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아온 다음날.
생각보다 전날의 패배가 쓰리게 다가왔다.
레이스에서 3위, 콜로세움 전투에서 2위를 했다는 건 이번 대회 우승은 물 건너갔다는 것.
'엄밀하게 따지면 다시 참가할 순 있지.'
지브롤터가 20레벨이었기에 내년까지 레벨을 21 내로 유지한다면..
'그래도 의도적으로 성장을 늦추고 싶지는 않아.'
즉,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루키대회라는 것.
'애초에 메이저 대회 우승이 꿈이었긴 했지만,'
루키대회에서 패했다는 사실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자, 어느새 다사다난한 이번 대회도 그 끝이 다가왔습니다."
"지난 밤, 드래곤 테이머 협회에서 콜로세움 전투까지 치른 총 8... 6명의 테이머들에 대해서 심사원 판정을 진행하였는데요!"
"이 세 번째 심사로 제67회 루키대회의 우승자가 정해질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냐의 우승을 점치고 있다.
'객곽적인 등수만 봐도 레이스에서 2등, 콜로세움 전투에서 1등으로 가장 높으니.'
결승전에서 보여준 기량까지 고려한다면 심사원 판정에서의 결과도 뻔하다.
이미 엘피스 특보에는 세냐의 "슈퍼 루키" 타이틀을 축하하는 기사들이 1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래도 너무하군.'
불과 이틀 전에 일어난 대규모 사고는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자, 그럼 최종 합산 결과를 8..!"
"6위! 부터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심사원 판정이 공개되면 우승자도 예상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심사원 판정 이후에는 세 심사의 결과를 모두 합산한 최종 결과를 공개한다.
물론 레이스, 콜로세움 전투, 그리고 심사원 판정의 공식적인 반영 비율은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는 기밀이다.
지금까지의 기록을 모두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비중이 대략 비슷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는 하다.
...
"4위! 딜런 선수와 루미네스! 축하합니다!"
..그래도 3등은 무사히 했군.
"3위! 마룬 선수와 윈드 드래곤!"
!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관중석에서도 웅성거림이 조금씩 일어난다.
객관적으로 보아서는 1위, 3위를 한 마룬이 3위, 2위를 한 나보다 앞서야 한다.
'마룬은..'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래, 사실상 레이스도 내가 우승을 할 뻔했고, 보여준 트릭이 더 많았으니 심사원 판정에서 그걸 쳐줬나보다.'
콜로세움에서 맞대결도 승리했으니 정말 나올 수 없는 결과는 아니다.
"그리고, 2등을 발표하기 전에..."
"제67회 루키 드래곤 테이머 대회, 대망의 우승자는...!"
"이카루스 선수와 바위 드래곤!!"
"이카루스 선수가 슈퍼 루키 타이틀을 거머쥡니다!"
잠깐, 뭐라고?
이게 무슨-
우우우—
우우—
관중석에서 큰 야유가 쏟아져 내린다.
중계자는 자신이 읽어놓고도 당황한 듯하다.
"마, 마저 발표를 하겠습니다!"
"2위, 세냐와 시타엘 선수! 아니, 세냐 선수와-"
세냐의 우승을 광적으로 바라던 관중들이 점점 격해진다.
그 반응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누가 봐도 이번 대회의 승자는 세냐였을텐데.'
2번 자리에 있는 세냐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가, 중계자를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둘 곳을 몰라한다.
'아니야, 이건- 나도-'
엄청난 소음 속에서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른다고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는 어떻게 포장해도 정당하지 않은 우승이다.
!
관중석에 릴리아 이솔데도 보인다.
아니, 정면으로 째려보고 있다.
날카로운 눈빛에서 '이게 네가 말한 "불가능"을 뚫어내는 우승인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상 들린다.
쿠워어어 —
관중의 소음을 한 순간에 압도하는 거대한 울음소리.
'뭐지?'
곧 광장이 거대한 검푸른 그림자에 삼켜지고 침묵 속에서 모두의 시선이 하늘 위로 집중된다.
'하필 왜 지금..'
그가 왔다.
프란델 엘드리안, 그리고 루드오어.
중계자가 당황한 사이에 프란델은 무대에 착지해 마이크를 장악한다.
"모두 조용."
말에 무게가 실려 있다.
작년 메이저 대회 우승자의 발언권은 강력하다.
그것도 루드오어의 테이머라면 더욱.
"레이스에서 새로 개척한 지름길 3개. 전무후무한 바람의 신전 공략법. 예상 단축 시간 4분 31초."
"무지개 동산 마지막 500m 정상 주행시 예상 기록 21분 17초, 루키대회 역대 신기록."
"콜로세움 전투는 결승 제외 압승."
"..이정도면 충분히 우승할 만도 하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런가?"
말도 안되는 개소리잖아.
'정상 주행시', '결승 제외', 모두 패자의 추한 가정이며 구질구질한 변명이다.
..하지만 관중은 싸늘할 정도로 조용하다.
릴리아 이솔데는 어느새 관중석에서 사라져 있다.
