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날개

3화: 고대 수호자의 증언과 푸른 예연
샘물의 서늘한 정기가 전신을 감싸자, 죽음의 문턱까지 발을 들였던 루미나리스와 그레이록의 의식이 수면 위로 급격히 솟아올랐다. 두 해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상체를 일으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갓 알을 깨고 나와 마주한 지옥 같은 황야의 열기는 사라지고, 대신 동굴 안을 가득 채운 신비로운 푸른 안개와 은은한 이끼 향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안도감은 찰나였다. 안개를 가르고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가 동굴 전체를 압도하며 그들 앞에 우뚝 섰다.
"아..."
루미나리스가 작은 신음과 함께 뒷걸음질을 쳤다. 갓 태어난 해치의 본능은 눈앞의 존재가 단순히 거대한 생명체가 아니라, 대지의 섭리 그 자체임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레이록 또한 본능적으로 루미나리스의 앞을 막아서며 털을 곤두세웠으나, 그림자 속에서 번뜩이는 황금빛 안광이 자신을 관통하는 순간 전신이 굳어버리는 듯한 압도적인 투기에 질식할 뻔했다.
"깨어났느냐. 아모르의 기적을 입고 태어난, 유타칸의 가여운 자손들이여."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웅장한 진동이었다. 동굴 벽면의 종유석들이 공명하며 울렸고, 바닥의 샘물은 물결무늬를 그리며 화답했다. 식스는 그 거대한 존재 곁에서 여섯 개의 발을 공손히 모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이 어르신이 너희를 살려주신 거야. 내가 황야에서 너희를 업고 여기까지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알아? 내 여섯 발이 아니었다면 너희는 이미 모래가 됐을걸!"
식스가 분위기를 띄우려 꼬리를 흔들었으나, 청룡은 짧고 묵직한 콧바람 한 번으로 동굴 안의 공기를 다시 얼어붙게 했다.
"식스, 경거망동하지 마라. 이제 이 아이들도 자신들이 어떤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졌는지, 그리고 이 대륙이 어떤 상처를 품고 있는지 알아야 할 때다."
청룡은 천천히 몸을 돌려 동굴 가장 깊은 곳, 세월의 풍파에도 결코 마모되지 않은 고대 벽화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거대한 앞발을 들어 벽면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서 푸른 안개가 소용돌이치더니, 마치 살아있는 환영처럼 신화 시대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태초의 유타칸은 빛의 신 아모르의 숨결이 닿은 낙원이었다. 하지만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파괴의 신 카데스는 아모르의 창조물을 시기했고, 결국 두 신의 충돌은 하늘을 무너뜨렸지. 그때였다. 차원의 틈새를 뚫고 칠흑 같은 어둠을 머금은 검은 운석이 유타칸의 심장에 박혔다. 우리는 그것을 '보랏빛 재앙'이라 부른다."
루미나리스는 홀린 듯 벽화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황금빛 문양이 그 신화 속 아모르의 인장과 닮아있다는 사실에 맥박이 빨라졌다.
"고대신룡과 다크닉스가 각자의 영혼을 태워 그 재앙을 봉인했으나, 카데스의 잔재는 여전히 이 대지 아래에서 꿈틀대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아주 먼 옛날, 유타칸의 기류가 가장 맑았던 시절에 신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던 예언이 이제야 현실이 되려 하는구나."
청룡이 다시 고개를 돌려 두 해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수만 년의 세월이 담긴 고독과, 그 고독의 끝에서 피어난 아주 작은 희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청룡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하늘의 울림과도 같은 목소리로 예언의 구절을 읊조렸다.
"하늘의 눈물이 멈추고 대지가 붉게 타들어 갈 때, 잊힌 약속의 파편들이 다시금 모이리라. 황야의 끝에서 백금색 빛기둥이 솟구쳐 어둠을 찢고, 바람의 태동이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때, 흩어진 아모르의 진수가 두 드래곤의 육신을 빌려 강림하리니. 그들이 걷는 길은 고난이나 그 끝은 유타칸의 여명이 될 것이며, 그들의 날갯짓 한 번에 아홉 속성의 조화가 다시금 대지에 흐르리라."
옆에서 숨을 죽이고 듣고 있던 식스가 경외심에 찬 목소리로 거들었다.
"맞아... 나도 어르신한테 이미 다 들었어. 처음엔 그냥 전설 속의 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황야에서 루미나리스 네가 내뿜은 그 빛의 기둥을 본 순간...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그건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어. 정말 예언이 시작된 거야!"
청룡은 식스의 말을 묵묵히 수긍하며 은빛 갈기를 휘날렸다. 그의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들이 예우를 표하듯 우아한 궤적을 그리며 춤을 췄다.
"너희는 각자 빛의 결단과 바람의 끈기를 품고 태어났다. 카데스의 그림자가 다시 유타칸을 잠식하려 하는 이 가혹한 시기에, 너희의 탄생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청룡은 동굴 입구 너머, 다시금 모래바람이 일기 시작한 황야를 응시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비장하게 빛났다.
"나의 보호 아래 머무는 것은 오늘까지다. 너희는 곧 이 안락한 동굴을 떠나 험난한 여정을 시작해야만 한다. 예언에 기록된 일곱 속성의 진수를 찾고, 유타칸의 부서진 조화를 되돌리는 것. 그것이 너희가 알을 깨고 나온 진짜 이유이자, 이 대륙이 너희에게 부여한 숙명이다."
그레이록이 힘겹게 떨리는 다리를 지탱하며 고개를 들어 물었다.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건가요? 당신처럼 위대한 분은 대체 누구시죠?"
청룡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자태로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 불꽃 같은 마력이 일렁였고, 동굴 안의 모든 기류가 그의 발치로 모여들어 장엄한 화답의 진동을 일으켰다.
"나 또한 그날의 예언을 지키기 위해 이 땅에 강림한 자. 유타칸의 영원한 푸른 하늘을 지키는 바람의 수호자이자, 부패하지 않는 의지를 지닌 자이다."
그는 두 해치의 눈동자를 꿰뚫어 보듯 응시하며,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선포했다.
"나의 이름은 **'청염(靑炎)'**이다. 푸른 불꽃처럼 영원히 타오르며 유타칸의 질서를 수호하는 바람의 인도자이지.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의 운명은 나의 바람과 함께 흐르게 될 것이다. 준비하거라. 여정의 바람은 이미 불기 시작했으니."
청염의 이름과 함께 여정의 선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지는 순간, 루미나리스와 그레이록은 자신들이 짊어진 무게를 실감했다. 그것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신화의 연장선 위에 선 드래곤으로서의 진정한 각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