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날개

2화: 청룡의 은신처와 푸른 샘물
루미나리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백금색 빛의 기둥이 메마른 하늘을 뚫고 솟구친 지 불과 수 분이 지났을까. 정적만이 감돌던 붉은 황야의 지평선 너머에서 거대한 먼지구름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그것은 단순한 모래바람이 아니었다. 무언가 지면을 박차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접근하는 존재가 일으키는 생명의 박동이었다.
타다다다다다닥—!
규칙적이면서도 육중한 발소리가 진동이 되어 대지를 울렸다. 먼지구름을 뚫고 나타난 것은 유타칸에서도 보기 드문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형상의 해츨링이었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선명한 노란색 비늘 위로, 날개 끝과 등줄기를 따라 수놓아진 파란색 포인트가 섬광처럼 번뜩였다. 이마 중앙에는 아직 다 자라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기운을 머금은 외뿔이 솟아 있었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녀석의 하체였다. 네 발을 가진 일반적인 드래곤과 달리, 이 해츨링은 튼튼하고 근육질인 여섯 개의 발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제발 버텨라!"
녀석, 식스는 이를 악물며 근육을 뒤틀었다. 바람의 속성을 타고났음에도 아직 날개는 비행을 감당할 만큼 크지 않았으나, 대신 그 마력은 여섯 개의 발로 집중되어 지상에서의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변환되었다. 식스는 바람의 기류를 타고 지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뜨겁게 달궈진 모래 위를 여섯 개의 발로 번갈아 박차며, 마치 지면 위를 미끄러지는 화살처럼 질주했다.
식스는 쓰러져 있는 두 해치를 발견하자마자 급제동을 걸었다. 여섯 발이 모래 깊숙이 박히며 거대한 먼지 폭풍을 일으켰다. 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방금 전 하늘을 갈랐던 그 찬란한 빛의 주인이 바로 이 작은 해치들이라는 것을. 식스는 신속하고도 조심스럽게, 거의 의식을 잃은 루미나리스와 그레이록을 자신의 넓은 등 위로 실었다.
"걱정 마라. 나보다 발이 빠른 녀석은 이 황야에 없으니까!"
식스는 다시 한번 지평선을 향해 몸을 낮췄다. 등에 업힌 두 해치의 무게가 느껴질수록 그의 여섯 발에는 더욱 강한 힘이 실렸다. 바람의 가호가 그의 발밑에서 소용돌이치며 공기 저항을 없앴고, 식스는 다시 한번 붉은 안개를 가르며 폭풍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끝없을 것 같던 붉은 황야가 끝나고 푸르스름한 안개가 감도는 기암괴석 지대가 나타났다. 식스는 마지막 남은 기운을 쥐어짜 도약했다. 바위산들 사이에 숨겨진 좁고 어두운 틈새. 그곳은 황야의 살기 어린 열기가 미처 닿지 못한 은밀한 장소, 푸른 이끼 동굴이었다.
동굴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의 지옥 같은 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시원하다 못해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냉기가 피부를 스쳤다. 식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동굴 안쪽 깊숙한 터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그가 예상치 못한 거대한 위압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오오오—.
동굴 안쪽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은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지배하는 날카로운 투기(鬪氣)이자, 범접할 수 없는 상위 존재의 선언이었다. 식스는 본능적으로 여섯 발을 모두 땅에 붙이고 몸을 낮게 웅크렸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거대한 황금빛 안광이 번뜩였다. 이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설 속의 청룡을 그대로 형상화한 듯한 장엄한 자태의 고룡이었다.
깊고 푸른 바다의 정수를 녹여 만든 듯한 청룡색 비늘은 매끄러우면서도 그 어떤 보석보다 단단해 보였고, 등줄기를 따라 돋아난 은빛 갈기는 바람이 불지 않음에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유타칸에서도 전설로만 구전되는 '강림' 등급의 수호자였다. 일격에 모든 것을 꿰뚫을 듯한 사나운 기운을 지닌 용답게, 그의 주변으로는 보이지 않는 칼날 같은 바람의 기류가 쉼 없이 휘몰아치며 바위 벽에 미세한 흠집을 내고 있었다.
