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76 그들의 추억 (14)
“...헉!”
빙하고룡이 벌떡 일어나며 주변을 둘러본다. 엔젤이 뒤에서 무릎쯤 되는 위치에 손을 올린 채로 살짝은 놀란 채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금세 차분한 표정으로 바뀌고선 그에게 말했다.
“일어났어? 네가 쓰러지고 일어나는 거 꽤 자주 보는 거 같네.”
“정말…. 왔네.”
“내가 거짓말한 것 같았어?”
“반반.”
“이것 봐라? 나 아니었으면 반나절은 누워있었을 놈이….”
“...아 번개고룡은!?”
“저 너머에.”
초조해 보이는 빙하고룡에게 엔젤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태연히 말해주었다.
“혼자? 미친 거야? 따라가 줬어야지!”
그는 소리쳤지만 엔젤은 팔짱을 끼며 그를 진정시켰다.
“정신부터 차려. 누가 다치는 일은 더 없을 테니까.”
어째서인지 엔젤은 팔짱을 낀 한쪽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동안 봐온 고대신룡을 믿어. 위험한 것 같으면 내가 갈 테니까.”
“네가?”
그 말을 듣고 엔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채 두 팔을 잃고 쓰러진 나이트를 가리켰다. 그리고 동시에 까먹은 것을 다시 기억해냈다.
“아 맞다, 쟤도 깨워야 하는데.”
“네가. 했다고?”
“왜, 이제 좀 나한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절한 건가?”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엔젤이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나이트의 머리 위쪽에서 웅크려 앉아 그를 깨웠다.
“일어나 나이트 대령, 깨어있는 거 아니까”
그녀의 부름에 맞춰 그는 스르륵 눈을 떴고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다시 고개를 돌리며 입을 닫았다.
“내가 밉진 않지?”
“....서로에게 느낄 사소한 감정은 더 없다.”
나이트의 말투에서는 특별한 감정 같은 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표정은 어딘가 후련한 느낌이 드는 표정이었다.
“좋은 거야?”
“아직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차갑고 굳건한 의지를 가진 것 같았지만 나이트의 입장엔 변화가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
그 역시 변화를 기대하게 되었다.
“너도 그녀를 믿기로 한 거지?”
“안 믿으면 네가 날 죽이려 할 거 아닌가.”
“내가 왜 죽여.”
‘적어도 못 움직이게 하겠지만….’
엔젤은 나이트의 어깨를 잡고 힘을 방출했다. 노란 기운이 엔젤로부터 나이트에게 넘어가며 그의 어깨로부터 빠르게 새 살이 돋기 시작했다. 뼈 조직과 근육 섬유가 생기고 그것들을 피부가 덮으며 금세 팔이 다시 재생되었다.
“전에 이런 능력까진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엔젤은 빙하고룡의 의문을 대충 흘려 넘기곤 치료를 계속했다.
“너는…. 아니….”
나이트는 엔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다 말았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질문은…. 더 의미가 없는 것 같군.”
“왜?”
“결국 저곳에서 나오는 게 하나일지 둘일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넌, 어디에 건 건데?”
“이 상황이 즐겁나?”
히죽대는 엔젤의 모습이 나이트에게는 불편한 것 같았다.
“그녀는 무조건 해낼 테니까. 너는?”
“...나도 그렇다.”
-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도 너 혼자 희생하려는 걸 내가 막으려고 했었지. 그땐 다른 방도를 더 떠올릴 수 없어 네게 전부 맡겼지만….’
번개고룡은 하늘의 신전의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에는 그녀가 애타게 기다렸던 이가 양손을 뻗으며 서 있었다.
‘이번에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고대신룡.”
“...”
“내 말 들려?”
“오지 않길 바랐는데.”
뒤를 돌고 있던 고대신룡이 천천히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결국 왔구나. 대령을 어떻게 이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가 줘. 널 해치고 싶지 않아.”
“이상한 소리는 그만두고 이제 돌아가자. 네가 희생할 필요는 없어.”
“나는 죽지 않아, 그저 오래 잠들 뿐. 이 세상의 모든 곳에 내가 깃들게 될 뿐이야. 그러니 내 의지를….”
“헛소리 하지 마!”
번개고룡이 소리치자 고대신룡은 말을 하다 화들짝 놀랐다. 그 표정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있었다. 당혹스러운들 고대신룡은 차분히 다시 물었다.
“....헛소리라니?”
“그냥…. 사라지지 마 모두를 두고 사라지려 하지 말라고. 모두에게 빛을 뿌리는 의식을 멈춰. 결국 모두가 절망에 빠지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잖아.”
“사라지는 게 아닌….”
“네가 모든 곳에 깃든다고 한들, 너를 아는 모두는 널 언제나 그리워 할 거야. 그냥 살면 안 되는 거야?”
“내 힘은 더욱더 강렬해지지만, 나중엔 내가 완벽히 제어할 수 없게 될 거야.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있어, 모두에게 빛을 뿌리면서 네가 살 방법.”
“...”
고대신룡은 그 말을 듣고 들고 있던 양손을 내렸다.
“불가능해.”
고대신룡의 말을 듣고 나서 번개고룡은 가볍게 웃었다.
“창조의 힘을 가지면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거야?”
“불가능한 건 만들어 낼 수 없어…. 그리고 모두에게 빛을 뿌리는 순간 내가….”
“모두에게 뿌리는 힘의 크기를 줄이는 거야. 모두가 실패할 수 있을 기회를 줘.”
“왜? 모든 게 바람대로 된다면 좋은 거 아니야?”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 고대신룡, 그래서 실패를 하는 거고 하지만 실패로부터 우리는 항상 배워나가고 나아갈 길을 찾지. 네 계획은 결국 실패 이후에 스스로 배우려는 그들의 기회를, 눈을 가리고 말 거야. 모두에게 가능성을 주고 싶다면서 그들의 선택을 막으려 하려는 거야?”
기회, 가능성 그리고 선택이라는 말에 고대신룡이 그동안 굳혀 왔던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창조의 힘이란 불가능한 가능성을 만들지 못한다. 단지 조그마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줄 뿐.
‘고대신룡이 급하게 계획을 짠 것도 다른 방법 말고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고대신룡은 천천히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신이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찬 채로..
‘자신의 한계를 아는 순간 절망은 빠르게 온다. 나 역시 그랬고…. 하지만 모른 후에 알더라도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럴 바에는….’
흔들린 마음이 다시 굳으려 할 때 번개고룡이 고대신룡의 마음을 읽은 듯 입을 뗐다.
“모든 것을 네가 정하려 하지 마. 선택권은 언제나 그들…. 우리에게 있었어. 네 형이 한 일을 다시 반복할 거야?”
“형님….”
“누가 죽은 뒤에 얻는 힘이 뭐가 그리 좋겠어. 그딴 힘 얻을 바에. 네가 있는 게 훨씬 나아. 모든 힘을 잃어도 되니까. 제발…. 그냥 살아.”
번개고룡은 제단 위에 있는 고대신룡을 향해 손을 뻗었다.
“.....미안해.”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번개고룡이 예상한 답이 아니었다.
“고대신룡…!!!”
고대신룡을 중심으로 충격파와 함께 광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빛의 공간에서 튕겨 나왔고 그녀를 기다리던 엔젤과 나이트가 있었지만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고대신룡…. 고대신룡!!”
그저 재건되는 것 같은 하늘의 신전을 바라보며 울부짖을 뿐이었다.
----------------------------
다음이 외전 마지막입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