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이 전부 꺼져버린 어두운 밤 하늘 위에 창백한 달만이 있다. 그것을 고요하게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겨버린다.
저렇게 빛나게 자신을 들어냄에도 고요한 달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지는...그 잔잔함은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
쉭, 기척을 느낀 나는 단검을 날렸다. 맞출 생각은.. 없었지만 나에게 다가온 그것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고개만을 살짝 꺾어 피해버렸다.
"No.1, 생각이 많아보입니다. 그 증거로 평소보다 긴 전투 시간이 있겠군요."
나를 No.1이라 부르는 기계적이고 딱딱한 말투를 한 그것은 고요하고 잔잔한 생각에 빠진 나의 상황을 다시 자각시키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아, 너였어? 벌써... 끝낸거야?"
그 녀석을 알고 있다.
"그렇습니다만, 집중하세요. 아직 그것의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녀석이 말 한대로 내가 밟고 있던 것은 아직 죽지 않았는지. 발로 목을 짓누르고 있음에도 이를 꽉 문채로 발버둥치며 그 녀석의 발톱이 내 발목을 있지도 않는 힘으로 긁어내고 있었다.
"날개를 전부 끊어 놓아도, 다리를 박살 내도. 넌 포기하지 않는구나."
나는 긁힌다는 감각도 인지하지 못 한 채로 생각에 빠진 걸까.... 발목은 이미 난도질 되어 있었고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 했다.
"빠르게, 끝내십시오."
"알았어, 알 고 있다고."
재촉하는 그것의 말에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그것의 목을 더 세게 짓눌렀다. 그리고 더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나는 다른 드래곤을 사냥한다.
-
"No.1 오늘은 평소보다 감성적인 것 같군요."
"너는 오늘 따라 더 기계적인 것 같고."
"No.1 저는 기계가 아닙니다.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고 있을 뿐, 감정을 모르는 드라고노이드들과 저는..."
내 말에 그 녀석은 내 말에 지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을 멈추는 것은 내가 사과를 하는 것 뿐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잘 못 말했어."
"아셨다면, 더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 녀석은 그렇게 입을 다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인이 필요 하다고만 생각하는 말만 하는 이 녀석과 나의 관계는 살짝 복잡하다.
내가 No.1이라 불리는 것도 나를 그렇게 불리는 이 녀석과 함께 같이 다니는 것도...
과거에 사람과 드래곤을 융합하는 기괴하고 끔찍한 실험에 나는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이유는 딱히 거창하지 않았다. 나의 삶이 시궁창이고 항상 죽음을 눈 앞에 두며 하루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것에 지친 나는.... 차라리 저 실험에서 성공하여 이보다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함으로 지원을 했다.
그저 단순히 이기적인 감정으로 지원 한거다.
"No.1 당신을 그리 부르겠습니다."
그 녀석은 그때 처음 만났다. 깨어났을 때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 새 하얀 연구복을 입고 노란 긴 머리카락를 가진 그 녀석이 있었고, 나를 No.1이라 부르며 보고서로 보이는 것에 뭔가를 내려 적고 있었다.
"No.1?"
딱히 이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하고도 조잡한 그 부름에는 불만이 조금 있었다.
"평범한 일련번호입니다. 그 숫자는 당신이 첫 번째라는 뜻이고요."
"그 정도는 알아, 근데 첫 번째?"
감각이 이상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조심하세요. 당신이 첫 번째이기 때문에 안정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인다면..."
...
"내 몸이."
내 팔과 다리의 일부가 드래곤의 것으로 변해있었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의 피부 대신 비늘이 덮인 다리와 흉측한 그 팔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실험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안정화 하진 못했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인다면 저희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최악의 상황은?"
"예상되는 경우는 그 팔과 다리에 자아가 생겨 당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드래곤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릅니다. 아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끔찍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네."
"당연한 결과이기에 끔찍한 말이 아닙니다. 오로지 당신을 위한 말입니다."
뭐하는 놈이지. 살면서 처음 보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안경을 치켜올리며 그 녀석은 마치 정해진 대본이 있는 것처럼 내게 말했다.
"당신을 관찰하며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실험의 내용은 이러했다.
사람의 일부를 드래곤으로 융합해 그 드래곤의 능력을 끌어다 쓰게 하는 것이다. 내게 융합한 드래곤은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불리는 드래곤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 같았지만 실험이 진행될 수록 그 목소리는 사라졌고 내 팔과 다리도 그 녀석 말대로 '안정화'에 진입한 것인지 내가 아는 사람의 모습으로도 변하게 되었는데.
"폴리모프입니다."
그때 그 녀석이 그렇게 말했다.
"안 물어봤어."
'...모를거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당연하겠죠, 드래곤을 본 적이 없었을테니."
혹시 내가 입으로 말했나.
