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NGS
2화
철문이 비명을 질렀다.
끼이이이익—
날카로운 금속성 마찰음은 공기를 찢고 아이들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거대한 짐승이 굶주림에 못 이겨 자신의 발톱을 바닥에 갈아 대는 소리 같기도 했고, 녹슨 기계 장치가 비틀리며 내뱉는 단명(斷命)의 예고 같기도 했다.
방금 깨어나 힘겹게 몸을 가누던 제이는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폐부 깊숙이 박힌 갈증의 통증마저 잊게 만드는 압도적인 공포였다. 거대한 철문이 충격에 들썩일 때마다 천장에서는 잿빛 먼지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조용히 해... 숨소리도 내지 마."
덩치 큰 소년, 칸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는 손에 쥔 녹슨 철근을 하얗게 질린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리더로서의 위엄 대신, 짐승에게 쫓기는 포식자의 비겁함과 원초적인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제이는 홀린 듯 문가로 다가갔다. 두려움보다 더 강렬한 것은 이 기괴한 상황에 대한 확인 욕구였다. 손가락 끝이 차가운 문 표면에 닿았다. 녹슨 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제이는 아주 천천히, 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정도로 문을 밀었다.
"미쳤어? 열지 마!"
뒤에서 칸이 작게 비명을 지르며 제지하려 했으나, 제이는 멈추지 않았다. 문틈 너머로 잿빛 세계가 펼쳐졌다.
그곳에는 거대한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혹은 레온이 관찰했다던 그 '괴물'들이었다. 드래곤. 하지만 전설 속의 숭고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괴하게 뒤틀린 가죽과 융합 에너지의 파편이 몸 여기저기에 박힌, 멸망한 세계의 기형적인 포식자들이었다.
놈들은 거주지 앞마당에 흩어져 있는 동면 포드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주황색 경고등을 깜빡이며 누군가의 생명을 보존하고 있을 포드들이었다.
콰직!
거대한 발톱이 포드의 투명한 유리를 짓밟았다.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고, 그 안에서 채 깨어나지도 못한 채 발작하는 아이의 모습이 제이의 눈에 박혔다. 드래곤은 무심하게 부서진 잔해를 헤집으며 고기를 낚아채듯 생명을 유린했다. 그것은 사냥이라기보다 파괴였고, 유희에 가까운 도살이었다.
"안 돼..."
제이의 목구멍에서 마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몸안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기억은 없지만, 저 포드 안에 있는 이들이 자신의 동료라는, 혹은 자신과 같은 처지라는 동질감이 제이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제이가 문을 더 열고 튀어나가려던 찰나, 묵직한 손이 그의 어깨를 강하게 낚아챘다.
"죽고 싶어? 저게 안 보여?"
칸이었다. 그는 제이를 바닥으로 거칠게 밀쳐냈다.
"저 안엔 아직 애들이 있어! 우리가 깨어난 것처럼 쟤들도 깨어나야 한다고!"
제이가 바닥을 짚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칸은 눈을 부라리며 철근을 제이의 턱 밑에 들이댔다.
"가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저 발톱에 쥐포가 되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냐고! 우린 이미 끝났어. 저 포드들은 식량이라고, 저 괴물들의!”
"그만해. 소란 피우면 여기 위치만 들킨다."
벽을 타고 미끄러지듯 다가온 것은 레온이었다.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무언가를 계산하는 기민함이 살아 있었다.
"레온, 너도 봤지? 쟤들이 포드를 부수고 있어. 저대로 두면 남은 포드들도 다..."
제이의 말에 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알아. 하지만 칸 말이 맞아. 지금 우린 무기도 없고, 몸도 못 가눠. 저길 나가는 건 자살이야."
레온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밖에서는 포드가 박살 나는 둔탁한 소음이 이어졌다. 제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핏방울이 맺혔다. 갈증 때문에 피조차 끈적거렸다.
"하지만 저 포드 하나라도 가져와야 해. 동면 액이든, 비상식량이든, 아니면 살아있는 애 한 명이라도... 여기서 굶어 죽느니 뭐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냐?"
제이의 말에 레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칸을 쳐다보았다. 칸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나랑 제이가 나갈게."
레온이 갑작스럽게 제안했다. 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 레온, 너까지 미쳤어? 네가 부대장이라며! 애들 관리해야 할 거 아냐!"
"그래서 나가는 거야. 물도 식량도 없으면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여기 절반은 시체가 돼. 드래곤들이 포드를 부수는 동안 놈들의 시선이 분산돼 있어.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어."
제이와 레온, 그리고 칸 사이의 팽팽한 말싸움이 이어졌다. 제이는 레온의 눈에서 기묘한 확신을 보았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절망 끝에서 잡은 마지막 동아줄 같은 것이었다.
"안 돼. 절대로 못 보내."
칸이 가로막았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누군가 밖으로 나감으로써 괴물의 시선을 이곳으로 끌어오는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너희가 나가면 저 괴물들이 이 문을 보고 달려들 거야. 그럼 여기 남은 애들은 어쩌라고? 난 못 허락해."
결국, 말싸움은 평행선을 달렸다. 그사이 밖에서의 소음은 잠시 잦아들었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더 큰 폭풍 전의 고요였다. 아이들은 이미 공포에 질려 거주지 가장 깊숙한 어둠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었다.
"제이, 너도 가."
레온이 낮게 말했다.
"뭐? 같이 가기로 했잖아!"
"칸 말이 맞아. 네가 지금 나가면 애들이 위험해져. 일단 숨어. 내가... 내가 상황을 보고 올게."
레온의 눈빛은 단호했다. 그는 제이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이의 그 불안정한 충동이 계획을 망칠까 두려워하는 듯했다. 결국, 다른 아이들의 등살과 칸의 위협에 밀려 제이는 거주지 깊숙한 지하 통로 쪽으로 밀려났다.