"그럼 다시 공표하지. 제67회 루키 대회 우승자는—"
"프란시스 엘드리안, 그리고 바위 드래곤."
...
3초간 적막이 흐른다.
그리고 엘피스 광장은 이전보다도 더욱 시끄러운 아우성에 휩싸인다.
'도대체 어떻게-'
하필이면 오늘?
찰칵! 찰칵-
기자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댄다.
'세냐. 세냐!'
'마룬!'
둘 다 역겨워하는 표정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자리에서 벗어난다.
'안 돼.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몰랐다고! 나도 모르는 일이야!'
서둘러 지브롤터에 올라탈 준비를 한다.
'어서-'
쫓아가서 해명을 해야 한다.
"프란시스 엘드리안, 허락 없이 퇴장하지 마라."
"시상식이 끝나고 가문으로 귀환하라는 가주님의 명령이다."
'랜스 엘드리안의 명령은 개나 주라 하지.'
네놈들 손에 다시 들어가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줄 알고?
분명 이쪽으로 갔는데...
'아!'
광장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 세냐와 마룬, 그리고 두 드래곤이 보인다.
릴리아 이솔데와 함께 있다.
지브롤터에서 내려 분주하게 달려간다.
"세냐! 마룬-"
스윽 —
릴리아 이솔데가 검집에서 순식간에 검을 뽑아 내 목에 겨눈다.
전생에 칼을 맞아본 경험이 번쩍 떠오른다.
"잠시만요, 길드장님! 칼은 내려주세요!"
세냐! 정말 다행이다.
내 말 좀 들어봐-
"아까 저기 - 프란델 - 다 설명할 수 있어."
시간만 있다면 모든 걸-
"지금 오해할 만한 상황인 것 충분히 아는데, 설명을 잠시만-"
"오해할 만한 상황?"
릴리아 이솔데가 차갑게 끊는다.
"사실 관계는 충분히 명확한 것 같은데,"
"프란시스 엘드리안."
"네가 원해서든 아니든, 넌 엘드리안가의 힘에 입어 테이머 대회를 부당하게 우승했어."
"그 과정에서 우리 길드원의 우승 자격, 그리고 2위 자리마저 빼앗지 않았나?"
2위는..!
그럴 수도 있지... 않았나.
"혹시 네가 직접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이 모든 게 괜찮아진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만 정말 한 게 없는데..!"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게 뭔가요?"
"하..."
도대체 왜, 왜 한숨을 쉬는 거야?
나도 같은 처지인데.
"없어."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내가 말했지. 언젠가는 정신을 차려야 할 거라고."
"그리고 지금 엘드리안가에서 널 찾으려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피차 시간 낭비하지 않고 이만 가는 게 좋을 것 같군."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어차피 전 타이틀, 부당하게 우승한 것 다 필요없고 그저-"
"그럼 바위 드래곤을 버려."
"..!"
"내 제안은 똑같아."
"수락할 거면 지금 하고."
이솔데는 아까부터 조용한 마룬을 가리킨다.
"길드에서 여기 마룬 길드원에게 지원한 것처럼 희귀종을 지원해 줄 수 있으니까."
"...그건... 안됩니다."
"그럴 것 같았어. 우린 이만 가도록 하지, 세냐, 마룬."
"넵, 길드장님."
그동한 쌓아왔던 우정이 단 하루의 계약관계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럼 어디로 가는지만이라도 알려주세요!"
"기밀이다. 뒤 조심하고."
슈욱 —
쿵 —
라피엘 소속 경호원들이 드래곤을 데리고 하나둘 착륙한다.
이미 도주로가 대부분 막혀있다.
이대로면 잡히는 건 시간 문제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릴리아 이솔데는 떠나있다.
세냐와 마룬도 함께.
정말로 작별이다.
오늘 같이 엘피스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나중에도 자주 만나자고 했는데.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다.
지브롤터가 옆에서 옆구리를 찌른다.
'고마워. 덕분에 정신을 차렸어.'
경비원들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지금 탈출하지 않으면 친구들이고 뭐고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
"지브롤터, 저공 비행으로!"
"저기, 우측에 있는 골목으로 가자!"
비행을 하자마자 뒤에서 드래곤들이 이륙하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 서십시오, 프란시스 도련님!"
"길드장님의 명령으로 가문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대드래곤용 포위 그물이 쉴 새 없이 날아오지만 지브롤터가 건물 사이사이 암벽 기둥을 생성하며 잘 막아주고 있다.
그래도 경비망을 탈출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지브롤터랑 같이 있으면 몸을 숨길 수 없어.'
그렇다고 추격전이 계속되어도 불리하다.
"안되겠어, 지브롤터! 난 혼자 알아서 숨을 테니까 너 혼자만이라도 도망쳐!"
"빨리! 그곳에서 만나는 거야! 내가 곧 찾아갈게!"
다행히도 지브롤터는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다.
텐파 지역에 있는 아지트는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비밀 장소이다.
