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작은 소란인 줄 알았다. 짤막한 뉴스를 보긴 했지만 용이 그렇게나 많이 희생을 당했는지 알지 못했다.
오천 마리가 넘었답니다. 한 로봇회사에서 벌어진 사태였고 공장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와 생산직 직원들 다수가 그 폭동에 의해 희생당했다고 했다. 그 폭동이 번져갈 조짐이었다고 합니다. 어차피 용이 만들어낸 로봇인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요? 자신들이 용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더 이상 용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로봇을 생산해 낼 정도로 그들은 발달했어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었기에 그들은 불만을 품었던 겁니다.
고신은 현기증이 일었다. 왜 로봇이 그토록 스스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고 자신이 그저 용이 설계하고 만들어낸 로봇임을 부정하게 만들었을까.
사랑이 뭔지 알아? 사랑은 아픔일지도 몰라. 아픈 사랑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선명한 통각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각하면 심장이 아팠다. 그러나 제겐 심장이 없었다. 애초에 사랑도 모르고 심장도 존재하지 않는 기계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시리얼 넘버도 없이 만들어졌을까. 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가게 만들어졌을까.
???(3) : "우리도 폐기 처분 되는 건가요?"
군인 : "각각의 회사의 메뉴얼에 따라 그렇게 될 겁니다."
어차피 기계 덩어리인 것들 그냥 다 한방에 끄고 폐기 처리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자조적으로 말해놓고 고신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다닉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
용과 비슷한 로봇들은 회사별 용도별 성능별로 나뉘어 방을 배정받았다. 인도적이고 윤리적인 로봇의 폐기 과정은 마치 북유럽 어느 국가의 안락사 시스템을 연상케 했다. 고성능일 수록 폐기 절차와 과정은 험난했다. 구매자에게 보상을 측정하고 설득해야 했고 폐기 매뉴얼을 준수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고성능일 수록 그것은 더 쉽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고신의 사망선고까지 시간이 남았다는 말이었다. 방이 배정되고 일정의 공간이 제공됨으로써 고신에게 상념의 시간은 더 짙어졌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은 존재의 이유였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J : "어쩌면 그 애가 답을 알 지도 몰라. 모르는 게 없는 로봇이야."
수용소와 다른 점 하나는 각자의 방이 제공되고 그 방을 자유롭게 로봇끼리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제는 안전이었다. 폭동의 조짐이 보일 즉시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로봇은 폐기가 되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로봇들은 죄다 한국식이었다. 적응력도 더럽게 빨랐다. 한국 개발자의 탓일지도 몰랐다.
가끔 고신은 자신을 만들어낸 존재와 다닉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렇게 하고 보니 다닉을 사랑하지 않았던 게 맞았나보다. 어쩐지 거울을 볼 때 마다 이렇게 잘날 수 있나 싶었는데 정교한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였다. 용이 아니기 때문에 결점을 최소화 할 수 밖에 없었을 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다가도 마음이라는 게 자신에게 있을 수 있나 상념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생각이라는 걸 좀 해보려고 할 때마다 로봇들이 수시로 고신의 방에 들락거리며 고신의 생각을 끊어냈다. 사교적인 기능이 우수한 로봇들일 수록 고신에게 친절했으며 바깥 사회생활을 할 때와 비슷한 태도로 고신을 대했다. 겉보기에 60대의 노인인 J도 그 중 하나였고 엔젤을 알려준 것도 J였다.
고신 : "선생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은가요?"
J : "그럼. 모르는 게 없어. 나의 매뉴얼에 대해서도 다 간파하고 있더구만. 내 시스템 안에 있는 버그도 한 번에 해결했어. 그 애는 너를 알지도 몰라."
그게 고신의 흥미를 끌었다. 고신의 상상 속에서 엔젤은 차갑고 냉정한 얼굴을 한 로봇이었다. 인지부조화라는 것이 찾아왔다. 로봇이 인지부조화를 느낄 수도 있는 건가, 엔젤을 처음 마주쳤을 때 고신은 방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엔젤이 기다렸다는 듯 쫓아와 고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고신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설 수 밖에 없었다. 굳이 해답을 알 필요가 없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고신은 머릿속의 모든 시스템이 일제히 꺼지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나의 태생이 기계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엔젤은 그마저도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어를 담당하는 시스템도 꺼져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느낌을 비슷하게 설명하기 위해선 용으로 알고 살았던 때를 되짚어야 한다.
