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5 그들의 추억 (3)
그다지 낯설지 않은 디자인을 가진 보금자리. 그녀는 분명 앞에 있는 보금자리가 마냥 새롭진 않았다.
“엔젤의 보금자리를 들렀을 때 같네.”
“아, 그랬나?”
그러고 그녀는 침을 삼키며 그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문이 조심스레 열리며 번개고룡이 고개만을 내민 채로 안을 살펴보았다.
안은 정말로 그때 엔젤의 보금자리와 똑같은 실내장식을 하고 있었다.
‘취향인가….’
복도를 걸으면서 안쪽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그녀는 그것이 고대신룡의 목소리임을 확신했다. 점점 안쪽으로 다가가려던 중 뒤쪽에서 털썩하고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빙하고룡이 발을 헛디딘 건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빙하고룡?”
작게 그를 불러보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번개고룡은 괜히 그곳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에서 들리던 목소리도 멈췄다. 순간 그 복도가 굉장히 섬뜩해졌다.
‘에이…. 설마.’
그녀의 머릿속에는 순식간에 모든 것이 그녀를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모든 것이 끝난 마당에 누가 그녀를 노리겠는가.
그렇게 혼자서 겁을 먹은 동안 빙하고룡을 제압한 누군가 그녀의 뒤에 나타나며 그녀의 목에 무언가를 주사했다.
“뭣….”
무엇가를 주사 당한 순간 곧바로 정신이 아찔해지기 시작했으며 정신이 취한 듯 몽롱하면서 사고가 둔해졌다. 시선은 흐트러지며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너…. 누구….’
흐릿해지는 시야에서 보인 것은 서펜트처럼 녹색의 머리를 한 소녀가 겁을 먹은 채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왜 네가 겁먹은 것처럼 보이는데….’
번개고룡이 쓰러지자 안쪽에서도 그들을 인지한 듯 엔젤이 걸어왔다.
“멜? 무슨 일이야?”
멜은 검지에서 녹색의 독을 흘리며 엔젤을 보고 울먹거리고 있었다. 엔젤은 그녀를 안아주고 달래주었다.
“수상한 언니, 오빠가 우리 집 쳐들어왔어요.”
엔젤은 당혹스러웠다. 고대신룡의 말에 의하면 이곳을 볼 수 있는 드래곤은 없다고 장담했었으니, 누군가가 들어오는 게 말이 안 됐다.
‘그런데….’
멜이 칭하는 수상한 언니라는 것은 그녀 앞에 쓰러진 번개고룡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상한 오빠?”
수상한 오빠는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
멜은 조용히 쓰러진 빙하고룡의 다리를 양쪽 겨드랑이에 껴서 엔젤 앞으로 끌고 오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약간 화나 보이는 엔젤을 보며 멜은 자신이 사고 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저…. 잘못한 건가요…?”
‘아차.’
“아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는 녀석들이야. 멜은 다시 들어가서 쉬고 있어.”
“네”
멜은 종종걸음으로 다시 방에 들어가고 엔젤은 쓰러진 그 둘을 보며 아픈 머리를 붙잡았다.
“별일 없을 거라더니…. 신경 쓰지 않을 거라더니….”
“무슨 일 있어? 왜 안...”
“진짜 뒤질래??!”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간다고 한 엔젤이 안 오자, 걱정된 고대신룡이 그녀를 확인하러 오자마자 엔젤은 그에게 소리를 치며 종아리를 걷어찼다.
“악!? 왜??”
고대신룡은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별일 없을 거라며, 장난하냐? 지금 누가 찾아왔나 봐.”
“...?”
엔젤은 길을 터주며 복도에 쓰러진 빙하고룡과 번개고룡을 보여주었고 그 광경을 목격한 고대신룡은 충격을 받은 듯 뒷걸음질 쳤다.
“왜 도망가?”
엔젤은 뒷걸음질하는 고대신룡을 막았다.
“몰랐어….”
“정말?”
엔젤은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그를 쳐다보았고 고대신룡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가 사라져도,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거든.”
“애초에 네가 친 장막을 이놈들이 어떻게 뚫고 온 건데?”
“내가 한 건 결국 드래곤들이 이곳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막은 거뿐이었어. ‘이곳을 발견할 가능성을 줄인다.’ 대령이 아닌 이상, 이곳은 보이지도 않았겠지.”
그는 쓰러진 번개고룡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스며든 빛의 조각들을 추출했다.
“내가 던전에 꽂아놓은 검의 힘이 번개고룡에게 깃들면서 아마, 나와 비슷하게 창조의 힘을 쓸 수 있는 거였겠지.”
그 얘기를 듣고 난 후의 엔젤은 당황스러운 건지 흥미로운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잠깐…. 그러면 네 계획이….”
“어쩌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르는 거겠지.”
고대신룡은 엔젤을 지나치며 말했다.
“나에 대해선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곧 찾아가겠다고, 그럴 수 있지?”
“....”
엔젤은 생각이 많아졌다. 우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고대신룡의 말을 듣고 있긴 하지만 도대체 그의 목적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힘을 퍼트리는 거라면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엔젤은 속이 빈듯한 그의 눈을 마주치며 생각했다.
‘내가 물어봐도 되는 거야?’
“음…. 그럴 수 있지?”
그녀가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자 고대신룡은 어색하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재차 묻자. 엔젤은 정신을 차리고 알았다며 얘기했다.
“하….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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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누구야!”
번개고룡이 덜컹 고개를 흔들며 요란하게 깨어났다. 주변을 둘러보자 의자에 앉힌 채로 묶인 빙하고룡이 보였다.
“...뭐야?”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엔젤의 보금자리로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가 어떤 서펜트한테 독을 주입 당한 것 같았는데…. 다행히 독은 아니었나.’
번개고룡은 자기 팔을 조잡하게 묶은 밧줄을 태우고 빙하고룡을 풀어주려 했다.
“일어났어?”
번개고룡은 목소리에 반응해 반사적으로 번개를 쏘아댔다. 번개는 문을 열면서 들어온 엔젤의 바로 옆에 적중했기 때문에 다행히 그녀가 맞진 않았다.
“너 뭐야?”
“잘 자더라, 분명 하루 정도 잠들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그동안 좀 피곤했니?”
엔젤은 손에 든 따뜻한 코코아 컵을 두 잔 중 한 잔을 번개고룡에게 건네며 말했다. 건넨 코코아를 의심스럽게 보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독은 안 탔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떻게 믿고?”
“내가 널 치료한 의사라는 걸 잊은 거니?”
번개고룡은 그녀가 타온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고 잠시 음미하더니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뜨거운 걸 한 번에 다 마시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맛있네…. 그런데 뭐, 하루? 하루가 왜 지나?”
“이미 해는 저물었어,”
“...얘는 왜 안 일어나?”
“아픈 얘니까, 멜의 독에 저항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나 보지. 걔는 일단 둬봐. 너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녀는 코코아를 마시며 뒤돌아 방을 나가려 했다.
“잠깐…. 고대 신용 어딨어? 분명 어제는 느껴졌는데, 지금은 이곳에 걔가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아.”
“마음도 급해라, 어차피 그 얘기하려는 거니까. 조용히 나와.”
“내가 왜?”
“뭐,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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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고룡이 현실에 있다면 뜨거운 컵라면은 10초도 안 걸려서 먹을 수도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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