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분리해서 올립니다.
Ep.39 잊지 않을 추억 (1)
고대신룡은 천천히 다크닉스의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렸다.
(“?”)
그리고 모든 힘을 사용하여 빛을 뿜어내자 다크닉스의 등 뒤에서 빛으로 된 창이 하나 뚫고 나왔다.
(“...!!”)
다크닉스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자신의 몸 전체에서 퍼지는 빛의 기운이 그를 잠식하고 있던 어두운 기운을 점차 몰아내기 시작했다.
거의 죽였다고 생각한 고대신룡에게서 이러한 힘이 어떻게 나오는 건지 몰라도 다크닉스는 몇초라도 빨리 고대신룡을 끝내야겠다고 판단했다.
다크닉스가 고대신룡의 배를 관통한 팔을 뽑고서 다른 한쪽 팔에 검은 불꽃을 둘러 휘두르려는 순간.
빛의 사슬이 다크닉스의 손을 감아냈다. 검은 불꽃은 꺼져버렸고 거대한 중압감으로 그의 오른손이 바닥에 추락했다.
그 손을 시작으로 밝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문자들이 다크닉스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그 주문은 흘러 다니며 다크닉스의 반대 손도 묶어 바닥에 거대한 힘에 짓눌려 떨어졌다.
“훗날 지하던전이 될 그 장소에서 고대신룡은 봉인을 시작했습니다.”
“재료는? 어렴풋이 들었지만…. 그곳에서 빛의 결정체를 구할 수는 없었을 텐데….”
“고대신룡이 무슨 드래곤인지 잊으신 겁니까?”
“고대신룡은 자신의 힘으로 다크닉스의 몸속에 직접 빛의 결정체를 만들었습니다. 아모르의 창조물이었던 드래곤의 몸속으로 전해진 빛은 빛의 결정체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습니다.”
손을 먼저 봉인한 다음은 다리가 다리를 전부 묶은 뒤에는 최종적으로 목에 법진이 생기면서 다크닉스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고대신룡은 빛의 창을 들고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
온몸이 구속된 그를 보았다. 안 속에서부터 복잡한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분노, 슬픔 그리고 무력감.
그가 태어났을 처음부터 균형을 지키기 위해 함께해왔던 동료이며 형제인 다크닉스가 어느샌가 홀로 던전을 지키기 시작했고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알던 다크닉스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성을 잃고서 유타칸의 지형들을 파괴하고 드래곤들을 무참히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유도 목적도 알 수 없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그가 느끼는 모든 것을 고대신룡도 알 수 있었지만 완전히 자신의 힘에 잠식되어버린 것이었을까 그에게서는….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여전히 멍청한 표정이군.”)
(“!!”)
이성을 잃고 이해할 수 없던 눈동자를 하던 다크닉스가 말했다. 봉인이 시작되고 고대신룡의 기운으로 인해 그의 어두운 내면이 약간은 사그라든 것이었을까, 다시 본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누군가를 향해 분노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공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네놈과 내 꼴을 보아하니, 영 좋은 상황은 아니었나 보군.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가.”)
다크닉스는 구속된 팔과 다리를 보았다. 움직이는 것이 영 불편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난동을 부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가 쓰러진 곳은 익숙한 곳이었다.
(“내 끝을 이런 장소에서 지어주다니,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올 것만 같군.”)
그가 균형을 위해 생활했던 던전 속, 그의 보금자리 그리고 그곳은 나중에 그가 봉인되고 후에 이름 지어진 지하 던전.
다크닉스는 애써 미소를 보였다.
(“미안해.”)
고대신룡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며 손에 있던 빛의 창을 빛을 서서히 꺼트렸다. 고대신룡은 처음부터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잘못 지어진 매듭을 풀어낼 능력이 없다면 끊어내야 함이 옳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는거지?”)
고대신룡은 지금에 와서야 다시 그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경험까지는 읽지 못하기에 여전히 고대신룡은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기다려줘.”)
(“무엇을 말이지.”)
물어본다면 다크닉스가 얘기해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경험을 듣고서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을 듣게 된다면 마음 편히 그를 내보내줄 수 있는 것일까. 애초에 그는 나에게 이해를 바랄까?
고대신룡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태초부터 함께 해왔지만, 어느 순간 떨어져 버리며 그 공백의 시간은 그 둘을 갈라놓았다.
어쩌면 이성을 잃은 다크닉스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어두운 힘에 잠식되어서가 아니라 공백의 시간 떄문에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드래곤이 되어버렸던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고대신룡은 다크닉스를 죽이지도 가볍게 살려두지 않는 선택을 했다. 모든 가능성을 남겨놓고서, 아무것도 묻지 않으며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
(“방법을 찾을 때까지.”)
그것이 고대신룡다운 선택이었고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크닉스가 쓰러진 곳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용암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곧 다크닉스 아래에 있는 지반ds 저 아래로 꺼져버리au 다크닉스는 그 아래에서 억겁의 세월을 흘려보내야 할 것이다.
다크닉스는 고대신룡의 말을 알 수 없지만 그의 눈에는 자신을 존중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얌전히 추락하면서 지하던전에 봉인 당했다.
다리의 힘이 풀리며 고대신룡이 주저 앉았다. 그리고 다크닉스가 사라지고서 쉼 없이 용암을 뿜어내는 구덩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될 것을 기약하며 반드시 다시 찾아오리라 맹세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 어떤 곳에서도 기록되지 못할 이야기 그리고 자신만이 잊지 말아야 할 추억. 고대신룡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이후는 당신이 아는 얘기입니다. 다크닉스에게 빛을 넘겨준 결과로 고대신룡은 약해졌고 아모르의 연결마저 끊겨버렸죠. 그 후 빛의 신전이 세워지고...”
금오가 과거 이야기를 끝내고 그녀가 아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어떤 곳에서도 기록되지 않았다면서, 넌 그걸 어떻게 다 아는데?”
“이 이야기를 전한 것이 그였으니까요.”
-
고대신룡은 몸에 닿은 바닥이 차갑게 느껴져 깨어났다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난 것은 아니었다.
번개고룡의 계획이 실패했고 빙하고룡, 파워는 잔해에 깔렸다. 그리고 번개고룡의 생사 또한 불 확실한 상태에서 빛의 결정체를 갖지도 못했다.
그리고 고대신룡은 핑크젤라틴으로 인한 텔레포트에 휘말려 던전까지 끌려왔다.
‘이제 나는...무엇을...’
G스컬을 만나자마자 고대신룡에게는 한 가지의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생각을 멈추고 반드시 끝장내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분명 몸통의 절반을 잘라내고 시작했고 G스컬은 고대신룡의 빛의 검에 그 어떠한 저항도 무의미 했었다. 그렇기에 일방적인 싸움은 반드시 그의 승리로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그는 베어내어야 할 상대를 제대로 골라내지 못했고 하늘의 신전은 무너졌다.
(“또 이런 모습인가.”)
흐릿한 시선. 그리고 그때 들었던 그 목소리.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그리고 하늘의 신전에서 계속해서 나아감을 알려줬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것도 고대신룡에게 아주 익숙한 외형을 한 채로.
Ep.40 잊지 않을 추억 (2)
고대신룡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발과 팔을 묶은 족쇄에 의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 깨어났을 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처음부터 자신을 구속하고 있었다. 또한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빛의 능력까지 사용할 수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끔찍하군….”)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 것치고는 점차 그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리며 그가 알던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런 말투는 그만할까. 나랑 어울리지도 않는데. 오랜만이야, 다시 만나니 기분이 어때?”)
고대신룡의 눈이 희미하게 떨렸다. 흐릿한 시선 속에서도 그는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기에 고대신룡은 그를 몰라볼 수 없었고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도 움직일 수 없게 막혀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 왜 지금에서야 나타난 건지, 왜 네가 그런 경험을 해야 했던 건지도 전부…. 묻고 싶겠지. 전부 보고 있었어, 항상 네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지.”)
고대신룡은 왜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꿈에서만 희미하게 들렸던 목소리도 정말로 그가 맞았는지 묻고 싶은 눈동자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그는 고대신룡의 눈동자를 보고서 피식 웃었다.
(“많이 힘들었나 보네,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궁금한 거에 답을 해주면, 맞아. 전부 나였어. 지금처럼 모습을 드러낼 순 없었지만…. 알다시피 네가 네 눈앞에서 몸 절반이 날아가 버렸으니, 나도 죽었다고 생각했거든.”)
그날 빛의 신전에서 2대 고대신룡이 거대한 빛을 뿜어낸 순간 그 빛은 모든 것을 흡수했다. 부족한 힘을 모으려는 듯한 기세로 힘을 모으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빨아들였다.
(“아마, 너도 모르게 에메랄드 부대와 나를 너의 몸속으로 흡수한 걸지도 몰라. 슬픈 사실이지만 나는 아모르의 힘으로 너의 무의식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지만 에메랄드 부대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어떤 방식으로도 찾을 수 없었거든.”)
고대신룡의 눈이 약간은 침울해진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에메랄드 부대가 그렇게 간단히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너의 무의식에서 살아있다고 느껴진 순간. 나는 최대한 네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 근데 내가 자유로이 네게 생각을 전하게 된 건 불의 산에 있었을 때부터였어. 그전까지는 네 깊은 무의식 속의 기억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그동안 이상하긴 했다. 고대신룡이 위험할 때마다 큰 힘이 될 수 있었던 기억을 딱 알맞게 보여주었으니까. 그저 단순한 주마등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형님의 간섭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네가 나를 떠올리지 않는 이상 나는 간섭조차 불가능 했다는거지.”)
(“....네가 하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거 나만 얘기하니, 뭔가 민망하고 그렇네,”)
‘그야, 나도 말하고 싶지만….’
답답한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계속 궁금한 건 물어봐야 한다. 고대신룡은 지금까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형님은 정말로 내가 다크닉스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넌 나보다 뛰어나니까. 그리고 네 힘은 이제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잖니. 나와 에메랄드 부대의 힘 그리고 신념까지 네게 전해졌어.”)
그의 이야기가 사실이면 정말로 난 형님보다 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손과 발을 묶은 이 족쇄조차 풀지 못하는 걸 봐서는… 그 말이 사실인지는 믿기 힘들었다.
(“...특이한 족쇄네. 유타칸의 어떤 지역에서도 너의 힘을 억제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연구를 정말 많이 한 것 같네.”)
형님도 내게 채워진 족쇄를 겉으로 본 것만으로도 어떤 것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전부 파악한 듯 말했다.
‘힘을 봉인한다.’ 전에 하늘의 신전 감옥에서 서펜트가 언급한 적이 있었지. 드래곤들은 본래 나고 자란 곳에서 힘을 얻는다고 하지만 나는 빛의 신전이 사라진 이후에도 힘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 힘은 점점 거대해져만 갔다. 혹시 그 이유가 형님과 에메랄드의 부대를 흡수 해서였을까?
(“전에 너희들이 비슷한 얘기를 했었지. 힘은 본래 자고 나란 곳에서 공급된다. 그건 사실이야. 근데 빛의 힘의 달라. 아모르에게서 직접 계승 받은 이 힘의 진짜 이름은 창조의 힘이야.”)