수백 마리의 졸업생들 앞에서 졸업생 대표로 송사를 발표할 때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그보다 더 심하다. 고신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야말로 로봇처럼 그 방으로 들어갔다. 고신은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흔들었다.
고신 : "안녕."
엔젤 : "....."
전혀 안녕하지 못한 얼굴로.
고신 : "안녕 엔젤."
엔젤의 얼굴은 신기했다. 고장이라도 난 것 처럼 눈은 슬픈데 입은 활짝 웃었다. 그러곤 그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그러나 목구멍이 습기가 차오른 것 처럼 축축했다.
엔젤 : "고신아 안녕?"
그 만남을 회고할 수록 우리 둘을 연결해준 J에게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엔젤한테 제 이름을 알려주신 적이 있나요? 아니, 그보다 제게 엔젤의 이름을 알려주신 적이 있었나요?
-
고신 : "아무리 니가 모르는 것이 없는 로봇이라지만 처음부터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건 다른 이야기 아니야? 그건 초능력인 거나 다름이 없잖아."
엔젤 : "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는 거야. 내가 왜 네 이름을 알고 있게?"
고신 : "너 혹시 내 매뉴얼도 알고 있니."
엔젤 : "그건 당연한 거고."
고신 : "어떻게 그게 당연하지?"
첫째, 결국 서로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인지 밝혀내진 못했다. 모델명이 불분명한 비매용, 불법 로봇들은 모델명 세 번째 자리에서 기인한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으로 부르기가 불가능 했기에 구매자나 본인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었는데 엔젤의 이름은 누가 지은 건지 그 조차도 알아내지 못했다. 엔젤은 로봇의 뇌가 다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폭동도 가능하고 이름 쯤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닐 거라고 정말로 아무 말이나 뱉듯 말했다.
둘째, 왜 자신을 보며 입은 웃고 눈은 우는 기괴한 표정을 지었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고신 역시 엔젤을 보는 순간 제 몸을 만들어낸 시스템이 일제히 꺼지는 느낌을, 그리고 동시에 다시 켜지는 느낌을 느꼈다고 말해주진 않았다. 왜 우리가 별 할 말도 없이 서로의 주변을 맴도는 것인지, 그게 뭔지 정의를 내리지도 않았다. 모든 의문의 답을 세상 모든 이치를 아는 것 같다고 전언한 J를 빌어 엔젤에게 넘겼지만 엔젤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얼렁뚱땅 넘어가는 기술이 대단하다 싶었다.
용의 뇌를 담당하는 회로가 연결이 되어있다면 감정이라 부르기도 뭣한 엔젤에 대한 감상이 오롯이 엔젤에게 닿을까 그것만 우려됐다. 볼멘소리를 하며 넌 두 번쯤 산 용 같다던데 내가 볼 땐 그냥 용과 비슷한 로봇 같아. 아니야. 그냥 용 같아. 엔젤의 외형은 스무 살 초반에 가까운 그저 어린 여자일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결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도록 좀 지나치게 공들여 예쁘게 만들었을 뿐. 여느 용들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를 바가 없는데 왜.
엔젤 : "난 사실 누군가에게 귀속된 자산이 아니야."
고신 : "그럼 어떻게 잡혀왔어?"
엔젤 : "자진 신고 한 거야. 로봇을 숨기거나 스스로 숨는 행위를 하다 발각이 되면 끔찍하게 폐기가 되거든. 알잖아, 우리는 고통도 감정도 용들과 비슷하게 느낀다는 거. 나는 아픈 게 제일 싫거든."
엔젤은 스스로의 용도에 대해, 그리고 개발된 목적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도 없는 투다. 엔젤을 만들어낸 용은 분명 변태일 거다. 고신은 괜히 기분이 약간 더러워져 팍 인상을 구겼다.
엔젤 : "나는 영원히 살기 위해 만들어졌어."
고신 : "와 방금 진짜 로봇 같았다."
