 긴장감이 가득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온다.
밖에는 다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똑.
"이카루스, 일어나 봐!"
마룬인가?
"이카루스, 이게 사실이야?"
방문을 열자 마룬이 엘피스 일보를 얼굴에 들이민다.
"유타칸의 영웅 세냐, 8번 선수와의 열애"
'뭐야, 난 이름도 안 써준건가.'
살짝 자존심 상하지만 쓸데없는 가십 기사를 읽을 시간은 없지.
"사실이겠냐고. 그냥 옛날에 잠깐 같이 알던 사이야."
"그나저나 빨리 가야 하지 않아?"
시계는 8시 40분을 가리킨다.
"이제 곧 포탈이 열릴 시간인데."
"그래도 뭔가 수상하단 말이지.."
뭐가 수상하단 거야,,
"그럼 대회가 끝나면 알려줘!"
"다행히 늦진 않았네."
이미 나머지 14명의 테이머는 준비되어 있고, 광장 위 수십 미터 상공에 커다란 포탈이 생성되어 있다.
"저걸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야."
마치 공간을 왜곡하는 것처럼 보이는 검푸른색 타원.
모험 지역으로 바로 향하는 참가자 전용 포탈이다.
'근데 하운드들이 사용했던 포탈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데.'
"더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준비 되셨나요~~!"
"테이머 분들, 모두 포탈로 입장해 주세요!"
"이제 곧 이번 대회의 첫 번째 심사,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관중들이 남아서 광장 중앙의 전광판을 바라보는 동안 테이머들이 번호 순으로 포탈 속으로 사라진다.
심사원 판정을 제외한 테이머 대회의 모든 과정은 온 대륙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대회 기간 동안에는 수많은 활동들이 정지되고 많은 이들이 대회에만 집중한다.
'하긴, 대회 결과에 따라서 대표 지역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이 결정되기도 하니.'
만약 어떤 지역의 테이머가 우승한다면 지역 주민들은 즉시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물론, 보통은 엘드리안가가 위치한 라핀 지역, 펠드라가 위치한 테르 지역, 그리고 모험 지대가 가까운 라르파 지역에서 우승자가 나오기는 하지만.
"가는 길에 비행 연습 좀 하자고, 지브롤터!"
공중에서 바람을 가르며 여러 화려한 동작들을 한 후에 포탈에 들어선다.
반대 쪽으로 나오니 희망의 숲 상공이다.
'여긴 햇살이 참 따뜻하네.'
예전에는 공포와 어둠이 가득차 보였던 곳도 이제는 정말로 희망이 가득해 보인다.
우승의 희망.
레이스 출발 선에 도착하여 나머지 테이머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초반에 배정된 레인이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우측 9번 레인에 마룬이 있으니 특별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이제는 말없이 눈빛만을 교환한다.
마룬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장난기와 자신감이 감지된다.
저 멀리서 쳐다보는 세냐의 눈에서는 경쟁심, 그리고 특유의 에너지가 보인다.
지금 내 눈에는 무엇이 비출까?
경기 시작 5초 전.
4, 3, 2, 1.
총성이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