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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VER] -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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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90
  • 작성일2026.01.05






고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라켓을 휘둘렀다. 탁탁 공이 부딪힐 때 마다 괜스레 엔젤의 손바닥에도 땀이 맺혔다. 정작 고신은 전혀 긴장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점수 차로 겨우 이겨 놓고도 고신의 표정은 별로 달라지는 법이 없었다. 패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나, 고신이 기쁨을 마음껏 내보이는 순간은 늘 엔젤과 단 둘이 있을 때 뿐이었다. 엔젤을 보자마자 끌어안은 고신은 속사포처럼 속삭였다.




고신 : "하마터면 질 뻔했다. 봤지? 진짜 아슬아슬했어. 나 그래서 일부러 너 안 쳐다봤잖아."




무심한 얼굴로 정면만 보는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엔젤은 내심 서운했다. 한 번쯤 다른 선수들처럼 인사를 해주면 안 되나? 거창한 세레머니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는데.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 고신에게 안기는 순간이 찾아오면 엔젤의 서운한 마음은 눈이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알아 알지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엔젤 : "나중에 결혼하기만 해 봐."


고신 : "왜?"


엔젤 : "맨날 바가지 긁을 거야. 치, 두고 봐."




고신과의 연애는 늘 서운해하다 다시 풀어지고의 반복이었다. 그런 서운함을 토로해 본 적이 없어서 고신은 끝내 엔젤이 무엇 때문에 가끔 서운하고 외로워했는지 알지 못했다. 가끔 그런 고신은 아주 디테일한 신기술력으로 만들어낸 로봇 같았다. 공감 능력이 우수하게 만들어졌지만 연애는 잘 하지 못하는, 주변 용들에게 늘 친절하고 매너가 좋지만 정작 연인에겐 낯간지러운 말을 잘 하지는 못하는.





-





위이잉 하고 다가오는 바퀴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자그마한 로봇이 엔젤의 앞에 툭 하고 뭔가를 내려놓았다. 장미꽃과 반지 케이스였다. 로봇은 엔젤도 잘 알고 있는 모델로 로보텍에서 양산한 테니스공 회수용 로봇이었다. 코트 밖으로 튕겨 나간 공을 배 부분에 달린 바구니 안에 넣고 코트 안으로 가져다 놓는 용도로 만든 아주 단순한 용도의 로봇이었다. 오로지 테니스공만 인식하게 만들어진 로봇이기 때문에 절대로 다른 물건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게다 엔젤이 서 있던 곳은 코트 라인 밖으로 공을 갖다 놓는 위치도 아니었다. 


당황스럽게 그것을 내려다보던 엔젤에게 로봇은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위이잉 소리를 내며 멀어져갔다. 처음에는 아주 당황스러워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로봇이 행동 오류를 일으켜 지시하지도 않은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이내 아주 붉어진 얼굴로 쭈뼛쭈뼛 느린 걸음으로 등장하는 고신의 모습에 엔젤은 그제서야 그것이 프러포즈라는 것을 알아챘다. 




엔젤 : "아까 걔 이런 거 못 하게 되어있는데."


고신 : "너 나랑 연애하면서 테니스 엄청 잘 치게 됐잖아. 그거랑 똑같아. 나도 여자친구 직업에 따라 로봇에 대해서 공부 좀 했지. 5년이나 공부했으면 이제 볼보이 로봇한테 공 말고 다른 것 좀 들고 가라고 시킬 정도는 돼. 아니 근데 지금 답이 그게 다야?"


엔젤 : "아니아니. 아니야."


고신 : "그럼 나랑 결혼해줄래?"


엔젤 : "응. 할래."


고신 : "바가지도 잘 긁어 줄 거지?"


엔젤 : "당연하지."





-





다시 시간을 되돌려 그 순간으로 돌아간 대도 엔젤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리란 장담은 할 수 없다.





5%





외적인 부분은 거의 똑같이 디자인했다. 뇌사상태인 고신을 받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빠르게 외적인 부분을 모델링하는 것이었다. 엔젤에게는 주저앉아 슬퍼만 하고 있을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얼마 후면 가족들의 선택으로 고신이 떠나게 될 테니까 가능한 살아있는 고신에게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취합해 모델링을 해야 했다. 


