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0 잊지 않을 추억 (12)
나이트는 수정을 내려치면서도 금오의 말을 듣고 있었는지 짜증이 가득 섞인 말을 했다.
“다른 방식이라. 물론 겉으로는 그렇긴 하지만 당신의 방식은…. 결국 틀린 방식이 맞지 않습니까?”
이유를 알 수 없는 금오의 도발. 피닉스는 왜 한쪽 팔이 없는 상태로도 G스컬을 저렇게 쉽게 잡는 나이트를 열받게 하려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평소와는 다른 금오의 분위기에 피닉스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금오는 그녀의 손아귀에서 나와 팔을 타고 어깨에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이트 대령,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을 눈치챈 후에는 친히 빠져드렸습니다만, 생각은…. 좀 바뀌시었습니까?”
나이트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살벌한 눈빛으로 금오를 바라보았다.
‘살벌해라…’
피닉스는 금오가 하는 얘기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얘기란 분명 고대신룡 그리고 다크닉스와 관련된 무언가라는 짐작과 그녀마저도 식겁할 만한 그의 눈빛만이 있었다. 피닉스는 분위기가 워낙 무거워 금오에게 속닥거렸다.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해?”
“필요한 말입니다.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을 테니까요. 나이트 대령이 저 수정을 지금까지 깨부수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거든요.”
“그게 왜?”
‘수정이 갈라지지 않는 것은 힘이 부족한 게 아니었나?’
피닉스가 속마음으로 궁금증을 가질 때 조용히 있던 나이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어쩌면….”
나이트는 수정을 부서트리려던 행위를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결국 네가 옳았군. 처음부터 정해진 미래란 것은 살짝 짜증 나는군.”
“당신의 탓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꾸 너네만 아는 얘기 할래?”
온갖 궁금할 말들은 전부 하고서 정작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짜증만 날 뿐이었다.
“피닉스, 전에 제 눈에 대해 궁금해하셨던 적이 있으셨죠.”
“그렇지.”
“전에 말씀드렸지만, 미래를 보는 눈은 아닙니다. 오로지 앞에 생길 수많은 흐름의 가닥을 바라볼 뿐. 그러므로 고대신룡이 절 찾아왔던 겁니다. 수많은 가닥들 중 원하는 것 흐름을 보기 위해서는 제 능력이 꼭 필요했으니까요.”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니야?”
“일부는 그렇지 않지.”
“창조의 힘은 어느 상황이든 가능성만 있다면 그것을 현실로 실행할 수 있지만 그 상황을 생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가능성이란 게 참… 복잡하네. 머리가 아파.”
피닉스는 지끈한 머리를 잡으며 말했다.
“암튼 계속해봐.”
“가능성을 뽑아낸다는 것은 정해진 미래로 가는 방법을 아는 것에 한정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당신에게 팔을 휘두른다면…”
작은 금오가 주먹을 휘둘렀다. 피닉스는 맞아주지 않고 피했다.
“그렇게 피할 수가 있죠. 하지만….”
금오는 다시 한번 팔을 휘둘렀고 피닉스는 또다시 회피하려고 했지만 금오가 피닉스의 움직임을 따라와 주먹을 적중시켰다.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면 이렇게 당신이 피하지 못하고 ‘맞는’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게 제 눈의 능력입니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네. 근데 창조의 힘은 뭐가 달라?”
“창조의 힘을 가진 드래곤이 ‘때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때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 중 하나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어느 이유든 때리는 게 ‘가능한’순간부터 무조건 맞게 되는 거죠. 하지만 역시 스스로의 믿음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했다면 대령이 저 수정을 못 부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니까요.”
“역시… 복잡하고 참 애매하네…. 나는 그런 거 안 가질래. 근데 갑자기 네 눈 얘기는 왜?”
“봉인은 풀릴 겁니다.”
“뭐?”
금오의 불안한 말과 함께 어떤 검은 물체가 매우 빠른 속도로 그들을 지나갔다.
“어? 뭐야?”
그것이 처음 보였던 방향을 바라보자 나이트 드래곤 또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쌔군.”
나이트 아래에 있던 수정은 사라졌고 검은 물체가 재빠르게 이곳을 탈출했다. 이 정보를 가지고 피닉스는 아까 그 검은 물체가 G스컬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곧장 쫓아가려 했다.
“어 뭐야?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
“잠깐, 그러지 마십쇼.”
그러나 오히려 금오는 금방이라도 온몸을 점화시킨 뒤 뒤따라가려는 피닉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너 뭐 하는 거야?! 쟤가 가면 부활하는 거 아니야?”
금오는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를 가진 눈이 그녀와 마주쳤다. 피닉스는 금오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상하게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그녀에게 반작용이 다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거 놔! 놓으라고! 왜 다 가만히 있는 건데? 나이트! 네가 놓치면 어쩌자는 거냐고?!”
나이트 드래곤에게 소리치고 나서야 그녀는 눈치챘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나이트의 얼굴과는 달리 칼을 쥔 그의 손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G스컬의 목을 베버릴 기세였다.
‘아…’
그는 놓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착각이길 바랐던 그 생각은 금오의 표정을 보자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럼 왜?’
피닉스는 천천히 진정되었고 스르륵 힘이 빠졌다. 금오가 그녀를 부축해주며 말했다.
“말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금오의 감정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저도 아니길 바랐거든요.”
그 말을 듣고서 왜 금오가 갑자기 자기 눈 얘기를 한 것인지 깨달았다.
“하….”
허탈감. 친우의 죽음을 막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하지만 고작 결과가 이거라니. 충격적인 사실을 안 그녀는 한숨만을 내쉬었다.
팔이 꺾여가면서도 이 계획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번개고룡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로 이것만을 생각하며 믿고 살아온 그녀가 떠올랐다. 하지만 가능성 속에서는 그녀가 자신의 계획을 성공한다는 가능성은….
“기분 진짜 개 더럽네.”
피닉스는 뒤늦게 고대신룡의 뒤통수를 한 대라도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지금 금오라도... 아니지…. 분신인 놈한테 지금 뭘 하겠어.’
혼자 골똘히 생각하며 고개를 젓고 있는 그녀의 시선 앞에서 나이트가 횡하고 지나갔다.
“...? 야, 너 어디가냐?”
그의 팔목을 붙잡으며 물어보았는데 오히려 나이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너야말로 왜 가만히 서 있는 거지?”
“그야 막아도 소용….”
“내가 이곳에 온 건 단순히 부활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다. ”
그 말만을 남기고서 나이트는 벽을 뚫고 사라져버렸다. 피닉스는 잠시 부서져 버린 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쟤 왜 저래?”
“저는 이해가 갑니다. 뒤따라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겁에 질려 도망간 G스컬이 갈 만한 곳이 여러 군데이진 않으니까요.”
“아”
피닉스는 금오의 말을 듣고 난 후에 이해하고서 뒤늦게 그를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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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저장이 되지 않는 날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참으로 슬픕니다. 한 에피소드의 분량이 통째로 날아가고 복구 방법도 알 수 없는채로 아련하게 기다리는 그 기분 더러운 이 느낌을 느끼는 게 꼭 마지막까지 와서 이래야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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