형님이 주먹 쥔 손을 천천히 펼치자 눈 부신 빛이 손바닥 위에서 반짝거렸다. 마치 이 절망 속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되는 듯하게 빛나고 있었다.
(“창조의 힘…. 이 힘은 우리의 몸속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해. 그래서 힘을 잃지 않고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지. 조금 추상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쓸 수 있다고 느끼는 만큼 영향을 받기도 해.”)
‘그 빛으로…. 이 족쇄를 풀 수 있어?’
(“안타깝게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어. 어디까지나 작은 가능성이 있어야 창조의 힘이 적용되거든. 만일 모든 게 가능했다면 내가 진짜 몸을 갖고서 너를 찾아갔겠지, 그러나 이렇게 환영인 모습으로 널 찾아온 건 내가 힘만 남은 사념체에 불과하니까.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있는 일이어야 해. 아무리 아모르여도 모든 것을 감당하기엔 부족했나 봐.”)
형님의 손바닥 위에 있던 빛이 꺼졌고 희망스러울 것 같은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애초에 그리 희망찬 상황도 아니었다. G스컬은 나를 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쩌면 이제 다크닉스를 봉인에서 풀어내려는 걸지도….
(“걱정하지 마, 넌 동료가 있었으니까. 분명 구하러 올 거야.”)
‘애들은 하늘의 신전에서….’
(“왜 죽었을 거라 확신해? 내가 말했지, 가능성이 있다면 뭐든 가능하다고. 이미 네 힘이 그들을 살렸을지도 모르지.”)
‘내가 이걸 창조의 힘이라 깨닫는 건 지금인데 이미 늦어버린 건 아닐까.’
(“빛의 힘은 누군가가 깨우쳐주는 게 아니야. 이미 네가 가진 힘 안에서 스스로 깨닫는 것뿐. 만약 네가 조금이라도 그들이 살기를 바랐다면. 넌 무의식적으로 창조의 힘을 사용했을 거야.”)
지하성체가 크게 흔들렸다. 강력한 힘이 부닥치는 소리. 정말로 그들이 온 건가?
-
“여전히 기분 나쁜 곳이로군.”
무사히 지하성체 바로 앞으로 순간이동을 마친 나이트 드래곤이 성체 앞으로 다가갔다.
“...여기도 결계가 있군. 아까보다 더욱 짙은 기운으로 이 성체를 보호하고 있다.”
지하성체의 외부에도 순간이동 법진처럼 결계가 처져 있었다.
“...잠깐 아직 물어볼 게 남았다고.”
번개고룡은 나이트 드래곤의 어깨를 잡으며 검을 휘두르려는 그를 막아섰다.
“나는 전부 말해주었다. 고대신룡과의 관계와 나의 과거 전부를. 그런데 더 물어볼 게 있나.”
법진을 통해 이곳으로 오기 전에 번개고룡은 고대신룡과 무슨 관계인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이트 드래곤은 모두 설명해 주었다. 자신의 과거와 고대신룡과의 관계마저도
“네가 빛의 힘…. 그러니까 그 창조의 힘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건 다크닉스가 이미 봉인이 된 후였지만 1대 고대신룡이 죽기 전이었잖아. 그러면…. 너도 그 창조의 힘으로 고대신룡이 죽지 않도록 했을 수 있었던 거 아니야?”
“...내 힘의 본질이 그로부터 계승되었기 때문이지. 창조의 힘을 발현한 건 나지만 결국 그의 힘의 일부일 뿐. 그보다 더한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내게 이 힘이 있다고 한들 나는 다크닉스를 막을 수 없다.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걸 누가 정했는데. 아모르?”
“그녀에겐 그런 힘이 없다. 그럴만한 존재도 아니고 고대신룡과 연결이 끊겨서 더 이상 간섭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지.”
“그러면 누구….”
자꾸 대답을 회피하려는 나이트 드래곤이 답답했는지 언성을 높이며 물어보려다 흠칫하며 말을 끊었다.
“설마..”
나이트 드래곤은 대답을 회피하고 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일부로라도 그녀가 알아채길 원한다는 듯이 간접적으로 그의 한계를 의미하는 듯 그가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행동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마치 그래야만 당연하고 자연적인 흐름이라는 듯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웠다.
-
모든 이야기를 들은 피닉스가 깨달았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서 금오를 바라보았다.
“그럼 네가 말한 정해진 길과 반작용은….”
“1대 고대신룡이 정한 흐름을 강요하는 힘입니다.”
Ep.41 잊지 않을 추억 (3)
“다크닉스의 봉인을 마치고, 빛의 신전을 세우고, 마침내 자신의 힘을 계승 할 2대 고대신룡을 만든 후 그는 날 찾아왔습니다. 마지막 남은 창조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말이죠.”
“약해졌다더니 할 건 다 했네.”
금오는 피닉스의 반응을 살폈다.
“생각보다 차분하시군요.”
“무슨 뜻이야?”
“화를 내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화를 왜 내?”
“당신의 의지가 그의 생각대로 움직인 걸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음...”
금오가 그동안 보아온 그녀의 성격이라면 이런 얘기를 했을 때 분명 분노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피닉스는 주먹을 여러 번 쥐었다 필 뿐이었다.
“내 안에서 느껴지는 이 미묘한 감정이 분노라면 분노라고 말할지도 모르지. 뭐…. 화가 났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놈의 과거를 듣다 보니 그냥…. 그래.”
피닉스를 한숨을 쉬었다.
“다른 드래곤을 죽이는 게 싫어서 봉인한 놈이 남의 의지를 조종해? 나는 오히려 그게 이상하다 보는데. 그리고 지금 죽은 놈한테 내가 뭔 화를 내겠냐.”
금오는 복잡한 마음으로 웃는 피닉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
“예상 외여서요.”
“그 눈은 이런 걸 예상 못했나 봐?”
피닉스는 어색한 듯 금오 이마 가운데 감긴 눈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이 눈은 미래를 예지하는 눈이 아니라고 전에….”
“그래 미래를 보는 건 아니라고 했었지. 그럼 뭔데? 그냥 장식으로 있진 않을 거 아니야.”
“그건….”
금오가 말을 하려던 중 멈칫했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모습을 본 피닉스는 당연하게도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눈치챘다.
“뭐, 지금 들을 필요는 없겠지.”
피닉스는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적당히 몸을 풀었다.
“빠르게 안내해. 얼마나 급한지는 대충 알 것 같으니까.”
-
“....장난해?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게 전부 정해진 거였다고?”
“의미 없는 분노다. 비록 네 동료 둘이 다치는 것까지 예상한 것은 아니었으나 정해진 흐름을 따라간 것은 다름 아닌 너였다.”
“내 의지가 그 정해진 흐름에 따라 결정된 것이었더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
번개고룡의 분노가 점차 후회를 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시도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조작된 감정이고 의지인지 의심되기 시작했다.
“오해가 있군.”
나이트 드래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해진 길을 따르는 것은 걷는 이들의 몫이다. 너였기 때문에 봉인 재료를 모은 것이 아니라 네가 봉인 재료를 모으려고 했기 때문에 운명이 너를 택한 것이었다. 정해진 길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렇다고 한들 내가 실패한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잖아.”
번개고룡의 분노가 후회가 섞인 듯 말했다.
“그럼 난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온 거냐고….”
그것은 분노일까.
“대답해.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같은 결과라면 난 무엇을 위해서 2년을 바친 거냐고….”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후회로 뒤섞였다.
“아직 단정 짓기에는 너무 빠른 판단 아닌가.”
나이트 드래곤은 번개고룡의 감정을 모르는 듯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너의 실패가 정해진 흐름이라고 말한 적 없다. 정해진 흐름은 모두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던전에 도착하는 것이다.”
나이트 드래곤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본인의 죄책감을 덜어내거나, 그저 사명을 다하려는 걸지도 모르고.”
다시 번개고룡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이곳에 당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실패라 할지라도.”
번개고룡은 나이트 드래곤의 말을 이해했다. 자신의 목표라 하면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더 이상 재료가 없어!”
그녀의 목표는 하늘의 신전에서 산산조각이 났었다. 서펜트가 빼돌린 재료들은 전부 G스컬에게 갔을 것이다. 그리고 빛의 결정체 또한….
“!!”
“아직 기회가 남아있지.”
전부 G스컬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저 지하 성체의 어딘가에서….
“그리고 누군가는 오래된 운명을 끊어내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이트 드래곤은 그 말을 하고서 검을 위로 들어 올리더니 지하성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의 원흉인 G스컬을 내 손으로 끝내려 왔다.”
빛을 머금은 섬광은 지하성체의 결계를 아주 쉽게 베어내고 지하성체에 닿았다. 비록 지하성체를 갈라내지는 못했지만, 성체가 크게 흔들리며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기회.’
나이트 드래곤의 말을 들은 후에 번개고룡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실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정해진 결과보다는 수백 배는 괜찮은 말이었다.
번개고룡은 희망을 찾은 듯 지하성체의 입구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감히, 무슨 짓을!!”
그러나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어느새 회복을 마친 칼리시가 전보다 강한 기세로 번개고룡을 노렸다. 현재 그녀의 속도로는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지팡이를 꽂았다.
“나이트 드래곤...?”
다행히 번개고룡은 무사했다. 그러나 나이트 드래곤의 팔은 그렇지 못했다. 하늘의 신전에서 관통당한 왼팔이 한 번 더 관통당했다.
“이번에는 그냥 뚫린 것으로는 넘어가지 못할 거다!”
칼리시의 지팡이가 뜨겁게 달궈지며 관통당한 나이트 드래곤의 팔을 그대로 뽑아냈다.
그녀는 나이트 드래곤의 분리된 왼팔을 보며 웃어댔다.
“어리석구나, 이곳은 하늘의 신전이 아닌 것을….”
피가 흘러나왔지만, 나이트 드래곤은 잠깐 움찔할 뿐 그의 힘으로 빠르게 지혈을 마쳤다. 그리고 자신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번개고룡에게 말했다.
“너는 지하성체 안으로 들어가서, 고대신룡을 구하고, 네 계획을 실행해라….”
나이트 드래곤은 한쪽 팔로 칼리시의 공격을 막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번개고룡이 아직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듯했다.
“그럼…. 너는?”
“아직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군.”
나이트 드래곤은 힘겹게 칼리시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여전히 눈은 번개고룡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하성체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을 앞에 두고서 한 눈을 파는 칼리시가 열을 받는 듯 한 마디 했다.
“한 손이 없는 상태에서도 여유로워 보이는군…. 근데 과연 그게 어디까지 갈까나?”
“네 말대로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군, 한 팔로는 아직 힘 조절이 어려운데 말이지.”
Ep.42 잊지 않을 추억 (4)
번개고룡은 자신을 위해 왼팔까지 희생하면서 칼리시를 막아내는 나이트를 믿으며 지하성체 안으로 진입했다.
“이 몸 등장!”
지하성체의 문을 열며 그렇게 말했다.
‘흠…. 아무도 없나?’
