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60 잊지 않을 추억 (22)
나이트 대령은 익숙한 빛이 눈을 강렬히 내리쬐는 것이 느껴져 일어나보니 원래 알고 있던 고대신룡이 아닌 다른 고대신룡이 다크닉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깨어난 걸 인지한건지 눈을 뜬 나이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이트 대령.”
“대…. 장?”
그는 분명 자신이 보았던 그때의 어린 고대신룡의 모습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서는 분명 대장의 기운이 느껴졌다.
“형은 내게 모든 것을 남겨주고 떠났어, 그러니 이제 당신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걸 해.”
나이트는 고대신룡이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모습뿐만이 아니라 내뿜는 기운마저 달라진 고대신룡은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면, 단 하나뿐이었다.
“알겠습니다…. 대장.”
나이트는 고대신룡의 등 뒤 그리고 자신의 숙적을 던졌던 그 방향으로 날아갔다.
“감동적인 재회는 끝났나.”
“기다려줘서 고마워.”
“말투가 바뀌었군.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기억이…. 많이 혼란스러워서 말이야.”
“기억?”
다크닉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 형은 내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사라졌어, 자신의 힘 그리고 자신의 기억까지도. 그래서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어.”
“넌 고대신룡이다.”
“맞아, 결국 난 고대신룡이지.”
양손에 빛의 검을 들고 다크닉스를 마주한다. 다크닉스도 준비가 되었다는 듯 양손에 검은 불꽃을 불태운다.
“아주 오랜 운명을 끊어낼 유일한, 고대신룡.”
“네 전부를 끌어내라!”
서로 동시에 말을 하며 고대신룡의 빛의 검과 다크닉스의 주먹이 충돌했다. 압도적으로 밀렸던 지하던전의 안과는 달리 그들은 몇 번의 합을 겨룰 수 있었다.
고대신룡이 빛의 검을 휘두른다면 다크닉스는 한쪽 팔로 막으며 반격을 시도했고. 다른 팔을 대신해 반격해오면 고대신룡은 날개로 방패를 대신했다.
“이제서야, 나와 대등한 상대가 되었군.”
“걱정하지 마, 아직 보여줄 수 있는 게 남아있으니까.”
고대신룡은 다크닉스의 주먹을 밀쳐내면서 빛의 검을 하늘 위로 높게 치켜들더니 빛의 검을 공중에서 분해해 버렸다.
다크닉스는 무기를 버리는 고대신룡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잠시 뒤 생긴 상황으로 인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막히군.”
빛의 검은 작은 빛으로 흩뿌려졌고 흩어진 작은 빛 조각들은 전부 고대신룡의 등 뒤에서 창, 도끼, 칼, 활과 같은 하나의 무기가 되고 있었고 수백 개가 돼 보이는 그 무기들이 전부 다크닉스를 향해 날을 들이밀며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게 네 전부는 아니겠지.”
“네가 전부 버텨낸다면, 얼마든지 더 보여줄 수 있어.”
고대신룡은 조용히 손을 펼쳐 다크닉스에게로 뻗으니 그 수백 개의 냉병기의 모습을 한 무기들이 일제히 다크닉스를 향해 날아갔다.
다크닉스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무기들을 한 합에 몇십 대를 꺾고 제쳤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그것들을 막아냈다. 그것들은 단순한 빛의 무기에 불과했지만 하나하나가 자신의 사각을 파고드는 그것들의 노련함은 그 나이트 드래곤과 대등할 만큼 막강했다.
잘못하면 다크닉스의 치명적인 상처를 만들 수 있는 빛의 무기들을 보니 그는 다시금 고대신룡의 힘이 자신이 알던 그 어리숙해 보였던 고대신룡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이지, 신기하군….”
다크닉스를 향하던 무기들은 그에게 조금의 상처만을 남기고서 전부 사라졌다.
“고작, 힘 따위를 계승한 것만으로…. 단숨에….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는 건가.”
그는 어딘가 지쳐 보였다.
“그저 단숨에가 아니야,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힘을 이제야 전부 깨달을 수 있게 된 거뿐.”
고대신룡은 다크닉스와 달리 한없이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난 항상 혼자가 된 것을 부정하고 있었어, 빛의 신전 붕괴와 형의 죽음은 날 소외시키기에 충분했거든. 그래서 난 형의 힘을 받고 난 후에도, 내 힘의 정확한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고 그랬기에 나 혼자서 당신을 막아내야 한다는 게…. 무섭고 두려웠어.”
“지금 하고 뭐가 다르지?”
“아주 많이 달라,”
고대신룡의 부드러웠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날카로워지며 모든 악을 정화하려는 듯한 순수한 빛이 고대신룡을 감쌌다.
“형은 내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말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빛으로 된 검과 창, 그리고 도끼가 다시 허공에 무수히 생겨난다.
“빛의 신전이 붕괴하고 난 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난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어, 형의 힘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으니까.”
“하, 또 같은 것인가? 그런데, 크기가 살짝 다르군.”
“맞아, 아까는 하나의 무기가 쪼개진 일부에 불과했지만, 이번엔 달라.”
그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빠른 속도로 하나의 빛의 검이 다크닉스의 뺨을 베어내며 지나갔다.