제일 시간이 많이 할애됐던 부분은 아무래도 얼굴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누워있는 고신의 모습에서 표정을 지을 때 바뀌는 주름의 방향이나 보조개 상처 같은 디테일을 작업하기 위해 3D 프린터로 수천번 고신의 모습을 스캔해서 고신의 영상과 합치는 작업을 반복한 끝에 얼굴만 얼추 완성이 되었다. 





10%





뇌사상태였기 때문에 뇌 기능 대부분을 상실한 탓으로 뇌를 스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아예 건져낼 게 없는 건 아니어쓴ㄴ데 아주 소량으로 활성화 된 부분에서 스캔한 데이터를 확인하고는 한동안 엔젤은 프로젝트 고신이 있는 랩에 방문하지 못했다.


그 데이터에는 엔젤의 영상만 몇 개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주 조용히 객석에 앉아 응원하고 있는 모습들.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기억일 것이라고 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마지막까지 떠올린 기억이 그것이라면 아마도 그게 제일 소중한 기억일 것이라고, 고신의 주치의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 기억을 데이터화 하였다.





30%





유해의 모델링과 물리적 재구성 뇌사상태에 빠진 고신의 신체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디지털화 되었다. 엔젤은 고신의 피부 조직 한 점, 근육의 미세한 떨림, 뼈의 밀도 까지 완벽하게 복제하기 위해 3D 나노 프린팅 기술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7층의 폐쇄 구역에서, 엔젤은 매일 밤 고신의 가동되지 않는 손을 잡고 모델링 차트를 확인했다. 엔젤의 서늘한 지시 아래 고신의 외형은 0.01mm의 오차도 없이 복구되었다.





50%





습관적 알고리즘과 페르소나의 이식 물리적 형체가 완성되자 엔젤은 고신의 삶을 데이터로 치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고신이 생전에 치렀던 수만 번의 경기 영상, 일상적인 대화의 주파수, 특정 상황에서 눈썹을 찌푸리는 습관들이 딥러닝을 통해 고신의 인공 신경망에 새겨졌다. 이 과정에만 십수 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엔젤은 점차 쇠약해져 가는 자신의 건강을 뒤로한 채, 고신의 목소리가 단 1Hz 라도 생전과 다르면 전체 시스템을 포맷하고 다시 시작했다. 정예 직원들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의 광기 어린 정밀함이었다. 





70%





심층 의식의 복원과 데이터 가장 난관은 고신의 진심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뇌의 손상된 부분에서 간신히 추출한 파편화된 기억 속에서 엔젤은 자신을 바라보던 고신의 마지막 시선을 발견했다. 엔젤은 이 데이터를 고신의 코어 가장 깊숙한 곳 그 어떤 프로그래밍으로도 덮어쓸 수 없는 읽기 전용 영역에 숨겨두었다.





100%





자가 진화 모듈의 완성 및 가동 준비, 엔젤의 생명이 꺼져가던 마지막 해, 프로젝트는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고신은 단순히 프로그래밍이 된 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을 정의할 수 있는 자가 진화형 안드로이드로 거듭났다. 


엔젤은 고신의 시리얼 넘버를 삭제했다. 그를 재산이 아닌 완전한 인격체로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엔젤은 자신의 생체 신호와 고신의 기동 스위치를 일부 연결했다. 프로젝트 고신은 용 고신으로 영원히 살아갈 준비를 마쳤다. 





-





푸른 빛이 감도는 지하 7층의 폐쇄 구역, 그곳은 엔젤에게 있어 뭐랄까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다. 수년간 외부와 단절된 채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달려온 엔젤은 몸이 이미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가쁜 숨을 내쉬는 엔젤의 눈앞에는 고신이 캡슐 안에서 고요하게도 잠들어 있었다. 


엔젤은 떨리는 손을 뻗어 고신의 뺨을 만졌다. 수천 번의 모델링과 수정 끝에 완성된 그 감촉은 엔젤이 기억하는 십 년 전 고신의 그것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차가운 유리 벽 너머가 아니라 이제는 직접 닿을 수 있는 실체로서의 고신. 하지만 엔젤은 알고 있었다. 포에버 고신이 눈을 뜨는 순간, 정작 늙어버린 엔젤 자신은 고신의 눈동자에 비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엔젤의 손가락이 고신의 뺨에서부터 얼굴 전체를 어루만졌다. 온기 빼곤 모든 것이 똒같았다.




