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69 그들의 추억 (7)
"우리가 존재하게 된 이유가 뭘 거라 생각해?"
그때의 고대신룡은 그렇게 물었다. 그 당시 엔젤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본질은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한 의문을 품고 그에게 대답했다.
"새삼스레 무슨 철학적인 질문이야? 많이 힘들어?"
"그건 아니고... 만약에 나이트나 네가 끝까지 창조의 힘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면. 드래곤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패해야만 하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 그를 보며 딱밤을 한 대 때렸다 .고대신룡은 얼얼한 이마를 만지며 슬픈 눈으로 엔젤을 보았다.
엔젤은 불만이 있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왜 그들의 실패를 네가 정하는 건데?"
"실패 없다면.. 분명 좌절이나 절망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그때 그의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 더 뭐라 했었던 것 같은데....'
"엔젤"
"어?"
고대신룡의 부름에 엔젤은 멍한 정신을 뿌리치고 그를 보았다.
"이곳이 마지막이라고."
"어느새.. 여기까지 온 거야?"
짠내음이 나는 어떤 곳에서 엔젤은 약간의 허무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 그래? "
고대신룡은 어딘가 어색한 엔젤의 얼굴을 보며 어떤 꺼림직함에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았다.
"무슨 고민 있어?"
"아.. 아니 그냥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서."
"나도 그래."
"이제 남은 건... 빛의 신전에서 네가 심어둔 빛을 모조리 깨우는 것 밖에 남지 않은건가?"
"맞아."
"후...."
엔젤은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갔음에도 어딘가 영 불편했다. 여전히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불길하고도 불쾌한 감각이 엔젤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설마...'
이 계획을 실행하는 그 순간부터 들었던 아주 약간의 의구심. 그리고 절대 아닐 것만 같은 그런 가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서 절대 아닐 것만 같은 가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 정확히는 '절대'라는 단어 자체를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을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왔던 그녀에게서는 그 어떤 불가능을 예측해서는 안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그 어떤 어불성설 한 가설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엔젤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에게 물었다.
"하나 물어봐도 돼?"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뭐를?"
"전에 번개고룡... 그 어떤 다른 드래곤이 던전에 있던 나의 보금자리를 못 찾게 했던 것처럼..."
엔젤에게도 창조의 힘은 미지의 힘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사실은 많지 않다. 그러니 확인해야만 했다.
"드래곤의 생각마저도 통제할 수 있는거야?"
어쩌면 고대신룡은 그녀마저 속였을 거란 그 사실을 확인해야만 한다.
"뭐?"
"너 도대체 목적이 뭐야?"
엔젤은 고대신룡을 몰아붙여 그대로 바닥에 넘어뜨렸다. 고대신룡은 빠르게 일어나보려 했지만 그녀는 넘어진 고대신룡의 몸통을 잡은채로버텼고 당황으로 가득 찬 그의 얼굴에 맞대어 말했다.
"내가 말야, 단 한번도 내 가설을 폐기한 적이 없어. 그런데 이번에 딱 한번 그런 적이 생겼거든. 그것도 아주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말이야. "
마치 누가 고의적으로 도려낸 것만 같은 그 느낌을 엔젤은 눈치채고야 말았다.
"정말 네가 어떤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었다면 절대로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여기까지 온 걸 봐서는 그런게 아니란 것은 알았어."
"그런데..."
"근데."
반박하려는 고대신룡의 말과 동시에 엔젤이 말했다.
"그럼, 내 생각은 왜 건든걸까?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래?"
엔젤은 소매를 들춰내고서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꺼내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날 죽이려는 거야? 고작 그 의심만으로?"
엔젤은 미소지었다.
"재밌네, 그게 연기가 아니라면 내가 뭘 하려는 지는 알고 있을텐데."
엔젤은 주저하지 않고 단검을 쑤셔넣었다.
"!!"
고대신룡의 얼굴에 피가 뚝 떨어졌다.
"거 봐."
엔젤이 우습다는 표정으로 고대신룡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단검을 쥔 채로 소량의 피로 얼룩진 엔젤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가 단검으로 찌르려던 것은 엔젤 자신의 목이었다. 가까스로 고대신룡의 손이 대신 관통 당해 목에 닿는 것은 멈추었다.
"너, 내 생각을 건들였구나."
"정말 죽을 생각이었어?"
"네가 막지 않았다면...아마. 그래도 네가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무슨 생각이었던거야!"
고대신룡은 화를 내며 자신의 위에 있던 엔젤을 역으로 넘어뜨렸다. 아까까지 힘으로 밀리는 것 같았던 고대신룡이 순식간에 상황은 뒤바꾸니 엔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응?"
"나는 아니어도, 넌 아직 충분히 가치가 있어! 그런데 왜 그런 행동을...."
호통치는 그는 단검을 쥔 그녀의 손에서 어떻게는 단검을 빼앗으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엔젤도 그것을 느꼈고 아주 쉽게 단검을 빼앗겨 주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엔젤을 바라보는 고대신룡의 눈동자와 행동에는 전혀 분노를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떨리는 눈동자와 그녀보다 큰 덩치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엔젤은 그런 그를 토닥이며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니까."
-----------------
얼마만인가요?
아직 다 끝난건 아니라서 예고 정도로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