조금 스쳐 지나갔지만 그 짧은 순간으로도 다크닉스는 고작 그 빛의 검 하나가 아까의 무기들의 백 대와 맞먹을 정도의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는 하나의 힘을 쪼갠 거였지만, 이건 전부 온전한 하나들이거든.”
다크닉스의 뺨을 지나갔던 빛의 검은 스스로 방향을 돌려 다시 그에게로 날아왔고 다크닉스는
아까처럼 빛의 검을 받아치자 빛의 검은 힘을 다하며 부서졌다.
다크닉스는 그 빛의 검 하나의 힘은 아까의 고대신룡과 붙는 듯 느껴졌다.
“이런 걸 숨기고 그런 장난을 친 건가?”
“그러니 당신이 이것도 버텨낸다면 다음에는 정말로 진심을 보여줄게.”
“건방지군. 네가 날 정말로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 하는 건가?”
고대신룡이 아까처럼 뻗으려 했으나 다크닉스의 말에 잠시 움직임을 망설인다.
“...당신을 무시할 의도는 없었어. 당신이 아직 온 힘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거든, 하지만 당신의 모든 힘을 끌어낼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돼서.”
“뭐라...?”
다크닉스는 고대신룡의 순박한 솔직함에 당황해했지만 그보다 놀란 것은 고대신룡의 뒤 말이었다.
“내가 온 힘이 아니라는 근거는 뭐지?”
“나에겐 당신 안에 남아 있는 빛의 결정체 잔재가 느껴져. 분명 당신 스스로 없앨 수 있을 정도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어.”
“그런 건가.”
“응.”
“그럼 더 숨길 필요는 없는 것 같군.”
고대신룡은 그를 향해 두 개의 빛의 무기를 쏘았다. 하나는 창, 다른 하나는 검이 다크닉스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다크닉스는 그것들을 보지도 않은 채로 조용히 말헀다.
“네 진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해보려 했지만”
그러고서 다크닉스는 빠른 속도로 날아와 자신을 노리는 빛의 무기를 전부 낚아챘다. 신성한 빛의 기운을 내뿜는 검과 창을 잡고서도 그는 전혀 고통스러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 다행히….]
다크닉스의 말에 대지가 요동친다.
[ 그럴 필요는 없겠군. ]
던전의 저 깊은 바닥 아래에서부터 흔들리는 듯한 거대한 힘이 느껴져 온다. 그것은 가늠할 수 없는 혼돈과 어둠의 힘. 지하던전 아래에 봉인되었던 다크닉스의 모든 힘이 살아 숨을 쉬듯 깨어나기 시작했다.
멀쩡했던 바닥에서는 균열이 일어나며 용암이 치솟고 혼돈과 어둠을 뿌려대자 그들을 감싸는 분위기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기 시작했다. 다크닉스는 맨손으로 붙잡은 빛의 무기들을 깨부수며 미소 지었다.
[ 같잖은 장난은 그만두지. ]
다크닉스가 고대신룡을 향해 손바닥을 휘두르자 강력한 풍압이 고대신룡에게 밀려 들어왔다. 고대신룡은 거대하게 짓누르는 바람을 날개로 막아냈지만 별다른 방어를 할 수 없는 빛의 무기들은 그 풍압만으로 전부 부서졌다.
‘...바람만으로?’
다크닉스는 자신의 힘으로 전신을 덮는 칠흑 같은 갑옷을 만들었다.
[ 네놈이 정말 그 녀석이 말했던 방법이라면, 내가 모든 힘을 사용하더라도 널 꺾진 못하겠지. 하지만 난 멈추지 않으며 처음부터 맹세했었던 그 각오를 잊지 않는다. 너는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죽음 끝까지 유타칸을 파괴해야만 한다. ]
“당신은, 내가 막을 거야.”
다크닉스의 몸이 고대신룡 시야에서 사라지고 순식간에 고대신룡의 앞에 나타나며 건틀릿을 감싸는 흑염이 포효처럼 터져나오며 고대신룡에게 쏟아졌다.
[ 막아라, 네 모든 것을 다해. 나를 꺾고 넘겨라! ]
고대신룡은 빛의 검을 세워 다크닉스의 주먹을 막아냈으나, 힘은 다크닉스가 훨씬 더 우세했기 때문에 충격이 전신을 타고 퍼졌고 검을 든 채로 쭉 뒤로 밀려났다. 다크닉스와의 거리가 멀어졌으나 틈을 주지 않고 그는 눈을 좇을 수 없는 속도로 다시 나타나 주먹을 쏟아부으며 고대신룡을 압박했다.
[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나? 네, 전부를! 내게 보여라! ]
‘응, 예상하지 못했어.’
검은 불꽃의 파편들이 연속적으로 폭발하며 하늘의 어둠을 뒤덮었고 고대신룡의 빛이 서서히 밀리는 듯 했다.
그러나 다크닉스는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빛의 힘은 남을 해치기 위한 목적으로는 알맞지 않다. 그런데도 고대신룡은 처음부터 그를 이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오로지 고대신룡만이 할 수 있는 방법, 불의 산에서 악으로 잠식된 빙하고룡을 되돌렸을 때처럼,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던 것은 오로지 다크닉스의 진심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게, 당신의 진심이구나.’
절망을, 그 어둠을 베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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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진 모르겠지만 곧 완결이 날 것 같아서 QnA 질문 좀 받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읽으시면서 궁금했던 사소한 모든 질문을 전부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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