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얜 용도가 뭐야?"
눈을 뜨기 직전 들리는 음성은 꽤 따뜻했다. 고신은 잠자코 그 따스한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2): "글쎄, 인식표를 봐야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제조회사랑."
이윽고 고신의 어깨를 잡아채는 손길이 느껴졌다. 손길은 목소리와 달리 무자비하기 그지없었다. 확 어깨를 잡아채고는 거칠게 몸을 뒤집었다. 그제야 고신은 단말마의 신음을 뱉어냈다. 그러나 그들은 고신이 고통스러워하건 말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내 목덜미를 쓸어올리듯 채잡았다.
고신 : "저기요. 이것 좀 놔주세요."
고신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굴던 그들은 이내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1): "시리얼 넘버가 없어."
???(2): "의도적으로 지운 게 아닐까 싶은데. 추적을 피하려고."
???(1): "아무리 의도적으로 지우려고 해도 이렇게 깔끔하게 지워낼 수가 있나. 홈이 패여있지도 않고 흉터도 전혀 없어. 깨끗해."
???(2): "그럼 시리얼 넘버로 제조회사나 용도를 찾는 건 무리겠군. 어쩔 수 없다. 일단 실어."
그들의 대화 중간에 고신이 항변하듯 뭔가 오해가 있는 것이라고 끼어들었지만 마치 그들의 귀엔 소거가 된 것 처럼 들리지 않는 듯 싶었다. 고신이 긴 팔을 버둥거리는 사이 그들은 무자비한 손길 그대로 사방이 촘촘한 넓이의 철망 펜스로 둘러싸인 트럭 짐칸으로 고신을 밀어 넣었다.
고신 : "용을 트럭 짐칸에 태우는 것은 도로 법에 위반되는 건데."
무장한 그들의 귀에 그 말 역시나 들릴 턱이 없었다. 고신은 그들이 잡아채느라 엉망이 된 자신의 매무새를 다듬으며 짐칸을 둘러보았다. 그곳엔 이미 고철 덩어리 같은 로봇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초연히 쌓여있을 뿐이었다. 어떠한 표정도 없는 고철 덩어리들.
그제야 고신은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의 상황들이 하나 둘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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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모두 폐기 처리 합니다."
뉴스 속보였다. 한참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자막이 떴다. 그 커다랗고 빨간 자막은 다른 프로그램을 하는 내도록 화면의 하단부에 3분의 1가량의 부분을 차지하며 버티고 있었다. 의아스러운 일이었다. 로봇이 개발이 되고 배급이 된 뒤로 그런 속보는 보도듣도 못했으니까. 흔한 애완용 강아지 로봇 같은 것도 구매해본 적 없는 고신은 심드렁히 소파에 누우며 성가신 자막을 피해 3분의 2가량 드러난 나머지 화면을 다시 주시했다.
그 때 들린 건 쨍그랑 하는 접신지 뭔지 유리 따위가 깨지는 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다닉이 사색이 된 얼굴로 고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공포와 당혹감이 고신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차마 고신은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다닉은 이내 허둥거리며 깨진 유리 파편에 손을 뻗다 말고 식탁 위에 있던 제 폰을 집어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다닉은 어느새 울고 있었다.
다닉을 처음 만난 건 대학교 다니던 시절, 다닉이 먼저 고백을 했고 2년여간 연애를 한 끝에 또 다닉에게 프러포즈를 받아 결혼을 했다. 단 한 번도 고신은 자신이 로봇일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분명히 자신은 평범한 부모님 밑에 태어나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다닉을 만나 결혼을 했다. 일 년 짜리 안식년 휴직계를 내고 쉬고 있긴 했지만 확실히 대기업 규모의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그것들 지금이라도 증명하라면 할 수도 있었다.
복직을 하고 차질 없이 진급을 한다면 입양계획까지 제대로 세워보자고 다닉과 약속을 하기도 했었다. 자신이 무언가의 용도로 만들어진 로봇이라면 그렇게 세세한 기억이 심어졌을 리 만무했다. 고신은 그럴 리가 없다고 거듭 생각했다. 오해야. 오해라고. 내가 로봇일 리 없다. 아니 적어도 나는 로봇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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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길길이 날뛰면서 펜스의 철망을 잡아 뜯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한참을 달리던 트럭이 또 하나의 용인지 휴머노이드 로봇인지 뭔지를 펜스 안으로 던져넣을 때 까지도 고신은 줄곧 그런 상태였다.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는 행동에도 그 무장한 용들은 철저하게 고신을 무시했다. 그게 행동강령이라는 듯.
