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날개

8화: 수호자의 마지막과 푸른 별의 비행
동굴 입구를 지탱하던 고대의 결계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유리 파편처럼 바스러졌다. 그와 동시에 대기를 가득 메운 것은 비릿한 피 냄새와 부패한 마력의 지독한 악취였다. 동굴 밖 유타칸의 대지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기억하던 은빛 잎사귀가 흩날리는 평화로운 숲이 아니었다. 하늘은 보랏빛 반점이 섞인 검은 안개로 뒤덮여 태양의 숨통을 조였고, 그 아래에는 굶주린 그림자 괴수들이 시커먼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기괴하게 뒤틀린 육신을 가진 괴물들은 뼈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아이들이 숨어있던 성소의 턱끝까지 차올랐다.
루미나리스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작은 날개가 공포로 인해 젖은 종이처럼 파르르 떨렸다.
“이건 우리가 알던 세상이 아니야. 그레이록, 저들을 봐. 끝이 없어. 저 어둠 속에서 수만 개의 눈동자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어.”
그레이록 역시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발톱은 바닥의 돌을 으스러뜨릴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떨리는 눈동자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괴수들의 안광은 수천 개의 붉은 점이 되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그들이 내뱉는 거친 숨소리는 대지를 진동시키는 불길한 진동이 되어 아이들의 가슴팍을 때렸다. 가장 앞선 괴수의 날카로운 발톱이 동굴 입구의 바위를 할퀴며 불꽃을 튀겼고, 그 기괴한 소음은 마치 죽음이 보내는 초대장 같았다. 아이들의 가느다란 발톱과 이제 겨우 피어난 여린 마력으로는 저 거대한 죽음의 파도를 단 1초도 버텨낼 수 없음이 자명했다.
그때, 아이들의 등 뒤에서 태초의 태양이 떠오르는 듯한 거대한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동굴 깊은 곳, 마치 대지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처럼 묵직하고 장엄한 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청염이었다. 그의 육신은 이미 마력의 과부하로 인해 반쯤 투명해져 가고 있었지만,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린 영혼들아,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마라. 너희의 눈은 오직 미래와 희망만을 담아야 한다.”
청염의 목소리는 벼락처럼 웅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부모처럼 한없이 애처롭고 부드러웠다. 그는 자신의 몸 안에 남은 마지막 생명력, 즉 드래곤 하트의 근원을 강제로 해방하기 시작했다. 푸른 불꽃이 그의 비늘 사이사이에서 혈관을 타고 솟구쳐 올랐고, 그 열기는 동굴 안을 가득 채웠던 죽음의 냉기와 절망을 순식간에 불살라버렸다.
“청염 님! 안 돼요! 몸이, 몸이 빛으로 부서지고 있어요! 저희를 두고 가시면 안 됩니다!”
루미나리스가 비명을 지르듯 외치며 그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청염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앞발을 뻗어 아이들을 감싸 안았다. 그것은 물리적인 포옹이라기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견고한 마력의 요람에 가까웠다.
“나는 이제 육신을 벗고 유타칸의 영원한 대기로 돌아간다. 나의 피는 비가 되어 내릴 것이고, 나의 숨결은 바람이 되어 너희를 밀어줄 것이다. 나의 의지는 너희의 날개 깃 하나하나에 깃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저 광막한 허공으로 도약하라. 너희가 닿아야 할 곳은 저 멀리서 불타는 성스러운 산의 정상이다.”
청염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포효했다. 그것은 고통의 비명이 아니라, 세상을 잠식하려는 어둠을 향한 장엄하고도 마지막인 선전포고였다. 그의 전신이 눈을 뜰 수 없는 청백색 광휘로 대폭발을 일으켰다. 드래곤 하트가 스스로를 불태우며 생성된 순수한 마력의 파동이 동굴 밖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갔다. 입구를 점령하려던 그림자 괴수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하얀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푸른 불꽃은 대지를 휩쓸며 썩어가는 검은 안개를 단숨에 걷어냈고, 하늘을 향해 거대한 빛의 기둥을 세워 올렸다. 그 눈부신 빛의 기둥 안에서 청염의 육체는 수억 개의 푸른 별가루가 되어 찬란하게 부서져 내렸다.
그 별가루들은 정처 없이 흩어지지 않고,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루미나리스와 그레이록의 날개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아이들의 몸 주위에는 신성한 기운을 머금은 반투명한 푸른 보호막이 형성되었고, 청염이 남긴 최후의 마력은 아이들의 발 밑을 받쳐 허공으로 힘차게 밀어 올렸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신의 손이 어린 생명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려 하늘 높이 던져 올리는 것과 같았다.
“가라! 유타칸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유일한 희망들이여! 너희의 비행이 곧 나의 부활이다!”
허공에 메아리치며 흩어지는 청염의 잔향을 뒤로하고, 루미나리스와 그레이록은 폭풍 같은 기류에 몸을 실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청염의 폭발이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눈부신 빛의 길이 어두운 대지 위에 선명하게 그어졌다. 그 길 주위로는 여전히 수만 마리의 괴수들이 아우성치며 달려들고 있었지만, 청염이 남긴 성스러운 마력의 장막을 뚫지 못한 채 그 경계선에서 타 죽어갈 뿐이었다.
“루미나리스, 정신 차려! 눈을 뜨고 날개를 펴! 청염 님이 자신의 목숨과 바꾼 이 바람을 허비해서는 안 돼!”
그레이록이 소매로 눈물을 거칠게 훔치며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도 애써 참으려는 울음 끝에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친구를 독려하며 가장 먼저 거센 바람 앞에 가슴을 내밀었다. 루미나리스는 슬픔으로 흐릿해지는 시야를 억지로 다잡았다.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청염의 마지막 유언이 귓가에 쟁쟁하게 맴돌았다.
“결코 뒤를 보지 마라.”
아이는 이를 악물고 날개를 활짝 폈다. 청염의 별가루가 깃든 날개는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강한 힘으로 공기를 가르며 나아갔다. 깃털 하나하나가 푸른빛을 내며 진동했고, 아이들은 공기의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바람이 되어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검은 마력을 머금어 무거웠고, 사방에서 타락한 용들이 아이들을 추격하기 위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가슴 속에는 이제 단순한 공포가 아닌, 한 위대한 스승의 숭고한 희생이 남긴 뜨거운 불씨가 태양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저 멀리 지평선 끝, 유타칸의 심장이라 불리는 '불의 산'이 붉은 용암을 내뿜으며 장엄한 위용을 드러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찌르고 대기가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그곳이야말로 식스가 기다리는 장소이자, 유타칸을 정화할 수 있는 유일한 성소였다.
“보여, 그레이록! 저기야!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가 보여! 청염 님이 열어주신 이 푸른 길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의 생명이 다하기 전에 도착해야 해!”
루미나리스의 외침과 함께 두 마리의 어린 드래곤은 서로의 날개 끝을 맞대듯 가깝게 붙어 가속했다. 그들은 청염의 소멸이 만들어낸 아름답고도 슬픈 푸른 궤적을 그리며, 죽음이 지배하는 대지를 가로질러 불타는 산을 향해 필사적인 비행을 계속했다. 아이들의 눈물은 거센 맞바람에 씻겨 내려갔고, 그 자리에는 세상을 짊어진 어린 용들의 단단한 결의와 용기가 흉터처럼 새겨지고 있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하늘 아래, 오직 두 점의 푸른 빛만이 멸망해가는 세계의 마지막 희망의 씨앗이 되어 붉은 화염의 구렁텅이 속으로 당당히 뛰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