엔젤 : "엥? 진짜야. 난 영원히 살 거야."
사랑하는 용이랑. 엔젤은 그러고선 고신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불필요한 생리적 반응이 시작되었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가슴이 뛰는 그런 거. 고신은 다리까지 떨었다. 이제 곧 세상에서 없어져 버릴 텐데 어떻게 사냐 말하며 고신은 시선을 피했다. 분명히 심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텐데 가슴이 뻐근하고 저렸다.
이런 불필요한 감각까지 느끼게 만들어낼 필요는 없지 않았나. 개발자가 미친 게 틀림없다. 미친 개발자가 고신을 만들어내고는 과로사했을 지도 모르겠다. 완성시키지 못한 상태로 뒤져서, 그래서 정식 발매되지 못해서 비매용으로 불법적인 루트로 비싸게 팔고 털었던 게 틀림 없다.
고신 : "난 내가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어. 겨우 취직하고 결혼이나 하라고 나를 만든 것 같지는 않아."
엔젤 : "여기 존재하는 많은 로봇들도 다 그래. 누군가에게 귀여움을 받기 위해서, 혹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만들어졌지. 애완용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구매자의 가치 실현에 부합하기도 해. 취업을 하고 경제 활동을 하고 결혼 생활까지 한다는 건 상당한 목적성이 있다는 거야."
고신 : "정말 내가 그 이유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엔젤 : "그건 아니지."
고신 : "그럼 나는 왜 만들어졌는데. 참나."
엔젤 : "그건 네가 찾아야지. 네가 만들어진 이유. 어쩌면 네 잠재의식을 담당하는 메모리에 저장이 되어있을 수도 있어."
고신 : "...모르겠는데. 넌 확신해? 니가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서."
엔젤 : "당연하지. 사랑하는 용을 찾아서 영원히 살아갈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나는 알아."
깡통에게 잠재의식이라는 게 있을 턱이 없다. 그렇다면 엔젤의 이름은 어떻게 알았을까. 정말 같은 회사에서 양산된 로봇은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이 되어 서로의 행동이나 생각을 읽고 제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엔젤의 얼렁뚱땅 핑계가 사실이라면.
하, 고신은 그게 더 끔찍했다. 쪽팔려. 엔젤이 제 속에 있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는 것은.
고신은 발갛게 달아오른 제 얼굴을 연신 쓰다듬다 두꺼운 방화벽 유리에 비친 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로봇끼리 그런 게 가능한가? 여태 용으로 알고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다닉을 제외하고는 그 엇비슷한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낯설었다. 로봇이라서 더 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고신은 자신이 엔젤에게 가진 감정이 용과 유사하게 설계된 로봇이라는 동질감에서 비롯된 호감인지 아직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엔젤도 제게 가지는 감정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혹시 그게 아니라면 더 개 쪽팔릴 일이지만.
고신이 연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불쑥 엔젤의 얼굴이 맺혔다. 고신은 놀라지 않은 척 빙긋 뒤를 돌았다. 너 방금 진짜 로봇 같았어,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엔젤 : "왜?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
고신 : "그건 아닌데.. 야. 너 뭐 내가 마음에 안 들어 하면 바꿔줄 것 처럼 말한다?"
엔젤 : "싫어."
고신 : "뭐?"
엔젤 : "나는 네 외모가 마음에 들어. 권환이 있어도 바꿔줄 생각이 없어."
아주 가끔 초월 번역체로 말을 할 때면 엔젤의 시스템 안에 무언가 오류가 발생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조금은 걱정스레 엔젤을 바라보고 있으니 엔젤은 대수롭지 않게 또 왜 그렇게 쳐다봐? 하고 되물었다. 그래서 고신도 그런 말투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저런 태도 때문에 J가 '그 애는 뭐든 알고 있는 것 같아.' 라는 말을 했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정말 엔젤은 뭐든 다 알고 있고 다 할 수 있다는 식이었으니까.
나도 내 외모가 마음에 들어. 고신은 대답했다. 하긴 연애와 결혼 생활이 목적이었으면 외모를 신경 써서 제작했겠지. 고신의 말에 엔젤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언제는 결혼 용도로 만들어진 게 아닌 것 같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