"너, 마음 속도 들여다 볼 줄 알아?"
"제게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만약 그런 능력을 가진 드래곤과 융합한다면 보통의 사람보다 좋은 능력을 가질 순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능력을 가진 드래곤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뭐라는 거야? 너무 길어."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조금 짧게 말해보겠습니다. 내일도 좋은 결과 있기를."
실험은 계속 되었다. 안정화가 된 이후에는 드래곤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실험을 했던 것 같았다. 대상은...
"저것들은..."
그 녀석들은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드래곤들을 나와 한 방에 두었다. 나를 그곳에 둔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저 멀리 유리창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의도도 목적도 알 수 없는 이 실험에서 나는 그저 나를 공격하려는 드래곤과 맞서 싸웠다. 그 드래곤은 평범한 도마뱀 급으로 수준이 낮아진 것 같았지만 본 위치가 드래곤인지 맨 몸으로 해치우는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
나는 상처 투성이가 된 채로 다시 내 방에 던져졌다.
"고생했군요. 이번 실험은 예상보다 실망이 컸습니다. 그들도 당신의 잠재력을 낮게 평가하더군요."
"나보고 어쩌라고? 그저 융합 실험이랬지 나보고 싸우란 소리는 안 했잖아?"
"당신과 융합된 생명체가 무엇인지 까먹은 듯 합니다. 드래곤과 융합한 당신은 그 드래곤의 능력 일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게 말이 돼?"
말이 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 그 실험으로 그게 가능해진다고?
"그런 실험이니까요."
그 녀석은 이번에도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일도 좋은 결과 있기를."
실험은 계속되었다. 나는 그 녀석의 말을 듣고 그 능력이란 것을 사용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 정신 나간 드래곤들과의 싸움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쩌다가 한 번 그 능력이란 것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내가 융합한 드래곤이... 드래곤 슬레이어? 그 이름에 맞게, 내 손짓 한번에 한 드래곤의 목이 손 쉽게 썰려 나갔던 것도 기억이 난다.
"훌륭합니다. 성공적으로 실험이 끝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그 녀석이 기뻐하는 표정을 본 것 같았다.
"너, 웃을 줄도 알았냐?"
그 말에 그 녀석은 멈칫하더니 이내 올라간 입꼬리를 다시 내리며 내가 평소에 알 던 그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아 다소 감정이 격해졌나 봅니다. 아무튼 축하 드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실험이 끝난 후에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냐?"
"실험이 끝난 이후는 저도 모릅니다. 저는 당신을 관찰하고 기록할 뿐 그 이외의 일은 알 수 없습니다."
"..."
"내일도 좋은 결과 있기를."
하지만 내일부터 실험은 진행 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녀석을 포함한 그 어떤 이도 오지 않았고 그 날 이후로밥도 물도 그 어떤 것도 내어지지 않았다.
"......죽겠네."
이건 탄식이 아닌 예감이었다. 타는 듯한 목 마름과 배고픔을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결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이제 잠을 잘 수 도 없는 상태로 폐인이 되어갔다.
'....차라리 그 녀석이 말 동무라도 되어줬다면 시시하게 죽진 않을텐데.'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 기다렸지만,
"....."
내가 아는 그 녀석이 아니었다. 반 이상이 드래곤의 일부로 변한 그 사람은 이성을 잃은 상태로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실험은 끝이 났다고 보면 되겠지?"
안쪽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깨지지 않던 유리창이 밖에 있던 그 놈의 공격에 매우 쉽게 깨졌다. 그 덕분에 나는 마침내 그 방을 벗어 날 수 있었고 고립된 시간이 몇 시간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별로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손 쉽게 그 녀석을 도륙 낼 수 있었다.
"....처참하네."
밖을 나가니 온 통 피 범벅으로 복도가 더럽혀져 있었다. 온 갖 곳에는 찢어진 연구복들과 사람들 그리고 드래곤들의 사체가 널브러저있었다. 아무래도 실험은 나한테만 한정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통제도 나만큼 완벽하게 된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일부가 난리를 피운 것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한건가.'
"멍청이들. 어떻게 연구원이 된거야?"
나는 더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위치와 그 넓이를 파악할 수 없는 연구소를 마구잡이로 돌아다녔다.
약한 벽은 부술 수 있었지만 천장과 바닥은 그럴 수 없어서 계단을 하나 씩 올라가고 내려가며 출구를 찾으려고 했다.
"...사람?"
나가려는 도중 어느 층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것도 드래곤 슬레이어의 능력인건가. 나는 빠르게 올라가 그 실체를 파악했다.
No.14... 그 방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거였나."
내가 느낀 건 사람의 기운이 아니라 드래곤의 기운이었던 것 같았다.
"No.1 오랜만입니다."
유리창 너머에는 그 녀석이 칼날과 같은 팔을 가진 채로 그곳에 가두어져 있었다.