"식스... 또 어디서 이리 성가신 짐들을 데려온 게냐?"
청룡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동굴 전체가 거대한 악기가 울리듯 진동했다. 차갑고도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그게 아니라, 어르신! 황야에서 아모르 님의 빛기둥이 솟아오르는 걸 보았습니다. 달려가 보니 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기에..."
청룡은 대답 대신 천천히, 그러나 위협적인 우아함으로 두 해치에게 다가갔다. 그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의 주변을 감도는 바람의 칼날이 바닥을 긁는 서늘한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상대를 단숨에 제압할 듯한 살벌한 기운이 잠든 해치들을 압박했다.
그는 거대한 앞발을 들어 루미나리스의 머리 위를 살짝 스쳤다. 그의 발톱 끝에 실린 정교한 바람의 마력이 해치의 마력 핵을 훑었다. 잠시 후, 무심하던 청룡의 황금빛 눈동자에 짧은 경악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이럴 수가... 이 미천한 해치들에게서 아모르의 정수와 바람의 태동이 느껴지는구나. 이 가혹한 시기에 예언의 씨앗들이 알을 깨고 나왔단 말인가."
청룡은 고개를 돌려 동굴 가장 깊숙한 곳, 천장에서 떨어진 이슬이 수만 년 동안 모여 만들어진 작은 샘터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은은한 청색 광채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수면 위로는 신비로운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청룡의 마력과 대지의 순수한 정기가 만난 '생명의 샘'이었다.
"식스, 놈들을 저 샘물로 옮겨라. 아모르의 축복을 받은 몸이라 해도 해치의 껍질은 너무나 연약하구나."
식스는 서둘러 여섯 발을 움직여 두 해치를 샘가로 옮겼다. 식스는 앞발로 차가운 물을 떠서 루미나리스의 입가에 적셔주었다. 바싹 말라붙어 하얗게 변했던 루미나리스의 입술에 차가운 수분이 닿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비늘 사이로 스며들어 있던 황야의 독기가 증발하기 시작했다.
식스의 간절한 보살핌 속에 샘물이 두 해치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그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샘물에 담긴 청룡의 정제된 바람 마력이 해치들의 메마른 마력 핵을 직접 자극하기 시작한 것이다. 루미나리스의 흰 비늘 아래 숨겨져 있던 황금빛 혈관들이 다시금 맥동하며 찬란한 빛을 회복했고, 그레이록의 거칠었던 숨소리는 점차 규칙적이고 깊은 호흡으로 변해갔다. 타고난 생명력이 질긴 그레이록의 몸은 샘물의 기운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급격히 활력을 되찾았다.
청룡은 그 광경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의 주변을 맴돌던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들이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여전히 예리했다.
"육신의 상처는 씻어냈으나, 영혼의 갈증까지 채웠을지는 스스로 증명해야 할 터."
동굴 안에는 오직 규칙적인 물방울 소리와 두 해치의 안정한 호흡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식스는 숨을 죽인 채 두 친구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노란색 비늘에 섞인 파란 포인트가 긴장감에 살짝 떨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루미나리스였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그 뒤를 이어 그레이록 역시 큰 숨을 들이켜며 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두 해치의 눈이 동시에 번쩍 뜨였다.
루미나리스의 눈동자에서는 성스러운 아침 햇살을 닮은 선명한 금색 빛이, 그레이록의 눈동자에서는 광활한 대지를 휩쓰는 폭풍의 기운을 담은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직은 작고 여린 해치들이었지만, 그들이 눈을 뜬 순간 동굴 안의 공기가 기분 좋게 진동했다.
유타칸의 예언이, 그리고 두 주인공의 진짜 모험이 이제 막 깨어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