엔젤 : "내가 꼭 살려준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어긴 건지 지킨 건지 모르겠어. 엔젤의 갈라진 목소리가 차가운 랩실의 정적을 깼다. 곁을 지키던 정예 연구원들은 숨을 죽인 채 엔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이 장면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이제 곧 이 폐쇄 구역을 떠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 그들은 오늘 본 모든 것을 기억 너머로 묻어야 했다. 


그들의 입을 봉하는 것은 서슬 퍼런 비밀 유지 계약서나 거액의 보상금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눈앞에서 목격한, 비극적인 사랑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 숭고한 순간에 대한 부채감에 가까웠다. 직원들은 이제 엔젤을 로보텍의 오만한 CEO가 아닌 한 마리의 용으로 마주했다. 


죽어가는 연인을 어떻게든 곁에 붙들어 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한 여자. 그 광기 어린 집착과 처절한 순애보 앞에 그들은 그저 숙연해질 뿐이었다. 고신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엔젤이 마침내 휠체어를 돌리고 나서야 직원들은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슬픔이 묻어나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엔젤의 얼굴은 기이할 만큼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일생을 건 지독한 과업을 끝내고, 비로소 안식에 든 용 처럼.




엔젤 : "이제 거의 다 끝이 났습니다. 정말 오랜 프로젝트였네요. 그동안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미리 감사 인사 말씀 전합니다. 여러분."




엔젤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고신의 목덜미 아래, 숨겨진 슬롯에 아주 정밀한 칩을 밀어 넣었다. 치익. 미세한 구동음과 함께 고신의 가슴 속에 박힌 엔진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고신의 맥박이 뛰기 시작함과 동시에 엔젤의 손목에 채워진 생체 모니터의 수치도 떨어졌다. 엔젤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는 만큼, 고신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엔젤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고신의 손을 꼭 잡았다. 엔젤의 이마가 고신의 어깨 위에 살짝 닿았을 때 랩실의 모니터에는 '데이터 동기화 100%, 가동 준비 완료.' 라는 글자가 명멸했다. 




연구원들이 바쁘게 수치를 점검하는 사이 엔젤은 흐릿해지는 시야를 붙잡으며 고신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고신의 캡슐 바로 옆, 아직 가동되지 않은 또 하나의 강화 유리 캡슐에는 엔젤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모습과 똑 닮은 휴머노이드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포에버 고신과 함께 같이 시작한 동류의 프로젝트인 포에버 엔젤도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고신이 필드 테스트를 통과해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엔젤의 잔여 의식은 저 소체 안에서 다시 눈을 뜰 것이다. 엔젤은 소체의 차가운 유리 벽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 다시 이내 힘없이 떨어뜨렸다. 대신 희미하게 움직이는 입술로 마지막 주문처럼 읊조렸다. 이제 다시 만나는 거야. 이제 헤어지지 않는 거야.





그 때, 실험실 외부 게이트가 열리는 육중한 소리가 들렸다. 다닉의 등장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연구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엔젤의 휴머노이드가 잠이 든 캡슐 위로 두꺼운 특수 암막 커튼과 차단벽이 내려와 순식간에 그 공간을 어둠 속으로 숨겼다. 엔젤은 연구원들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를 돌렸다. 


그녀가 머물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정리되었고, 엔젤을 태운 휠체어는 다닉이 들어오기 직전 반대편 비밀 통로를 통해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 그 직후 문이 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다닉이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텅 빈 CEO의 자리와 이제 막 기계적인 생명을 얻어 눈을 뜨려는 고신 뿐이었다.




'다닉 선임, 이제 고신을 실제 사회적 관계망 속으로 투입합니다. 당신이 고신의 아주 친밀한 관찰자가 되어주세요.'




다닉은 고신이 엔젤의 영혼을 나누어 가진 존재라는 것도, 방금 가려진 저 차단벽 너머에서 엔젤의 부활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도 꿈에도 모른 채 고신에게 다가갔다. 경이로움이 가득한 눈으로 고신의 상태를 체크하며, 설레는 표정으로 캡슐의 매끄러운 유리 벽을 더듬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엔젤은 희미하게 울며 또 웃었다. 용으로서의 육체는 한계를 맞이하겠지만 이제 영원이라는 시간만이 그들 앞에 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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