혼자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이 넘쳤다. 실패했더라도 다시 나아가는 그녀의 입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한때 무지했던 그 시절처럼 모르는 것을 탐구하듯 호기심이 차올랐다. 지하성체는 옛날부터 궁금했던 곳이었다. 비록 전에는 그 다크닉스의 봉인 때문에 뒤로 미루어졌었지만 뒤늦게나마 그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긴 뭐지?”
그녀는 수상해 보이는 문을 조심히 열었다. 문이 시끄럽게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고롱”
열린 문틈 사이로 번개고룡이 빼꼼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그곳에는 모프된 가고일과 앵그리 가고일 또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이쿠, 실수 길을 잘못 찾았나 보오!”
번개고룡은 아무렇지 않게 달려드는 가고일들을 무시한 채로 문을 쾅 닫아버렸다. 닫힌 문 너머로 사나운 소리가 들렸지만 정작 문을 열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이니 무시하고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흠…. 고대신룡이 어디 있으려나?”
번개고룡은 성체 안에 있는 문을 열며 몬스터들을 마주쳤다. 비록 그녀의 힘이 성체에서는 통하지 않아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마치 모험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안 보이면 재료만 찾고 가버려야지. 음…. 아니다 아무래도 G스컬을 만날지도 모르니까 챙기는 게 맞겠지?”
번개고룡은 자신의 생각을 혼잣말로 하고서는 역시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썼으면 좋겠는데….’
-
지하성체가 크게 흔들린 뒤, 내가 갇힌 감옥 위가 약간 소란스러워진 것 같았다.
‘정말로 애들이 다치지 않은 걸까?’
어쩌면 형님의 말대로 내가 무의식적으로 창조의 힘을 사용했고 번개고룡,파워,빙하고룡이 다치지 않고 이곳에 온 것일까? 평소라면 이 상황이 말도 안 되는 걸 알지만 죽었던 형님이 내 눈앞에 나타난 것보다는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희망이 있어.’
(“내가 말했잖니, 넌 나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형님은 항상 깨달음을 주네.’
그런데 뭔가 놓친 게 있는 것 같은데….
G스컬은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고 확인 한 번 하러 오지 않는다. 그냥 내가 방해되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것일까?
“그래 뭔가 너무 술술 잘 풀리는 그런 느낌이긴 했지. 안 그런가?”
내가 수상하다는 낌새를 느낀 동시에 G스컬이 나타나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분명 내가 팔을 도려냈을 텐데…?’
나는 분명 하늘의 신전에서 그의 팔을 포함한 몸의 절반을 날려버렸지만 G스컬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 팔 말인가? 그냥 언데드의 특성이지.”
내 시선이 그의 팔 쪽에 너무 치중돼있었던 것인지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혼자서 킬킬 웃으며 대답했다.
“하늘의 신전에서는 워낙 기운에 의해서 재생이 잘 안 됐었지만 있지만 이곳 던전에서는 금방 복구할 수 있는 정도지.”
G스컬은 차분하게 말하다가 감옥의 철창을 뜯어내며 내게 다가왔다.
“너만 없어지면 말이지.”
그의 손에 닿은 철창은 순식간에 부식되어 사그라들었다. 분명 전에 저런 능력은 없었던 것 같았는데 말이지.
‘…진짜 죽나?’
“능력도 쓰지 못하는 고대신룡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지.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정말 네가 사라진다면 곧 그분만의 세상이 완성될 것이다.”
G스컬이 내게 손을 뻗었다. 철창을 순식간에 부식시키는 기이한 힘… 저 손에 닿으면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정해진 길이 있다며, 여기서 내가 죽는 게 말이 돼?’
어느새 형님은 사라졌고 대답이 없었다. 족쇄 때문에 능력도 쓸 수 없는 나는 정말로 불안에 떨며 몸을 이리저리 흔들 뿐이었다.
“고통은 한순간뿐 그저 그 시간만 견디면 될 것이다.”
‘젠장, 드디어 희망을 찾았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허무한 끝이라니.’
“거기 스톱!”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G스컬도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 짧은 순간 번개고룡이 G스컬을 향해 날아 차기를 한 것이 보였다.
“빠세, 전에 날 걷어찬 보답이다. 원소의 힘이 통하지 않아도, 힘은 있다고.”
내 앞에 있던 G스컬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날아차기 후 멋지게 착지한 번개고룡이 내 앞에 나타났다.
‘번개고룡!’
“여깄었네?.”
오랜만에 본 그녀의 얼굴은 꽤 밝았다. 살아있음을 둘째치고 하늘의 신전이 무너진 이후로 무기력할 줄 알았지만,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호기심 많은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드디어 찾았다. 소중한 열쇠.”
“오만하구나! 화염의 드래곤이여”
번개고룡의 날아차기를 맞고 정신을 차린 G스컬이 그들에게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정도로 쓰러질 일이 없지…’
“빛의 힘을 담지 않고서 이 몸이 쓰러질 것 같았느냐? 그분의 부활 전까지 나는 절대로 죽을 수 없다!”
화가 잔뜩 났는지 손으로 옆면을 긁어가며 번개고룡에게 달려들었다. 번개고룡은 처음에는 맞부딪힐 생각을 했지만,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벽면을 보고서 잘못됨을 인지하고 반드시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풀려… 풀리라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족쇄를 끊어내려 몸부림쳤다. 번개고룡이 G스컬의 시선을 끌어주는 지금이 가장 적절한 때겠지만 어째서인지 족쇄의 힘은 더욱 강해질 뿐이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도 잽싸게 잘 피하는군.”
“네가 너무 느린 거겠지.”
아까는 방심해서였겠지만 번개고룡이 G스컬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번개고룡을 못 믿는 것도, 빛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라?”
번개고룡은 분명 G스컬의 공격을 피했지만, 코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공격은 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G스컬의 본질은 결국 어둠이다. 전에 어둠에 잠식된 빙하고룡을 봐서 알겠지만, 일반 드래곤이 어둠의 힘에 노출되는 것을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죽어가는 거다.”
“아 그런거야? 그때 빙하고룡이 이것 때문에 아파한 거구나…”
그런데도 번개고룡은 차분했다. 아니면 미친 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번개고룡은 천천히 코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를 닦아내었다. 그리고 내 쪽을 바라보며 웃었다.
“고대신룡, 나 믿어?”
Ep.43 잊지 않을 추억 (5)
고대신룡의 눈이 희미하게 떨렸다. 물론 본인이 알 턱은 없었겠지만.
‘뭘 하려는 거야’
번개고룡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불의 산에서 자란 평범한 드래곤이 아닌가 어떻게 G스컬을… 불가능하다. 너무 무모하다.
“그런 눈 말고.”
그녀는 G스컬을 이길 수 있는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확신의 찬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믿을 수 있냐고. 내가 지금 저놈에게 딱 한 방 먹여주려고 하는데.”
그녀는 무엇을 믿고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어떤 것도 그녀에게 유리할 수 없을 텐데. 도대체 어디에서 저런 확신을….
(“그럼 넌 반드시 성공할 거라 생각해서 그녀를 따랐던 거야?”)
‘형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형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서 내게 말할 뿐. 그리고 현실 감각이 조금 느려진 것 같았다.
‘어떻게 한 거야?’
(“네 머릿속이니까. 현실과의 차이는 낼 수 있는 법이지. 혹시나 해봤는데 성공이네.”)
‘형님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번개고룡은 우리처럼 빛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런데 어떻게 저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걸까?’
(“...네 모든 행동은 반드시 그녀가 해낼 거라 생각해서 움직였던 거야?”)
그렇지 않다.
‘그녀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야…. 그저’
그녀를 믿는다.
(“번개고룡을 믿지 않았더라면 무턱대고 처음 만난 드래곤에게 이끌려 다크닉스를 막을 재료를 모으러 돌아다니진 않았겠지. 그치? 그래서 불의 산에서 그런 말까지 하면서 번개고룡을 도우려 했던 거고.”)
‘[무엇이든 따르겠다]했지. 하지만…. 저건 달라, 가능성이 없는 싸움이라고.’
빛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없다면 불가능한 싸움, 혹여라도 나의 힘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준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묶여있고 힘을 쓸 수도 없는 상태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에서는….
(“모든 상황에서 정해진 정답은 없는 법이야, 창조의 힘은 쉽게 원하는 답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줄 뿐. 네가 본 번개고룡은 창조의 힘이 없으면 답을 낼 수 없는 드래곤이던가?”)
내가 봐온 번개고룡…. 어떨 땐 단순하지만 드래곤에 대한 정이 많은 드래곤. 계획이랍시고 따라가 봤지만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항상 상황을 무마해왔었다. 그리고 그 계획들의 끝이 성공적으로 끝나지도 않았었다.
‘평화의 마을에서는 그 거대한 뱀을 무찔렀지만 서펜트를 놓쳤어, 나중에 가서는 폭발 용액도 도둑맞았단 것도 깨달았지.’
(“하지만 파워드래곤을 합류하는 데 성공했지.”)
‘바람의 산맥에서 빙하고룡을 합류시키려다가 파워가 중간에 희생했고 번개고룡은 팔에 큰 부상을 입었었어, 그리고 불의 산의 드래곤들에게도 피해를 줬지. 다크닉스의 봉인 재료도 결국 얻을 수 없었고.’
(“모든 계획이 성공적이며 완벽할 순 없는 법이지, 하지만 너희는 결국 그 고난을 거치고 이곳까지 왔어. 그럼에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 있나?”)
형님의 말씀은 옳았다. 번개고룡의 계획은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G스컬 때문에 제우스는 죽었고 나 때문에 하늘의 신전은 무너져버렸어. 하늘의 신전 드래곤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서펜트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머지않아….’
(“비록 사고였지만 네가 아니었어도 결국 G스컬이 빛의 결정체를 가져갔을 테고 신전은 무너졌을 거야.”)
‘하지만 그게 내 탓이 아니라곤 할 수 없잖아.’
(“그래서 내가 묻고 있잖아. 네 행동은 전부 모든 것을 예측한 확신에서 온 거냐고. 당연히 아니겠지. 그때 넌 창조의 힘이 있는지도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번개고룡은 어떻겠어?”)
그녀에게는 창조의 힘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자신감과 확신을 하고서 우리를 모으고 다크닉스를 막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혹시라도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그 계획을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네가 보기엔 그녀에게 창조의 힘이 있어서 그렇게 확신을 가진 것 같아?”)
‘그녀도 두려워했던 거야. 그 모든 시도가.. 어쩌면 실패할 때도 같이 생각했었겠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건.’
조금 번개고룡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믿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 그녀를 믿어봐. 나는 그녀가 뭘 하려는 건지 알 것 같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시간은 다시 원래의 속도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자리 잡던 잡념은 무시하기로 했다. 어느 때보다도 확신의 찬 번개고룡의 얼굴은 이제 그 불확실함 마저 지우게 해주었으니.
특정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다고 해서 그 상황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무엇이 불가능할까.
그래서 나는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믿어, 네가 무엇을 하던’
번개고룡의 물음에 고대신룡도 확신의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번개고룡도 만족했는지 표정을 한번 쓱 보고는 다시 G스컬을 노려보며 온몸에 스파크를 튀게 했다.
