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 2층, 버려진 기계들이 쌓여있는 폐기물 보관소는 차갑고도 매캐했다. 타버린 회로 냄새와 눅눅한 기름때가 뒤섞인 그곳을 지나며 고신은 앞장서 걷는 엔젤의 가녀린 등을 눈에 담았다. 엔젤이 멈춰 선 곳은 막다른 벽처럼 보이는 낡은 환기구 앞이었다. 그 삭막한 철제 구조물을 마주한 순간 고신은 심장도 없는 가슴 한켠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엔젤의 기다란 손가락이 환기구 덮개에 살포시 닿았다.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음에도 단단히 박혀 있어야 할 나사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르르 소리도 없이 떨어져 나갔다. 이미 수만 번은 이곳을 다녀간 듯, 혹은 꿈속에서조차 이 길을 닦아놓은 듯한 익숙한 몸짓이었다. 덮개가 밀려나며 틈 사이로 비릿한 흙내음 섞인 밤바람이 부드럽게 뺨을 스쳤다.
고신은 주저 없이 엔젤을 따라 차가운 배수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피부로 진흙탕물이 차갑게 튀어 올랐다. 더럽고 축축한 이질적인 향기가 느껴지며 축축하고 좁은 통로를 기어나가는 내내, 고신의 손바닥에는 거친 시멘트의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생경한 통증이었다. 아프다는 걸 굳이 입으로 꺼낼 필요가 없을 만큼 손바닥이 따가웠다. 앞서는 엔젤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 해봤다는 것 처럼.
마침내 배수로 끝에서 숲의 품으로 밀려 나오듯 탈출했을 때 고신의 눈 앞에는 기적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을 머금어 푸르스름하게 번들거리는 낡은 트럭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달빛 조각들이 트럭 위로 쏟아지는 그 이질적인 모습을 마주한 순간, 고신은 자신도 모르게 단말마의 감탄사를 내질렀다. 트럭에 다가가 문을 당기자 거짓말처럼 문이 열렸다. 엔젤은 스스럼없이 조수석으로 올라타 앉았다.
엔젤 : "너 수동차도 운전할 줄 알잖아."
엔젤의 자신감에 찬 목소리에 고신은 잠시 멍하니 운전대를 바라보았다. 데이터 속 어딘가에 깊게 박혀 있던 운전의 감각이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것 같았다. 고신은 엉망이 된 소맷자락을 걷어붙이며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클러치를 밟고 낡은 기어 노브를 조심스레 밀어 넣자 부르릉 하는 둔탁한 진동과 함께 엔진음이 들려왔다. 근데 나 수동기어도 운전할 줄 알았던가? 고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엔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듯 말했다.
엔젤 : "가자."
고신 : "어디로?"
엔젤 : "어디든."
고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투박한 기어 노브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낯설면서도 정겨웠다. 클러치를 떼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두 용을 실은 트럭이 덜컹거리며 어둠을 가르고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