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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S.S]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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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20
  • 작성일2026.02.09






데빌은 어릴 적부터 눈이 참 좋았다. 겨울만 되면 눈이 내리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창가에서 하루 종일을 보냈었던 것,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별안간 그게 기억이 난다. 며칠을 창가에서 보내다 보면 언젠가 눈은 꼭 내렸다. 내리겠다는 어떠한 예고도 없었지만 기다리면 꼭 내렸고, 데빌도 그럴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돌아오겠다고 글까지 남긴 그 녀석은 꼭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어제는 파틴이 떠났다. 지난 월요일 휑한 모습으로 생존자 캠프 대기 줄에 서 있는 걸 발견해 집으로 데려왔는데, 마카라라는 용의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결국은 이틀 만에 떠났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그를 찾으러 페어플레이로 간다고 했다. 그리 멀지는 않다. 파틴도 덴버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을 텐데, 그에 비하면 페어플레이까지는 금방이다. 마카라와 함께 돌아올 테니 기다려 달라 했지만 희망을 품고 그저 기다리라는 건 데빌에게 더 이상 반갑지 않다.





블랙 : "데빌, 크리스마스예요! 우리 핫초코 꺼내 먹어요!"




세상이 망해가는데 데빌은 괜찮았다. 장벽 바깥에선 좀비가 득실거리고 그들 또한 사태 후 괴로운 장면을 여러 번 마주했지만, 그래도 데빌은 블랙과 행복했다. 정말이었다.



데빌 : "그래. 어서 가져와. 물 끓이고 있을게."



아껴둔 핫초코는 꼭 크리스마스에 같이 먹자며, 또 새해가 되면 차를 내려 마시자며 블랙은 방방 뛰었다. 배급받는 물자의 식량만 먹는 것이 어지간히 지겨웠나 보다.




그랬던 블랙이 떠난 지는 9일 째다. 꼭 돌아오겠다고 누차 강조가 된 편지를 남기곤 벌써 오늘로 9일째. 매일 같이 창가에 앉아 혹시 제 연인이 돌아올까 새벽부터 바깥만 내다보고 있다가, 해가 져도 돌아오는 블랙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달력에 X를 표시했다. 


1월 16일, 빨간 X가 그어지고, 오늘로 아홉 개 째다. 오늘따라 눈이 구슬피 내리는 것이 참 묘하다.





밤잠을 또 설치고, 데빌은 아침 일찍 창가에 나아갔다. 피로가 가득한 눈가를 비비며 커튼을 열었다. 구름 아래 스며든 회색 빛이 창을 너머 거실 바닥으로 스민다.



데빌은 자리에 앉았다가 곧바로 다시 일어났다. 누군가가 저 밖에 서있었다. 가만히 얼굴을 살핀다. 블랙도 파틴도 아닌 낯선 남자였다. 무언가 일이라도 난 것 마냥 안절부절 못 하더니 이내 문을 똑똑. 표정은 꽤 다급했다.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데빌은 문을 열었다. 이곳은 실버손이었으므로 큰 의심은 없었다.




남자 : "혹시, 이거. 이것 좀."




대뜸 그렇게 묻는 것이었다. 네? 하고 되물으니 남자는 빨갛게 충혈된 눈을 크게 뜨고 별안간 데빌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남자 : "이거 읽을 수 있으세요?"



매서웠다.



데빌 : "뭐, 뭐라고요? 누구신데요?"




데빌이 큰 소리를 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남자는 잠깐 멍하게 서 있다가, 붙잡고 있던 어깨를 놓곤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비참한 얼굴로 축 처진다. 정말 죄송했다며 고신은 비틀비틀 캠프 쪽으로 발을 돌렸다.




데빌 : ".....제가 그거 읽을 줄 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그러자 남자는 걸어가던 위태로운 걸음을 멈추고 잠시 뒤를 돌아선,


남자 : "생존자 명단에서 이름을 봤어요. 적혀 있는 이름이, 이 지역 언어 같아서요."


데빌 : ".....잠깐 들어오실래요?"




그의 처량한 모습과 파틴의 어느 얼굴이 겹쳐 보여 데빌은 저도 몰래 그리 말했다. 그에게도 그만의 짐이 있겠지. 나쁜 용 같아 보이지도 않고. 충동적이었지만 데빌은 상관 안 했다. 그를 집에 들이면서도 큰 거리낌은 없었다.




데빌 : "이름이 뭐예요?"


고신 : ".....고신이에요."


데빌 : "저희 지역 사람은 왜 찾는 거예요?"




대답 않았다. 뿜어내는 분위기가 싸했다.





고신은 정오까지 말 없이 앉아만 있었다. 무얼 물어보면 대답은 곧 잘 해주었지만 찾아온 이유를 물으면 침묵을 유지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고신은 아침에 막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식량과 생필품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가만히 앉아있다가 별안간 그것들을 꺼내놓더니 3일 정도만 신세를 지면 안되겠냐 나지막이 묻는 것이었다. 막 도착하여 고신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사태 후 각 주의 주도에 정부 지원 캠프가 지어졌다는 소문에 인파는 주도인 덴버에 모였고, 그 덕에 실버손의 캠프는 한산하여 물자가 부족한 일은 없었다. 덴버에서 지냈다던 고신에겐 이러한 물자가 생존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겠지만, 사태 직후 덴버에서 벗어나 실버손에 정착한 데빌에겐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한다. 그렇다면 생존에 중요한 모든 것을 이렇게나 꺼내놓고선 나에게 원하는 게 도대체 뭘까.




고신은 가방에서 물건을 하나씩 꺼내어 책상에 늘어놓았지만 데빌은 역시 거절할 생각이었다. 곧 블랙이 돌아오면, 아니 파틴이라도 돌아오면 어떡하는가. 용건이 있는 것이라면 다음에 또 찾아와도 괜찮고, 생존자 캠프도 따뜻하고 지낼만하니까. 데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고신이 마지막으로 꺼내놓은 건 양파맛 감자칩이었다.




고신 : ".....데빌씨?"


데빌 : ".....짐은 저쪽에 푸세요."




블랙이 먹고 싶다고 그렇게나 노래를 불러대던 양파맛 감자칩이었다.




식량을 꺼내놓던 고신 본인은 정작 음식은 커녕 물 한 모금도 마다했다. 퀭한 얼굴로 멍하니 벽난로 앞에 앉아서 웬 수첩만 계속 붙잡고 있었는데, 소리도 없이 눈물만 흘리길래 데빌은 뭐라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용이 하나 늘기는 했지만 평소랑 다를 점 없이 조용했다. 벽난로 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용을 받아줬다고 해도 블랙이라면 봐 줄 거야. 워낙 용을 좋아하는 애니까..... 어차피 곧 떠날 테기도 하고.....'



감자칩은 찬장에 넣어두었다. 데빌의 키로는 손이 닿지 않아 항상 블랙이 열어주던 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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