“그래, 바로 그 눈이라고. 이제야 좀 힘이 나네.”
“고작 생각해 낸 게 겨우 번개공격이냐? 완전히 멍청한 게 아니고서야... 아니, 바알의 제자라면 알 텐데, 빛이 아닌 공격은 내게 무의미하다.”
G스컬은 도저히 번개고룡을 이해하지 못하며 한쪽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았다.
번개고룡은 예전에 일반적인 원소 공격은 던전 몬스터들에게 전혀 타격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저 번개고룡을 믿기로 했다.
“진짜 멍청한 건 너 같은데. 내기할까? 내 번개가 널 아야 하게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를…. 진 쪽이 모가지 걸기. 어때?”
그녀는 다른 팔로 보조하며 한쪽 팔을 정면으로 뻗었다. 한쪽 손에 번개를 모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과 옷가지에서 붉은 스파크 튀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는군.”
“하하! 그래 어디 한 번 맞아주겠다. 기가 막히는 군 살면서 감히 고대신룡이 아닌 일반 드래곤 따위가 내게 뭘 어쩌겠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이야! 그래 어디 한 번 맞춰봐라! 그따위 벼락 얼마든지 맞아주겠다!”
몇 번을 들어도 소름이 돋는 웃음. 하지만 G스컬은 흔쾌히 그 내기를 수락했고 두 팔을 벌려 맞는 면적을 더 넓혀주었다.
“얼마든지? 그 말 지켜야 한다?”
번개고룡의 목소리는 힘겹게 울려 퍼졌지만, 그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크큭 고작 번개 따위로….”
번개고룡의 몸에서 방출되는 전류가 벽을 녹이며 퍼져나갔다. 방출된 번개는 천천히 번개고룡에게 흡수되며 그녀의 팔을 타고 흘러들어 한쪽 손으로 모인 번개는 불안정한 구를 이뤄냈다.
“놀랍기는 하군, 불의 드래곤이 던전에서 그런 힘을 낼 수가 있다니. 정말 목숨이라도 걸 생각인 건가?”
G스컬은 감탄하며 그녀를 비웃었고 번개고룡은 간신히 구를 손바닥 앞에 두고 한쪽 눈을 깜박였다.
“걱정하지 마, 이제 더 놀랄 게 생길 테니까.”
그 말을 뒤로 그녀 손바닥 앞에 떠 있는 번개의 구가 일그러지더니, 폭발적인 힘으로 앞으로 튕겨 나갔다. 공간을 뒤덮는 굉음과 함께 번개고룡이 뒤로 밀려났다. 그녀의 손에서 벗어난 번개의 구는 붉은 섬광의 궤적을 그리며 G스컬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 나아갔고 그대로 G스컬의 몸을 날려버렸다.
“....!?”
G스컬은 통째로 날아간 자신의 몸을 보며 동공이 확장됐으며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유일하게 예상한 번개고룡이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거봐, 내가 뭐랬어?”
Ep.44 잊지 않을 추억 (6)
지하성체에 진입하기 전 나이트 드래곤은 번개고룡에게 미리 언질해 준 것이 있었다.
“뭐해?”
그는 번개고룡의 어깨에 손을 올려 자신의 기운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 흘러 넣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거다. 혹시라도 내가 너와 떨어졌을 때 G스컬을 만날지도 모르니까.”
“그땐 도망쳐도 늦는거 아니야?”
“혹여나 마주친다면 무작정 도망치지는 마라, 의외로 당당한 싸움이 도움이 될거다.”
‘당당한 싸움..?’
그녀는 그 말에 G스컬이 기습으로 제우스를 처리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아닌 것 같은데. 확실해?”
“그건 네가 믿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이트 드래곤이 번개고룡 몰래 흘려 넣은 소량의 창조 힘. 하늘의 신전이었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었더라도 지하성체에 진입한 순간 그녀는 몸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힘이 창조의 힘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으나 실험해볼 가치는 있었다. 그렇기에 실험 삼아 고대신룡을 찾는 데 그 힘을 사용해보려 했고 그녀의 예상대로 그 힘 덕분에 바로 고대신룡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믿음으로써 창조의 힘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된 번개고룡은 아주 조금씩 상황을 그녀의 바람대로 흘러가게 할 수 있었다.
“이제 모가지를 내놓으실까!”
쓰러지는 것을 간신히 버틴 번개고룡이 무릎을 잡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방금 뭐였지?’
뭔가 번개들이 모이고 구의 형태가 되더니 G스컬에게 날아가 그대로 왼쪽 어깨 부분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아무래도 나이트 대령을 만난 것 같네.”)
형님은 이미 번개고룡이 그럴 줄 알았던 것 같았다.
‘나이트 대령을 만난다고 그게 되나?’
(“나이트 대령도 우리처럼 이 힘을 쓸 줄 아는 드래곤이었거든 내가 전에 번개고룡에게 빛의 장막을 펼쳐준 것처럼 그 나름대로 손을 미리 써둔 모양이야.”)
‘그래서 번개고룡의 몸에서 살짝 노란 빛이 흘렀던 거구나,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는데.’
(“그래, 나도 이 상황을 보기 전까지는 확실하지 않아 말은 못 했지. 그나저나 저 아이도 꽤 재능이 있는 것 같네. 저렇게 바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고작 일반 드래곤 따위가?’
G스컬은 순식간에 패닉에 빠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늘의 신전에서 고대신룡을 끝장내지 못한 것? 아니 그 전에 엔젤 드래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 아니다…. 애초에 내 계획은 빛의 신전이 무너짐으로써 시작됐었어야 했다.
“모든 건.. 고대신룡이…”
몸의 삼 할이 날아갔음에도 G스컬은 포기하지 않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고대신룡을 노려보았다. 번개고룡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빛의 드래곤도 아닌 그녀가 창조의 힘을 완벽하게 끌어다 쓰는 것은 한 번이 최대였다. 결국 도박 수였던 거다.
“하하… 날 놀라게 한 것은 제법이었다, 불의 드래곤이여 언제부터 그 힘을 사용해 날 끌어들인 건지는 몰라도, 어리석군. 정말로 내가 그 제안에 응해줄 거라 생각했나?”
G스컬의 손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늘의 신전에서 단숨에 제우스를 끝장낸 그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거였다. 그 붉은 기운은 가만히 있어도 번개고룡은 압도되어 쓰러질 정도였고 그런 그녀를 보며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아쉽게 됐구나, 만일 네가 빛의 드래곤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G스컬은 그녀를 무시한 채 내게로 다가왔다.
“멍청하긴, 잠깐의 변수로 희망으로 가득 찼던 네 눈을 보자니 정말 역겹군. 결국 네놈의 형이나 너나 똑같았던 거야…”
쿵.
“??”
지하성체의 외벽이 강한 충격으로 요동쳤다. 흔들리는 공간 때문에 당황을 숨기지 못하는 G스컬이 있었다.
“이건 또 누가….”
그것은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는 점점 우리를 향하며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소리가 들리는 방향의 벽이 크게 흔들리더니 그대로 부서지며 그 원인이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여기가 맞나? 일단 무작정 오긴 했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누구에게 묻는 건지도 모를 말을 하는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드래곤은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는 듯해 보였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 드래곤은 ‘얍’ 소리를 내며 검지 손가락의 불을 피우자 쓰러진 채로 눈을 뜨고 있는 번개고룡과 묶여있는 나 그리고 나를 향해 공격하려는 G스컬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지겹다는 듯 말했다.
“하… 또 불의 드래곤인가?”
“음…”
그녀가 상황을 이해하려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번개고룡이 쓰러져 있는 걸 확인한 순간 이미 공격할 적은 정해져 있었다,
피닉스는 곧바로 온몸에 불을 지피며 G스컬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망토를 잡아 올린 채 여러 벽을 부수며 지하성체를 망가트렸다. 적당한 곳에 그를 던져두고 그녀는 불꽃을 휘두르며 그를 공격했다. 하지만 빛의 힘을 담지 않는 그녀의 공격이 통할 리는 없었다.
“하! 무의미하다! 내게 빛의 힘을 담지 않은 원소 공격은….”
G스컬이 말을 전부 하기 전에 피닉스의 주먹이 해골 머리를 가격했다.
“그게 뭐? 불이 안 통하면 그냥 때리면 되는 거 아냐?”
순간 그의 머리가 멍해졌다. 처음 맞아보는 일반 드래곤의 주먹 그건 고대신룡에게 처음 자신의 목이 베이는 것만큼 수치스러웠다.
“내가 불의 산의 최강인 건 단순히 능력 때문이 아니야 해골 바가지.”
피닉스는 제약 때문에 불의 산을 나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 제약이 완전히 풀린 현시점에서 그녀에게 적수란 없었다.
“순수 무력도 내가 최강이라고.”
피닉스의 주먹을 몇 대 맞으면서도 G스컬은 웃고 있었다. 그녀도 그 이유가 궁금해서 잠시 때리는 것을 멈추고 망토를 잡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
“멍청하긴…. 평범한 드래곤이… 나에게 닿으면 멀쩡할 것 같나?”
피닉스가 잠시 멈칫하고 자기 주먹을 보자 G스컬의 말대로 머리를 가격한 피닉스의 주먹이 검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그 크기가 확장되고 있었다. 점점 더 커진다면 그대로 피닉스를 잠식하게 되어 그때의 빙하고룡처럼 될지도 모르는 거였다.
“기대되는군…. 어둠에 잠식된 너의 모습이…”
“어쩌라고.”
피닉스는 당황…?
“그렇다고 한들 네가 덜 맞는 게 아니야.”
피닉스는 자기 주먹이 어둠에 잠식이 되는 말던 전혀 개의치 않고서 일방적인 폭력을 가했고 잠시후 금오가 그녀를 뒤따라왔을 땐 황폐해진 어느 지하성체의 공간과 넝마가 되어 머리밖에 남지 않은 G스컬이 있었다.
“피닉스님.”
머리만 남은 G스컬을 든 채로 서 있는 피닉스를 향해 금오가 물었다.
“어때? 네가 걱정한 거치고는 꽤 쉽게 끝났지?”
머리에서는 G스컬의 새빨간 눈도 있지 않았다. 금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고 피닉스는 해골 머리를 발차기로 마무리해 산산조각 내었고 분진이 되어 공중에서 사라졌다.
“손은….”
자신의 두 손을 보아도 피닉스는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과한 개입을 한 대가 아니겠어? 고대신룡에게 치료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으려나?”
금오는 공중에 이상한 흐름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금세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으며 그녀를 이끌고 다시 번개고룡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부르는 참이었습니다.”
Ep.45 잊지 않을 추억 (7)
“고대신룡 고생했습니다.”
금오는 담담하게 말했다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고대신룡은 아까부터 계속 묶여 있었고 그저 몸부림치는 게 다여서 금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민망한 채로 그렇게 누워있었다.
“전부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버텨줘서 고맙습니다. 이제는 창조의 힘도 깨달은 것 같군요.”
‘날 몰래 지켜보는 드래곤이 하나 더 있었네.’