체력이 바닥이 난 고신은 다른 기계 덩어리들처럼 빈 자리에 앉아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이 오해를 풀어야 할 지 어떤 식으로 다닉에게 연락을 해야 할 지 머리를 써야 하니까. 그런 절실함은 당연하게도 용인 자신에게만 해당이 되는 듯 붙잡혀 실리는 것들은 대부분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모양인지 순순히 자리를 잡고 앉아 초연했다. 아니, 감정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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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닉 : "고신아, 나 사랑해?"
어떨 때 다닉은 지나치게 진지할 때가 있었다. 해맑게 웃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진지하게 고신의 눈을 바라보며 고신의 마음을 확인하려 들곤 했었다. 결혼을 하던 날,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던 그 순간 다닉은 훌쩍이며 제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닉 : "나를 사랑해줘."
사랑이 뭔지는 알고 있다. 사전적인 의미를 제외하고 사랑하면 떠오르는 느낌이 뭔지 설명할 수 있었다.
고신 : "당연하지, 사랑 해야지."
사실 다닉을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다닉과의 안락함과 익숙함이 좋았던 게 아닐까. 용을 탐색하고 선택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에 이르기 까지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사실 그 보다 아프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뭔지 알아? 하고 물을 떄마다 고신은 사랑은 아픔이라는 말로 대꾸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내곤 했다.
사랑은 아픈 거야. 근데 고신에게 그런 데이터베이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로봇이라서가 아니라 고신이 존재한 이후 고신을 아프게 한 사랑은 고신에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득했다. 이건 내가 로봇이라서가 아니야. 용으로 태어나서 그런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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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속도로 고신은 차분해졌다. 길길이 날뛰지도, 펜스를 잡아 뜯을 듯 흔들지도, 나는 로봇이 아니라며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점점 정교한 휴머노이드들이 제 발로 걸어 트럭 위로 올라탔다. 이내 용인지 로봇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존재들이 늘어났다. 그 중 하나가 무릎을 세워 끌어안은 고신을 쳐다봤다.
마카라 : "딱 보니 비매품이구만."
고신은 그 말을 무시했다. 고신이 대꾸가 없자 그는 그런 무시가 신경 쓰이지 않다는 듯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카라 : "원래 비매품이나 불법용은 지가 로봇인 줄도 몰라. 애초에 목적이 불분명하게 만들어진 것들이니까."
고신은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지만 고신을 주시하는 눈들이 너무 많아 누구의 말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용일까, 로봇일까. 고신은 그것마저도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마카라 : "어차피 자율 운행 모드가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지? 비싸기만 하고 위험부담 높게 왜 그런 걸 쓰냔 말이야."
파틴 : "애초에 목적이 거기에 있으니까."
마카라 : "저런 걸 사는 용들은 로봇으로 대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고신 : "닥쳐."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고신은 제 옆에 차분히 앉아있는 표정 없는 로봇의 뒷덜미를 주시했다. 작은 글씨로 숫자와 영어가, 아래에는 작게 바코드와 회사의 로고 같은 것도 새겨져 있다. 고신은 천천히 제 목덜미를 더듬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로봇일 리 없다. 그럴리가 없다. 그걸 제 손으로 확인하는 것 마저 황당한 상황에서 고신은 웃음도 나지 않았다.
이마를 더듬거리자 손바닥에 흥건한 땀이 만져졌다. 생리적 반응마저 고신이 용인 이유였다. 그러나 전혀 안도가 되질 않았다. 분명히 로봇을 모두 폐기하라고 했다. 폐차장의 폐차처럼 묵직한 기계들로 눌러버리는 건 아닐까. 아찔한 상상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는 순간 다닉의 창백한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그 이후로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던가. 유리잔을 깨뜨린 다닉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었나? 괜찮을 거라고 말을 했었나? 점점 땀은 흥건하게 이마를 적셨다. 옷 소매로 땀을 닦아 낸 뒤 다시 사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자신과 비슷하게 로봇이라 오해를 받고 있는 용이 있진 않을까. 그러나 다들 초연했다. 용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들은 용과 비슷한 행동과 말투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적어도 이 트럭 내에는.
