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날개

4화: 중심지로의 질주와 여정의 채비
청염의 위엄 있는 선포가 동굴의 푸른 안개 속에 잦아들 무렵, 루미나리스와 그레이록은 자신들의 어깨 위로 내려앉은 운명의 무게를 실감했다. 아직 날개 근육조차 다 여물지 않은 해치들에게 ‘유타칸의 숙명’은 너무나도 거대했으나, 청염은 그들에게 망설일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곁에서 눈치를 보며 여섯 발을 꼼지락거리던 식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식스, 너의 발에 바람의 정수를 더해주마. 이 아이들을 데리고 즉시 유타칸의 심장부로 향하거라. 그곳에서 여정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아이들이 이 대륙의 거친 숨결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야 한다."
식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의 여섯 발을 내려다보았다.
"제가요? 어르신, 저야 뭐 유타칸 지리는 눈 감고도 훤하지만... 이 녀석들은 아직 걷는 것도 비틀거리는 해치라고요. 제 속도를 견딜 수 있을까요?"
"그러기에 네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가거라. 카데스의 그림자는 네가 망설이는 순간에도 이미 대지의 발목을 타고 올라오고 있다."
청염이 거대한 앞발을 가볍게 휘두르자, 식스의 여섯 발 주변으로 소용돌이치는 청색 기류가 휘감겼다. 그것은 청염의 마력이 깃든 ‘천상의 기류 장화’였다. 식스는 자신의 몸이 마치 구름 위에 뜬 것처럼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좋았어! 자, 너희 둘 다 내 등 위로 꽉 달라붙어! 아쿠아스(식스) 특급 열차, 지금 바로 출발한다!"
식스의 선언과 함께 폭발적인 풍압이 동굴 안을 휩쓸었다. 식스의 여섯 발이 지면을 차는 순간, 그들은 이미 동굴 입구를 벗어나 있었다.
질주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식스는 땅을 밟는 것이 아니라 지면 위를 흐르는 기류를 타고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루미나리스는 등 뒤로 화살처럼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붉은 모래뿐이었던 황야는 어느새 옅은 초록빛으로 변하더니, 거대한 거목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숲의 실루엣으로 바뀌어 갔다.
바람 속성을 지닌 그레이록은 이 속도감이 즐거운지 연신 콧바람을 내뿜었지만, 루미나리스는 혹여나 떨어질까 식스의 비늘을 앞발로 꽉 움켜쥐었다. 식스는 거침없이 협곡을 건너고 강물을 뛰어넘으며, 유타칸 대륙의 심장부라 불리는 ‘중앙 대도시, 엘프라’의 화려한 전경 앞에 도착했다.
"자, 다 왔어! 여기가 바로 유타칸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곳이야."
도시 입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황야의 정적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소음과 활기가 해치들을 덮쳤다. 하늘에는 거대한 비행용 드래곤들이 상자더미를 싣고 유유히 날아다녔고, 거리 곳곳에는 각양각색의 비늘을 가진 드래곤들이 테이머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거닐고 있었다.
식스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인파를 헤치고 가장 유명한 거리인 ‘드래곤 전용 상가’로 아이들을 안내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멈춰 선 곳은 진귀한 마력을 머금은 열매들이 가득한 ‘풍요의 나무 상점’이었다.
"어르신이 주신 마력 결정이 두둑하니까 아끼지 말자고. 여정에는 체력이 제일 중요해!"
상점 주인인 늙은 코불트가 식스의 여섯 발을 보고 놀라 안경을 고쳐 썼다. 식스는 능숙하게 열매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주인장! 여기 루미나리스를 위해 빛의 마력을 보충해줄 '태양의 황금 사과' 세 바구니랑, 그레이록의 강인한 체력을 더 단단하게 해줄 '대지의 묵직한 망고'도 챙겨줘요. 아, 이동 중에 당분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 '무지개 마나 포도'도 잊지 말고!"
루미나리스는 태양 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는 황금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한 빛의 정수가 빈약했던 그녀의 마력 핵을 순식간에 채워주는 기분이었다. 그레이록 역시 바위처럼 단단한 망고를 씹으며 자신의 근육에 활력이 도는 것을 느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전설적인 드워프 장인이 운영하는 ‘황금 모루 장비점’이었다.
"자, 이제 너희의 속성을 극대화해줄 장비 차례야."
식스는 청염의 인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인장을 본 드워프 장인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는 창고 깊숙한 곳에서 빛을 발하는 두 가지 장비를 꺼내왔다.
"루미나리스, 너는 이 '새벽의 비늘 펜던트'를 차도록 해. 빛의 마력을 집중시켜 방어막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줄 거야. 그리고 그레이록, 너는 이 '은풍의 마력 고리'를 발목에 차. 바람의 기류를 안정시켜서 더 오래 질주할 수 있게 해주지."
루미나리스의 목에 걸린 펜던트가 그녀의 노란 문양과 공명하며 따스한 빛을 내뿜었다. 그레이록의 발목에 채워진 은색 고리는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그의 기운을 정돈해주었다. 식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험로에서 발바닥을 보호해줄 '마법 편자'와 추운 밤을 견디게 해줄 '용비늘 망토'까지 꼼꼼히 챙겼다.
장비를 모두 갖추고 상점 거울 앞에 선 두 해치의 모습은 더 이상 황야에 쓰러져 있던 가냘픈 아이들이 아니었다. 비록 몸집은 작아도, 고귀한 예언을 짊어진 어린 전사들의 기개가 느껴졌다.
"완벽해! 이제 좀 여행자답네."
식스가 만족스러운 듯 여섯 발로 박수를 쳤다. 상점을 나서는 그들의 머리 위로 유타칸의 노을이 붉게 타올랐다. 중심가의 떠들썩한 공기는 루미나리스와 그레이록에게 묘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식스, 이제 어디로 가야 해?"
루미나리스의 물음에 식스는 북쪽 끝, 구름에 가려진 거대한 산맥을 가리켰다.
"어르신이 말씀하신 첫 번째 진수는 저 '천공의 봉우리'에 있어. 여기서부터는 진짜 모험이야, 얘들아. 준비됐지?"
루미나리스의 펜던트가 북쪽을 향해 강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예언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위한 세 드래곤의 진정한 행군이 비로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