금오는 고대신룡의 입을 막고 있는 구속 구를 떼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금오의 힘으로는 부족한지 그 구속 구는 풀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복잡한 구조의 물질인가 봅니다.”
“비켜봐, 내가 해볼게.”
“가능하겠습니까?”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뭐가 불가능하겠어.”
금오를 밀치고 번개고룡이 자신만만하게 와서는 손에서 전류를 방출하며 구속 구에 힘을 주었다.
“잠깐 뭐가 이상한데?”
그녀의 번개가 제대로 방출되지 못하고 다시 그녀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힘이 다시 내게 돌아오고 있어.”
“난감하군요. 그래서 고대신룡도 구속 구를 부수지 못했던 거였습니다. 가하는 힘만큼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금오는 잠시 생각하더니.
“피닉스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잠시 뒤 피닉스를 데려오고 금오는 상황을 설명했다. 피닉스는 투덜대며 고대신룡을 비웃었다.
“이 구속 구도 못 푸는 놈이 다크닉스는 어떻게 이겨? 제대로 본 거 맞아?”
“나름의 이유가…”
“농담이야.”
“…”
“왜? 재미없었어?”
금오가 못 들은 척 무시하자 피닉스는 살짝 서운해하곤 다시 장난기를 뺀 채로 고대신룡의 입을 막고 있는 구속 구를 잡았다. 처음엔 적당한 힘으로도 부서지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흠…. 꽤 단단하긴 하네.”
그녀의 팔에 힘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도 같은 힘을 발산하는 그 구속 구를 부수기에는 부족…
“됐다.”
하진 않았다. 그 말과 함께 입을 막던 구속 구가 부서졌고 차례대로 족쇄마저 전부 깨부숴 주었다. 피닉스조차도 자신의 힘에 놀란 듯 손을 쥐락펴락했다.
“신기하네, 원래 던전에서는 이렇게 힘을 쓰진 못했는데….”
“후… 다들 오랜만….”
“존댓말 안 하면 죽여버린다.”
“입니다.”
그저 평소처럼 대하려다가 팔짱을 끼며 이글거리는 그 붉은 눈동자에 위험을 느낀 고대신룡이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지만, 아까의 그 무식한 힘을 봤기 때문에 굳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족쇄에서 풀려나자마자 바로 금오가 부탁했다.
“고대신룡, 미안하지만 피닉스의 잠식을 해결해주십쇼.”
피닉스는 팔뚝까지 검게 물들어버린 자기 팔을 내밀었다. 언뜻 보기에도 심각한 수준의 잠식이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났다면 그때 그 빙하고룡처럼 바뀌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그녀가 마냥 평범한 드래곤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고대신룡은 전보다 밝고 형태를 갖춘 빛의 검을 꺼냈다. 그의 힘이 창조의 힘이란 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전보다 더 다양한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빛의 검의 모양은 마치 주사기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모양이 마음에 안 드는데. 날뛰어도 돼?”
고대신룡이 원한다면 빛의 검이 벨 수 있는 것을 정할 수 있었지만 거대한 검을 만들기에는 너무 과한 처리였다, 빛의 검이 주사기의 모양을 띤 것은 치료를 한다는 목적으로 생각하니 자연스레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참아주세요…”
금오도 그녀가 정말로 날뛸 거라 생각했는지 급하게 금빛 실을 꺼내어 그녀의 팔을 묶었다. 그것도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실로. 그의 행동에 피닉스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는지 한쪽 볼을 부풀어 올리며 말했다.
“어차피 통하진 않겠지만…. 농담인데, 왜 다 진짜라고 생각하는 거지?”
“….”
고대신룡이 주사를 놓는 것처럼 빛의 검을 그녀의 팔에 갖다 대자 잠식은 서서히 걷어져 갔다.
“G스컬은… 어떻게 됐습니까?”
“죽여버렸어, 가루로 만들어버렸지.”
피닉스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그럼 봉인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요?”
고대신룡은 자연스럽게 금오와 번개고룡을 쳐다보았다. 그 질문에 들려온 목소리는 두 가지였다.
“아뇨, 그의 부활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아니,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어.”)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대신룡은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부활이 진행 중이라는 것은 이해했다. 아직 남은 G스컬의 잔당들이 남아있을 테니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라는 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봉인 재료는 이곳에 전부 있습니다. 하지만 위치를 알 수 없으니 각자 흩어져서 찾아봐야겠군요.”
인원이 금오와 피닉스, 그리고 나와 번개고룡으로 나뉘었다.
“아 왜?!! 나 번개고룡이랑 같이 갈래! 너 싫다고 저리 가라고! 차라리 나 혼자 갈게 어차피 여기 애들 다 약하잖아!”
피닉스가 금오와 같이 가는 것이 굉장히 불만인 듯하였다. 금오는 지하성체에서 오래 버티려면 이렇게 말고는 나눌 수 없다고 말했다.
“피닉스, 저와 가야 힘의 제약을 덜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재료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마 조금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들은 둘로 나뉘어 지하성체를 돌아다녔다. 고대신룡은 거대한 실험실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곳들을 돌아다니며 재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마 재료를 찾기 위해 쓴 창조의 힘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찾았다.”
‘재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바로 이렇게 찾을 수 있게 되는구나….’
“벌써?”
깜짝 놀란 번개고룡이 후다닥 달려오며 말했다.
“오, 정말이네 딱 하나 빼고 다 있어.”
G스컬이 빛의 결정체와 접촉 할 수 없었던 이유 때문일까. 고대신룡이 찾은 재료들은 빛의 결정체를 제외한 모든 것이었다.
“그럼 이제, 빛의 결정체만 찾으면 되겠다!”
번개고룡이 신이 난 듯 재료들을 주섬주섬 담으며 말했다.
‘번개고룡은 나이트 대령과 함께 온 거겠지? 그럼 나이트 대령은 밖에 있는 건가? 왜 같이 들어오지 않았던 거지?’
“번개고룡....”
“잠깐”
그 궁금증과 함께 번개고룡에게 물어보려던 찰나. 갑자기 진지해진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조용히 해보라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고대신룡은 깜짝 놀랐지만 천천히 그녀의 지시에 따랐고 천천히 움직이는 그녀의 시선에 집중했다.
“저게…. 뭐야?”
Ep.46 잊지 않을 추억 (8)
고룡의 무덤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서로 살의를 담은 창과 검이 맞닿으며 최선을 다해 서로를 죽이려 든다.
“한쪽 팔로도 꽤 오래 버티는구나, 아까 그 말이 정말로 허풍은 아니었나 보지?”
창과 검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칼리시가 여유로운 척을 하며 말했다.
“허풍을 하는 것은 너 같군.”
반대로 나이트 드래곤은 한쪽 팔만으로도 지친 기색 없이 칼리시를 상대하고 있었다.
‘공격을 받아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저 녀석 어떻게 계속 강해지는 거지?’
그때 지하성체 쪽에서 충돌음과 뒤따라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의미를 나이트 드래곤은 알고 있었다.
“지하성체가…!”
“아무래도 승부가 난 것 같군.”
칼리시는 흔들리는 지하성체를 보며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지만, 나이트 드래곤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 마음대로!”
“네가 가장 잘 알지 않았나, 칼리시.”
나이트 드래곤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칼리시를 보며 대응하듯 자세를 취했다. G스컬을 잡기 위해 갈고 닦은 그의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힘을 검에 집중했다.
“생각대로 움직여 줘서 고맙다 칼리시. 이만 끝을 내주겠다.”
칼리시는 있는 힘을 다해 나이트 드래곤에게 지팡이를 내질렀다. 그러나 이미 힘의 균형은 무너진 상태였고 나이트 드래곤은 그녀의 눈보다 빠르게 움직여 그녀의 뒤에서 나타나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어떻게…. 던전에서 나를….”
칼리시는 지팡이와 함께 절반으로 분리되었고 검의 참격은 멈추지 않고 날아가 멀리 있는 고룡의 해골까지 닿았다. 고룡의 무덤은 아주 오랜만에 빛과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이트 드래곤은 기어가며 도망치는 칼리시의 등에 검을 꽂아넣었다. 칼리시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퍼졌지만 나이트 드래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이트 드래곤은 그녀를 바로 죽일 생각이 없었고 천천히 고통만을 느끼게 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곧 죽을 테니 많은 말을 하진 않겠다. 한 질문에만 답을 해줬으면 좋겠군.”
“이 빌어먹을…. 용 대가리가….”
-
“저게…. 뭐야?”
번개고룡은 고대신룡의 몸을 잡고서 일단 숨었다. 불안하고 불쾌한 감각이 그녀를 찌르고 있었다.
‘설마…’
“근데 번개고룡 우리 왜 숨은 거야?”
같이 숨은 고대신룡이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야 당연히 위험…”
“??”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그 순수한 고대신룡의 표정에 그녀는 화가 날 뻔했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그녀는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이 지하성체에서 고대신룡을 이길 존재는 없다.
‘아 맞다.’
“나도 모르게 그만…”
그 잠깐 사이에 온갖 일을 겪다 보니 새삼 자신이 그동안 누구와 동행해왔는지 까먹고 있었다. 고대신룡의 존재에 안심한 번개고룡은 몰래 고개를 내밀어 그 존재를 확인하려 했다. 공교롭게도 그 존재 또한 그들을 인식한 것인지 그것은 번개고룡 바로 앞에 있었다.
“오어왁!”
“으엑?!”
이상한 소리를 내며 번개고룡은 번개를 방출하며 그것에게 쏘아댔다.
“젠장.. 먼저 온 놈들이 있었을 줄이야. 이 길은 나만 알았던 건데….”
익숙한 목소리
“너…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분명히 머리를 박살 냈다고 한 피닉스의 말과는 다르게 G스컬이 멀쩡한 상태로 그들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 몸은 언데드라고, 그리고 말했지 않나. 나는 그분이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다고.”
“그건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
뒤에 숨어 있던 고대신룡이 곧바로 빛의 검을 소환했다. 자신의 힘의 본질을 깨달은 고대신룡은 하늘의 신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며 G스컬을 위협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모든 분노를 빛의 검에 담아냈다.
G스컬은 당황했지만 곧바로 도망치진 않았다. 대신 고대신룡의 빛의 검을 보며 뭔가를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하…. 그 검 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내뿜고 있군. 뭔가 그사이에 또 계기가 있었던게지? 정말 말도 안 되는 능력이야. 그 힘이 내게 있었더라면….”
고대신룡은 주저하지 않고 G스컬의 몸을 갈랐다. 단 한 번의 검격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며 G스컬의 몸을 소멸시켰다. G스컬이 사라진 그곳에는 그저 빛으로 타들어 간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생각보다 간단하네. 얼마나 더 강해진거야?”
번개고룡의 말에 고대신룡은 묵묵히 그을린 자국을 보고 다시 강하게 쥔 빛의 검을 보았다.
‘허무하다. 그리고 아직도 마음 한편엔 무엇인가 해소되지 않은 느낌이 있어. 이건 도대체...’