마카라 : "메모리칩을 제거하면 좀 편해질 텐데."
고신이 비매품일 거라고 중얼거렸던 용의 모습을 한 로봇이었다. 그는 이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마카라 : "도착하면 너랑 비슷한 로봇들이 많을 거야. 서로 사람이라고 우겨댈 걸."
그리고 이내 그의 말대로 트럭은 어느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번화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빌딩이었다. 트럭은 자연스럽게 지하로 연결된 주차장 입구로 들어섰고 고신을 실은 트럭과 비슷한 트럭들이 주차장 가득 주차가 되어있었다.
그 로봇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하 주차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무장한 군인들은 난리를 치는 용들을 제압하기 바빴고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왜 여기에 잡혀 있는지 모르겠다는 식이었다. 고신 역시 자연스럽게 그들 틈으로 분류가 되었다.
회사미상. 그러나 트럭에 처음 붙들려 왔을 때 처럼 그 어떤 전의는 불타오르지 않았다. 다만 의문이 남을 뿐이었다. 지문이 등록이 된 주민등록시스템이라는 게 엄연히 데이터화 된 지금, 용과 로봇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잡아들인다는 것이 말이 되나. 아무리 로봇이 정교한들 로봇이 용의 인체 내부까지 똑같이 따라 만들 수 없을 텐데, 간단한 스캔이면 알 수 있지 않나. 아니나 다를까. 도열한 군인들은 그것을 증명이라도 시켜주듯 그들을 터널 같은 통로 안으로 집어넣었다.
얼핏 공항 검색대와 비슷한 시스템이지만 조금 더 신체의 디테일한 내부까지 스캔이 되는 고가의 의료 장비인 듯 싶었다. 무튼 그 통로를 통과하느 사이 그들을 연행한 용과 로봇의 내부장기들이 스캔이 되어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송출되었다. 고신의 생각대로 언뜻 용의 신체 내부와 비슷하나 큰 차이가 있었다.
로봇임을 부정하는 것들은 강제로 그 터널을 통과해야 했고 고신에게도 그 차례는 다가왔다. 천천히 걸어 들어가자 용과는 확연히 다른 고신의 내부가 커다란 스크린에 떠올랐다. 고신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것을 올려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도 주작이라고 날뛰는 것들이 존재했다.
군인 : "계속 이런 식이면 비윤리적으로 폐기를 진행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게중 하나가 군인의 어깨에 있는 총을 뺏어드는 것이 발단이었다. 탕 하고 누군가 총을 뺏은 무언가의 머리를 겨냥해 총을 쐈다. 피와 비슷한 액체가 아주 살짝 흐르긴 했지만 인공 섬유조직들이 쏟아지다 말 뿐이었다. 뇌가 있어야 할 그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제일 충격적인 것은 그 상태가 되고도 죽지 않는 존재였다.
고신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구역질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내 뭔가를 뱉어냈지만 온종일 먹지 못한 탓에 쏟아지는 것이 없었다. 아, 내겐 위라는 소화 장기가 없지. 그 비슷한 뭔가가 존재하긴 했다. 배설 비슷한 것들을 돕는 커다란 기관, 위와 십이지장 소장 대장과 비슷한 모습으로 설계가 되어있었지만 전혀 다른 것.
고신은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어지러웠다. 그렇다면 어지럽다는 이 감각은 어떻게 형성이 되는가. 그 총성과 함께 움직임을 멈춘 자들의 얼굴에 얼핏 충격과 공포가 어렸다. 이내 비틀거리던 로봇은 누군가에게 붙들려갔다.
군부대와 경찰들은 조용해진 틈을 타 일제히 용의 형체를 한 그것들을 어디론가로 인솔했다. 그 모습은 수용소로 들어서는 죄수들과 다름이 없었다.
바위 : "미국에서 로봇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군요. 그 탓입니다."
과학기술이 얼마나 발달을 했길래 용과 비슷한 생리적 반응이 나올 수가 있지.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린 바위드래곤은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마저 닦아냈다. 분명히 바위는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