'여기서 잘만 빠져나가면 무사히 재회할 수 있어.'
드래곤 없이 엘피스의 복잡한 뒷골목을 따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주변이 처음 보는 것 투성이다.
그동안의 기술 발전으로 인해 도시 구조는 더더욱 복잡해 진것만 같다.
다행인 점은 추격자들을 더 쉽게 따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삐이익 —
전방에 포위하고 있는 또다른 경호 인원이 보인다.
'라피엘 소속은 아닌데.. 엘피스 경찰인가?'
경찰까지?
왜 굳이 나서서 라피엘을 도와주는 거지?
엘피스 경찰보다 이 골목길을 내가 더 잘 알 리가 없다.
포위망이 좁혀오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돌아오지 않으면 합당한 처분이 내려질 거다, 프란시스 엘드리안!"
프란델의 목소리.
이 모든 일의 시발점. 듣기도 싫다.
이젠 정말로 방법이 없다.
'이대로면..'
"도련님!"
'경호원의 목소리가 아닌데,'
발 밑에서 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린다.
끼익 —
"도련님, 빨리요!"
맨홀 뚜껑이 열리면서 예상치 못한 얼굴이 나온다.
안티아고.
"안티아고? 네가 여긴 무슨 일로-"
"시간이 없어요! 밑에서 설명할 테니 빨리 들어오세요!"
서둘러 사다리를 타고 하수 시설 내로 들어간다.
밖에서는 여전히 호루라기 소리와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들린다.
'다행히 들키지 않은 것 같군.'
"안티아고, 정말 오랜만이야! 근데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거야?"
"아, 그, 제가 예전에 정류장에서 말씀드렸잖아요.. 아는 분들이 계신다고."
"그분들이랑 함께 지내고 있는데 도련님께서 위험하시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찾으러 왔어요!"
아는 사람들?
"다른 분들도 골목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제가 찾았네요."
당장 구해준 것은 고맙지만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안티아고가 랜스 엘드리안과 자발적으로 손을 잡았을 리는 없지만, 만에 하나 속은 거라면...'
"아는 분들이 누구신데?"
도시의 지하 하수도는 생각보다 청결하다.
"그리고 왜 이런 하수 시설에 있는 거야?"
밝은 전등과 깨끗한 복도들이 이어져 있다.
"A5.. 여기서.. 오른쪽."
"아, 그분들은 여기서 활동하시거든요."
"복잡한 사정이 있는데 그건 도착해서 들려드릴게요."
"그나저나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거야?"
시설은 가면 갈수록 복잡하고 정교해진다.
통로에는 A5, C7 등 특정한 기호가 표기되어 있다.
"음.. 활동을 총괄하는 본부라고 할까요?"
"뭐 그리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들 그곳에 모여있어서.."
이후로 말없이 안티아고를 뒤를 따라 지하 시설에서 이동했다.
어딘가 변한 안티아고의 뒷모습.
'믿을 수 있을까?'
안티아고가 준 아공간 반지 속의 호신용 총을 써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
거대한 원형 철제 문.
삑- 삐빅-
안티아고는 비밀번호로 보이는 코드를 조작하여 문을 열었다.
'이정도 시설을 관리하는 곳이면 꽤나 큰 조직인가 본데.'
'혹시...'
문 뒤에는 거대한 돔형 광장이 열린다.
지하에 지어졌다는 것이 믿겨지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이다.
그리고 천장에는-
'역시!'
-하운드 덴의 문양이 크게 새겨져 있다.
그리고 앞에는 개의 얼굴을 본딴 가면을 쓰고 후드를 쓴 자들로 가득하다.
곧바로 총을 꺼내 안티아고에게 조준한다.
"당장 멈춰."
"..도련님,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아요. 그래도 먼저 설명부터 듣고-"
"닥쳐! 하운드에게 들을 이야기는 없어."
"너도 결국은 랜스와 한 편이잖아!"
"프란시스, 네가 오해하고 있어."
여성의 목소리.
"우린 엘드리안가와 한 소속이 아니야."
예상치도 못했던 인물이 또 등장한다.
프린세스 엘드리안, 프란시스의 누나이다.
"우린 오히려 랜스 엘드리안을 막으려고 하고 있어."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며칠 전만 해도 콜로세움에서 그런 일을 저질러 놓고!"
"그것도 우리가 아니었어. 라피엘 길드에서 저지른 자작극이지."
"생각해봐, 총력 동원에 이솔데도 출동했는데 랜스 엘드리안은 왜 안 왔겠어?"
"게다가 라피엘 길드는 사실상 돕지도 않고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고."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지만 제게 그 하운드 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은 모두 적입니다."
"..그래도 설명할 기회는 줄 수 있지 않아?"
..이건 내가 방금 전 세냐에게 간절히 하고 싶었던 말이잖아.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 보여도, 한 번만 설명할 기회를 달라는 것.
뿌리칠 수 없다.
"우선 이 거리는 유지하고 설명은 들어보도록 하죠."
"만약 설득력이 없는 설명이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