G스컬을 잡았지만, 여전히 마음은 허전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그동안의 모험과 복수가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는 것인가. 복잡하고 아리송한 감각이었다. 그동안의 시간이 그리고 결말이 이렇게 쉬울 수가 있는 건가? 그 생각이 너무 섣불렀다는 것을 뒤늦게 후회한다.
“말하지 않았는가. 죽을 수 ‘없다’고.”
그들이 G스컬을 죽였다는 허무함과 안도감이 채워지기도 전에 불안한 오싹함과 섬뜩한 기운이 그들을 덮쳤고 우습다는 듯 번개고룡의 뒤에서 또다시 그가 나타났다.
‘뭐지…? 분명’
고대신룡은 분명히 G스컬을 빛으로 소멸시켰다. 그리고 두 눈으로 사라지는 것도 똑똑히 보았다. 피닉스가 죽였다고 말하고 난 후에 다시 나타난 것도 이상한 거였지만 언데드라고 했어도 그건 부활이 아니었다. 그저 어디서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분신에 가까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붉게 타오르는 그 손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과 고대신룡이 번개고룡 대신 그를 막아서기엔 거리가 너무 늦었다는 거다.
“재료를 내놓아야겠군, 불의 드래곤이여.”
더 이상 그녀의 번개에는 빛의 힘이 깃들 수 없었고 자신의 번개가 G스컬을 막아낼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번개고룡은 망설임 없이 손바닥에 전류를 모았다. 피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G스컬 또한 그녀의 결의를 인지했으며 잠깐이나마 그녀를 인정했다. 그리고 G스컬의 공격이 적중하고 말았다.
“번개고룡!”
고대신룡의 외침과 함께 공간이 뒤틀리며 붉은 섬광이 폭발했다. 그 폭발력은 고대신룡조차 다가가는 것을 주춤하게 만든 충격으로 순식간에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오며 귀청이 아픈 굉음을 뒤로 검붉은 연기가 밀려 들어와 찌릿한 느낌을 주었다. 뒤늦게 번개고룡에게 다가가 보려 빛의 검으로 연기를 걷어냈다.
‘제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창조의 힘이 있는 이상, 그녀가 죽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고대신룡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벌어졌으면 안 됐다.
연기가 걷어지고 난 후에 드러난 공간 속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어디에 있지?”
나이트 드래곤의 질문에 칼리시는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마치 절대로 생각하지도 못한 질문을 들은 것처럼. 칼리시는 피인지 침인지 알 수 없는 검은 액체를 흘려대며 말했다.
“그건 고대신룡조차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걸… 네가 어떻게?”
나이트 드래곤은 무의식적으로 한 드래곤을 떠올렸다. 짜증 날 정도로 고지식한 불의 드래곤을 떠올리며 칼리시에게 말했다.
“비슷한 녀석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p.47 잊지 않을 추억 (9)
“비슷한 놈을 알고 있다고?”
칼리시의 당혹감은 표정으로 전부 드러났다.
“내가 본 그 녀석은 전부 진짜였나?”
“그럴…그럴리가.”
이미 칼리시는 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어느 지점부터 충격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정한 말만을 반복할 뿐 대화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 끌기 용이었나.”
누군가 지하성체에 진입한 지 시간이 꽤 된 이상 더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칼을 비틀어 그대로 칼리시의 숨을 끊어내고선 곧장 지하성체로 날아갔다.
‘그들은 절대로 G스컬을 잡지 못할 것이다. 서둘러야겠군’
-
연기가 걷어진 후 번개고룡은 놀란 얼굴을 하며 뒤로 자빠져있었다.
“다행…”
번개고룡은 멀쩡했다.
“경감…?”
금오 경감의 희생 덕분에
“전에 이런 상황이 한 번 더 있었던 것 같은데…”
G스컬은 머리를 긁적이며 몸 중간에 커다랗게 구멍이 난 채로 쓰러진 금오를 바라보았다.
“뭐…. 어쩔 수 없나, 이미 죽은 드래곤을 생각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지.”
G스컬이 마저 공격하려고 하자 고대신룡이 나섰다.
“아차, 네가 있었지.”
검에 맞닿기 전 G스컬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소멸되었다. 마치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 고대신룡의 공격을 전부 맞아주었다. 그리고 소멸한 지 얼마 지나지 않고서 다시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너희들의 위치가 드러난 이상, 너희는 날 이길 수 없다.”
G스컬을 죽이면 어느새 되살아나 다시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고대신룡의 입장에서 번개고룡을 지키며 그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것을 계속 소멸시켜도 자꾸만 불안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네 힘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구나…”
G스컬은 끔찍한 웃음소리로 그들을 점점 옥죄어 갔다. 모든 것은 시간 싸움이었다. 아무리 고대신룡이라 한들 이 상황이 무한정으로 지속되면 힘의 균형은 G스컬 쪽으로 기울고 만다.
‘해결책을….’
고대신룡의 정신은 거의 한계에 다가갔다. 번개고룡의 잠식을 같이 막기 위해 빛의 힘을 나누어 쓰다 보니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벌써 지쳐버린 건가? 아쉽게… 으악!?”
안쓰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던 G스컬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이 기괴하게 꺾이기 시작했다.
“자…잠깐 으악! 감히… 엑! 누가…!”
“…?”
고대신룡과 번개고룡이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는 G스컬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그들의 눈빛이 당황스럽고 황당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쟤… 뭐하냐?”
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엉뚱한 행동에 고대신룡은 천천히 다가가 G스컬을 소멸시켰다.
그리고 다시 그가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어째서인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고 그제야 고대신룡은 안심하며 번개고룡에게 물었다.
“번개고룡 괜찮아?”
고대신룡은 쓰러진 금오 경감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번개고룡의 마음을 느꼈다. 금오 경감과 번개고룡의 관계가 어땠을 진 몰라도 아마 자신이 형님을 잃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 생각했다.
“괜찮아. 더 슬퍼할 수도 없어. 다 내가.. 아니야. 어떻게 저 녀석을 막을지만 생각하자.”
“…알았어”
번개고룡은 차분했다. 갑작스러운 동료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의 희생에서 계속 묶여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지금은 어째서인지 나타나지 않지만 언제 또다시 나타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나타나는 G스컬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
‘창조의 힘으로도 어떻게 죽여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금 이 방법으로는 어떠한 가능성도 생각나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 문제를 단숨에 뚫고 나갈 방법을 그 혼자서 생각하기엔 무리였다.
(“애초에 방법이 잘못된 거겠지.”)
‘형님?’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놈은 애초부터 너희들을 제대로 상대할 생각이 없었어.”)
‘봐주고 있다는 거야?’
(“네 앞에서 봐주고 말고가 어디 있겠니, 우리가 어떤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끔 방해하고 있다는 거야.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가장 강력한 변수를 잡아주기 위해서.”)
형님의 말에서 고대신룡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최대한 많은 가능성의 가닥을 뽑아내면서 이 상황을 해결해나갈 방법을 창조해낸다.
(“네가 생각한 방법은 뭐지?”)
방법이 처음부터 잘못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가짜였는지는 몰라도 확실한 건 여기 있는 모두가 감쪽같이 속아버렸다는 거다.
“본채가 아니었어…”
“뭐…?”
고대신룡은 작게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시간을 끌고 있던 거였어. 너와 내가 이곳에서 나갈 수 없도록…”
“너는 그렇다처도 나는 왜…?”
유일하게 다크닉스의 부활을 막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고대신룡은 긴장한 눈빛으로 번개고룡을 바라보았고 번개고룡도 뒤늦게 이해했는지 똑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대처는 단 하나였다.
“번개고룡, 내 몸을 잡아.”
“뭐…? 갑자기?”
번개고룡이 당황하며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지만 고대신룡은 더 이상 시간이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팔을 잡아 몸에 대충 두르고 그들이 있는 실험실의 천장을 향해 빛의 검을 들어 올렸다.
“야… 너 뭐하…”
깜짝 놀란 번개고룡을 뒤로하고 고대신룡은 곧바로 천장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를 가로막는 천장들을 부숴가며 순식간에 지하성체의 꼭대기 층을 뚫으며 던전의 하늘 위로 비상했다.
“빠…빠르네.”
번개고룡이 착잡한 마음으로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네가 강해진 게 아직도 새롭게 느껴져.”
“난 원래 강했어.”
“…그냥 재수 없어진 거였네.”
고대신룡은 그녀의 말에 잠깐 피식 웃고는 다시 숨을 천천히 들이쉬면서 온몸의 감각을 깨웠다. 그가 하늘로 올라온 이유는 단 하나다. 번개고룡을 돕는 것,
‘우선, 다크닉스의 봉인장소를 찾아야 한다.’
-
“빛의 결정체는 어디에 있지.”
나이트 드래곤이 벽 끝으로 몰려 두 팔을 들고 있는 G스컬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고 G스컬은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감히…. 한낱 운명의 졸개 따위가….!”
Ep.48잊지 않을 추억(10)
“금오”
침대에 편안하게 누운 헬청장이 옆에서 걸터 앉아 허공에서 사과를 깎고 있는 듯한 그를 불렀다.
“네”
“요즘따라 멍 때리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
“음…”
그녀가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싶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사과는 전부 깎고서 그녀 앞에 이미 둔 상태였고 허공에서 칼을 휘저을 뿐이었다.
“요즘 일이 빠쁘다보니 그만…청장님이 없는 불의 산은 매우 힘들거든요. 빨리 복귀를 하셔야…”
금오가 슬퍼하는 척하며 그녀를 걱정하는 말을 했다. 그녀는 복귀라는 말은 그대로 무시하고 정말 그런 단순한 일 때문인지 아리송한 그녀는 말 없이 포크 사과 한 조각을 푹 찍어 입으로 가져왔다.
“음…아닌 것 같은데, 나한테 말 안 한거 있어?”
그녀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더니 뭔가 이상한 금오를 살펴보기 시작했다.칼을 쥐고 있는 손을 제외하고 그의 몸을 구석구석 만져보기 시작했다.
“청장님?”
“미안,확인할게 있어.움직이지 말아 봐.”
헬 청장은 지금 금오의 표정은 확일 할 수 없었지만 아마 어느정도 불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확인할 것은 확인해야한다.
“음..분신은 아닌데…”
금오의 금빛 실은 아주 약간이지만 창조의 힘이 담겨져 있다, 완벽한 몸을 구성할 수는 없지만 드래곤의 능력이란 무궁무진한 법. 그는 몇 개의 가능성의 가닥을 뽑아 몸을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자신의 실체 일부를 이용해야하는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거였습니까..”
그녀는 확인이 끝난 후에도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만지며 금오를 수상한 눈으로 처다보자 금오가 해명을 했다.
“방금 제 분신 하나가 죽은 것 같습니다.”
“내 명령 없이 뭔가 또 했구나?”
헬청장의 눈이 가늘게 변하며 금오에게 물었다.
“목적은? 또 누군가의 감시? 아니면 네가 직접 뭘 하는거야? 무리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네가 능력은 좋지만…. 신체 능력이 워낙 딸려서 뭘 할 수가 있어야지.”
‘그건 청장님이 이상한 겁니다.’
“방금 속으로 반박했지.”