"너... 왜?"
큰 당혹감에 나는 말을 쉽게 이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여전히 담담하게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해할 수 없겠지요. 당신의 실험이 끝난 이후, 거의 모든 연구원에게 똑같은 실험이 진행 되었습니다."
"말 하지마."
"하지만 실험 진행 중 일부가 폭주, 그와 비슷한 상태로 날뛴 것으로 판단 되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연구원들이 사망에 이르면서, 더 이상 저희를 관찰하러 오는 연구원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말 없이 그 녀석과 나를 가르고 있는 유리창을 깨 부쉈다.
"더 설명 하지마, 출구 알아?"
그 녀석은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나가자."
나는 그 녀석의 손을 붙 잡고 그 방을 빠져나갔다.
"제 방은 출구와 가까웠습니다. 아마 이 윗층이 이 연구소를 빠져나가는 출구가 있을 겁니다."
그 녀석의 말대로 윗층으로 올라가자 밖으로 통하는 달 빛이 보였던 것 같았다.
"No.1 조심."
그 밖을 나가려고 했을 때, 다급하게 그 녀석이 나를 불렀지만 반응하기 전에 무엇인가 내 뒤통수를 내리친 것 같았다.
"뭐야? 너희들은."
비정삭적으로 거대해진 주먹을 가진 누군가, No.1을 때려 눕히며 나타났다. 하지만 No.14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No.6 왜 아직까지 이곳에 있는 겁니까?"
"그 말투... 너 그 놈이냐? 팔을 보아하니 너도 실험 쥐 꼴이 된 것 같은데. 어때? 우리의 기분이. 우리가 느낀 고통도 이제 이해가 돼?"
"우리는, 나는 실험 쥐가 아니에요. 나 또한 스스로 지원했습니다. 그에 따른 고통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책임? 나는 이렇게 만들어 달라고 한 적 없어. 나를 원래 모습으로 돌려 달라고!!"
그는 거대한 주먹을 그녀에게 휘둘렀다. 그녀 또한 물러섬 없이 날카로운 팔을 전보다 길게 자라나게 하며 맞 받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후....."
진한 보라색의 숨결이 그 복도를 채우며 순식간에 No.6의 팔을 잘라내었다.
"멀쩡히 깨어났군요, 혹시라도 그 공격에 죽은 걸까 걱정했습니다."
나는 심한 두통과 함께 일어났다.
"너... 뭐야, 어떻게..?"
"시끄러워."
나는 한 번에 손짓으로 그것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당연한 결과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경이롭습니다."
그 녀석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 이곳을 나가죠."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이었다. 예전에 시궁창에서 살던 밤하늘은 내게 마냥 어둡고 끔찍한 하루를 끝내는 것이었지만, 연구소를 나온 내게 그것은 처음으로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고 새로운 시작을 느끼게 해주었다.
"너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냐?"
"No.14입니다."
"그런거 말고."
그 녀석은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며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듯 했다.
"너도 이름이 없는 거였냐? 그래서 그 때 말해주지 않은 거였고?"
"그때를 말하는 거라면, "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너 뭐냐고 물어봤었잖아."
"이름... 그때는 분명 있었지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마 실험의 부작용인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 녀석은 갑자기 사과를 했다.
"생각나는 이름 없어? 계속 No.14로 부르기엔 그렇잖아."
"계속..?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날 책임지고 관찰한다며, 같이 가야지."
"...!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업무를 할 수 없습니다. 팔은 이렇게 되어버렸고 당신을 관찰할 방은 더 이상 없습니다."
우물쭈물하면서도 거절하지 않는 그 녀석을 보면서 나는 말했다.
"에스텔 어때?, 저 빛나는 별을 보며 떠올렸어."
"분명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저와의 관계성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어울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울려, 에스텔. 내 이름도 지어줄래?"
나는 잔뜩 기대한 채로 그 녀석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제 능력은 그런 것에 능하지 않습니다."
돌아온 답은 실망스러웠다. 침울해진 내 눈치를 보며 당황한 그 녀석은 다시 말을 이었다.
"하..하지만! 계속 같이 있다보면, 생각 날지도 모릅니다. 노력.. 해보겠습니다."
------------
우리는 그때 이후로 그 곳을 빠져나간 드래곤들을 제거한다.
"지겹다. 언제 끝나려나, 이 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험 당했는지는 몰라도 대부분 만난 것들은 우리와 달리 사람과 드래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
"소홀히 하시면 안됩니다. 당신은 그것들을 해치우는데 능하니까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는 그런 드래곤들을 제거하는,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었다.
--------------------------
본 편 쓰다가 머리 식힐 겸 다른 장르가 써보고 싶어서 한 번 써봤습니다. 그저 재미로만 즐겨주세요.
좋아요와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