헬청장의 붉은 눈이 금오를 뚫어질라 노려보고 있었다.
“…청장님 말대로 그들을 직접적으로 돕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알맞은 흐름을 따라 그들에게 알려준 것 말고는 한 게 없습니다.”
“그래도 무리하지마, 나한테만 집중하라고.분신은 더 없지?”
헬은 금오의 두 뺨을 잡고서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은 분명 그녀를 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의 비친 풍경은 더 먼 곳에 있었다.
“아직…하나 더 있긴 합니다.”
“뭐?”
-
“피닉스.”
“…”
“피닉스…”
“…”
“피닉스님.”
“...왜 불러.”
“화나신겁니까?”
“아니.”
피닉스는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뾰루퉁해진 얼굴은 잔뜩 불만을 가진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오와 함께여서일까 정확한 이유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피닉스님, 어쩔 수 없는거였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금오의 목소리를 듣고서 결국 피닉스의 분노가 한계를 뚫고 터져버렸다.
“나랑 같이 갈거면 계속 쭉 있던가, 갑자기 이상한 인형같은 것만 두고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는게 말이 되냐? 너 번개고룡한테 간거잖아.”
“이상한 인형이 아닙니다. 이것도 접니다. 혹시 몰라 비상용으로 만든 게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얼굴만큼 작은 모습을 한 금오 경감이 팔짱을 끼면서 재료를 찾고 있는 그녀 뒤에서 말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야?”
“당신과 마주친 그 순간부터.”
“하.. 난 죽을지도 모르는데, 넌 그냥 분신으로 왔다?”
“본체로 왔다면 청장님도 이곳에 왔을테니까요.”
“진짜 미친놈이네. 이유가 뭐 그래? 난 죽어도 괜찮다 이건가?”
“죽을 수 있지만 제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부분에서 화를 내시는군요. 제가 분신이든 아니었든 번개고룡이 위험한 건 사실이었고 이곳에 온 것은 당신의 의지였습니다.”
“하…이 새끼 맞는 말만 하네? 처맞는 말.”
피닉스가 주먹을 쥐며 작은 금오를 노려보았다. 조금만 더 마음대로 말하는 순간 일단 죽여버리겠다는 생각이 금오에게도 전해졌고 그는 천천히 그녀를 설득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개고룡에게 간 건 맞지만 결국 피닉스님과 떨어지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닙니다.”
“…뭐”
“제가 가지 않았었더라면 번개고룡은 죽었을겁니다. 아마 지금쯤…”
말을 하던 도중에 작은 금오가 쓰러졌다.
“…뭐 뭐야?”
피닉스는 쓰러진 작은 금오를 두손으로 들고 흔들었다.
“야..!뭔데 왜 쓰러진건데?”
작은 금오는 눈을 감은 채로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런 금오를 계속 흔들어보고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한번 감겨진 눈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금오의 기운이 사라졌다 느껴지는 순간 지하성체의 기운이 피닉스를 노리기 시작했다.
잠식이 시작된 것이었다. 피닉스는 지하성체라도 빠져나가려했지만 그녀의 힘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작용이 왜 갑자기?’
반작용의 영향이 커지면서 잠식의 저항할 능력도 점점 약화되면고 잠식의 속도는 더욱 빨라져갔다.
‘안…돼,이렇게 끝날 수는…’
잠식은 어느새 그녀의 목까지 뒤덮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 순간에 거대한 빛의 검이 벽을 부수며 그녀의 몸을 꿰뚫었다. 빛의 검은 그녀를 다치게 하진 않았고 그녀를 감싼 어둠의 기운만을 몰아내고 사라졌다.
‘이 기운은….’
“적잖은 익숙함과 불쾌하고 끔찍한 기운에 이끌려 우선 온 거지만….”
나이트 드래곤이 부서진 벽을 넘어오며 말했다.
“적당한 때에 온 것 같군.”
“나이트 드래곤?”
나이트 드래곤은 원래 평범한 하늘의 신전 드래곤이지만 그녀의 눈앞에 있는 나이트 드래곤은 어딘가 독특하고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드래곤이 금오가 얘기한 그 드래곤이라는것을
그 나이트 드래곤은 멀쩡해진 그녀를 보며 물었다.
“…피닉스인가 이곳에 있다는 건,너도 고대신룡의 동료인가?”
“뭐?나는 그런 녀석하고 같이 안 다니거든?”
“그럼 넌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이지.”
나이트 드래곤은 그녀를 면밀히 관찰했다. 평범하진 않지만 피닉스는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면 지하성체에서 오래 버티는 것은 불가능 했을테지만 피닉스는 아까의 상황을 제외한다면 그전까지 그리 위험한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미궁같은 지하성체에서 잠식의 기운을 느낀 것은 이곳의 들어온 이후로 처음이었으니.
‘아까 느껴졌던 기운은 아 자의 것이 아닌가.’
“질문을 바꾸지,이곳에 누구와 온 거지?”
피닉스는 작은 인형같은 금오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나이트 드래곤은 그것을 보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작은 금오를 건네받았다.
“….”
건네 받은 나이트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보여 피닉스는 괜히 걱정이 되었다.
“괜찮은거야? 갑자기 쓰러지더니 깨어나질 않아.”
나이트 드래곤은 작은 금오의 육체를 집어 던지고선 빛의 검으로 분해시켰다. 그 모습을 보고는 피닉스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
“왜 그래?”
금오가 다시 한번 움찔거리자 헬이 걱정하는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꽤나 과격한 방법으로 돌려주시는군요…’
-
피닉스는 불꽃을 손에 둘러 나이트 드래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그녀의 주먹을 받아내며 불꽃을 견뎌내고 있었다.
‘막아냈어?’
“의미 없는 분노다. 저게 놈의 분신이었다는 것은 알았겠지. 하지만 본체가 이곳에서 멀어진 이상 회수는 불가하다. 나는 그 회수를 도와준 거다.”
“…그런 거야?”
피닉스는 불꽃을 끄고 주먹의 힘을 뺐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적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났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G스컬를 찾아 죽여야 한다.”
“응? G스컬은 이미 내가 죽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 그때 지하성체에 큰 굉음의 원인이 그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까의 힘으로 이상함을 느꼈지만…이게 피닉스의 힘인가.’
“빛의 힘 없이 G스컬을 어떻게 잡은 건지는 몰라도, 그건 분신이다. 본체는 어딘가에 숨어있다. 교활하게 다크닉스의 부활을 성공시키기 위해…”
피닉스는 그를 처음 보았지만 ,그 말에 있는 깊은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지하성체를 돌아다니며 G스컬의 본체를 찾아다녔다.
“분신이라…그 놈도 금오처럼 수상하네.”
“똑같이 마음에 안 드는 놈이지.”
“뭔가 말이 통하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그보다 본체라는 거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피닉스와 나이트는 지하성체의 어떤 제단으로 보이는 공간을 돌아다녔다.
“나도 본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아주 불쾌한 기운을 내뿜고 있을 거다.”
“음…혹시 이건가?”
옥좌처럼 보이는 곳을 살펴보고 있던 피닉스가 무언가를 꺼내 들어 나이트에게 보여주었다. 무언가를 찾은 듯한 피닉스의 말을 듣고서 그녀가 꺼내 든 것을 보았다. 그것은 반짝이는 붉은 빛을 내는 구슬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잠깐….이거 왜 이러냐?”
피닉스는 잠식을 버티게 해줄 창조의 힘이 없으므로 혼자서는 지하성체에 있을 수 없다. 그것을 나이트 드래곤 덕분에 피할 수 있었음에도 구슬을 만진 피닉스의 손이 천천히 잠식 당하고 있었다.
“맞는 것 같군. 불쾌하고 끔찍한 기운을 내뿜는 것이 느껴진다.”
피닉스는 자신의 손이 잠식 당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콕콕 찔러보며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지켜봤다. 나이트는 구슬을 가지고 장난치는 피닉스에게서 잽싸게 그것을 뺏었다.
“장난칠 시간이 없다.”
“아,알았어.”
피닉스는 의외로 순종적으로 그의 말을 따랐고 나이트 드래곤은 곧바로 G스컬의 본체로 추정되는 수정 구슬을 갈라낼 준비를 했다.
Ep.49 잊지 않을 추억 (11)
“신기하네…”
“하….”
나이트가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빛의 힘을 받은 이후로 힘든 적이 많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꽤 애 먹었군.”
한 팔이 없는 영향일까 아니면 저 구슬이 매우 단단한 것일까, 나이트는 최대한 세게 내려치며 구슬을 부스려고 했지만 여러번의 시도 끝에 아주 약간 금 간 것이 그의 최대였다.
하지만 이정도라도 G스컬을 끌어들이는데에는 충분 할 것이다.
“잠깐… 저거!”
구슬이 흔들리면서 엄청난 양의 암흑의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나이트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피닉스가 위험함을 인지하는 동시의 그녀의 앞에서 그 기운들을 막아냈다.
“드디어 오려는 군. 음침한 자식.”
구슬을 중심으로 G스컬의 머리가 천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멍청한 녀석들을 천천히 놀려주려고 했더니… 누가 감히 이몸의 유흥을 방해 하는가….”
“나다.”
“헙.”
G스컬의 모든 몸이 구성되자마자 나이트는 곧바로 도망치려는 G스컬을 벽으로 밀치고 칼을 뽑아 머리 옆에 찔러넣었다. G스컬이 기겁을 하면서 두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네가 여기에 어떻게…? 분명 칼리시와 함께…”
“닥쳐라, 네가 물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이트는 검을 G스컬의 목에 댄 후 물었다.
“빛의 결정체는 어디에 있지. 왜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거냐.”
“내가 거기에 대답해야 할 의무는?”
G스컬은 가소롭다는 듯 눈을 뜨고 거부했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피닉스가 주먹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죽여버릴까?”
“아니, 네가 나설 필요는 없다.”
나이트는 온 몸에 불을 점화시킨 그녀를 말렸다, 마치 더 좋은 생각이 있는 듯한 표정으로 G스컬을 보았다.
“뭐, 굳이 살려놓을 필요는 없겠지.”
“자…잠깐!”
그는 G스컬의 목에 닿을 듯 말듯 했던 칼이 힘을 주고 그대로 베어버렸다. G스컬의 목은 그대로 허공을 날며 피닉스 손에 안착했다. 피닉스는 얼굴을 돌려 G스컬을 마주 봤다.
“안녕?”
“….넌 뭐야! 날 놔라!”
“ㅎ…”
피닉스의 손은 천천히 잠식 되어갔지만 어깨와 팔의 힘을 주면서 그대로 투덜거리는 G스컬의 머리를 깨부쉈고 머리는 아주 간단하게 가루가 되었으며 피닉스는 손을 털털 털더니 바닥에 가루를 흩뿌리며 말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건데? 그놈 없어도 봉인은 풀린다며. 빛의 결정체가 있어야 봉인시킬 수 있는 거 아니야?”
나이트는 조용히 재생하려는 G스컬의 몸을 계속해서 도려낼 뿐 말이 없었다.
“뭔 말이라도 좀 해봐, 너도 무슨 정해진 길이라는 것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는거냐? 금오처럼?”
“그런 말은 삼가 해줬으면 하는군.”
비아냥 거리는 피닉스의 말에서 어딘가 마음에 안 드는지 나이트가 입을 열었지만 여전히 G스컬에게만 집중 할 뿐이었다.
“뭐.. 뭔 말?”
갑작스럽게 화가 난 것 같은 나이트의 뒷모습에 당황하며 자신의 말을 다시 떠올려봤다.
“금오?”
그 이름을 꺼내자 나이트가 움찔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 후에야 알았다는 듯이 헛웃음과 함께 시선을 회피했다.
“아… ㅎ”
“그런 나약한 놈과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어디선가 금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피닉스가 밝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상하게도 금오는 보이지 않았다.
“금오? 어딨어?”
갑작스러운 살기가 그녀에게 느껴졌다. 모든 감각이 자신의 앞에서 날카롭게 깨어났는데 그 살기의 방향을 바라보자 나이트 드래곤이 그녀를 향해 검을 뽑았다.
‘어? 갑자기?’
당황할새 없이 나이트 드래곤은 그녀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 속도는 그녀의 인지를 벗어났기 때문에 반응 할 수조차 없었고 그대로 죽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
천천히 눈을 뜨자 나이트 드래곤이 노리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가 벤 것은 그녀가 아닌 그녀의 머리 위쪽이었고 지금도 자신이 아닌 허공을 베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의 그릇처럼 작은 상태도 꽤나 마음에 들지만 결국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건가?”
자세히 보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은 아니었다. 아주 조그만 신형이 나이트의 검격을 피하고 있는게 보였다.
“야… 니네 왜 싸우냐,,?”
갑작스러운 싸움은 피닉스마저 난감하게 만들었다. 한 평생 동안 그녀를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번개고룡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오로지 내키는 대로 살아 왔지만 자신이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 저 상황을 어떻게 해결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약간씩 들기 시작했다.
“이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아실텐데요, 나이트 대령.”
“미친 건가? 네놈을 여기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전혀 낭비 되는 것이 아니다.”
피닉스는 서로 말싸움까지 해가며 서로 베어내고 피하는 것을 반복하는 그들의 싸움을 보다가 도저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말릴 수 없다고 판단했고 조금은 무모하게 그들을 말리려 했다.
“니들 지금 안 멈추면…”
그녀가 입을 열어도 그들은 들은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예상한 바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 거고.
“나 이거 만지고 확 변해 버릴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G스컬의 본체를 담고 있는 수정에 손을 갖다대려 했다. 그러자 금오의 금빛 실이 그녀의 온 몸을 구속하며 그 행동을 저지했고 나이트 드래곤도 어느 순간 그녀 앞에 나타났다.
“네가 막지 않았어도 됐다.”
“그럼 늦었겠죠, 제가 막았으니까 대령께서 그리 앞에 있을 수 있었던 겁니다.”
금오가 피닉스 머리 위에 올라서며 말했다.
“…그만 싸워줄래? 시간 없다며.”
그들 사이에서 묶여있는 피닉스가 지친다는 듯 말하자 나이트와 금오는 서로를 잠시 응시하더니 나이트가 먼저 돌아섰고 동시에 금오의 실이 전부 사라졌다.
“금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피닉스는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작은 금오를 잡아서 마주보았다, 금오는 잡힌 채로 그작은 입을 움직이며 말했다.
“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없어진 이후로 어떻게 됐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적당한 드래곤을 만난것 같군요.”
“어,,,, 좀 과격하긴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에 빛의 검이 관통당했던 처음을 기억하고 잠시 자신의 멀쩡한 배를 문지르며 얼떨떨한 기색으로 말했다.
나이트는 싸우고 난 후에 계속 수정을 베고 G스컬이 나오려 하면 곧바로 소멸시키는 것을 반복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피닉스가 금오에게 말했다.
“근데… 니네 뭔 일 있었냐? 뭔데 쟤가 네 이름만 말하면 갑자기 G스컬을 만난 것처럼 구는 거냐.”
“같은 처지의 동료 같은 마음이죠.”
금오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피닉스는 그 표정이 가식으로 가득 찬 표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말은 똑바로 하는 게 좋겠지. 네가 하는 방식은 나와 완전히 다르니까.”
Ep.50 잊지 않을 추억 (12)
나이트는 수정을 내려치면서도 금오의 말을 듣고 있었는지 짜증이 가득 섞인 말을 했다.
“다른 방식이라. 물론 겉으로는 그렇긴 하지만 당신의 방식은…. 결국 틀린 방식이 맞지 않습니까?”
이유를 알 수 없는 금오의 도발. 피닉스는 왜 한쪽 팔이 없는 상태로도 G스컬을 저렇게 쉽게 잡는 나이트를 열받게 하려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평소와는 다른 금오의 분위기에 피닉스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금오는 그녀의 손아귀에서 나와 팔을 타고 어깨에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이트 대령,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을 눈치챈 후에는 친히 빠져드렸습니다만, 생각은…. 좀 바뀌시었습니까?”
나이트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살벌한 눈빛으로 금오를 바라보았다.
‘살벌해라…’
피닉스는 금오가 하는 얘기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얘기란 분명 고대신룡 그리고 다크닉스와 관련된 무언가라는 짐작과 그녀마저도 식겁할 만한 그의 눈빛만이 있었다. 피닉스는 분위기가 워낙 무거워 금오에게 속닥거렸다.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해?”
“필요한 말입니다.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을 테니까요. 나이트 대령이 저 수정을 지금까지 깨부수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거든요.”
“그게 왜?”
‘수정이 갈라지지 않는 것은 힘이 부족한 게 아니었나?’
피닉스가 속마음으로 궁금증을 가질 때 조용히 있던 나이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어쩌면….”
나이트는 수정을 부서트리려던 행위를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결국 네가 옳았군. 처음부터 정해진 미래란 것은 살짝 짜증 나는군.”
“당신의 탓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꾸 너네만 아는 얘기 할래?”
온갖 궁금할 말들은 전부 하고서 정작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짜증만 날 뿐이었다.
“피닉스, 전에 제 눈에 대해 궁금해하셨던 적이 있으셨죠.”
“그렇지.”
“전에 말씀드렸지만, 미래를 보는 눈은 아닙니다. 오로지 앞에 생길 수많은 흐름의 가닥을 바라볼 뿐. 그러므로 고대신룡이 절 찾아왔던 겁니다. 수많은 가닥들 중 원하는 것 흐름을 보기 위해서는 제 능력이 꼭 필요했으니까요.”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니야?”
“일부는 그렇지 않지.”
“창조의 힘은 어느 상황이든 가능성만 있다면 그것을 현실로 실행할 수 있지만 그 상황을 생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가능성이란 게 참… 복잡하네. 머리가 아파.”
피닉스는 지끈한 머리를 잡으며 말했다.
“암튼 계속해봐.”
“가능성을 뽑아낸다는 것은 정해진 미래로 가는 방법을 아는 것에 한정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당신에게 팔을 휘두른다면…”
작은 금오가 주먹을 휘둘렀다. 피닉스는 맞아주지 않고 피했다.
“그렇게 피할 수가 있죠. 하지만….”
금오는 다시 한번 팔을 휘둘렀고 피닉스는 또다시 회피하려고 했지만 금오가 피닉스의 움직임을 따라와 주먹을 적중시켰다.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면 이렇게 당신이 피하지 못하고 ‘맞는’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게 제 눈의 능력입니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네. 근데 창조의 힘은 뭐가 달라?”
“창조의 힘을 가진 드래곤이 ‘때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때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 중 하나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어느 이유든 때리는 게 ‘가능한’순간부터 무조건 맞게 되는 거죠. 하지만 역시 스스로의 믿음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했다면 대령이 저 수정을 못 부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니까요.”
“역시… 복잡하고 참 애매하네…. 나는 그런 거 안 가질래. 근데 갑자기 네 눈 얘기는 왜?”
“봉인은 풀릴 겁니다.”
“뭐?”
금오의 불안한 말과 함께 어떤 검은 물체가 매우 빠른 속도로 그들을 지나갔다.
“어? 뭐야?”
그것이 처음 보였던 방향을 바라보자 나이트 드래곤 또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쌔군.”
나이트 아래에 있던 수정은 사라졌고 검은 물체가 재빠르게 이곳을 탈출했다. 이 정보를 가지고 피닉스는 아까 그 검은 물체가 G스컬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곧장 쫓아가려 했다.
“어 뭐야?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
“잠깐, 그러지 마십쇼.”
그러나 오히려 금오는 금방이라도 온몸을 점화시킨 뒤 뒤따라가려는 피닉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너 뭐 하는 거야?! 쟤가 가면 부활하는 거 아니야?”
금오는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를 가진 눈이 그녀와 마주쳤다. 피닉스는 금오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상하게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그녀에게 반작용이 다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거 놔! 놓으라고! 왜 다 가만히 있는 건데? 나이트! 네가 놓치면 어쩌자는 거냐고?!”
나이트 드래곤에게 소리치고 나서야 그녀는 눈치챘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나이트의 얼굴과는 달리 칼을 쥔 그의 손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G스컬의 목을 베버릴 기세였다.
‘아…’
그는 놓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착각이길 바랐던 그 생각은 금오의 표정을 보자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럼 왜?’
피닉스는 천천히 진정되었고 스르륵 힘이 빠졌다. 금오가 그녀를 부축해주며 말했다.
“말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금오의 감정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저도 아니길 바랐거든요.”
그 말을 듣고서 왜 금오가 갑자기 자기 눈 얘기를 한 것인지 깨달았다.
“하….”
허탈감. 친우의 죽음을 막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하지만 고작 결과가 이거라니. 충격적인 사실을 안 그녀는 한숨만을 내쉬었다.
팔이 꺾여가면서도 이 계획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번개고룡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로 이것만을 생각하며 믿고 살아온 그녀가 떠올랐다. 하지만 가능성 속에서는 그녀가 자신의 계획을 성공한다는 가능성은….
“기분 진짜 개 더럽네.”
피닉스는 뒤늦게 고대신룡의 뒤통수를 한 대라도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지금 금오라도... 아니지…. 분신인 놈한테 지금 뭘 하겠어.’
혼자 골똘히 생각하며 고개를 젓고 있는 그녀의 시선 앞에서 나이트가 횡하고 지나갔다.
“...? 야, 너 어디가냐?”
그의 팔목을 붙잡으며 물어보았는데 오히려 나이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너야말로 왜 가만히 서 있는 거지?”
“그야 막아도 소용….”
“내가 이곳에 온 건 단순히 부활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다. ”
그 말만을 남기고서 나이트는 벽을 뚫고 사라져버렸다. 피닉스는 잠시 부서져 버린 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쟤 왜 저래?”
“저는 이해가 갑니다. 뒤따라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겁에 질려 도망간 G스컬이 갈 만한 곳이 여러 군데이진 않으니까요.”
“아”
피닉스는 금오의 말을 듣고 난 후에 이해하고서 뒤늦게 그를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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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래 분량은 ep.30이여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